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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25화 (225/347)

제72화. 큰 산을 넘다 (1)

카메라를 세팅하는 동안, 교육생들과 조교들은 계속 대기하고 있었다.

다른 코스와 다르게 이곳에는 아는 얼굴이 있었다.

조교들 중에서 백우호가 있다!

서일주가 입을 뻥긋뻥긋 하면서 백우호를 불렀다.

야, 백우호!

그때까지 백우호는 교육생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지 않 았다.

백우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서일주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 멩이 하나를 들어 올렸다.

휘익! 툭!

백우호의 발밑에 정확히 떨어졌다. 그제야 백우호는 교육생 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난기가 가득 담긴 서일주의 표정에 백우호는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당황한 서일주.

"우호 녀석, 내가 장난쳐서 화났나?"

"그건 아닐 겁니다."

이강진이 서일주의 말을 부정했다.

"사단장님이 계셔서 그런 거 같습니다."

"아…… 하긴, 그렇겠다."

병사들끼리만 있으면 서로 농담도 걸면서 할 텐데. 간부들을 포함해서 사단장까지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니 그런 가벼운 분 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

조교답게 위엄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괜히 장난을 받아 줬다 가 사단장에게 지적당하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조교도 털리고, 그 위에 있는 교관과 대대장도 털린다. 군 생활 꼬이는 소리가 안 나게 하려면 지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는 수밖에 없다.

잠시 후.

PD가 목소리를 높였다.

"촬영 준비 끝났습니다. 이제 하던 대로 훈련하시면 됩니다. 촬영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해 특별히 큐 사인 같은 것도 내리지 않았다.

사실 촬영 팀이 이곳에 온 시점부터 이미 리얼리티는 저 멀리 사라졌다. 이제 와서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느니 뭐니 하는 말을 해 봤자 의미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일단 PD가 말한 것처럼 죄 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는 노력은 해야 한다.

"숙달된 조교가 외줄 도하 시 범을 먼저 보여 주도록 하겠습니다. 조교 위치로."

시범 조교는 백우호가 담당했다.

"도하 준비 끝!"

"도하."

"도하!"

외줄에 매달린 백우호의 몸이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발을 쭉 뻗은 후에 안정적으로 착지를 했다.

착지한 후에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면, 그대로 물웅덩이 쪽으 로 빠질 수가 있다.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되는 곳이 장애물 코스다.

"로프를 잡고 건너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코스입 니다. 그럼 우 선 지원자부터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이강진과 성태강이 손을 들었다.

"211 번 교육생부터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성태강이 출발선상에 섰다.

그때 백우호가 성태강에게 물었다.

"부모님이라든지 아니면 친구, 전우 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성태강은 이내 입을 열었다.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고 도하하도록 합니다."

"어머 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도하!"

"도하!"

티비에서 많이 보는 장면이기도 했다.

모든 장애물 코스를 만점으로 통과한 성태강답게 외줄 도하 훈련도 완벽하게 클리어했다.

성태강이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해 줘야 이강진에게 기회가 생 길 터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이강진에게 불리해지고 있었다.

다음 이강진의 차례가 도래했다.

이강진은 비장한 표정으로 출발 위치에 섰다.

그는 백우호를 슬쩍 바라봤다.

백우호의 입꼬리가 순간 씰룩거렸다.

"209번 교육생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거 같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누구한테 외치고 시작하겠습니까?"

빠르게 주변을 훑는 이강진.

카메라 앵글? 오케이!

간부들의 시선? 오케이!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

이강진은 여태껏 숨겨 온 역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단장님께 할 말이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이강진의 폭탄 발언에 간부들을 비롯해 교육생, 조교 들까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강진에게 발언권을 준 백우호조차 순간 흠칫했다.

입이 근질거리던 이강진. 그런데 설마 사단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외칠 줄은 백우호도 몰랐다.

이강진이라면 특별히 문제될 만한 발언을 하진 않을 거라고 믿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카메라까지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강진에게 발언권을 빼앗을 순 없었다.

해 보라는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이강진은 대뜸 큰 목소리로 외쳤다.

"사단장님! 언제나 병사들을 위하는 그 따뜻한 마음과 행동, 개인적으로 정말 감사드리고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도, 도하!"

"도하!"

이강진이 택한 방법은 바로 이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대놓고 사단장 똥꼬 빨기!

사단장조차 어안이 벙벙했다.

이강진이 무사히 장애물을 넘는 동안 PD가 사단장을 바라보 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단장님, 병사들에게 정말 존경받는 분이시군요."

"그, 그거야 뭐……."

"방금 그 장면은 편집 없이 그대로 보내도 될까요? 좋은 장면이 나올 거 같아서요."

만약 이게 방송으로 나간다면?

사단장의 평판은 좋아질 것이다.

방송의 힘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간부들도 덩달아 사단장을 떠받들기 시작했다.

"역시 사단장님이십니다!"

"PD님, 오늘 편 방송 언제 송줄됩 니까?"

"저희도 본방 사수하겠습니다!"

"방송 나가면 사람들이 사단장님의 부대 운영에 대해 극찬을 할 겁니다! 하하하!"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사단장.

잠시 촬영이 중단된 사이, 사단장은 이강진에게 손짓했다.

"자네, 이리로 와 보게."

흐뭇한 미소를 짓던 사단장이 이강진에게 재차 질문했다.

"내가 그렇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가?"

"예, 그렇습니다! 사단장님은 제 영원한 롤 모델이십니다!"

"허허, 그런가! 이거 쑥스럽구먼!"

사단장은 옆에 서 있던 대대장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 친구한테 4박 5일짜리로 휴가 하나 챙겨 줘."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이 노리고 있던 게 바로 이것이다!

