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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04화 (204/347)

< 제64화. 응원하러 가는 길 (3) >

제64화. 응원하러 가는 길 (3)

라인혁이 끌고 온 9인승 차량에 모두 탑승한 병사들.

이들은 차에 오르자마자 곧장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이강진도 마찬가지였다.

라인혁은 옆과 뒤에서 보이는 남정네들의 팬티 차림에 어이 없는 웃음을 흘렸다.

"진짜 가관이다, 가관."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종한이 형 경기를 보러 갈 수가 없으니까."

이강진이 생각한 작전은 간단하다.

외박을 나와서 라인혁의 차를 타고 강남에서 펼쳐지는 FIFA 결승 무대 현장까지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원 없이 오종한을 응 원하고 온다.

"인혁이 형 차가 9인승이라서 다행이야. 아니 었으면 차 한 대 를 더 빌리든가 해야 할 판이었어."

"이거 아버지한테 빌려 오는데 얼마나 애먹었는데. 나중에 나한테 한턱 쏴라."

"물론이지."

보통은 전역자가 쏘곤 하는데, 이번의 경우는 반대였다.

라인혁이 차를 빌려 오고, 운전까지 도맡아 하지 않았나. 미안해서라도 그에게 크게 한턱 쏴야 한다.

옷을 다 갈아입은 이강진은 모자와 마스크도 잊지 않고 챙겼 다.

사실 이게 핵심이다.

1075대대에 자신들이 강남까지 갔다는 사실을 들켜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괜히 마스크, 모자 안 썼다가 결승 무대 현장을 비추는 카메라에 얼굴이 노줄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물증이 남는 걸 방지 하고자 이강진은 일부러 마스크와 모자를 챙겼다.

물론 다른 분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탄 차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라인혁은 아직도 기 가 막힌 모양인지 헛웃음을 계속 흘렸다.

"참나, 설마 그 천하의 이강진이 '점프'할 생각을 다 할 줄이 야."

외박은 휴가와 다르게 제한이 많다. 1박 2일이라는 점도 있지 만, 가장 큰 제한은 위수 지역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하나 이강진과 1분대원들은 그걸 어겼다.

이강진은 씩 웃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장땡이라는 말, 인혁이 형이 가장 잘 알잖 아. 그렇지?"

"하긴, 크큭!"

간부들한테 안 들키면 된다. 그러면 만사 오케이다.

결승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은 상황이다. 어차피 결승 무대 는 오후 5시에, 오프닝 무대는 오후 3시부터 시작한다.

오프닝 무대까지 볼 필요는 없었다. 결승 무대만 보면 되기 때문에 이들은 시간적 여유가 넘쳤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밥이라도 먹을까? 저번에 준렬이하고 마 등이 형이 면회 갔을 때 나는 못 갔었으니까 밥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나 나눠 보자고. 보니까 처음 보는 얼굴도 있고 그 러네. 소개도 좀 시켜 줘."

"알았어, 그럼 가자마자 밥부터 먹자. 내가 살게."

뒤에서 병사들이 '역시 분대장님!'이라며 이강진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어 뒀다.

밥값 정도는 웃으면서 쓸 수 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선 1분대원들. 라인혁이 무대 뒤쪽을 보면서 물었다.

"종한이 안 만나 봐도 될까?"

사실 분대원들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가서 잠깐 인사라도 나누면 좋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강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

"지금 한창 경기에만 집중하고 싶을 텐데, 괜히 우리가 가서 집중력 흐트러뜨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종한이 형 만나는 건 경 기가 끝나고 난 이후에도 가능하잖아."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하네."

이들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오종한과 만나기보다는 오종한을 응원하기 위함이 더 컸다.

상대는 FIFA 죄고의 프로 게이머라 불리는 남자, 강정석 선 수당연하게도 강정석을 응원하는 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오종한을 응원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은 절대로 기죽지 않았다.

"오종한 파이티이이잉!"

"미라클 오종한, 우승까지 가자아아아아!!"

기적의 플레이어라 불리는 오종한. 그래서 붙은 별명이 '미라 클'이다.

오종한을 응원하는 도구에 미라클이라는 단어가 영어로 로고 처럼 새겨져 있었다.

이강진과 1분대원들도 그 도구들을 미리 받아 왔다.

경기가 시작되기까지 이제 10분이 채 남지 않은 상황.

그때 누군가가 이강진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옆에 앉은 남자가 이강진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혹시 나를 알아보는 건가?'

다른 분대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강진은 전 국민을 상대 로 얼굴이 제법 알려진 사람이다. 한때 국민 영웅으로 알려지면 서 대대적으로 방송을 탔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이강진을 간혹 알아보는 사람들이 나오곤 했다.

혹시 몰라서 이강진은 마스크를 더 위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 노력이 무색하게도 옆자리 남자는 단숨에 이강진 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혹시 이강진 씨 아닙니까?"

이강진은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가급적이면 그와 눈이 마주치는 걸 피하려고 했으나.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이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냈

"한종덕 씨?"

"예, 맞습니다! 접니다!"

오종한이 어떻게 전출을 당하게 되었는지 이강진에게 알려 줬 던 바로 그 2중대 사람이 었다.

머리카락 상태를 보아 하니, 전역한 지 좀 됐다는 사실을 알 아차릴 수 있었다.

"설마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대한민국 땅이 좁다, 좁다 하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진짜 그 말이 맞나 봅니다, 하하 하!"

"그러게요. 어떻게 여기까지 오시게 되었습니까?"

"당연히 종한이 형 응원하려 왔죠! 제가 원래 지방 사람인데, 이 경기 보겠다고 서울까지 올라왔습니다. 저 말고 다른 전역자 들도 같이 왔죠."

