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91화 (191/347)

민속놀이 대회는 설날 당일날 시행된다.

그전까지 백우호는 어떻게든 포상 휴가를 따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기울였다.

D-1.

분과별 간담회 시간 때, 백우호는 갑자기 구석 쪽으로 향하더 니 관물대에서 뭔가를 꺼냈다.

네 개의 작은 막대기들이었다.

그것을 본 이강진은 설마 하며 물었다.

"너 그걸로 윷 던지는 연습하려는 거냐?"

"오, 역시 내 동기. 잘 아네."

"미친

나뭇가지를 윷과 비슷하게 깎기까지 했다.

저런 열정을 평상시에 보여 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고 봐라. 내가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포상 휴가 따낼 테니 까!"

강한 의욕을 불태우는 백우호.

그가 이렇게까지 포상 휴가에 욕심을 내는 데에는 그만한 사 정이 있었다.

여름에 래퍼 활동하는 동료들과 바닷가로 놀러가기로 했는데, 그때 사용할 휴가를 미리 마련해 둬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필사적으로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너 대항군 잡고 받은 포상 휴가하고 이발병으로 받을 포상 휴가도 있잖아. 그걸로 나가면 되는 거 아니야?"

"그거는 말년 휴가 때 붙여서 써야지. 말년 휴가를 4박 5일만 나갈 순 없잖아. 안 그러냐?"

"하긴 그렇지."

그 부분에 대해선 이강진도 공감하는 바였다.

말년 휴가는 최대한 길게 나가야 한다.

상병 때부터 차곡차곡 포상 휴가를 쌓아 둬야 나중에 마음 편 히 말년 휴가를 즐기다가 올 수 있다.

이강진은 이미 그때 사용할 휴가들을 다 챙겨 뒀다. 그래서 별 로 큰 걱정이 없지만, 백우호는 안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윷 아니면 모 나와라! 하압!"

윷놀이에 미친 남자, 백우호.

그를 보면서 이강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설날 당일날 아침.

명절이어도 점호는 평상시와 똑같이 진행된다.

당직사관을 맡게 된 행보관은 아침 식사 집합 때, 병사들에게 오늘의 전파 사항을 공지했다.

"분대장들 통해서 미리 알려 줬듯이 오늘은 민속놀이 대회를 개최할 거다.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자기 차례가 되면 대회장소로 오고,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은 생활관에서 알아서 쉬도 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은 이런 자유도가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안 될 거, 일찌감치 포기하고 생활관에서 푹 쉬기로 한 병사들도 꽤 많았다.

나우형, 황경일, 그리고 박홍. 민속놀이 3대장을 넘어서야 우 승할 수 있는데, 그게 상당히 힘든 일이다.

헛수고를 할 바에야 빠른 GG 선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우호는 그렇지 않았다.

일찍 밥을 먹은 그는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도 계속해서 피 나는 연습을 반복했다.

반면 이강진은 한가로이 누워 티비를 보면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오전 10시가 되었을 때 행정반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행정반에서 알려 드립니다. 지금부터 민속놀이 대회를 시작 하도록 하겠습니다. 행정반 앞에 대진표를 작성해 걸어 뒀으니, 대회 참가자들은 확인 이후에 본인의 옆에 사인을 해 주시기 바 랍니다.

"대진표나 보러 가야겠네."

이강진은 딱히 우승을 노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과 대 결을 펼칠 사람이 누군지 확인이나 해 보기로 했다.

딱지치기와 윷놀이는 토너먼트 전으로 진행된다. 제기차기는 서로 일대일 대결할 필요 없이 개인 기록만을 가지고 우승을 다 투게 된다. 그래서 유일하게 재기차기만 대진표 대신 시간표만 나와 있었다.

딱지치기가 가장 먼저 진행된다.

이강진의 1자전 상대는 바로…….

딱지치기의 왕, 황경일이었다.

이강진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1차전부터 황경일이 상대라니. 자라리 '넌 탈락이다.'라고 써 붙이는 게 더 직설적일 것 같았다.

'뭐, 오히려 잘된 일이지.'

헛된 희망을 가지기보다 그냥 일찌감치 황경일에게 패배해서 떨어지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한편 사인을 하러 온 황경일은 자신의 대진 상대가 이강진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씨익 웃었다.

