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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08화 (208/347)

< 제65화. FM의 정석 (3) >

제65화. FM의 정석 (3)

근무 교대자들이 행정반에 들어와서 근무 투입을 준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소대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화장실 갔다 올 테니까 근무 교대 신고는 생략하고 바로 투입해라."

"예, 알겠습니다."

황급히 행정반을 나서는 소대장을 보면서 진오역은 뻔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근무 교대 FM으로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시려고 하나 보네."

"예, 그럴 거 같습니다."

이전에도 소대장과 근무를 설 때, 이런 식으로 자리를 비운 적 이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로 화장실에 간 줄 알았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전번 근무자와 후번 근무자가 근무 교대를 잘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일부러 먼저 행정반을 나섰던 거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진오역과 이강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뻔했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빡세게 병사들을 감시할 줄은 몰랐기 때문 이었다.

후번 근무자는 백우호와 죄영고.

인솔자는 이강진이었다.

진오역은 이강진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신당부를 했다.

"소대장님, 100퍼센트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계실 테니까 근무자들 교대할 때 FM대로 시켜."

"예, 알겠습니다."

진오역이 말 안 해도 알아서 그렇게 하려고 했었다. 후번 근무자들과 함께 막사를 나선 이강진.

탄약고 초소로 향하던 와중이었다.

수풀 쪽에서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반쯤 감긴 눈을 하며 여전히 졸음과의 싸움을 이어 가던 백우 호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짬타이거라도 지나다니나?"

"아마 소대장님이시겠지."

"엥? 소대장님이라고?"

이강진의 말을 듣자마자 백우호의 눈이 확 뜨였다.

"소대장님이 왜?"

백우호는 지난번에 소대장이 펼친 기행에 대해 정확히 전해 듣지 못했었다.

소대장과 근무를 서면서 겪었던 기가 막힌 일화들이 참으로 많다.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천일야화급으로 풀어 낼 자신이 있는 이강진이었으나,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어. 아무튼 소대장님이 언제,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으니까 조심하면서 근무 서라. 저번 주에 장 현국 병장하고 박준공 상병 털린 거, 기억하지? 그것 때문에 경 고 카드 10장씩 받았잖아."

"알고 있지."

"이번에는 경고 카드로 안 끝날지도 모르니까 바짝 긴장해. 잘 못하면 군기 교육대다. 혹시 모르니까 좌경계종도 계속 유지하고 있고."

"하아……."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초소 들어서자마자 총 내려놓는 건 병사들끼리의 무언의 약 속 같은 거였는데, 그걸 못 하게 하니 벌써부터 짜증이 밀려왔 다.

그래도 군기 교육대에 끌려가는 것보단 차라리 1시간 불편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탄약고 초소로 향하는 길.

이강진은 또 한번 수풀 너머로 인기척을 느꼈다.

'소대장이군.' 안 봐도 뻔했다.

"우호야, 소대장님 보고 계신다. FM대로, 알았지?"

"오케이."

사주경계를 하면서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백우호와 최영고. 탄약고 초소에서 전번 근무자가 이들에게 외쳤다.

"정지,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바위!"

"가로등!"

"누구냐!"

"후번 근무자!"

"용무는!"

"근무 교대!"

"신원 확인을 위해 5보 앞으로 전진!"

이강진이 백우호, 죄영고와 함께 탄약고 초소로 올라오는 동 안, 행정반에선 진오역이 초소에 미리 키를 넣어서 소대장이 보 고 있으니 FM대로 근무 교대를 하라는 정보를 흘렸다.

그 덕분에 FM대로 근무 교대가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번 근무자였던 최우식 상병, 나원익 일병이 이강진에게 다가왔다.

이강진은 두 사람을 데리고 초소 아래로 내려가면서 말했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그보다 소대장님, 어디쯤에 계셨습니까?"

"저쪽."

소리가 들린 쪽을 가리켰다. 이강진의 손짓에 최우식과 나원 익은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대장님, 진짜 독하시지 말입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아까 화장실 간다는 핑계 대시고 몰래 막 사 빠져나가시 더라. 저번에도 그러시더만……. 하여튼 우리 소대 장님, 진짜 대단하신 분이야."

