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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06화 (206/347)

< 제65화. FM의 정석 (1) >

제65화. FM의 정석 (1)

1075대대 1중대에서 소대장을 맡고 있는 남자, 성태원.

그는 요즘 들어 부쩍 기분이 업된 상태였다.

이유가 있었다.

"드디어 나도 소위에서 탈줄하는구나!"

금일부로 성태원은 더 이상 소위가 아니게 되었다.

중위 성태원, 이것이 앞으로 그의 새로운 관등성명이다.

전신 거울 앞에 선 채 군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수십 번 넘 게 돌아봤다.

일찍 기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울 앞에서만 20분을 소비해 버렸다.

"이 런! 늦겠어."

뒤늦게 관사를 벗어나는 성태원.

그의 발걸음에 사명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 * *

"충! 성!"

성태원 중위의 우렁찬 소리에 중대장과 행보관의 관심이 그 에게 집중되었다.

두 사람은 소대장의 계급을 유심히 바라봤다.

"오, 드디어 계급장이 바뀌었군."

"중위 성태원 예, 그렇습니다!"

중대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소위 때부터 그를 쭉 지켜봐 왔던 중대장이라 그런지 성태원의 진급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성태원만큼 군인스러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FM의 화신이라 불리는 남자, 성태원. 병사들 입장에선 융통 성 없기로 소문이 난 간부였지만, 상급자 입장에선 믿음직스러 운 부하이기도 했다.

물론 가끔은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한 나머지 실수를 저지르곤 하지만, 그래도 열정 하나만큼은 인정한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출근한 성태원.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행보관은 혼자서 몰래 생각했다.

'애들이 한동안 고생 좀 하겠군.'

이강진처럼 미래에서 온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아주 잠깐 앞일이 보인 것 같았다.

* * *

소대장이 중위로 진급했다.

이 소식은 병사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다 보니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 빛의 속도로 퍼져 나간다.

소대장에 관한 소식도 마찬가지였다.

작업을 하던 백우호가 삽을 들고 그것을 땅에 '푹!' 하고 꽂아 넣었다.

"강진아, 소대장님 소식 들었냐?"

"들었지."

1중대원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휴가 나간 사람들조차도 다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

"좆됐다. 안 그래도 우리 소대장님, 군인 정신이 부족하다느니 뭐 니 말하면서 우리한테 FM대로 하라고 막 잔소리하시잖아. 근 데 중위 달면 얼마나 심할지 상상도 안 되네, 어휴!"

백우호는 이게 걱정이었다.

중위를 달았으니, 더 잘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을 것이다. 병사 입장에선 피곤한 일이다.

"어떻게 하냐, 강진아."

이번만큼은 이강진도 별수 없었다.

아무리 이강진이 군대에서 날고 기는 존재라 하더라도 가능 한 일과 불가능한 일이 있다.

특히 간부와 엮여 있는 일은 후자에 가깝다.

"나도 뭐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네."

백우호의 한숨 소리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 어차피 시간이 다 해결해 줄 테니까."

"엥? 정말?"

"어."

이강진이 굳이 손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절로 해결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바로…….

"'시간'이 다 알아서 해결해 줄 거야."

계급이 오를수록 그리고 짬을 먹을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쉽게 쉽게 진행하고 싶어 하게 된다.

좋은 말로 표현하자면 융통성 있게. 나쁜 말로 표현하자면 꼼수와 편법으로.

소대장도 분명 그럴 것이다.

'좀 오래 걸릴 뿐이지.'

지금 당장은 사람이 바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중위도 막 달 았고 말이다.

당분간은 소대장이 당직사관을 맡는 날이 오면, 그날은 훈련 소에 입소했다는 생각으로 FM대로 하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이다.

"소대장도 소대장이지만, 우리가 종한이 형 결승전 보러 점프 했다는 것도 최대한 간부들한테 숨겨야 해."

사실 이강진은 소대장 진급 건보다 이게 더 신경 쓰였다.

* * *

다행스럽게도 간부들 중에선 아무도 e스포츠 경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백우호가 물었다.

"그것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맞는 말이긴 하다.

게임 채널에서 FIFA리그 결승 경기를 평생 재방송으로 틀어 주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그것도 멈출 터.

그래도 그전까지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기어코 그날이 찾아오고 말았다.

