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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16화 (216/347)

< 제68화. 미묘한 관계 (2) >

제68화. 미묘한 관계 (2)

기자 하고 왔다는 말을 내뱉은 조은석.

그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강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형은 전에 하던 실수를 여기서도 똑같이 반복하네.'

회귀하기 이전에도 조은석은 자신이 기자 일을 하다 왔다는 사실을 본인 입으로 밝혀 버 렸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우면 말실수가 너무 잦아진다. 이게 조은석의 큰 약점이었다.

이강진의 존재가 본의 아니게 그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 준 듯했다.

그것을 어 렴풋이 알아차린 이강진이 었으나, 그렇다고 딱히 죄 책감을 느끼진 않았다.

'내가 실수한 거 아니니까.'

그리고 어차피 밝혀질 일이기도 했고.

차라리 시작부터 이렇게 전부 다 오픈하는 게 오히려 좋아 보 였다.

기자 일을 하다가 왔다는 조은석의 말에 백우호가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럼 태강이하고도 아는 사이 야?"

"그게……."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

이제 와서 '사실 농담이 었습니다, 하하하!'라고 말했다간 자대 입대 첫날부터 장난질이냐고 선임들의 갈굼 폭격을 받을 것이다.

허무하게 자신의 정체가 들통 난 건 분명 아쉽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연예 담당 부서에서 일할 때에는 한두 번 얼굴을 뵌 적이 있었지만, 제가 정치, 경제 팀으로 부서 이동을 한 이후에는 마주 친 적이 없습니다."

"그래? 경제 쪽이면 강진이랑 이야기가 잘 통하겠네. 강진아! 주식 정보 필요하면 신병한테 달라고 해."

이강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생각해 보고."

조은석보다 이강진이 가진 정보의 가치가 훨씬 월등하다.

굳이 조은석의 힘을 빌릴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필요 없겠지만, 사회에 나가서 조은석의 도움을 종종 받아도 괜찮을 거 같았다.

하지만 이건 전역 이후의 일이다.

한편 조은석이 기자 일을 하다가 왔다는 사실을 실수로 밝힘 으로 인해 그를 가장 크게 신경을 쓰는 이가 있었다.

바로 성태강이었다.

"어흠!"

헛기침을 하면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려고 하는 성태강. 기자라는 게 사실 우리나라에서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틈만 나면 날조하고, 선동하고.

사실과 동떨어진 정보를 기사라고 내는 기자들도 여럿이다. 괜히 '기레기'라는 단어가 탄생한 게 아니다.

이강진도 기자라는 존재를 좋게 보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은석이 형은 그래도 기자들 중에선 나은 편이지.'

조은석은 그나마 양심 있는 기자였다.

하지만 성태강은 그걸 모른다.

성태강과 조은석의 미묘한 관계.

어떻게 하면 복잡하게 얽힌 이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이걸 해결해야 하는 것 또한 분대장의 일이다.

* * *

이강진은 직접 조은석의 어깨에 노란 견장을 착용시켰다.

"이건 네가 2주 동안 대기 기간이라는 걸 나타내는 견장이니 까 항상 착용하고 다녀. 떼지 말고."

"이 병 조은석!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선임들이 하는 말 잘 듣고. 너는 여기 처음이니까 잘 모르겠지만, 우리 분대는 모난 사람 한 명도 없어. 다들 마음씨 좋고 착한 사람들뿐이니까 너무 겁먹거나 하지 마."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특이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1분대지만, 그래도 이강진의 말 마따나 비뚤어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이강진 밑에서 당당하게 망나니짓을 하고 다닐 후임은 없었다.

서일주는 조용히 있다가 전역하겠다는 태도를 굳히고 있으니, 이강진이 한눈을 팔지 않는 이상 분대 운영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조은석은 불안 요소였다.

"이건 혹시 몰라서 내가 추가로 너한테만 당부하는 말인데."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외부에 정보 너무 많이 흘리고 다니지 마라. 네가 기자 일 하 다가 왔다고 해서 미리 말해 두는 거야."

방금 이강진이 한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 다.

군 기 밀 사항을 함부로 유포하지 말라는 뜻도 되지 만.

이강진과 성태강의 행태를 기삿거리로 남발하지 말라는 뜻도 된다.

조은석은 눈치가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자다 보니 빠른 편이었다.

이강진의 말 속에 담긴 진의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예, 알겠습니다."

"오케이, 분섭이하고 운상이, 너희 둘이 은석이 데리고 다니 면서 막사 주변에 무슨 시설물들이 있는지 알려 줘라. 그리고 내 무생활에 대해서도 교육시키고. 짬날 때마다 선임들 관등성명 도 외우게 해.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사수 역할에서 일부러 성태강은 뺐다.

연예인과 기자는 친해지기 힘든 관계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당분간 두 사람이 엮이는 일은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했다.

조은석이 자리를 비운 동안, 이강진은 성태강을 불렀다.

"태강아, 은석이, 많이 신경 쓰이지?"

"일병 성태강…… 예, 그렇습니다."

성태강은 마지못해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강진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앞에만 서면 성 태강은 본인도 모르게 솔직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예계 쪽에서 일을 하다 보면 기자한테 수시로 데이곤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KGE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태강이 한창 인기 있었을 당시.

어떤 기자가 갑자기 성태강과 모 여자 아이돌과의 스캔들 기 사를 터트렸다.

