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99화 (199/347)

< 제62화. 대 민 지원 (2) - 8권 완결 >

제62화. 대민 지원 (2)

대민 지원 후보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 서일주 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 나도 강진이 따라서 포상 휴가 좀 노려 보려고 했는데. 망 했네."

"죄송합니다, 서일주 병장님."

이강진은 서일주를 어떻게 해서든 넣어 주려고 했으나, 행보 관이 그 자리에서 대민 지원 명단을 정해 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서일주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네가 미안해할 필요 없어. 행보관님이 하신 일인데, 뭘. 그보다 말년 휴가를 이제 어디서 챙겨야 하나, 골치 아프네."

말년 휴가를 좀 더 풍부하게 꾸미고 싶어 하는 서일주.

그는 따로 모아 둔 포상 휴가도 없고, 그렇다고 이강진이나 백 우호처럼 작업병을 차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남아 있는 휴가가 얼마 안 됐다.

포상 휴가 사냥꾼, 이강진에게 도움을 청해 보기로 했다.

"강진아, 포상 휴가 잘 따낼 수 있는 비결 같은 거 있냐?"

이강진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비결보다는 운입니다. 운만 좋으면, 가만히 있어도 포상 휴가가 알아서 굴러들어 올 겁니다."

"뭐…… 그거야 그렇지."

사실 이건 서일주도 잘 아는 내용이었다.

운이 좋으면 된다. 그러면 설날 때 이강진이 민속놀이 대회 1 등을 싹쓸이했던 것처럼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휴가가 착착 쌓이게 될 것이다.

하나 이 운이라는 건 사람의 의지대로 조종할 수 없다.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이강진도 이번 대민 지원 건은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이강진을 예쁘게 보고 있다면 포상 휴가를 내려줄 것이고, 그 렇지 않다면 국물도 없을 것이다.

'어디, 내 운수가 이번에도 좋을지 한번 시험해 볼까?'

벌써부터 내일이 기다려진다.

대민 지원은 점심식사를 마친 이후, 오후 1시부터 일과 시간 이 끝날 때까지 진행된다.

오전에는 평소처럼 부대 작업에 매진하면 된다.

점심식사를 하러 대대 식당으로 내려간 병사들.

식사를 하던 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서일주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호만이 형 전역하고 난 다음부터 짬맛이 완전히 골로 가 버렸네."

1중대 병사들 모두가 다 같은 생각이었다.

오호만이 주방을 책임져 준 덕분에 그나마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하나 오호만이 없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밥맛이 뚝 떨어 졌다.

이건 매우 심각한 일이다.

앞으로 어찌 해야 좋을까.

사실 방법은 없다. 그냥 알아서 적응해야 한다.

하나 서일주는 지금 당장 적응하고 싶진 않았다.

"에이, 막사 올라가서 라면이나 먹어야겠다. 우호야, 너도 먹을래?"

"상병 백우호, 예! 함께 하겠습니다!"

"강진이는?"

이강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나하고 우호 먼저 올라가마."

"예, 알겠습니다."

일, 이병 급들은 서일주와 백우호를 부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이강진은 그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나중에 너희도 짬 먹으면 저렇게 해도 돼.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알겠지?"

"예!"

"밥 다 먹었으면 밖으로 나와라. 자판기에서 음료수라도 한잔마시고 가자. 내가 사마."

"감사합니다!"

대대 식당 옆에 자판기가 있다. 탄산을 비롯해서 커피, 따스 한 우유까지 식후에 마시기에는 딱 좋다.

게다가 가격도 한 잔에 200원밖에 안 한다. 분대원들에게 한 잔씩 다 돌려도 부담이 없는 가격이었다.

음료수를 마시면서 잠시 쉬는 동안 성태강이 이강진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강진 상병님. 대민 지원 나갈 때 뭐 챙겨 가야 합니까? 군장이나 의류대 같은 거 챙깁니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훈련이나 파견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목장갑하고 정글모 그리고 삽이나 곡괭이 정도 챙기면 될 거 다. 자세한 건 행보관님이 알려 주시겠지."

논두렁길 보수 공사라고만 들었을 뿐, 이강진도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면 되는지 전해 듣지 못했다.

가서 보면 어떻게 작업하면 되는지 대략 사이즈가 나올 것이다.

막사로 올라가서 오후 1시까지 취침을 취한 이강진은 딱 1시 에 맞춰서 사열대로 향했다.

1부소대장과 함께 작업복을 갖춰 입고 나온 행보관은 병력에게 외쳤다.

"대민 지원 나갈 병사들은 오른쪽으로 빠져라."

이강진, 백우호 그리고 성태강. 이렇게 셋을 포함해 여덟 명 의 병사들이 오른쪽으로 따로 열외 되었다.

이중에서 이강진, 백우호가 가장 선임이었다.

운전병까지 포함하면 총 아홉 명이다.

미리 정차되어 있는 차 뒤쪽에 작업용 장비들을 싣기 시작하 는 병사들.

대민 지원을 나가는 병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초록 견장을 차고 있는 이강진이 병사들을 통제했다.

"천천히 실어라. 행보관님이 삽 많이 챙기라고 하셨으니까 삽 도 최대한 많이 챙기고. 인원수에 맞춰서 챙기지 말고 혹시 모 르니까 여분으로 2~3개 더 챙겨. 곡괭이도 폐급 말고 A급으로 가져와. 거긴 부대 아니라서 곡괭이 고장 나면 수리도 못 하고 답도 없다."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의 말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병사들.

모든 준비가 다 끝났음을 확인한 이강진은 1부소대장에게 보 고했다.

"줄발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오케이. 너도 올라타라."

"알겠습니다."

레토나를 제외한 모든 군용 트럭에 탑승할 때에는 항상 방탄 모를 써야 한다.

