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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201화 (201/347)

< 제63화. 잊지 않겠습니다. (2) >

제63화. 잊지 않겠습니다. (2)

갑자기 사라진 이만복.

신형 마을 전체가 난리가 났다.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강진도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난 대민 지원을 나갔던 적이 없었으니까.'

회귀하기 전에는 대민 지원을 자처해서 나가지 않았었다. 그 래서 대민 지원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강진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이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닌단……. 어휴, 내가 못 살아."

아무런 계획 없이, 생각 없이 이곳저곳을 찾아봤자 효율이 없 다.

이강진은 이장에게 다가가 이만복에 대한 정보를 들어 보기 로 했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듣다 보면 단서가 나올지도.

"이장님, 이만복 어르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전날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보니까 저희를 싫어한다는 건 확실히 알 거 같 습니다만."

"그 양반이 원래 군인들을 별로 안 좋아혀. 이유는 모르지만, 여튼 그렇더라고."

"아…… 그렇군요."

"그리고 많이 괴짜야. 결혼도 안 해서 슬하에 자식도 없고, 쭉 혼자 살았지. 고집도 엄청 쎄고. 맨날 이 시기 때만 되면 산을 라가야 한다고 바득바득 우기는데…… 아니, 전쟁통에 발목이 아작나 버렸는데 산은 무슨 산이냐고."

"예?"

이강진이 몰랐던 이야기다.

이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말을 해 줄까 말까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내 이만복에 대한 속사정을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6.25 때 발목에 수류탄 파편이 박혀서 아킬레…… 뭐시기였던 가? 아무튼 그거하고 뼈하고 다 작살났었어. 이씨 걷는 거 봤지? 쩔뚝거리면서 다니는 거."

"그러고 보니…."

걷는 모습이 약간 불편해 보였던 거 같기도 했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이나 산길은 못 가. 다리가 그런데, 어떻게 가겠어. 그것 때문에 평생을 고생했는디."

"내 생각인데 아마 산에 갔을 겨."

산은 아까도 나온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이강진은 그게 신경 쓰였다.

"다리도 불편하신 데 왜 자꾸 산에 올라가시 려고 하는 겁니까?"

"그건…."

이강진이 몰랐던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다.

* * *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는 이강진.

이장으로부터 산에 올라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접한 뒤, 그는 자신이 들은 정보를 행보관에게도 공유했다.

신형 마을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다들 건강이 좋지 않아 산에 오르는 게 힘들다. 그래서 행보관은 병사들과 함께 산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강진은 길이 나 있는 곳 위주로 수색을 개시했다.

"다리가 불편하시다고 했으니까 길이 아닌 다른 곳으론 못 가셨을 거야."

30분 뒤.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저 앞에 이만복의 뒷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르신!"

이강진은 빠른 걸음으로 이만복에게 다가갔다.

지팡이 하나에 의존한 채 헉헉거리며 산을 오르던 이만복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강진을 노려봤다.

"뭐냐, 네가 여길 왜 왔어?"

"어르신 찾으러 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어르신이 갑자기 사 라졌다고 하셔서요."

"내가 사라지든 말든 뭔 상관이여."

"상관있죠. 혹여나 어르신이 갑자기 잘못되시기라도 하면 큰 일이잖아요. 제가 부죽하겠습니다. 그러 니……."

이만복은 이강진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마을로는 안 내려갈 거다."

이장이 말한 대로 고집이 상당히 셌다.

하지만 이강진은 이 고집을 꺾을 생각이 아니었다.

"마을로 내려가자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르신을 모시고 같이 산에 올라갈 생각이 었습니다."

"……뭐?"

"어르신이 6.25 참전 용사 줄신이라는 걸 이장님한테 들었습니다……."

그리고 산 위에 어르신의 옛 전우분들이 계시다는 것도 예전에는 분기별로 한 번씩 산에 올랐던 이만복.

그러나 전쟁 당시에 입었던 부상이 가면 갈수록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마을 사람들의 만류에 의해 올해는 한 번도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그게 죄책감이 되어 이만복의 마음을 짓눌렀던 걸까. 그는 무 리를 해서라도 산에 올라가려고 했다.

어차피 강제로 마을로 돌려보내도 마음의 한이 남아 있는 이 상, 그는 계속 산을 오르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마음 속 한이 풀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방법이다.

'행보관님은 보자마자 마을로 내려보내라고 했었지만.' 이강진이 하고 있는 행동은 명령 불이행인 셈이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는 게 이강진에게는 정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산언저리를 지나니 작은 공터가 나왔다.

허리 높이까지 자란 수풀이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장소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수풀의 밑 부분을 발로 뭉개면서 길을 텄다. 이만복이 지나다 니기 쉽도록 한 것이다.

공터에 발을 들이게 된 이만복은 한가운데를 말없이 바라봤 다.

그곳에 묘비 하나가 놓여 있었다.

20여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만복은 자신이 들고 온 작은 비닐봉지를 풀었다.

소주 한 병과 가래떡이 그 안에 담겨져 있었다.

아니, 하나 더 있었다.

"어르신, 그게 뭡 니까?"

뒤에 서 있던 이강진이 이만복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만복은 짧게 답했다.

"설탕."

"가래떡에 찍는 용도입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이만복.

설탕을 따로 담은 봉지에 가래떡을 푹 찍었다. 그러자 설탕이 가래떡 앞부분에 듬뿍 묻어 나왔다.

"어르신, 설탕을 많이 좋아하시나 보군요."

"난 단 거 안 좋아해. 최창식이 좋아했지."

최창식, 묘비에 적혀 있는 이름 중 하나였다.