친한 오빠, 동생 사이에서 하루아침에 강제로 연인 사이로 둔 갑하게 된 이들.

당연히 그건 오해였다.

하나 기자들에겐 사실인지 거짓인지의 여부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이 대중에게 관심을 끌 만한 특종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 했다.

결국 소속사까지 나서서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강력하게 대 처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사과문조차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다른 연예인들의 스캔들 기사를 보란 듯이 터 뜨리고 다녔다.

성태강 입장에서 보면 참 어이가 없었다.

"물론 모든 기자들이 다 사실을 날조하고 그러진 않을 겁니다. 그중에는 진실된 소식만을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기자님들 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그걸 안 다 해도 마음 한쪽에선 기자들을 불신하는 감정이 쉽게 사그라 들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저도 사람인지라……."

"알고 있어.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해."

이강진이 직접 그런 일을 당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그들 이 가지고 있을 억울한 심경은 보여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 상할 수 있었다.

1중대에는 왜 이리도 하나같이 다 비범한 사람들 천지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1분대라는 한 배를 탄 이상, 이들은 전역하기 전까지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상성에 안 맞는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은 해 봐야 한다.

성태강도 그걸 잘 인지하고 있었다.

"신병이 저한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그 스캔들 기사를 냈 던 기자도 아닌데, 개인감정 때문에 신병만 집중적으로 막 괴롭 힐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안심하셔도 됩니다."

"나도 알아. 네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강진 상병님."

성태강은 인성이 된 놈이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이강진이다.

이강진은 성태강을 특별히 의심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잘만 해결하면 될 거 같은데.'

회귀 이전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끝났었다.

그때 맛본 어색한 기류가 아직도 이강진의 뇌리에 강하게 박 혀 있었다.

이번에도 어색함 속에서 군 생활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은석이 형하고도 신병 면담 진행해야 하니까. 이야기 좀 나누다 보면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겠지.'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막사 주변에 있는 시설물들을 쭉 돌아본 조은석.

그의 소감은 간단했다.

'생각보다 나쁘진 않네.'

조은석은 낡아 빠진 구막사를 상상했었다. 이미 최악의 상황을 염두하다 보니 1075대대 1중대 막사와 시설들이 그렇게 나 쁘지만은 않게 보였다.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다시 보니 선녀 같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생활관으로 복귀하자마자 이강진이 조은석을 찾았다.

"은석아, 개인면담 좀 하자."

"이병 조은석! 예!"

생활관을 나온 이강진과 조은석은 면담실이라 적혀 있는 별 도의 공간을 찾았다.

분대장 수첩을 펼친 이강진은 펜을 들고서 조은석에게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돼?"

"28세입니다!"

발음을 조심해야 할 나이다. 잘못 발음하면 욕하는 것으로 오해받기 충분하다.

이강진보다 형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형 대접을 확실하 게 해 줄 수는 없었다.

군대는 나이보다 계급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은석도 충분히 납득하고 있었다.

이미 신병 교육대에서 자기보다 나이 어린 조교들 밑에서 이 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가 왔다. 나이를 앞세워서 대접받고 싶다 는 생각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애인은 없고?"

"네, 없습니다!"

조은석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강진 입장에선 관리 대상 후임이 차라리 여자 친구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 야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것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럴 때에는 솔로를 찬양해도 된다.

"군 생활하는데 문제될 만한 건? 예를 들자면 아토피가 있다 든지, 아니면 기관지가 안 좋다든지. 만성 질병 같은 거 가지고 있으면 미리 말해 줘. 그러면 나중에 훈련받는데 네가 이러이러 한 부분이 안 좋아서 열외시켰다고 내가 간부님들한테 미리 보 고할 수 있으니까."

"질병은 아니지만, 제가 운동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다 보니 체력이 많이 약합니다."

이강진에겐 별거 아닌 문제였다.

"체력은 알아서 자연스럽게 단련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하, 하하하……."

사실 이강진이 뭔가 대단한 해답을 들려줄 거란 기대는 조은석도 하지 않았었다.

"그밖에 특이 사항은 없고?"

"예.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백우호 상병이 말씀해 주신 거, 사 실입니까?"

"뭐가?"

"주식 말입니다."

경제 쪽을 다루는 기자답게 주식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아니면 다른 뜻이 있겠지.'

이강진은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답했다.

"그냥 우호가 오버해서 말한 거야."

"그렇습니까. 필요하시다면 제가 언제든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말씀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이강진의 예상대로였다.

이강진이 신교대에서 그리고 자대에서 자주 사용했던 작전을 조은석도 펼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 알았어."

무표정으로 대답하는 이강진.

사회생활을 하다 온 사람이다 보니 누구한테 잘 보여야 앞으 로 자신의 군 생활이 편해지는지 조은석은 빠르게 파악했다.

이강진, 그가 1분대 실세다.

예나 지금이나 눈치 빠른 건 변함이 없는 조은석의 모습에 이 강진은 몰래 미소를 지었다.

실세한테 잘 보여서 군 생활을 편하게 보내겠다.

작전은 좋다.

하지만 하필이면 대상이 이강진이라는 게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나한테 어설픈 주식 정보는 필요 없지.'

그런 거에 넘어갈 이강진이 아니다.

조은석의 행동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었다.

< 제68화. 미묘한 관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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