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1화. 연결고리 (2) >
제61화. 연결고리 (2)
이왕 오호만 병장과 마주친 김에 이강진은 그에게 하려던 말을 들려주기로 했다.
"오호만 병장님, 잠시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습니까?"
"시간이야 널리고 널렸지. 작업하자고 하는 것만 빼면 언제든 내 줄 수 있다."
"제가 행보관님도 아니고, 오호만 병장님하고 무슨 작업을 하 겠습니까. 바라 식당에 관련된 이야기니 가벼운 마음으로 들으 시면 될 거 같습니다."
"바라 식당 이야기인데 왜 가벼운 마음으로 들으라고 해. 진 지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들어야지. 어쩌면 내 인생일대의 분기 점이 될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이야기할 거면 휴게실로 가자. 지 금 가면 듣는 귀는 없을 거야."
"예, 알겠습니다."
오호만과 함께 조용히 휴게실로 향하는 이강진.
그의 말대로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자리를 잡은 오호만은 이강진에게 곧장 본론을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인데?"
"다음 주 월요일에 전역하시고 바로 바라 식당으로 찾아갈 거 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전역하고 한…… 이틀 뒤?"
"오호만 병장님 전역하는 날에 저도 같이 휴가 나가려고 합니다."
"엥? 그래?"
"예, 오호만 병장님이 바라 식당으로 왔을 때 민수 아저씨…… 그러니까 거기 사장님하고 직접 만나게 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굳이 안 해도 될 일이다.
하지만 황민수가 낯선 사람을 상대로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강진은 잘 알기에 일부러 이런 수고를 자처하기로 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이 기왕이면 좋은 만남으로 서로 기억되기 를 이강진은 간절히 바랐다.
본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강진이 은근히 오지랖이 넓다는 걸 잘 아는 오호만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그러고 싶다면야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주선자가 같이 있어 주면 나야 오히려 편하고. 근데 쟁여 둔 휴가는 괜찮 냐? 곤B히 나 때문에 아껴 둔 휴가 하나 쓰는 거 아니야?"
"오호만 병장님, 제가 누구입 니까."
"포상 휴가 사냥꾼이지."
"그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닙니다. 이번에도 파견 가서 포상 휴가 하나 따왔으니, 제 잔여 휴가에 대해선 걱정 안 하셔도 됩 니다."
"역시 이강진이야."
총알은 충분히 장전되어 있다.
이제 휴가를 나가고 싶을 때, 방아쇠만 당기만 된다. 이것이 휴가 부자, 이강진만의 방식이었다.
* * *
오호만 병장이 전역하기 하루 전날.
그는 혼자서 부대 이곳저곳을 부지 런히 돌아다녔다.
아무것도 하는 건 없었다. 그저 돌아다니기만 할 뿐.
그러나 목적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오호만이 부대시설을 돌아보려고 하는 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내가 취사병을 좀 일찍 달았거든. 부대 전입 온지 한…… 3개 월 만이었나? 그때 취사병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해서 뭣도 모 르던 시기 때부터 취사병 일을 하기 시작했었지. 그래서 사실 막 사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구경할 시간조차 없었어."
같이 돌아다니던 이강진은 그의 고중에 무의식적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부대에 있을 시간이 거의 없다 보니 부대시설을 이용할 시간 도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남들에게는 친숙한 헬스장도, 코인 노래방도, 휴게실도, 사이 버 지식 정보방도 오호만에게는 낯선 장소들이었다.
부대에 올라오면 쉬느라 바빴다. 그러다 보니 이런 곳들에 들 를 여유조차 없었다.
"그래도 전역하기 전에 실컷 봐 뒀으니까 아쉬움은 없네."
사실 막상 돌아다니다 보니 별 감흥이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다시 막사로 돌아가려던 순간 이강진은 오호만에게 물었다.
"행보관님이 전역자들한테 치맥 사 주시는 것은 아시지 말입 니다?"
