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6화. 군인들이 헤어지는 방법 (1) >
제66호[. 군인들이 헤어지는 방법 (1)
최근 이강진에게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포상 휴가를 어떻게 쓸까.
2박 3일짜리 포상 휴가가 갑자기 생겨 버렸다. 여기에 대민 지 원 때 받았던 1박 2일을 비롯해서 그동안 받았던 자잘한 포상 휴가들을 합치 면, 총 6박 7일의 완전체가 탄생하게 된다.
이제부터 계산을 잘해야 한다.
왜냐하면…….
'잘못하다가 휴가를 쌓아 놓기만 하고, 다 쓰지도 못한 채 전역할지도 몰라.' 그러면 얼마나 억울할까.
물론 다른 병사들한테 양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 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이강진이 따낸 만큼 본인을 위해 이 휴가들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휴가를 한 번 나갔다 올 때마다 수천만 원의 수익을 거둬 들이고 오는데, 안 쓰는 게 오히려 바보다.
'이번에도 쓰긴 써야 할 텐데.'
갑작스럽게 얻은 휴가다 보니 언제 써야 좋을지 타이밍이 잘 안 보였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철이랑 상담 좀해 봐야겠군.'
이강진은 개인 수첩을 들고서 김철이 있는 행정분과 생활관 으로 향했다.
"철아!"
이강진을 본 후임병들이 하던 일들을 멈추고 거수경례 자세를 ?淪杉? 이강진은 손사래를 치면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한편.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던 김철이 이강진 쪽으로 고개를 홱 돌 렸다.
"어, 강진아. 왜?"
"휴가 때문에 상담 좀 하고 싶어서."
"휴가? 또 나가게?"
"어."
"역시 포상 휴가 사냥꾼. 거의 달마다 나가네."
이강진이 의도해서 포상 휴가를 따내려고 한 것도 있었지만, 얻어 걸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대대장 기습 순찰 사건 같은 경우가 딱 그렇다.
이쯤 되면 포상 휴가의 신에게 직접 가호를 받았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언제쯤 나갈 건데?"
"일단은……."
생각해 두고 있는 휴가 일정이 있었다.
"셋째 주 아니면 ?分?주."
"그때가 주식 장 상황이 좋은 거야?"
"뭐, 그렇지."
이강진이 휴가를 나갈 때마다 주식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벌어 들이고 온다는 사실은 이미 병사들 사이에서 소문이 쫙 퍼진 상 태였다.
이번에도 이강진은 한탕을 노리기 위해 휴가를 사용할 생각 이었다.
이강진이 원하는 휴가 일정을 만들어 주기 위해 김철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나 도중에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목소리를 잔뜩 낮준 김철.
"지윤 씨랑은 잘 만나고 있어?"
"요즘 영화 촬영 때문에 많이 바쁜 거 같아서 잘 못 만나고 있지."
종교 행사에서도 그녀를 못 본 지 꽤 된다.
가끔 휴가를 나갔을 때 한지윤과 둘이서 데이트를 즐겼던 적이 있었지만, 그건 한지윤이 연예계에 데뷔하기 전, 혹은 아직 스케줄이 한가할 때의 일이었다.
요즘은 휴가를 나가도 한지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김철은 이강진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그의 손길에 담겨 있는 건 '위로'였다.
"너하고 지윤 씨가 잘되기를 응원하마."
"다른 사람들에게 나하고 지윤 씨 사이를 말 안 해 주는 게 응 원해 주는 거야."
"알고 있어. 그래서 일부러 우호한테도 말 안 하고 있잖아."
이강진이 한지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백 우호가 알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백우호가 한지윤에게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이강진이 핑크빛 연애을 즐기는 걸 안 좋아해서 그런 것이다.
안 그래도 이강진에게 라이벌 의식을 활활 태우고 있는 백우 호인데, 이강진이 요즘 잘나가는 여배우와 썸을 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폭발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철은 일부러 백우호에게 이런 사실들을 알리지 않 고 있었다.
김철에게 한지윤의 이야기를 들으니, 예전 생각이 절로 나기 시작했다.