가장 뒷좌석에 앉은 이강진이 병사들에게 물었다.

"화장실 갔다 올 사람 없지? 가는데 편도로 40분 정도 걸린다 고 하니까 급한 볼일 있으면 후딱 말해라."

"없습니다!"

"가다가 마려우면 조금씩 싸서 말려라."

"예!"

잠시 뒤.

부르르르릉!

메케한 연기를 뿜어내면서 차가 앞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병사들의 몸이 위로 붕 떴다.

이 거친 승차감은 익숙해지려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엉 덩이 아파 죽겠네.'

줄발하자마자 대민 지원 나간다고 괜히 나섰나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40분 정도 걸릴 거라고 들었던 것보다 10분 정도 늦은 시간 이 걸려 마을에 도착했다.

동네 이름은 신형 마을.

그러나 이름과 다르게 마을 자체는 신형보다 구형에 가까웠 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이 바로 마을의 낡은 집들이었다.

병사들보다 먼저 자가 차를 타고 신형 마을에 도착한 행보관 이 손짓을 했다.

"와서 인사드려라. 여기 신형 마을 청년 회장님이시다."

"충성!"

청년 회장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고령의 어르신이었다.

행보관보다 나이가 20살 정도 더 많아 보였다.

그래도 이곳 신형 마을에선 가장 젊은 죽에 속한다고 한다.

청년 회장을 맡고 있는 노인은 병사들을 무너진 논두렁길로 안내했다.

참혹한(?) 사고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된 병사들은 너도 나 도 할 것 없이 탄식을 내뱉었다.

"오, 쉣……."

"이거, 생각보다 헐씬 빡셀 거 같은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지원하지 말 걸 그랬네."

그냥 적당히 작업하면서 시간만 때우다가 오면 될 줄 알았건 만.

대충 훑어봐도 작업해야 할 양이 상당했다.

백우호와 성태강도 뒤늦게 후회를 했다.

그냥 도박하지 말 걸.

이강진도 약간 후회가 들었다.

'저번에 대민 지원 나섰던 병사들한테 포상 휴가가 떨어졌었 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포상 휴가를 받았다는 확신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작업이 라 할지라도 웃으면서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병사들이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동안, 행보관은 어떻 게 하면 논두렁길을 보수할 수 있을까 청년 회장과 함께 상의에 들어갔다.

그 순간.

뒤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안 비키냐, 이것들아!"

화들짝 놀라고 만 병사들.

신형 마을에 사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한 할아버지가 사나운 눈매로 병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길을 막고 있으면 어째 다니라는 거냐! 퍼뜩 안 비켜!"

"죄, 죄송합니다."

병사들은 할아버지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내 줬다.

그는 씩씩거리면서 병사들을 지나쳤다.

뒤늦게 할아버지의 외침을 접한 청년 회장이 그를 보면서 말 했다.

"아니, 이씨. 우리 도와주려고 온 젊은 사람들한테 그렇게 화내면 쓰나."

"시끄러! 누가 도와달라고 했간!"

"하여튼 저 노인네 성격하고는……."

신형 마을에서도 고약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모양인지 청년 회 장은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인은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청년 회장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병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들려줬다.

"저 양반이 원래 성격이 좀 그려. 같은 마을 사람들도 잘 안 건 드리는 괴짜니까 젊은이들이 이해 좀 해 주구려. 그리고 신경 한 창 날카로울 때니까 가급적이면 마주치려고 하지 말고. 말도 걸 지 말어. 아까처럼 '꽥!' 하고 소리 지를 수 있으니까."

"아하…… 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조심해야 할 상대가 생겼다.

안 그래도 작업도 빡세 보이는데, 퉁명스러운 할아버지까지 조심해야 하다니.

이중고(三重苦)가 따로 없다.

논두렁길 보수 작업에 곧장 착수한 병사들.

아직 여름은 오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몸은 벌써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작업만 하기도 그렇고.

수다라도 떨어야 그나마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백우호가 다른 병사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진영아, 넌 왜 여기에 지원했냐?"

2분대 소속 권진영이 대민 지원에 나서게 된 이유를 털어농 았다.

"그냥 바깥 공기가 마시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단순하네. 그럼 현수, 너는?"

최현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저는 젊은 여자 보려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마을 보자마자 깨달았습니다. 내가 괜한 기대를 했구나 하고 말입 니다."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네."

"그러게 말입 니다, 에휴……."

제각각 사연이 있었다.

이강진과 백우호, 성태강은 포상 휴가를 노리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그러나 행보관이 줄지 안 줄지. 그거는 행보관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다.

한창 작업에 열중하던 와중이었다.

성태강이 병사들에게 다급하게 속삭였다.

"호통 할아버지 오십니다!"

"뭐?"

이강진이 빠르게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할아버지하고 눈 마주치지 말고. 최대한 작업에만 집중하는 척해!"

"아, 알겠습니다!"

청년 회장 노인이 지시한대로 이행하기로 했다.

수다를 떨던 것도 잠시 중지했다.

푹!

지면에 삽을 꽂은 후에 진흙을 푸는 병사들.

이들은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는 연기를 선보였다.

병사들의 모습을 힐긋 쳐다보던 호통 할아버지는 여전히 못 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길을 따라 걸어갔다.

호통 할아버지가 완전히 모습을 감줬을 때.

그제야 병사들은 안도했다.

"어휴, 저 할아버지만 보면 손이 부르르 떨립니다."

"오죽하겠냐. 아까 보니까 성격이 보통이 아니신 거 같은데. 왜 저렇게 우리를 싫어하나 모르겠네."

이유는 모른다.

아무튼 작업이 끝날 때까지 조심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이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임무다.

< 제62화. 대민 지원 (2) - 8권 완결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