"총 맞고 죽어 가는 순간까지도 설탕 묻힌 가래떡을 찾던 희한한 사람이었지. 가족들보다 이 가래떡이 더 좋았나 벼. 하여튼 별종이라니까."

먼저 간 자와 남은 자.

전쟁이 두 사람을 이렇게 갈라놓았다.

어쩌면 이만복이 군인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전쟁 때문이 아닐까?

만약 전쟁만 없었더라면, 이만복이 군인이 아니었더라면 이 같은 고통을 평생 짊어지지 않은 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니 까.

"어르신은 전쟁 때문에 저희를…… 아니, 군인들을 싫어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이만복의 대답은 의외였다.

"아니."

이만복은 고개를 돌려 이강진을 바라봤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담긴 복잡한 눈빛이었다.

"난 요즘 젊은 것들을 싫어할 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6.25 참전 용사 자격으로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지. 그때 행사 준비하던 젊은 군인 놈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나?"

잠시 뜸을 들이 던 이만복이 무거운 한숨과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늙은 것들 때문에 우리가 쉬는 날에 나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더군."

"전쟁 한 번 한 게 뭐 벼슬이냐고, 사람 죽인 게 뭐 대수냐고. 그렇게 서로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키득키득 웃더군. 물론 모든 젊은 것들이 그러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나도 사람이라 그런 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색안경을 끼고 젊은 것들을 보게 되더구 먼."

이만복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보니까 자넨 그런 놈들하고 다른 거 같은데…… 미안혀. 이 늙은게 노망이 나서 그래."

그가 사과를 해 올 줄은 몰랐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 사람이 왜 욕을 먹어야 했는지.

이강진과 비슷한 또래에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 했던 자들이 왜 비난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 * *

이만복과 함께 마을로 내려가자, 마을 사람들이 이만복에게 잔소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 왜 자꾸 산에 올라가려고 그려!"

"시끄러워! 내가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왜들 그렇게 잔소리를 하!"

이만복은 오히려 마을 사람들에게 버럭 화를 냈다.

그 모습을 보던 이강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겉으로는 저렇게 강한 척하는 이만복이었지만, 속에는 그 누 구보다도 아픈 기억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호통 할아버지라고 칭하면서 피하기 급급했었던 어제오늘의 자신이 부끄러웠다.

참전 용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만복은 병원에 갈 돈조차 없었다.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돈이라고 해 봤자 고작 몇 십만 원. 생활비로 사용하기도 빠듯한 돈인데, 치료비는 엄두도 안 날 것이 국가와 국방부 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참전 용사에 대한 대우가 이 정도밖에 안 되다니.

그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었다.

이만복과 이강진은 비록 타인이지만, 그래도 이만복 같은 참 전 용사가 있었기에 지금의 이강진이 있는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내가 사는 오늘은 누군가가 그토록 원하던 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2일 차 대민 지원을 마무리 지은 이강진은 부대로 돌아가기 전에 행보관을 찾았다.

"행보관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 * *

대민 지원 3일 차.

이만복은 마룻바닥에 앉아 전우들이 고이 잠들어 있는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산에 올라갔다 왔더니 그나마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때였다.

"어르신, 계십니까?"

이강진이 그의 집을 방문했다.

"뭐여, 왜 왔어?"

"오늘은 산에 안 가시나 해서요."

"산? 간다고 난리치 면 마을 사람들이 또 한 소리 할 텐디."

"저하고 같이 가면 괜찮다고 이장님이 그러셨어요."

"일 안 하고 농땡이 피우려는 거냐?"

"하하하! 논두렁길 보수 작업은 다 마무리 지었어요. 그러니 까 저하고 같이 올라가시죠. 제가 옆어 드릴게요."

"됐어! 내 발로 걸을 수 있어."

괜히 창피한 모양인지 이만복은 이강진의 제안을 한사코 거 절했다.

전우들이 묻힌 공터로 향한 이만복.

그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이게 다…… 뭐여?"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이만복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다수의 음식과 술들이 묘비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앞에서 1075대대 1중대 인원들과 마을 사람들이 이만복과 이강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혀, 이씨!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구먼"

아직도 얼떨떨한 이만복.

그러나 이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전우들을 기리는 제사에 합 류하게 되었다.

"부대~ 차렷!"

행보관의 목소리에 병사들이 차렷 자세를 취했다.

"나라를 지켜 주신 참전 용사님들께 대하여 경례!"

이강진도 병사들과 함께 그들에게 거수경례를 보였다.

이만복 역시 묵묵히 거수경례를 했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눈물은 흘리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이름은 잊힐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만큼은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

부대로 돌아온 행보관은 이강진에게 재차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해도 되겠냐?"

"예, 제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긴 그렇지."

이강진이 주식으로 엄청난 거금을 벌어 들였다는 건 행보관도 잘 안다.

대민 지원 마지막 날 저녁.

이강진은 대뜸 행보관에게 이런 부탁을 했었다.

이만복에게 치료비와 생활비를 포함한 지원금을 주고 싶다고.

단 조건이 있었다.

"제 이름은 숨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재단에서 참전용사 분들에게 지원금을 보내 주는 뭐시기 뭐시기 프로젝트가 있는데, 거기에 지원금 대상자로 선정됐다고 적당히 꾸며 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행보관은 그게 이해가 안 됐다.

"왜 익명으로 하려는 거냐? 네가 줬다는 걸 알려 주면 좋을 텐 데."

이유야 뻔했다.

"어르신의 자존심을 지켜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이강진이 줬다고 하면 동정 때문에 자신에게 지원금을 줬다 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서 이강진은 일부러 이런 귀찮은 수단을 동원하기로 했다.

이것이 이강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 제63화. 잊지 않겠습니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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