'그때는 지윤 씨하고 서로 전화도 자주 주고받으면서 언제 만 날지 일자까지 딱 정하고 휴가 나갔었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어졌으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래서 내가 빨리 전역을 해야 해.'
그렇게 되면 좀 더 한지윤과 자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지윤이 바쁘더라도 이강진이 언제든 시간을 낼 수 있으니 말이다.
돈과 명예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까지!
이 모든 것들을 얻기 위해서라면 재입대도 감수할 수 있는 남 자.
그가 바로 이강진이다.
휴가를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복귀하는 자도 있는 법이다.
휴가일까지 일주일을 남겨 둔 상황에서 이강진은 분대장 수첩을 들고 분대장 회의에 참가하게 되었다.
오늘의 회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슬슬 하계 시즌이니까 분대원들 더위 안 먹게 조심하고. 내 일부턴 하복 허용되니까 더운 사람들은 그거 입고 다니라고 해 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두 번째.
"슬슬 제초 작업도 시작할 테니까 그리 알고 있도록."
군대에서 맞이하는 두 번의 여름.
그리고 두 번의 제초 작업.
이강진은 한숨을 삼켰다.
그래도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멘탈 추스르자.'
올해 여름에 하는 제초 작업이 군대에서 하는 마지막 작업이 될 것이다. 이것만 하면 앞으로 군대에서 풀 뽑으러 다닐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터.
이런 사실이 그나마 이강진에게 위로가 되었다.
"아, 하나 더."
행보관이 예정에 없던 세 번째 사항을 전파했다.
"후임들 잘 챙겨라. 특히 관심 병사 있는 분대는 더 신경 쓰고. 최근에 옆 부대에서 이등병 하나가 자살 소동 일으켰다는 거, 너 희도 이미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을 거다. 그것 때문에 사단 에서 후임병들, 특히 이등병들은 주의 깊게 관리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으니까 최대한 잘 챙겨 줘라. 언제 또 사단에서 이런 거 가지고 검열 나올지 모르니까."
"예, 알겠습니다."
병사 관리는 분대장들의 가장 큰 업무라 할 수 있었다.
인사 관련으로 사고가 벌어지면, 분대장들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신경 써서 관리를 해야 한다.
"그밖에 특이 사항은 없나?"
"상병 이강진."
회의가끝나기 전에 이강진은 행보관에게 1분대의 특이 사항을 보고했다.
"금일 곽분섭 일병이 휴가에서 복귀할 예정입니다."
"분섭이? 아, 오늘 복귀하나 보군. 그나저나 걔가 벌써 일병인 가?"
"예, 그렇습니다."
"그렇군. 분섭이가 내 기억으론 휴가 때 전화도 꼬박꼬박 잘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에 3번씩 부대로 전화했었습니다."
무슨 삼시세끼도 아니고, 이강진이 한 번만 해도 된다고 말을 해도 꼭 세 번을 전화했다. 그 때문에 매번 전화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던 이강진은 솔직히 말해서 많이 귀찮았었다.
전화하는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오늘 프로 야구 경기를 보러 갔는데,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역 전 만루 홈런을 때려서 기가 막힌 역전승을 이뤄 냈다느니 어쨌 느니 하는 쓸모없는 보고를 해 왔다.
어쩌면 곽분섭은 그저 자신의 수다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해 서 부대로 자주 전화를 걸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하다.
그런 곽분섭이 드디어 오늘 복귀한다.
"복귀하고 나면 강진이 네가 휴가 기간 동안 별일 없었는지 개별 상담 진행하도록 해. 나도 나중에 따로 상담해 볼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다른 분과는 휴가 복귀자 없나?"
분대장들은 행보관의 물음에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로서 오늘의 분대장 회의는 여기까지.
생활관으로 가서 슬슬 저녁 먹을 준비를 하려고 했던 이강진 에게 '충성!'이라는 구호 소리가 들렸다.
이제 막 부대로 복귀한 곽분섭이 그에게 거수경례 자세를 취 하고 있었다.