"그거야 알지. 그때 먹는 치킨, 맥주가 그렇게 맛있다며?"
"전역자들이 공통적으로 다들 맛있다고 했는데, 제가 보기엔 그 가게 치맥이 맛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일이면 전역한다는 것 때문에 유독 맛있게 느껴져서 그런 거 같습니다."
"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 좋아, 취사병인 내가 직접 가서 맛 보고 말해 주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오호만과 이렇게 군대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전역을 맞이하는 오호만. 그는 과연 어떤 기분일까.
내심 궁금했다.
저 녁 점호가 끝나자마자 오호만은 금일 당직사관인 행보관의 부름에 따라 행정반으로 향했다.
"와서 앉아라."
"예!"
자리에 앉자마자 행보관이 잔을 들어 올렸다.
"자, 일단 마시자. 목말라 죽겠으니까."
"하하, 알겠습니다."
맥주잔을 부딪친 두 남자는 그것을 그대로 들이켰다.
꿀꺽, 꿀꺽, 꿀꺽!
행보관실에서 맥주를 마시는 건 오호만은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워랄까 낯선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편했 이것이 전역의 힘일지도 모른다.
치킨 한 조각을 들고서 그대로 물어뜯는 오호만.
바삭한 튀김옷과 적절하게 익혀진 들! 가슴살의 식감이 오호만의 입안을 자극했다.
'뭐지, 이건?'
오호만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
'맛있잖아!'
사실 오호만은 행보관이 사 주는 치맥이 맛있을 거라고 생각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괜찮았다.
'전역자들이 맛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 이유가 있었군.'
내일 전역한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 맛있게 느껴진 게 아니었다.
실제로 맛이 괜찮았다.
'부대 주변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네.'
가끔 부대로 면회를 오는 사람들이 근처에서 치킨을 사서 막 사로 올려 보내곤 했지만, 오호만은 취사병이다 보니 면회자들 이 사온 치킨을 먹을 기회가 없었다.
전역 전에 자신만 몰랐던 사실 하나를 또 하나 깨닫게 된 오호만.
오늘따라 치킨이 술술 잘 넘어간다.
* * *
전역의 아침을 맞이한 오호만을 축하해 주기 위해 병사들이 사열대 앞으로 집합했다.
오호만은 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등병 때부터 취사병 생활을 했으니까 나 잘 모르는 사람들 도 있을 거야. 그래도 뭐, 이렇게 다들 얼굴 한 번씩 보고 전역 할 수 있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남은 군 생활 다들 잘하고, 그리고 휴가 나와서 짬밥 그립다 싶으면 연락해. 내가 만들어 줄 테니까."
병사들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취사병만이 할 수 있는 전역 소감이었다. 오호만 병장만 위병소를 나서는 게 아니었다.
오늘 휴가를 떠나는 이강진도 그와 같이 동행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위병소를 통과해 앞에 정차되어 있는 택시에 탑승한 두 사람. 택시 기사는 이강진과 오호만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손님들, 오늘 전역했나 보네요?"
이강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것은 진심이다.
집으로 돌아온 강연석은 두 달여 만에 만나는 행복이와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1월에 휴가를 나왔을 때, 둘이서 같이 오랜 시간을 보냈음에 도 불구하고 행복이는 이강진을 보자마자 사정없이 짖어 대기 시작했다.
이유가 있었다.
"이놈의 군복이 또……."
군복만 벗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조용해지는 행복이. 이강진은 그 모습에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군복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행복이가 이토록 짖어 댄 것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신기하긴 하네."
사복으로 갈아입으니 이강진에게 다가와 머리를 부비거리면 서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강진은 그런 행복이와 함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장 마감까지 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어디…… 일 좀 해 보실까."
휴가를 나올 때마다 이강진은 계속 단타를 하면서 차곡차곡 돈을 쌓아 갔다.
