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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17화 (217/347)

< 제68화. 미묘한 관계 (3) >

제68화. 미묘한 관계 (3)

개인 정비 시간.

최영고는 자신처럼 담배를 좋아하는 후임이 들어와서 그런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한 대 더 피울래?"

"이 병 조은석! 감사합니다!"

군에 입대한 후에 오늘처럼 가장 많은 담배를 피웠던 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조은석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실제로는 구름을 걷는 게 아니라 구름 같은 연기를 입으로 내뱉고 있었지만 말이다.

조은석의 나이가 28세라는 건 최영고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굳이 나이를 묻지 않아도 조은석이 최영고보다 연상이라는 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최영고는 씁쓸한 웃음을 삼켰다.

만약 이곳이 사회라면, 최영고는 조은석에게 큰 형님이라 불 러야 할 판국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군대다.

최영고가 조은석보다 입대한 날짜가 빠른 이상, 조은석을 형 이라 불러선 안 된다.

설령 입대한 날짜 순서가 뒤바뀌었다 하더라도 형이라는 호 칭은 허락되지 않는다.

군대에선 오로지 관등성명뿐이다.

그걸 알고 있어서일까.

최영고는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고서 조은석에게 옆에 있는 전화박스들을 가리켰다.

"전화하고 싶으면 가서 전화해도 돼. 이강진 상병님이 전화카드 쓰라고 주셨지?"

"이 병 조은석! 예, 그렇습니다!"

"나 한 대 더 피우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부담 없이 통화하고와."

"감사합니다!"

나름 조은석을 배려해 준 말이었다.

전화박스로 들어간 조은석은 일단 가족들과 통화를 시도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그의 전화를 받았다.

-은석이 냐?

"네, 아버지. 저예요."

-그래도 생각보다 목소리가 밝게 들리긴 하구나.

"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요. 훈련이 조금 빡셌을 뿐이 지, 살 만한 거 같아요, 하하."

만약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더라면 벌써부터 눈 물 젖은 통화를 주고받았을지도 몰랐다.

이야기를 나눈 뒤에 이번에는 친구들에게도 통화를 돌렸다.

저녁 시간대에는 대게 조은석의 통화를 다 받아 줬다.

그러나 통화 시간은 짧은 편이었다.

애초에 조은석이 사석에서 말이 많은 것도 아니고, 아버지나친구들의 화법도 평균적으로 짧았다.

그러다 보니 한 통화 정도 더 해도 괜찮을 법했다.

"선배한테 전화 걸어 볼까."

아마 자신이 성태강과 같은 부대, 같은 생활관을 쓰게 되었다 는 사실을 듣게 되면 깜짝 놀라겠지.

여기에 이강진까지.

특종 거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군 생활이다.

-여보세요.

피곤에 잔뜩 찌든 서형면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들렸다.

"여보세요. 선배님? 저 은석입니다."

-너라는 거 다 알아. 요즘 시대에 공중전화기로 전화 거는 사람은 군인밖에 없을 테니까.

"하하하."

웃기지만 슬픈 그런 대답이 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냐? 특종의 신이 네게 미소를 지어 주시든?

"네, 미소뿐만 아니라 아주 호쾌하게 웃어 주시기까지 하더라 고요."

-으잉? 뭔 뜻이냐?

조은석은 자초지좋을 설명했다.

1중대 발령을 넘어서 같은 생활관에 배치되었다는 이야기를 모두 들려줬을 때.

서형면은 기가 막혀 했다.

-야, 이 정도면 너, 하늘이 도와준 거다. 어중간한 네임벨류를 가진 연예인도 아니고 그 유명한 KGE의 태강이 입대한 부대에, 심지어 같은 생활관을 쓰게 되었다는 건 '특종 드세요, 조 기자 님.'이라고 등을 떠밀어 준 거나 다를 바 없는 거야.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요?"

-그렇지, 인마! 아무리 기자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 해 도 그렇지, 군대 내부까지 몰래 잠입할 수는 없잖아. 그런데 넌 그걸 해낸 거야. 연예부 기자들한테 말 전해 둘 테니까, 최대한 특종 거리 뽑아내 봐라. 연예 1면에 네 이름 딱 찍혀 있는 기자 한 번 박아 보자. 콜?