병사들이 정말로 원치 않았던 바로 그날.

소대장이 중위를 단 이후 처음으로 당직사관을 서는 날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

하필이 면 이때 이강진에게 최악의 일이 벌어졌다.

'재수도 없지, 오늘 같은 날에 당직이라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던 숲속으로 가서 욕이라도 시원하게 내뱉고 오고 싶었다.

그렇지 않는 이상 이 짜증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같이 당직을 시게 된 진오역도 마찬가지였다.

"시발, 왜 하필 오늘 당직이냐."

입으로 불평불만을 내뱉으면서 당직사병 완장을 차는 진오역. 그는 이강진과 같이 FM 지옥 열차 티켓을 강제로 받게 되었다.

"강진아, 우리 좆된 거 같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강진은 그냥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포기하면 편한 일들 이 군대에선 참으로 많이 벌어진다. 지금처럼 말이다.

일과 시간은 그나마 나았다. 하나 본론은 일과 시간이 끝난 뒤, 개인 정비 시간부터 시작된다.

다른 간부들이 퇴근을 한 후 소대장은 당직사관 완장을 차게 되었다.

그 와중에 소대장은 중위 계급장을 안경 닦는 천으로 몇 번씩 이나 문질거렸다.

아직도 진급 뽕이 빠지지 않은 듯했다.

"당직!"

"병장 진오역."

"상병 이강진."

오늘의 당직, 두 사람이 관등성명을 외쳤다.

"외곽 근무자들 근무 교대할 때 절차대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해라. 그리고 내가 새벽에 불시에 순찰을 돌 거니까 긴장하고 근무 서라고 꼭 전해 두고."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

그것이 바로 '근무 순찰'이다.

물론 소대장은 규정대로 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군대 에서 하는 일, 모든 것들을 규정대로 진행하려 면 상당히 피곤해 진다.

소대장은 이 피곤한 일을 스스로 자처하고 있었다.

'하긴 우리 소대장은 당직 근무 설 때도 잠 한 번 안 자는 사람인데, 뭐.'

차라리 당직 입장에선 당직사관이 자러 행보관실로 들어가 줬 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야 간부 눈치 안 보고 병사 들끼리 자유롭게, 재량껏 쉬면서 근무를 설 수 있을 테니 말이 하나 소대장은 그럴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리고 점호 때 위생 검사도 같이 실시할 테니 미리 전파해 둬라."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은 벌써부터 피곤함이 몰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 *

저녁 점호 시간.

이강진을 대신해 1생활관 책임자를 맡게 된 백우호가 병사들 에게 외쳤다.

"부대~ 차렷!"

분대원들에게 차렷 자세를 지시한 후에 뒤로 돌아 거수경례를 펼쳤다.

"충성! 1생활관 저녁 점호 인원 보고! 총원 일곱! 열외 셋! 열 외 내용, 휴가 둘! 당직 하나! 현재 인원……."

FM의 화신, 소대장에게 약식 보고 같은 건 없다.

무조건 FM 보고다.

모든 과정을 생략 없이 전부 다 진행한 백우호와 1분대원들.

소대장은 생활관을 빠르게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그의 눈이 오늘따라 상당히 날카롭게 느껴졌다.

"전원 손톱이 잘 보이도록 앞으로 손을 내밀도록. 실시!"

"실시!"

위생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미리 경고를 했었다.

손톱을 바짝 잘 깎았는지 확인하면서 동시에 병사들의 두발 상태도 체크했다.

모두가 다 소대장의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서일주."

"병장 서일주!"

"머리가 너무 길다고 생각하지 않나?"

긴 편이긴 했다. 그러나 짬 좀 먹은 병장을 기준으로 봤을 때 에는 준수한 편이다.

하지만 소대장 기준으로 봤을 때엔 매우 불만족스러웠다.

"죄송합니다! 내일 바로 자르겠습니다!"

"머리 자른 다음에 나한테 검사 맡아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좋아. 다음 전투화 전부 앞으로 꺼내 보도록 한다. 실시!"

"실시!"

숨이 턱턱 막히는 저녁 점호가 한동안 계속 진행되었다.

1생활관은 서일주의 두발 상태 말고 다른 지적 사항은 나오 지 않았다.

하나 2분대는 문제투성이었다.