"일 병 곽분섭! 휴가 복귀했습니다!"
목소리가 아주 우렁찼다.
이강진이 상식적으로 아는 휴가 복귀자의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예, 그렇습니다!"
"복권이라도 당첨됐냐?"
곽분섭의 얼굴은 싱글벙글이었다.
"비슷합니다!"
"그래? 뭔데?"
비슷하다고 하니까 더 궁금해졌다.
곽분섭의 목소리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사랑 복권에 당첨된 거 같습니다!"
* * *
5박 6일 동안 휴가를 나갔던 곽분섭.
그는 휴가의 대부분을 프로 야구 관람에 투자했다.
그러던 와중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같은 과에 다니는 여성 후배가 어느 날 갑자기 곽분섭에게 같이 프로 야구 경기를 보러 가자고 먼저 제안한 것이다.
그것도 단 둘이서!
밥을 먹 던 도중에 곽분섭이 잔뜩 흥분하며 물었다.
"이거, 그린 라이트 아닙니까?"
이강진이 대답하기 전에 백우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린 라이트지! 인마, 아는 여자 후배가 선배한테 둘이서만 가자고 한 거면 완전 데이트잖아! 그 자리에서 바로 고백했어야 지!"
데이트 한 번 한 거 가지고 결혼에 자녀 계획까지 세우는 꼴 이었다.
이강진은 솔직히 말해서 그린 라이트니 뭐니 하는 단계조차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단순히 야구를 보러 가고 싶은데, 아는 사람이 없어서 곽분섭 에게 그런 제안을 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강진이 모르는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좀 더 여자의 마음을 확인하고 난 다음에 빛 색깔이 그린인지 레드인지 구분하는 편이 좋아 보였다.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강진과 다르게 백우호와 곽분섭은 앞 서가도 너무 앞서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제가 휴가 복귀하기 전에……."
"전에?"
설마.
아니겠지.
이강진은 불안함을 느꼈다.
그 불안은 곽분섭의 입을 통해 현실이 되었다.
"그 후배한테 고백했지 말입니다!"
안 좋은 예감은 왜 늘 맞아 떨어지는 걸까.
한편 분대원들은 갑작스런 후임의 연애담에 많은 관심을 보 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답이 뭐래?"
"오케이 했어?"
"짜식, 군인 신분으로 여자 친구 만든 거냐? 하늘의 별따기보 다도 더 힘들다는 일을 해낸 거야?"
사방에서 날아드는 질문 공세. 곽분섭은 이에 대해 이렇게 답 했다.
"생각 좀 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뭐야? 오케이한 게 아니었어?"
"난 또. 사귀는 줄 알았네."
금세 불타올랐다가 금방 사그라들었다.
이들에겐 원인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달달한 사랑 과정 따윈 상관없다. 사귀냐, 안 사귀냐 이것에만 관심이 많았다.
그 결과가 아직 안 나왔으니 흥미가 깨지는 것도 당연했다.
서일주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대답은 언제 준데? 평생 생각만 해 보진 않을 거잖아."
"내일까지 대답해 준다고 했습니다. 일과 시간 끝나고 한 번 전화 걸어 볼까 생각 중입니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그냥 몰래 전화 한 번 하고 와."
"그래도 됩니까?"
눈을 반짝이는 곽분섭.
그러나 이강진이 일찌감치 커트를 했다.
"안 됩 니다. 서일주 병장님, 엊그제 진형이가 일과 시간에 전 화 통화하다가 걸린 거, 기억나시지 말입 니다. 그것 때문에 전 화통제 걸릴 뻔했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그러다가 걸리면 얄 짤없이 통제입니다."
"아…… 그랬었지. 분섭아, 그냥 개인 정비 시간에 전화 걸어 봐 라. 대신 밥 먹자마자 바로 걸어 보더. 이 형, 궁금해 죽겠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강진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더라.'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통 없었던 이강진이었기에 쉽게 떠오 르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괜히 차이기라도 하면 바로 관심 병사 각이다.
< 제66화. 군인들이 헤어지는 방법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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