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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97화 (197/347)

< 제61화. 연결고리 (3) >

제61화. 연결고리 (3)

전역하고 난 다음 날, 혹은 하루가 더 지난날에 온다고 듣긴 했었으나.

설마 아침에 바로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호만이 형.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야?"

"응? 이 정도면 일찍도 아니잖아. 전역하자마자 바로 왔어야 일찍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군복을 입은 채로 바라 식당으로 찾아갈 오호만을 상상하니 이강진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요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네.'

이 정도면 인정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민수도 이강진과 같은 생각인 듯했다.

"황민수라고 합니다. 강진이한테 말 많이 들었습니다."

"오호만입니다! 말 편하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승 님!"

"스승이라니, 거참……."황민수는 누군가를 제자로 들여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혼자서 쭉 요리만 해 오던 남자였다. 그러다 보니 스승 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요리가 그만큼 인정받고 있다는 뜻 아닌가. 인정받지 않았으면 배우러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분위기가 어색하게 흘러가기 전에 이강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 밥 먹었어?"

"음? 아니, 새벽 차 시간에 맞춰서 오느라고 그냥 김밥 한 줄 로 대충 때우고 왔는데."

"그러면 밥부터 먹자.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되겠네. 어때요, 아저씨?"

"좋지, 1층은 청소해야 하니까 2층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호만 씨…… 아니, 호만이, 너도."

"예, 스승님!"

오호만은 기운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전부터 이강진을 통해 서로에 대해 말을 많이 들었던 두 사람.

그들이 마침내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빨리 성사되어서 좀 당황하긴 했지만, 뭐 괜찮겠지.'

이야기가 오래 진행될지도 모르니 차라리 이른 시간부터 만 나는 게 오히려 좋을지도 몰랐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던 중에 오호만은 벽에 붙어 있 는 사진에 절로 눈이 갔다.

"저거, 지윤 씨 아니냐?"

예전에 한지윤이 이강진과 함께 구 바라 식당으로 놀러 왔을 때 찍은 사진과 사인이 벽에 붙어 있었다.

"응, 맞아."

"지윤 씨도 여기 왔었어? 근데 장소가 다르네?"

"가게 확장 이전하기 전에 왔었지."

"아, 그래? 가만 옆에 붙어 있는 사진은…… 너네?"

"어, 민수 아저씨가 나 휴가 나왔을 때 나보고 사진하고 사인 남기고 가라고 해서 저렇게 찍어 둔 거야."

"우리 부대 유명 인사들이 다 모여 있구먼. 조만간 종한이 형 사진도 여기에 걸리는 거 아니냐? 오늘 오면서 보니까 16강 진출했다고 기사가 엄청 쏟아지더만."

"그랬으면 좋겠어."

대한민국에서 10대, 20대에게 가장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스포츠 중 하나가 바로 e스포츠다.

그중에서 FIFA는 축구 게임 중에서 가장 많은 팬 덤을 지 니고 있는 시리즈다. 그쪽에서 최근 눈에 띄는 성적을 보여 주고 있 으니, 꾸준히 하면 스타 프로 게이머가 되는 것도 꿈은 아닐 터.

"나도 열심히 해야겠네."

다른 사람들의 활약에 오호만은 갑자기 의욕을 불태웠다.

자리에 앉아 따로 대화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누군가가 음식을 가지고 2층으로 올라왔다.

이곳의 사장, 황민수였다.

"제가 들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가만히 있어. 우리 가게에 손님으로 온 사람 한테 일을 시킬 수는 없지."

"손님이 아니라 제자입니다."

"아직까지는 손님이지. 자자, 이거 먹어 봐."

바라 식당을 전국구 맛집 반열로 올리는 데 큰 공을 세운 음 식. 버섯 닭볶음탕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이들 앞에 모습을 보 였다.

오호만은 벌써부터 군침을 삼켰다.

이것이 바로 오리지널 버섯 닭볶음탕!

"이걸 보니까 예전에 사단장이 갑자기 부대를 급습했을 때가 떠오르네요."

"그거 강진이한테 들었다. 그때 네가 고생을 많이 했었다며."

"예,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강진이가 옆에서 도와준 덕분에 살았어요."

"우리 강진이가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참 착하지."

은근슬쩍 이강진과 그의 어 머 니까지 칭찬을 하는 황민수였다.

순간 이강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민수 아저씨, 장사하시다 보니 말솜씨가 많이 좋아지셨는데요?"

"시끄러워, 인마. 먹기나 해라. 너도 아침 안 먹었지?"

"네, 잘 먹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이른 아침부터 진수성찬이다.

허겁지겁 황민수가 만들어 준 음식들을 먹어치우는 두 장정. 식사 도중에 오호만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이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역시! 스승님의 손맛은 대단하십니다! 제가 상상했던 것 이 상입니다!"

"자꾸 스승이라고 불리니까 기분이 참 묘하네. 뭐 더 좋은 별 칭 없나?"

"그렇다면 사장님 어떻습니까? 아니면 아버 님?"

"아버 님은 무슨, 난 아직 팔팔하다고."

만약 결혼을 했다면 오호만 같은 아들이 있었겠지만, 황민수 는 아직 미혼이었다.

스승 말고는 마땅한 호칭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황 민수는 더 좋은 호칭이 떠오를 때까지 당분간 스승으로 부르라 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강진은 황민수가 차려 준 아침 식단을 먹으면서 감탄 했다.