이 정도면 짜증을 넘어서 존경스러울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이강진이 만약 소대장 입장이라면, 귀찮아서라도 이런 짓은 안 했을것이다.

전번 근무자였던 병사들을 데리고 행정반으로 복귀한 이강진.

행정반에는 진오역밖에 없었다.

"아직 소대장님은 안 오셨습니까?"

"어, 저번에는 먼저 오셨던 거 같은데, 이상해."

혹시 산에서 내려오다가 중간에 발이라도 헛디딘 건 아닐까.

"제가 한번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이강진이 행정반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때마침 소대장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음? 벌써 근무 교대 끝났나."

"예, 그렇습니다. 소대장님은 계속 화장실에 계셨습니까?"

"어제 저녁에 뭘 잘못 먹었는지 오늘 아침부터 자꾸 배가 아 프더군. 하루 동안 화장실만 한 일곱 번은 갔다 온 거 같아."

말하는 동안에도 소대장의 배에서 '꾸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좋지 않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은 소대장.

신들린 연기였다. 만약 소대장이 배우 쪽으로 장래를 잡았더 라면, 지금쯤이면 주연 자리 하나는 꿰찼을지도 몰랐다. 그 정 도로 실감나는 연기 실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몰래 순찰 나갔다가 돌아온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이강진도 알고 진오역도 알고 근무자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 다.

기왕 나가려고 한 거, 이강진은 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오기로 했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제법 덥다. 여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체 감하면서 이강진은 커피 한 모금으로 잠을 ?아내 보려 했다.

때마침 불침번 근무자가 실외 온도를 체크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이강진 상병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고생이지, 고생. 어휴."

소대장과 함께 근무를 서는 것 자제가 피곤한 일이었다.

이영훈 일병은 그런 이강진을 안쓰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나저나 소대장님도 참 대단하십니다. 몸이 안 좋으시다면 다른 날로 당직 근무를 변경하면 좋을 텐데. 아까 화장실 들락 날락 하시는 거 보니까 속이 보통 안 좋은 게 아니신 거 같습니다."

"……잠깐만!"

불현 듯 안 좋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까 소대장님, 화장실에 계셨어?"

"예."

"10분 전에도?"

"10분 전이 아니라 20분 전부터 계속 화장실에 계셨습니다. 제가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방금 전 몰래 수풀 속에 숨어서 근무 교대를 지켜보던 이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씨 발."

소름 끼치는 일을 겪은 탓일까. 잠이고 뭐고 싹 달아나 버렸

* * *

아침 해가 밝았다.

간부들이 하나둘씩 행정반으로 출근했다. 이제 근무 교대 시 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이강진은 그 순간까지도 갈등했다.

'어제 있던 일을 말해 줘야 하나?'

근무 교대 당시, 분명 뭔가가 이강진과 근무 교대자들을 지켜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 소대장인 줄 알았다.

하지만 확인 결과 소대장은 아니었다.

이강진은 혹시 몰라서 수차례 소대장이 화장실에 있었는지 확 인을 했었다. 본인도 맞는다고 했고, 불침번 근무자들도 소대장 이 화장실에서 계속 배탈과의 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있던 거지?'

들짐승일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멧돼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제 무사히 막사로 복귀했던 게 천만다행이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간부들에게 어제 있던 일들을 보고 하기로 했다.

멧돼지가 막사 근처까지 내려왔었으니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하려고 하던 찰나였다.

갑자기 행정반을 찾은 중대장이 이강진을 다급하게 찾았다.

"이강진!"

"상병 이강진!"

"네가 어제 새벽 1시경에 근무자들 인솔했었냐?"

"예, 그렇습니다만…."

갑자기 중대장의 표정에 만연의 미소가 번졌다.

"대대장님께서 너한테 포상 휴가를 주라고 하셨다."

하늘에서 포상 휴가가 갑자기 뚝 떨어졌다.