전투화 상태 불량, 관물대 정리 엉망 심지어 안에서 짱박은 취 식물이 나오기까지 했다.

소대장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위생 검사받을 준비를 하라고 했더 니, 이 소대장에게 얼차려 받을 준비만 왕창 했나 보군."

"죄, 죄송합니다!"

2분대원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소대장의 목소리.

"이 소대장은 위생 검사에 임하는 너희들의 태도에 매우 실망 했다."

프로 실망러는 중대장인 줄 알았건만. 소대장도 그에 못지않 았다.

"너희는 자기 전에 다시 한번 소대장에게 위생 상태 검사받는 다. 통과한 병사만 재울 테니 그리 알고 있어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당직."

"상병 이강진."

갑자기 당직은 왜 찾나 싶었다.

"2분대에게 경고 카드 다섯 장 줘라. 내 이름으로 넣어."

"예, 알겠습니다."

저녁 점호 한 방에 경고 카드 다섯 장이라니.

이건 꽤 크다.

분발하지 않으면 2분대가 이번 달 분리수거장 청소를 맡게 될 지도 모른다.

이강진은 괜히 2분대의 일이 남일 같지 않았다.

오늘은 운이 좋아서 1분대가 조용히 넘어가긴 했으나…….

'언제 우리가 2분대 같은 처지가 될지 모르지.'

소대장의 저녁 점호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

* * *

소대장의 행보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새벽 3시 30분.

부대가 한창 잠에 취할 시간이다.

이때 갑자기 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당직들에게 말했다.

"나 잠깐 커피 좀 마시고 올 테니까 행정반 지키고 있어라."

"예, 알겠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오겠다고 하면서 자리를 비우는 소대장.

진오역은 소대장이 나가자마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네! 당직 서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티비도 못 보고 심심해 죽겠다. 통신반장님이나 부소대장님들 이었더라면 티비 보면서 있으라고 하셨을 텐데."

티비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니 졸음이 몰려 왔다.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소대장의 쓴소리가 바로 날아온다.

이처럼 힘든 당직 근무도 없을 것이다.

차라리 잘 된 일이다. 괜히 TV를 틀었다가 게임 채널에서 오종한의 결승전 경기가 중계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계속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진오역과 다르게 이강진은 계속 창 밖을 주시했다.

"……이상합니다."

"응? 뭐가?"

"소대장님, 방금 커피 마시고 온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 그랬지."

간부들은 보통 사열대 앞에서 커피를 마시곤 한다.

행정반에서 내려다보면 잘 보이는 위치다.

그러나.

'소대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커피를 마시러 간 게 아님을 확신한 이강진은 곧장 키를 들어 올렸다.

"탄약고, 탄약고!"

갑자기 탄약고를 찾기 시작하는 이강진을 보면서 진오역은 왜 그러냐고 물었다.

"뭔 일 있어?"

"아무래도 소대장님께서 탄약고 초소로 순찰 나가신 거 같습니다."

"지, 진짜!"

"예, 탄약고, 탄약고!"

계속해서 탄약고를 찾는 이강진.

잠시 후 곽분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신보안, 이 병 곽분섭입니다.

"분섭아, 나 강진이다. 지금 소대장님 탄약고 초소로 올라가 신 거 같으니까 근무 똑바로 서라."

-헉! 아, 알겠습니다!

이강진은 곽분섭과 같이 근무를 서고 있을 선임 근무자가 누 군지 확인했다.

'3분대 도현욱 병장이군.'

도현욱이라면 그나마 안심이다.

그는 상병 때 외곽 근무를 섰다가 중대장한테 탈탈 털렸던 경 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병장들보다 좀 더 신경을 써서 외곽 근무를 서는 편이었다.

이강진이 미리 소대장의 순찰 여부를 알려 줬으니 알아서 잘 대처할 것이다.

15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탄약고 초소에서 키가 왔다.

-강진아, 나 현욱이다. 네 말대로 방금 소대장님 왔다 가셨다. 고맙다. 네가 말 안 해줬더라면 털릴 뻔했어.

뭔가 쎄하다 싶더니, 역시 이강진의 감이 맞았다.

'소대장, 무섭네.'

당직조차 속이고 몰래 순찰을 가는 행동력에 소름이 끼칠 정 도였다.

< 제65화. FM의 정석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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