이강진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단장님!"

"아니야, 아니야. 앞으로도 그 마음가짐, 계속 이어가게."

이것이 바로 사탕발림의 정점이다!

교육생들은 이강진의 처세술을 보고서 할 말을 잃었다. 경외심마저 들 정도였다.

?k -k -k

오후 3시.

드디어 모든 촬영 일정이 끝났다.

마지막 남은 유격 훈련, 화생방을 받기 전에 교육생들을 잠시 쉬어 가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때마침 성태강이 이강진을 찾았다.

"이강진 상병님, 진짜 대박이십니다!"

"뭐, 이 정도야 기본이지."

유격왕을 따내야 4박 5일 포상 휴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강진은 유격왕이 되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4박 5일 포상 휴가를 챙겼다.

이제 유격왕에 미 련은 없다.

성태강은 유격왕을 차지해서 좋고, 이강진은 유격왕이 되었을 때 받는 혜택을 미리 챙길 수 있어서 좋고.

이거야말로 두 사람이 다 승자가 되는 최고의 시나리오가 아 닐까.

"유격왕 된 거, 미리 축하한다, 태강아."

죽하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태강은 왠지 이강진에게 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아마 이강진이 전역할 때까지 평생 그를 이기지 못할 거라고.

* * *

유격 훈련의 마지막 관문, 화생방까지 무사히 소화한 교육생 들.

4일 차를 마무리 지은 교육생들의 표정은 한결 편안했다.

아직 복귀 행군이 남아 있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것만 끝내면 유격은 전부 다 끝나는 셈인데.

저녁 식사 때, 분대원들은 추진해 온 것들을 전부 다 소진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파티다.

서일주가 이강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강진아, 오늘이 유격장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인데 분대장이 한마디 해야지. 안 그러냐?"

"알겠습니다."

탄산음료를 담은 종이컵을 높게 추켜올린 이강진.

"다들 훈련 받느라 고생 많았다. 근데 아직 끝난 건 아니다. 복귀 행군까지 끝나고 난 다음에야 모든 훈련이 종료되는 거니까 마지막까지 방심은 절대로 금물이다. 어렵게 유격 훈련 무사히 다 받았는데, 복귀 행군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만큼 찝찝한 일도 없을 테니까. 알았지?"

"예!"

"자, 그럼 건배하자. 건배!"

"건배!"

분대원들은 종이컵을 부딪친 후에 그것을 꿀꺽꿀꺽 삼켰다.

1분대뿐만 아니라 다른 분대에서도 쫑파티를 하는 모양인지 주변이 시끌벅적했다.

오후 7시 30분쯤 되었을 때.

행보관이 확성기를 들었다.

"아아, 오늘은 유격의 마지막 밤이니까 나와서 서로 허심탄회 하게 이야기하는 시간 가지도록 하겠다. 다들 나오도록."

"예!"

오밀조밀 모인 중대원들을 쭉 훑어보는 중대장.

"작년에 유격 받아 본 선임급들은 이 중대장이 너희들에게 뭐 시키려고 하는지 잘 알 거다."

중대장의 말을 듣자마자 상병장들은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 였다.

뭔지 알 것 같았다.

"한 명씩 나와서 속에 담아 뒀던 말을 하나씩 하고 들어가면 된다. 유격 훈련에 대한 소감도 좋고, 후임이나 동기, 선임 들에게 한마디 해도 좋다. 이 중대장이나 행보관님, 다른 간부들을 대상으로 삼아도 상관 없고. 어디 보자, 그럼 누구부터 시켜 볼 까……."

이강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건 짬순으로 하는 게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원래 막내가 속에 담아 둔 게 가장 많은 법이다. 그 말인즉슨, 할 말이 많다는 뜻이다.

하이라이트는 막바지에 공개하는 게 재미있다. 그래서 이강 진은 짬순으로 진행하는 걸 권유했다.

중대장도 이강진과 같은 생각이었다.

"중대 왕고가 누구지?"

"병장 안두목!"

"두목이, 나와서 한마디 해 봐라."

유격이 끝나는 다음 주에 바로 전역이 예정되어 있는 안두목.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병사들 앞에 섰다.

원래 안두목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중대장이 와서 한마디 하고 가라니까 어 쩔 수 없이 나온 것이다.

"저는 크게 할 말은 없습……. 아, 하나 떠올랐습니다."

안두목은 행보관 쪽을 바라봤다.

"행보관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오……!"

겁도 없이 행보관에게?

말년 병장의 천적인 행보관은 말해 보라는 식으로 팔짱을 낀 채 안두목을 바라봤다.

"저, 휴가 하루만 붙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4박 5일은 너무 짧습니다!"

용기를 내보는 안두목이었다. 하긴 말년 휴가치곤 4박 5일은 짧은 감이 있다.

행보관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휴가가 '주세요!' 하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하는 건 줄 아냐?"

"헤헤헤……."

그래도 안두목의 용기가 가상한 모양인지 행보관은 그의 바 람을 들어주기로 했다.

"좋다, 하루 정도는 내 재량으로 붙여 주마."

"감사합니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아니, 포상 휴가를 얻는다!

안두목의 용기와 행보관의 관대함에 병사들은 박수를 보냈다.

반드시 유격왕을 따낸다고, 그리고 이강진처럼 사단장에게 엄청 잘 보인다고 휴가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이렇게 용기를 내면 휴가를 얻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언제, 어디서 휴가가 떨어질지 모른다. 이강진이 늘 하던 말이 이번에도 현실이 되었다.

< 제72화. 큰 산을 넘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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