10명 정도 되는 전역자들이 오종한을 응원하고자 이곳을 찾았다.

"근데 강진 씨는 어떻게 여기를…… 설마 벌써 전역하셨나요?"

"그게……."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서 알려 줘야 하나.

이강진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전에 한종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점프하셨군요."

"……하하하……."

이강진은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민간인들의 눈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예비역까지 속일 순 없었다.

심지어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예비역이라면 더더욱 속이기 힘 들다.

한종덕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강진 씨는 부대에서 굉장히 모범적인 병사라도 들었는데, 예상외네요."

"그건 그냥 날조된 소문입 니다. 사실 저도 여태껏 걸리지만 않 았을 뿐이지, 이것저것 다하긴 했어요."

"하하하! 그렇죠. 군대라는 게 원래 안 걸리기만 하면 그만인 곳이니까요."

현역 줄신이기에 한종덕도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못 본 척할 테니까 같이 종한이 형 열심히 응원해 보죠."

"고맙습니다, 종덕 씨."

"고맙긴요! 오히려 제가 더 고맙죠."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갑자기 경기장 내부가 소등되었 다.

잠시 뒤에 스포트라이트가 무대를 비줬다.

곧 경기가 시작할 거라는 사실을 알리는 듯했다.

이들의 예상대로 중계진과 선수들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 냈다.

"오종한 힘내라!"

"미 라클 오종한 파이 팅!"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응원 타임이다.

결승전은 5전 3선승제로 펼쳐진다.

첫 번째 경기는 오종한의 패배, 1점을 빼앗긴 상태에서 두 번 째 경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종한이 누구인가. 역전으로 기적의 결승 진출을 만 들어 낸 프로 게이머 아닌가.

그에게 붙은 미라클이라는 별칭답게 오종한은 두 번째 경기 에서 한 골 자이로 포인트를 따냈다.

스코어는 1 대 1.

세 번째 경기는 강정석 선수의 승리로 끝났다. 내용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무기력하게 한 점을 내 주게 된 오종한은 천천히 호흡을 내쉬면서 멘탈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그 모습이 대회 장의 대형 화면에 비춰진 순간, 오종한을 응원하기 위해 찾은 팬 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종한이 형! 힘내!"

"우리를 생각해서라도 무조건 이기라고!"

"1075대대 정신을 잊지 마!"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린 걸까.

오종한의 표정이 변했다.

네 번째 경기에 들어간 순간, 그의 경기력이 달라졌다.

겨우겨우 승리를 쟁취한 오종한.

이제 남은 경기는 단 하나!

이 경기를 통해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오종한 선수! 믿을 수 없는 플레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수비 세 명을 따돌리고 슈팅이라니요! 만약 저게 골로 연결되었다면, 강정석 선수 멘탈이 완전히 무너졌겠는데요?]

[자, 강정석 선수! 안심할 수 없습니다! 오종한 선수의 위협적인 슈팅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슈우우웃!]

[골이에요, 골! 오종한 선수, 기적 같은 역전 골을 만들어 냅 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35초 전.

오종한이 주로 사용하는 공격수 유닛의 발끝에서 예술적인 슈 팅이 만들어졌다.

강정석의 골 망이 흔들렸다. 마침내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 쐐기 골이 터진 것이다.

[오종한 선수! 우승입니다, 우승!]

[전역 후 첫 출전 그리고 우승까지! 그야말로 미라클입니다!]

오종한의 우승이 선언됨과 동시에 같은 프로 구단의 팀원들 이 무대로 뛰어올라 가 그를 안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헹가래.

오종한은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싶었을 때였다.

우승 소감을 묻는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오종한은 네 번째 경기에 들어가기 전의 상황을 회상했다.

"멘탈이 무너지 려고 할 때, 그리웠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목소리들이 제게 힘을 줬습니다."

오종한은 이강진 일행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맙다, 애들아!"

이강진과 1분대원들 그리고 한종덕 일행은 목소리를 높여 환 호를 보냈다.

오종한은 오늘, 전역 이후 최고의 밤을 맞이했다.

오종한은 팀 관계자들과의 회식을 뒤로한 채 이강진 일행과 따로 식당으로 향했다.

"종한이 형, 우승을 축하하면서 다 같이, 건배!"

"건배!"

백우호의 건배사와 함께 이들은 잔을 들어 올렸다.

술과 함께 점점 이 밤의 시간이 무르익어 갔다.

오종한은 이강진과 1분대원들이 외박을 나와서 이곳까지 점 프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듣게 되었다.

"그 성실한 이강진이 점프라니. 진짜 놀랍다."

"형, 나, 성실한 사람 아니라니까."

만약 이강진이 정말로 성실한 사람이었더라면, 행보관에게 주 식 정보를 바치면서 편의를 챙기거나분대장 교육대에 가서 탄 약반장과 거래해 휴가를 챙겨 받는 그런 편법은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강진 본인은 성실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줄곧 생각해 왔다.

하지만 주변인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잔뜩 술에 취한 서일주가 이강진의 어깨에 팔을 걸면서 말했다.

"쫑하니 형! 그만큼 우리 강지니가 형을 응원하고 시퍼서 그 런 거자나! 거맙게 생각하라거!"

"하하하, 그거야 당연하지! 자자자, 어차피 외박이라며? 그럼 오늘 요 근처에서 자고 가면 되겠네. 내가 끝까지 살 테니까 오 늘 원 없이 마시고 죽자!"

"오예!"

오종한의 우승을 안주 삼으니 술이 절로 들어간다.

이렇게 기쁜 날에는 역시 마셔 줘야 한다.

이강진도 오늘은 정신 줄 놓고 미친 듯이 마시기로 결심했다.

< 제64화. 응원하러 가는 길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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