"우리 중대 에이스랑 붙게 되다니. 영광이네."

"딱지치기는 초보 중에서도 초보입니다."

"에이, 너무 겸손한 거 아니야?"

이강진도 마음 같으면 힘을 숨긴 주인공처럼 되고 싶지만, 현 실은 녹록지 않았다.

정말로 못한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친구들 사이에서 딱지치기가 한 번 유 행했을 때에나 깔짝 해 봤지, 그 이후는 손도 대질 못했다.

심지어 딱지 접는 법조차 모른다. 그래서 조금 있다가 백우호 한테 대신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야 할 판이었다.

호쾌하게 웃은 황경일은 기대가 된다는 미소를 띠면서 사인을 하고 자리를 떴다.

'피곤하네.'

아직 대회가 시작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피로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오전에 진행되는 딱지치기에 참가하게 된 이강진과 백우호. 이름이 불린 두 사람은 사이좋게 대회장으로 입성했다.

가장 먼저 백우호의 차례가 시작되었다.

상대는 박격포반의 오거현 일병.

백우호의 공격이 이어졌다.

"후랴아아아압!"

강력한 백우호의 일격!

'빠악!' 하는 마찰음과 함께 오거현의 딱지가 넘어갔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상대방을 끝장내 버린 것이다.

딱지치기의 왕, 황경일은 감탄을 뱉었다.

"오, 백우호. 제법 하네?"

"이날을 위해 피, 땀, 눈물을 흘리면서 연습했습니다."

"그래? 얼마나 노력했는지 내가 직접 확인해 줘야겠군. 먼저 결승에 올라가 있을 테니까 알아서 와라."

"예, 알겠습니다."

황경일이 결승전의 한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그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그와 1차전에서 맞붙게 된 이강진도 같은 생각이었다.

드디어 이강진의 차례가 왔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황경일 병장님."

"오냐, 나도 잘 부탁한다."

상호간에 경례를 주고받은 뒤.

경기가 시작되었다.

가위바위보 결과. 선공은 황경일이 차지했다.

"흐읍!"

있는 힘을 다해 딱지를 내려치는 황경일.

'따악!' 소리와 함께 이강진의 딱지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빙빙빙 돌면서 빠르게 회전하는 이강진의 딱지.

그러나 운이 안 좋게도 딱지는 뒷면이 아닌 앞면으로 다시 돌 아왔다.

"아쉽네."

아쉬움에 황경일은 입맛을 다셨다. 첫 공격은 운이 안 좋았을 뿐이지, 다음번에는 무조건 넘길 수 있다.

다음은 후공인 이강진의 차례다.

이게 얼마 만에 손에 쥐어 보는 딱지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 였다.

'그냥 힘 있게 내려치면 되겠지?'

보고 들은 것 그대로 흉내 내기로 했다.

빠아악!

이강진의 딱지가 황경일의 딱지 위를 정면으로 내려쳤다.

그와 동시에…….

툭-

딱지치기 왕의 딱지가 뒷면을 보였다.

"너, 넘어갔어?"

"말도 안 돼!"

"황경일 병장님이 졌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당사자인 황경일조차도 입을 떡 벌린 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경일의 딱지는 보통 딱지가 아니다. 작년 설날, 1중대 딱지 치기의 전설이 된 바로 그 딱지다.

무패행진의 전설을 기록했던 황경일의 딱지는 초보자인 이강진에 의해 생애 최초의 1패를 적립하고 말았다.

정작 이강진 본인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이게 왜 넘어가지?'

실력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운(運)'이다.

* * *

이강진의 강운은 결승전까지 쭉 이어졌다.

그와 결승전에서 맞붙게 된 백우호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이강진을 바라봤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먼."

이럴 줄 알았으면 이강진에게 딱지를 만들어 주지 말 걸 그랬하나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선공은 이강진이 차지했다.

백우호는 속으로 기도했다.

'한 번만 버텨 줘라! 제발 한 번만!'

기회가 온다면, 백우호는 무조건 이강진의 딱지를 넘길 자신 이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 준 딱지이기에 약점이 뭔지도 안다.