최대한 많이 모아 둬야 나중에 시프 코인 대란이 도래했을 때 보다 큰돈을 거머쥘 수 있다.
지금의 단타가 일종의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었다.
탄약반장에게 추천해줬던 종목이 딱 단타 치기 좋은 종목이 었다.
집중을 하면서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강진.
"끝났다, 끝났어."
오늘 치 할당량이 전부 끝났다.
프로그램을 종료한 후에 인터넷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미래의 지식을 머릿속에 담아 두고 있다고 해도 실시 간으로 정보를 확인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정보가 곧 돈이 되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접속한 이강진은 검색어 순위를 보 자마자 눈을 의심했다.
"오종한?"
낯이 익은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명이인이 아닐까 해서 뉴스를 검색해 봤다.
그러나 이강진이 아는 그 오종한이 맞았다.
['블리스' 오종한, 16강 진출 확정!]
[명승부 제조기 오종한, 마지막 16강 티켓을 거머쥐다!]
[오종한, '이제 감 찾았습니다.' 제2의 전성기를 알리다!]
프로 게이머로 데뷔한 오종한이 프로 리그 16강 명단에 합류 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대단하네, 종한이 형."
군대에서 오종한이 예선을 치루는 장면을 티비로 본 적이 있었다. 모든 경기를 거의 한 끗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모습을 보면서 분대원들은 아직 오종한이 감을 잡으려면 먼 것 같 다고 말을 했었다.
그러나 오종한은 어떻게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식으로 점 점 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비록 쉬운 경기가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위태위태했지만, 그래도 결과가 좋으니 그만이었다.
"이러다가 종한이 형, 정말로 결승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결승에 진출하면 분대원들이 다 같이 응원 가기로 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물론 이강진은 정말로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때 단체로 나갈 수 있을지……."
모든 분대원들이 한날한시에 휴가를 나가는 건 아예 불가능 하다. 아마 대표로 몇 명만 가서 결승전을 관람해야 할지도 모 른다.
이 부분에 대해선 오종한도 분명 양해를 해 줄 것이다. 그도 한때 군인이었으니까 다 같이 휴가를 못 나간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군대에서 비록 안 좋은 일을 겪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 력하는 오종한의 모습을 보니 이강진마저 기쁜 감정이 들었다.
"오늘은 FIFA 리그나 좀 봐 둬야겠네."
오종한의 활약상이 보고 싶어졌다.
휴가 2일 차 아침.
오종한의 경기를 몰아서 보느라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한 이 강진은 곧장 나갈 채비를 갖줬다.
오늘은 황민수에게 전해 줄 말이 있다.
가게는 1월 달에 봤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신 예전에 비해 종업원의 숫자가 많이 늘었다.
"안녕하세요."
종업원 중 한 명이 이강진을 보면서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죄송해요. 아직 저희가 영업시간이 아니라서……."
"식사하러 온 게 아니고요. 민수 아저씨한테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요."
"아, 그러세요? 잠시만요. 사장님! 손님 오셨어요!"
종업원의 부름을 듣고 나서야 황민수가 뒤늦게 가게에 모습을 드러냈다.
"강진이 왔구나! 어째 넌 볼 때마다 더 잘생겨지는 거 같다?"
"아저씨도 더 젊어지신 거 같아요."
"그래? 하하하! 내가 요즘 그 소리를 많이 듣긴 하지."
종업원들은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그래도 황 민수가 기분이 좋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이강진은 황민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번에 말했던 거 있잖아요. 호만이 형이 여기 와서 요리 배 우고 싶다고 한 거."
"어, 그랬지 언제 온대?"
"시기는……."
말을 이어 가려고 하던 순간.
갑자기 가게 문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오호만이라고 합니다! 스승님에게 요리를 배우러 왔습니다! 부디 이 못난 제자를 받아 주세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오호만에게 향했다.
이강진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지금이요."
< 제61화. 연결고리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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