"저야 좋긴 하지만

이강진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외부에 정보 너무 많이 흘리고 다니지 마라. 네가 기자 일 하 다가 왔다고 해서 미리 말해 두는 거야.

그는 조은석에게 그렇게 경고했다.

조용히 군 생활하고 전역하는 게 최고긴 하다. 괜히 트러블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먹잇감이 너무 탐스러워.' 못 본 척하고 지나가기엔 굉장히 아쉬운 특종감들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한번 해 볼게요."

-해 보는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거야. 너, 사회에 나와 서까지 그 사람들 얼굴 계속 보는 거 아니잖아? 어차피 전역하 면 안 볼 사람들이야. 근데 그 사람들 눈치를 왜 보f? 오히려 나 하고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기자들 눈치를 봐야지. 안 그러냐?

조은석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도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다들 전역하면 끝이다.

서형면의 목소리는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물론 군 생활은 조금 고달파지겠지. 하지만 은석아, 잘 생각 해야 한다. 강진 씨가 분대장이라고 했지? 강진 씨 전역하고, 밑 에 후임 전역하고 그다음이 태강이라며? 태강까지 전역하면, 고 달팠던 네 군 생활도 풀리는 거야. 얼마 안 되잖아. 그렇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네가 분대장 말 어기고 기사 냈다고 널 죽이려고 하겠냐, 뭘 하겠냐. 요즘은 폭력도 금지되어 있어서 해 봤자 말로 갈구는 것밖에 더 없어. 너, 우리 회사 입사하고 나서 갈굼 엄청 받았잖아? 그거에 비하면 요즘 군대는 캠프지, 캠프.

마지못해 알겠다고 대답하는 조은석.

통화를 마친 후, 그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 모습을 본 최영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뭐 문제라도 있어?"

"아, 아닙니다!"

"그래? 그럼 전투화 닦으러 가자. 오늘 당직, 행보관님이시니까. 갑자기 불시에 위생 검사 실시할 수도 있으니 빡세게 닦아 두는 게 좋아. 꿀 팁이니까 잘 알아둬

"예, 알겠습니다!"

생각은 나중에.

일단은 전투화부터 닦기로 했다.

저녁 점호 시간.

생활관 책임자를 맡은 이강진은 점호가 시작되기 전에 생활 관을 쭉 돌아봤다.

도중에 이강진은 말없이 오른손을 뻗으면서 기운상의 관물대 를 가리켰다.

척하면 척 알아듣는 단계에 도달한 기운상은 '죄송합니다!'라 는 말과 함께 어질러진 자신의 관물대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이강진의 모습에 조은석은 침을 꿀꺽 삼켰

'카메라 앞에선 성격 좋고 인자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긴 카메라 앞과 뒤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 니까.'

연예계에도 그런 사람은 넘치고 넘쳤다.

이강진은 이번엔 최영고의 관물대를 살폈다.

그의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최영고."

"이 병 최영고!"

"너 빨래 언제 했냐?"

"그게…… 2주 전에 했습니다."

"내가 빨래는 주 단위 넘기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한숨을 짧게 내쉰 이강진은 갑자기 최영고에게 얼차려를 부 여했다.

"엎드린다. 실시."

"실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조은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이런 분위기가 된 것만으로도 조은석은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갈굼까지 견디라고?

'난 못 해!'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이강진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한편 이강진은 애써 자신의 시선을 피하려는 조은석을 바라 봤다.

'은석이 형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초반에는 이런 모습을 보여 줘야지.'

군기 반장으로서의 면모를 일부러 보여 주기 위해 분위기를 잡은 것이다.

"영고, 너는 내일 빨래 다 끝내고 나한테 검사 맡으러 와라."

"예, 알겠습니 다!"

"기상."

"기상!"

피가 아래로 쏠린 탓에 얼굴이 새빨갛게 된 최영고.