왼쪽 위가 살짝 튀어나와 있다. 저 부분을 공략하면 별로 크 게 힘을 안 줘도 쉽게 넘길 수 있을 터.

하지만 이건 백우호에게 공격 기회가 주어졌을 때나 가능한 작전이었다.

만약 이강진이 그전에 백우호의 딱지를 넘겨 버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승전도 단판으로 진행됩니다. 그럼 이강진 상병님부터 시 작하겠습니다."

"알았어."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이강진은 힘껏 딱지를 내려쳤다.

빠아악!

백우호의 딱지와 이강진의 딱지가 동시에 공중으로 날아올랐 다.

앞면인가, 뒷면인가!

마침내 백우호의 딱지가 떨어졌다.

위쪽 면의 정체는 바로…….

"뒤, 뒷면 이강진 상병님의 승리!"

이강진이 새로운 딱지치기 왕의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다.

주변에서 새로운 딱지치기 왕의 탄생에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강진은 여전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영 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오늘…… 되는 날인가?'

심상치 않은 강운의 조짐.

이강진은 본의 아니게 정말로 힘을 숨긴 주인공으로 등극해 버렸다.

* * *

이강진의 강운은 제기차기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75, 76, 77, 78……!"

제기가 도통 땅 아래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이강진의 행보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98, 98…… 100!"

"세상에, 100개를 친다고?"

"나우형 병장님은 89개가 한계였는데!"

제기차기의 신, 나우형조차 마의 세 자리 수는 넘지 못했다.

그러나 이강진은 그것을 너무 가뿐하게 넘어 버렸다.

그의 최종 기록은 121개.

역대급 기록이 나왔다!

아직 남은 선수들이 제법 있지만 121개를 차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우형조차 100개를 못 넘었으니 말이다.

백우호는 이강진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너 내가 아는 이강진 맞냐? 오늘 왜 이래?"

이강진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내가 맞는지 모르겠어."

이렇게 운이 좋았던 적이 있었을까. 희한한 일이다.

* * *

윷놀이에서도 이강진의 강운이 통할까?

대답은 Yes였다.

던지는 족족 윷 아니면 모만 나오는 이강진.

그와 결승에서 맞붙게 된 박홍 병장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강진의 남은 말판은 하나.

걸 이상만 나온다면 모든 게 끝난다.

구경 온 병사들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이강진의 손끝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던집니다."

이강진의 손을 떠 난 4개의 윷.

결과는…….

"걸!"

"이걸 깔맞춤으로 끝내네!"

"미쳤다, 미쳤어. 강진아, 너 오늘 운으로 로또 샀어야 되는 거 아니냐?"

세 번 다 우승을 차지했다!

1중대 역사상…… 아니, 1075대대 역사상 한 사람이 민속놀이 대회 우승 상품을 싹 쓸어 간 적이 없었다.

전례가 없던 일이 발생한 덕분에 1중대는 패닉 상태에 빠져 들었다.

2박 3일 포상 휴가증을 자그마치 3개나 따낸 이강진.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걸 나 혼자 독식하면 민심이 안 좋을 거 같은데.'

실력으로…… 아니, 운으로 이겨서 1등을 세 번 연속 따내긴 했 지만, 굳이 포상 휴가증이 세 장이나 필요하진 않았다.

이강진은 2박 3일 하나만 있으면 된다. 애초에 우승은 생각하 지도 않고 참가했던 것이었기에 하나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결국 이강진은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행보관과 이야기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온 이강진은 1분 대원들을 집합시켰다.

"나 혼자서 이거 세 장 다 쓰는 건 좀 그런 거 같더라. 그래서 포상 휴가 한 장은 우호에게, 그리고 다른 한 장은 운상이에게 줄 테니까 잘 써라."

"가, 강진아……!"

"이강진 상병님, 사랑합니다!"

기왕 얻은 포상 휴가증이니 이렇게 된 거 분대원들의 충성도 를 올리는 데 쓰기로 했다.

효과는 아주 탁월했다.

'그나저나 나한테 이렇게 운이 따르는 날이 있다니.'

이럴 때 복권이라도 질렀어야 했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 제59화. 군대에서 보내는 설날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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