< 제73화. 군인이란 (3) >
제73화. 군인이란 (3)
회사 근처에 위치한 어느 한식집.
룸 형태로 되어 있어서 민감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적합한 장소였다.
참고로 이 가게를 알아본 사람은 바로 이강진이었다.
대신 가격이 좀 나간다.
"여기 비싼 곳인데……."
부담스러움을 느낀 모양인지 최영혜의 태도는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가격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영혜 씨한테 시간 내 달라고 한 거니까 점 심도 제가 사겠습니다."
가격은 상관없다.
맛만 좋으면 된다. 그러면 이강진은 한 끼에 10만 원이든 20 만 원이든 충분히 지불할 의향이 있었다.
"여기 한식 프리미엄 세트로 2인분 부탁드릴게요."
"네!"
1인당 15만 원으로, 이 집에서 가장 비싼 메뉴였다.
"고마워요. 강진 씨 덕분에 이런 비싼 밥도 얻어먹고……. 오늘 횡재했네요."
"황재는 제가 했죠."
"네? 그게 무슨 뜻인가요?"
"그런 게 있습니다, 하하하!"
바라 식당을 메인으로 이강진은 황민수와 함께 외식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주식 투자뿐만 아니라 사업도 몇 차례 손을 대 본 적이 있는 이강진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사업을 벌이는데 있어서 중요한 건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자금.
두 번째, 인맥.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이다.
우수한 인재가 곧 큰돈을 물어다 준다.
이강진은 최영혜가 마케팅 쪽 경력자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 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경 력자는 중요하다. 큰 문제가 없는 이상 미 리 경 력자를 확보 해 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끌어 갈 수 있 기 때문이다.
"최근에 영고한테 영혜 씨 소식 들었습니다."
"어떤 소식요?"
최영혜의 얼굴에 긴장이 감돌았다.
혹여나 자신의 남동생이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최영고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하나 최영고는 병사들 앞에서 누나들의 흉을 늘어놓은 적이 거의 없었다. 애초에 누나들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면 분명 또 선임들이 '누나, 언제 소개시켜줄 거 야?'라고 물어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강진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였다.
"이번에 사표 내셨다면서요?"
"영고가 그런 말도 흘리고 다니나요? 이 녀석이 정말……!"
무의식적으로 최영혜의 본성이 잠깐 튀어나왔다.
남매간의 유혈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이강진이 최영고를 변론 해줬다.
"제가 물어본 겁니다. 저번에 휴가 나와서 영혜 씨 만났을 때, 이직을 생각하고 계신다는 말을 들어서요."
"그, 그래요?"
이강진이 그녀의 소식을 먼저 궁금해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여심이 흔들렸다.
"새로 이직할 직장은 구하셨나요?"
"아니요. 일단 사표 내고 생각해 보려고요. 조금 쉬고 싶기도 하고요."
"언제 퇴직하시는 겁니까?"
"올해 말이 니까 한…… 10월 정도 될 거 같아요. 인수인계할 게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잘됐군요."
시기가 딱 적절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하고 같이 일해 보실 생각 없나요?"
"네? 강진 씨랑요?"
이강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실은 제가 바라 식당 사장님하고 같이 외식 사업을 하게 되었거든요."
"어머, 바라 식당이라면 청주 대표 음식점이잖아요!"
전국구 맛집이 되어 버린 바라 식당. 한때는 청주 사람들만 아 는 맛집이었으나, 이제는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등 각지 사람들 이 몰려올 정도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이게 다 방송의 힘 덕분이었다.
게다가 맛도 있었다. 이강진은 바라 식당의 맛으로 대한민국외식 업계를 평정하고 싶었다.
"회사를 운영하는 데 아직 인력이 많이 부족해서요. 영혜 씨 가 와서 도와주신다면 좋을 거 같은데……. 알아보니까 영혜 씨 가 다니는 회사도 마침 식품 관련 쪽이더군요."
"네, 맞아요. 근데 제가 잘할 수 있을지……."
"잘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최영고에게 최영혜에 대한 일화를 몇 차례 들었다.
성격은 별로지만, 그래도 일은 잘하는 모양인지 회사에서 '올 해의 우수 사원' 같은 걸 자주 수상해 온다고 했다.
성격 이야기는 최영고의 주관적인 시선에서 본 의견이었기에 크게 신경 안 써도 될 부분이었다.
중요한 건 뒷부분이다.
일을 잘한다. 이를 근거로 이강진은 일단 최영혜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심했다.
잘하면 좋고, 못 하겠다 싶으면 다른 사람을 구하면 된다.
"급여는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1.5배 이상 드리겠습니다. 인 센티브도 따로 지급할 예정이고요."
객관적으로 봐도 나쁜 조건이 절대로 아니다.
하나 중요한 건 시기다.
"언제쯤 일을 시작하면 되나요?"
"제가 전역하고 바로 사업을 개시할 예정입니다. 내년 1월 정 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군요."
"1 월……. 시기가좋네요."
한두 달 쉬었다가 바로 일에 착수하면 된다.
최영혜가 먼저 이강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려요, 미래의 대표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씩 미리 전역 이후의 일을 대비하기로 했다.
휴가 복귀일 전에 이강진은 서울을 한 번 들렀다.
바라 식당 분점을 낼 장소를 미리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부동산에도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강진.
그의 목적은 장사가 잘될 것 같은 상권을 찾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느 상권이 대박을 치게 될지 기억이 가물가물했 지만, 조금씩 돌아다니다 보니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후보지로 고른 곳은 총 여덟 군데.
마음 같아선 이 여덟 곳에 모두 분점을 내고 싶었지만, 여력 이 되지 않았다.