"아저씨, 어째 음식 솜씨가 날이 갈수록 더 좋아지시는 거 같아요."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해 주니까 다행이구나. 사실 많이 불안 했거든. 예전처럼 나 혼자서 느긋하게 요리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많은 손님들을 상대로 최대한 빠르게 요리를 해야 하는 입장 이어서 맛이 바뀔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그래서 그 만큼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지."

그 노력의 결실이 다행이도 잘 맺힌 듯했다.

이강진이 예전부터 줄곧 맛봤던 그 맛 그대로…… 아니, 그 이 상의 맛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혼자서 계속 메인을 담당할 순 없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있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이 가게를 계속 꾸려 갈 수가 없게더라. 그래서 마침 호만이 같 은 젊은 친구가 도와주고 싶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 어."

"저야말로 스승님에게 요리를 배울 수 있게 되어서 영광입니 다!"

"그래, 요리 실력이 어떤지는 뭐, 강진이가 입에 침이 마르도 록 칭찬했으니까 안 봐도 될 거 같고. 언제부터 나와서 일할 수 있나?"

"방 구해지는 대로 바로 청주로 내려오겠습니다!"

"방은 어디로 구할 건데?"

"근처에 고시원 있으면 그곳에서 당분간 생활할까 합니다."

황민수는 고시원이라는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시원은 좀 그렇고. 가게 근처에 있는 곳으로 내가 방 잡아 줄 테니까 당분간 거기서 머물도록 해. 투룸이면 되겠지?"

"아, 아닙니다, 스승님 요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 사한데, 방까지는 좀……."

"괜찮아, 괜찮아. 나한테 요리 배우겠다고 먼 길 온 사람이 고 시원에서 생활하는 꼴은 오히려 내가 못 봐. 전세금 정도는 충분히 지원해 줄 수 있으니까 부담 가지지 마. 전세금이 없어지 는 것도 아니잖아. 안 그래?"

오호만이 정식으로 방을 구하면, 그때 전세금을 빼면 된다.

그때까지 오호만은 황민수의 신세를 지면 된다.

오호만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해."

"예!"

이강진은 두 사람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굳이 내가 있을 필요까진 없었네.'

괜한 걱정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얌전히 집에 있어도 되었을 것 같았다.

그래도 황민수와 오호만이 죽이 잘 맞는 거 같아서 천만다행 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앞으로 어떤 시너지를 불러오게 될지.

이강진은 벌써부터 기대되기 시작했다.

오호만이 지낼 방은 생각보다 금방 구해졌다.

이강진이 살고 있는 집의 건너편에 4층짜리 빌라가 하나 있었다. 그곳 주인이 바라 식당 단골손님인데, 자주 얼굴을 보다 보니 황민수와 부쩍 친해졌다고 한다. 황민수가 그곳에 방 좀 얻을 수 없겠냐고 하니 집주인은 '사장님 부탁인데 당연히 준비해 드려야죠!'라고 말하면서 단 하루 만에 빈 방을 준비해 뒀다.

그 덕분에 오호만은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바로 청주로 내려올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약혼녀도 함께 말이다.

휴가 복귀 전날.

이강진은 오늘 아침에 청주로 이사를 오게 된 오호만과 미래 의 형수님과 같이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강진이 덕분에 직장도 얻고, 잠시 동안이긴 하지만 집도 얻 고. 난 전역하면 내가 군인이었던 시간을 머릿속에서 싹 지워 버 리고 싶었는데, 강진이 만나고 생각이 달라졌어. 군대 덕분에 내 인생이 바뀌었으니까. 안 그래?"

"형, 고마워해야 할 대상이 잘못된 거 같은데? 군대가 아니라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아, 그랬지! 미안하다, 미안해. 하하하!"

술자리를 통해서 이강진은 몰랐던 오호만의 개인사를 더 알 게 되었다.

오호만도 이강진처럼 어머니와 단 둘이서 가난한 집안에서 생 활해 왔다. 그의 약혼녀 또한 집안 사정이 풍족하진 않았다.

그래서 오호만이 처음에 청주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집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걱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황민수가 집을 대신 구해 준 덕분에 오호만의 여자 친구는 한시름 놓고 안도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고마워요. 강진 씨가 없었더라면 우리 두 사람은 아직도 알 바로 전전긍긍하면서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천만에요. 그보다 형수님, 결혼 계칙은 언제쯤 잡고 계세요?"

"올해 말쯤에 하려고 하는데…… 결혼식은 따로 안 하려고요."

"네? 왜요?"

결혼식을 안 한다는 말에 이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까요. 일단 혼인 신고부터 먼저 하고, 결혼식은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길 때 할까 생각 중이에요."

이강진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 이야기, 민수 아저씨한테 하게 되면 아마 자신이 결혼식 자금 대주겠다고 말할 거예요."

"네? 아무리 그래도……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한 관계인데, 설마 결혼 자금까지 대주실까요."

"민수 아저씨는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사람이 너무 착하다.

이강진은 황민수의 그런 면에 반했다.

그리고 그런 점을 존경한다.

하지만 너무 착하기에 한편으론 많이 불안하다.

사회라는 게, 인간관계라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으 니까.

오호만과 그의 여자 친구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이강진이 말한 대로 결혼식에 관한 이야기를 슬쩍 흘린다면, 황민수가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아니, 우린 괜찮아."

"지금도 사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셨는데, 더 이상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결혼식은 우리 힘으로 해 볼게요."

이강진은 이들이 이런 대답을 들려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역시.

'민수 아저씨가 인복이 있어.'

이렇게 양심 있고 착한 제자를 들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황민수의 인복에 이강진도 포함되었을지도 모른다. 하나 이강진 본인은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제61화. 연결고리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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