조은석은 긴장감 탓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덕분에 '이곳이 군대다!'라고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이강진이 얼차려를 부여해도 분대원들은 군말 없이 따랐다. 이강진만큼 후임들을 챙겨 주는 선임이 없다는 걸 모르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상과 벌이 엄격한 사람이다. 그래서 얼차려를 시켜도 몸 이 잠깐 불편할 뿐이지, 마음까지 불편하진 않았다.

이강진의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면 오히려 마음은 편하 다.

잠시 후 행보관이 1생활관에 들어섰다.

"부대 차렷!"

군기가 바짝 잡힌 병사들의 모습에 조은석도 덩달아 그들을 따라했다.

인원보고와 번호까지 모두 끝냈다.

행보관은 가장 먼저 조은석이 서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병."

"이 병 조! 은 석!"

"자대 입대한 첫 날인데 불편함은 없나?"

"예, 없습니다!"

목소리는 무조건 크게.

신교대에서 조교가 알려 준 자대 생활 팁이었다.

조은석은 그 팁을 벌써 사용하고 있었다.

이병이 패기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 주니, 행보관의 입가에 미 소가 그려졌다.

"그래. 앞으로도 쭉 그런 모습 보여 줄 수 있도록 노력해라."

툭툭 .

행보관이 조은석의 왼쪽 팔을 토닥여 줬다.

그러나.

조은석은 가만히 있었다.

순간 선임병들은 경악했다.

갑자기 그들이 조은석에게 매서운 눈빛을 쏘아 내기 시작했왜 갑자기 이런 반응들을 보이는지 조은석은 바로 알아차리 지 못했다.

어버버거릴 때 이강진이 뒤에서 힌트를 줬다.

전투복 상의에 달려 있는 자신의 이름표를 가리킨 것이다.

'맞다, 관등성명!'

간부가 자신의 몸을 터치했을 때에는 관등성명을 대야 한다.

긴장한 탓일까. 그런 기초적인 것을 깜빡해 버렸다.

"이 병 조은석! 예, 알겠습니다!"

뒤늦게 관등성명을 외쳤다.

반 박자 느린 반응이긴 했지만, 행보관은 그거 가지고 크게 뭐 라 할 생각은 없었다.

신병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지.

그렇게 너그러이 넘어갔다.

하지만.

과연 선임병들은 행보관처럼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을까?

조은석의 예상대로 행보관이 나가자마자 바로 쓴소리들이 날 아왔다.

"야, 조은석. 간부님이 터치하면 관등성명 대는 거 몰라?"

"이 병 조은석! 죄송합니다!"

눈치는 빠르나 행동은 약간 느렸다.

이것이 조은석의 안 좋은 점이었다.

잘 나가다가 한 번씩 지적당할 만한 행동을 하니 정신이 하나 도 없었다.

그때 의외의 구원자가 등장했다.

이강진이 후임들을 진정시켰다.

"됐어. 자대 첫날인데, 실수 한 번 할 수도 있지. 슬슬 취침 시 간이 니까 신 병 그만 갈구고 오늘은 그냥 자자."

서일주도 옆에서 몇 마디를 보탰다.

"그래그래, 강진이 말이 맞아. 누구나 다 올챙이 적 시절이 있 다고들 하잖아? 나도 그렇고, 너희들도 그렇고. 실수가 반복될 때, 그때 갈구면 되는 거야. 오케이?"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은 서일주를 슬쩍 바라봤다.

'이 인간이 별일이네. 옳은 소리를 다 하고.'

이런 이강진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서일주는 씨익 웃었다.

"어때, 강진아. 나 좀 멋있었지?"

"멋있다기보다는 갑자기 캐릭터가 달라져서 좀 놀랐습니다. 순간 서일주 병장님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래? 나도 전역할 날이 얼마 안 남긴 했나 보다. 너한테 그 런 소리를 다 들을 정도면."

원래 전역 시기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사람이 달라지는 경 우가 있다.

서일주도 그중 한 명이지 않을까. 이강진은 그리 생각했다.

< 제68화. 미묘한 관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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