그런데…….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 * *

사건의 전말은 오늘 이른 아침, 대대장이 중대장들을 소집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부중대부터 3중대까지.4명의 중대장들은 갑작스런 대대장 의 호출 명령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대장은 굳은 얼굴로 중대장들을 바라보고…… 아니, 노려보 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작전과장의 표정은 잔뜩 썩어 있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작전과장.

드디어 대대장의 입이 열렸다.

"어제 새벽에 작전과장과 함께 영내 순찰을 돌았다."

그제야 중대장들은 왜 대대장이 아침부터 기분이 저기압인지 알 수 있었다.

간밤에 대대장이 순찰을 돌았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 말인즉슨, 간부들, 병사들에게 비밀로 하고 철저하게 몰래 순찰을 돌았다는 뜻이 된다.

"완전 엉망진창이 더군. 근무 교대하는데 암구호도 안 물어보 고, 서로 왜 교대 일찍 안 해 주냐고 실랑이나 벌이고. 어디 근무 교대만 그런가? 초소로 들어가자마자 총 내려놓고, 방탄모를 바로 벗기까지 하더구먼. 3중대 근무자는 담배까지 피우고!"

"죄, 죄송합니다!"

3중대장이 해야 할 말은 그저 죄송하다는 말뿐이었다.

대대장이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실들을 열거하는데, 아니라 고 둘러댈 수가 없지 않은가. 괜히 핑계 대 봤자 욕만 더 먹을 게 뻔했다.

이럴 때에는 그냥 얌전히 죄송하다고 말하는 편이 좋았다.

대대장의 분노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본부중대나 2중대도 마찬가지야! 아주 그냥 개판이야, 개판! 언제 연대장님이 기습 순찰을 올지 모르니 항상 FM대로 근무 서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건만! 자네들은 이 대대장이 한 말이 말같지가 않나!"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병사들에게 단단히 일러 두겠습니다!"

중대장들의 몸이 잔뜩 경직되었다.

1중대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대대장의 표정이 변했다.

"1 중대."

"대위 윤형인!"

이제 1중대 차례인가.

윤형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

"자네들은 아주 잘했네."

욕 대신 칭찬이 날아왔다. 덩달아 다른 중대장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모든 중대가 다 개판일 때 1 중대만 유일하게 FM대로 근무 교 대하고, 정석대로 근무를 서더군. 초소 안에서 좌경계총 자세도 끝까지 유지하고, 잘했어! 훌륭해!"

"대, 대위 윤형인 아닙니다! 군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래도 평상시에 그러기 쉽지 않지. 어제 작전과장하고 직접 지켜보면서 수도 없이 감탄했네. 그때 근무 섰던 근무자들 다 포 상 주도록 하게. 당직도 인솔 역할 잘했으니까 당직 근무자들도 포함시키고. 그리고 그때 당직사관이 누구였나?"

"성태원 소…… 중위입니다!"

"역시 태원이었군!"

고개를 크게 끄덕인 대대장은 소대장에게도 포상을 주고 싶 었다.

"중대장은 나중에 소대장하고 같이 나한테 오게. 잘해줬으니 상급자로서 내가 챙겨 줄 건 챙겨 줘야지. 안 그런가?"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재주는 병사들과 소대장이 부렸건만.

본의 아니게 중대장이 대대장의 칭찬을 독식하고 말았다.

그래도 포상은 공평하게 떨어지게 되었으니 크게 상관은 없 으리라.

소대장의 FM 근무로 인해 1중대만 대대장의 마수에서 간신 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하나 이로 인한 부작용도 있었다.

벌써 소대장과 세 번째 당직을 같이 서게 된 이강진.

소대장은 벌써부터 의욕이 감돌았다.

"당직! 오늘도 근무 전부 다 FM으로 돌릴 테니까 그리 알고 있어라!"

이강진은 백우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소대장의 FM 찬양은 갈수록 사그라들거라고.

하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겠네.'

대대장이 소대장에게 의욕이라는 이름의 장작을 넣어버렸다.

이강진이 전역할 때까지 소대장이 풀어지는 모습은 볼 수 없 게 되어버렸다.

< 제65화. FM의 정석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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