돈은 충분히 된다. 하지만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아직 기초도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멋대로 분점만 늘려 갔다 간 큰일 난다.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할 필요는 없다. 단계별로 차근차근 밟아 나가면 된다.
'나중에는 프렌차이즈식으로 확장하면 되 니까.'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던 이강진은 이제야 해가 저물기 시 작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가야겠네.'
차가 막히기 전에 얼른 청주로 돌아가야 한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한지윤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안 받으면 안 되는 전화네.'
이건 무조건 받아야 한다.
"여보세요."
-강진 씨, 저예요.
"네, 지윤 씨, 무슨 일이신가요?"
혹시 또 데이트 약속?
아니, 이번 휴가 때에는 그럴 수 없었다.
한지윤이 출연한 사극 영화가 머지않아 개봉한다. 이것 때문 에 한지윤은 주, 조연급 배우들과 함께 무대 인사를 비롯해서 각 종 홍보 이벤트를 돌아야 했다. TV나 라디오 프로그램 일정도 빡빡하게 잡혀 있어서 당분간 그녀의 얼굴을 직접 보는 건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전화 통화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한지윤도 같은 마음이었다.
-강진 씨 못 만나니까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요.
이것이 바로 '심쿵'이라는 걸까.
별거 아닌 말인데도 불구하고 한지윤이 이렇게 말을 하니 이 강진은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저도 안 그래도 지윤 씨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 걸어 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서로 마음이 통했나 보군요."
이심전심(以心傳心).
이강진은 기쁨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좋아하는 여자가 먼저 이렇게 전화를 걸어오니, 힘든 하루가 최고의 나날이 되었다.
통화를 나누면서 이들은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10분간의 짧은 통화가 이어질 무렵.
수화기 너머에서 매니저가 한지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윤아, 곧 촬영 시작해!
-아, 알았어요, 언니. 곧 갈게요. 강진 씨, 나중에 또 통화해요.
"예, 낮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전 지윤 씨 전화라면 언제든 환 영하니까 부담 없이 걸어주세요."
-고마워요. 강진 씨도 마음껏 전화 걸어주세요. 제가 못 받더 라도 매니저 언니가 강진 씨한테 전화 왔다는 거, 저한테 꼭 알 려 주니까요.
"알겠습니다."
요즘 들어 두 사람이 부쩍 사이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투자도 안정적으로 되어 가고 있고.
연애도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이제 사업 쪽만 잘 풀리면 되겠군."
좀 더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 * *
휴가 복귀일이 다가왔다.
다시 군복을 입자, 어김없이 행복이가 이강진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짖어 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한 행복이가 자신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것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 해졌다.
"행복아, 집 잘 지키고 있어."
집을 나선 이강진은 곧장 택시에 올라탔다.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한 이강진은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강진처럼 부대로 복귀하는 병사들로 추정되는 자들 몇몇이 눈에 들어왔다.
'복귀하기 싫다.'
부대는 달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 * *
시내로 돌아온 이강진은 용사의 집에 들러 계급장을 비롯해 서 병사들이 구입해달라고 부탁한 물품들을 구입했다.
'병장 계급장은 안 사도 되겠지?'
곧 있으면 이강진은 진급 시험을 치르게 된다. 진급 시험을 통 과하면, 바로 병장 계급장으로 새로 오바로크를 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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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양 손이 두둑해졌다.
또 사갈 거 없나, 머릿속으로 기억을 떠올려봤다.
'스파링은 안 사가도 되겠지?'
문득 스파링을 살 때마다 마주쳤던 자신의 라이벌이 떠올랐 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서점에 가 봤지만, 이번에도 그의 모습 은 보이지 않았다.
'이쯤 되니까 오히려 보고 싶어지네.'
아쉬운 발걸음을 재촉하며 택시 정거장으로 향했다.
1075대대 위병소 앞에서 내린 이강진은 곧장 조장실로 향했 다.
"반입 금지 물품은?"
"없습니다."
고개를 몇 차례 끄덕이던 하사는 이강진에게 막사로 올라가 보라며 손짓했다.
이젠 아예 몸 수색도 안 한다.
한때는 반입 금지 물품 때문에 부대가 뒤집어진 적도 있었건 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군대는 역시 어쩔 수 없네.'
변화를 기대하면 실망만 주는 곳이 바로 군대다.
답은 하나뿐이다.
'얼른 전역하던가 해야지.'
복귀도 했으니까. 이제 병장 진급 시험을 준비하면 된다.
어떤 식으로 일정을 보낼지 머릿속으로 계획을 차곡차곡 그 려 넣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1중대 막사 앞에 도착하게 되 었다.
행정반으로 향한 이강진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뭐야? 분위기 왜 이러지?'
너무나도 무거운 분위기였다.
대게 누군가가 부대에서 큰 사고를 저질렀을 때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다.
'전화했을 때에는 못 들었는데.'
오늘 벌어진 일일지도 모른다.
이강진은 통신반장에게 조용히 물었다.
"통신반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어? 강진아, 너 언제 왔냐?"
"방금 복귀했습니다."
이강진의 이름을 듣자마자 행정반에서 각자 볼일을 보고 있던 병사 간부 들이 전부 그를 쳐다봤다.
눈빛이 수상하다.
통신반장은 이강진에게 추궁하듯 물었다.
"강진아, 너 혹시 15일에 휴가 나가고 XX카페 갔었냐?"
"예, 갔었습니다."
파전에 막걸리 한잔하고 갔던 곳이다.
그곳에서 대학생 무리와 약간의 시비가 붙었던 기억이 난다.
"하…… 일 났네."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 통신반장. 이번에는 이강진이 그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게 말이다."
통신반장은 난색을 표했다.
"민원이 들어왔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 제73화 군인이란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