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7화. 혹한기 (5) >
제57화. 혹한기 (5)
귀신 한중훈 중사를 잡을 방법을 이도훈이 알고 있다!
이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그냥 우연히."
계기는 이도훈의 말대로 정말 우연이었다.
만약 한중훈 중사와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이도훈은 그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방법이냐면……."
이도훈은 자신이 알아낸 정보들을 모두 이강진에게 넘겨 줬그제야 이강진은 한중훈 중사가 왜 8790진지에서 무패 행진을 계속 이어 가고 있었는지,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이 정보를 잘 활용하면, 그 한중훈이라는 사람을 잡을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전포대장님. 그런데……."
궁금한 게 생겼다.
"왜 이런 고급 정보를 저한테 주시는 겁니까?"
이도훈은 싱긋 웃었다.
"저 번에 네가 나 도와줬으니까."
무박 3일 훈련 당시, 이강진은 이도훈에게 대항군의 위치를 알려 준적이 있었다.
그때 받은 도움을 이도훈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서로 돕고 살아야지. 안 그래?"
이강진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이도훈.
"상병 이강진. 예, 그렇습니다!"
그의 말대로다.
서로 돕고 사는 사회가 아름다운 법.
지금 이 순간, 이강진은 그 '아름다운 사회'라는 걸 아주 약간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도훈에게 들은 고급 정보.
이것을 그대로 묵혀 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점심 식사를 하던 도중에 이강진은 1부소대장을 찾았다.
"부소대장님, 식사 안 하십니까?"
"먹어야지, 금방 갈게."
마침내 1부소대장이 1분대원들이 있는 쪽으로 합류했을 때. 이강진은 그때 비로소 입을 열었다.
"해답을 찾았습니다."
"응?"
"해답이라니, 뭐?"
숟가락으로 깨작깨작 밥을 먹 던 고필중이 구체적으로 물었다.
"짬밥 맛있게 먹는 해답 말이야?"
평소대로라면 고필중의 이런 유머도 잘 받아 줬을 이강진이 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귀신을 잡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진짜?"
그야말로 '헉!'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한 폭탄 발언이었다.
1부소대장은 순간 중대 ATT 때의 일을 떠올렸다.
전마등이 이강진의 말만 따르면, 무조건 한중훈 중사를 잡을 수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벌어졌다.
이번에도 이강진에게 도박을 걸어야 하나.
어차피 방법은 없다.
"말해 봐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강진.
1부소대장은 다시 한번 이강진을 믿어 보기로 했다.
대대장의 예상대로 대항군 훈련이 시작되려고 할 때 연대장 이 8790진지를 방문했다.
"충성!"
"충성. 아직 훈련은 시작 안 했나?"
"예, 그렇습니다! 10분 뒤에 바로 시작될 예정입니다."
"그렇군. 내가 타이밍을 잘 맞춰서 왔군."
다른 형식적인 훈련들은 볼 필요가 없었다.
연대장이 직접 섭외한 대항군을 상대로 어떻게 임무를 수행 하는지. 이것만 보면 답이 나온다.
슬슬 시간이 되었다.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 기 시작했다.
이들이 잡아야 할 대항군의 숫자는 한중훈 중사를 포함해서 총 3명.
그중 두 명은 한중훈 중사가 고민 끝에 선정한 엘리트 병사들 이었다.
그들도 결코 얕볼 순 없었다.
작전이 시작된 지 15분이 지났다.
지휘통제소에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이 전달되지 않았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대항군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샛길을 이용해서 몰래 1075대 대 본대가 있는 곳으로 잠입할 생각이었다.
대항군이 작정하고 숨어 있으면 사막에 떨어진 바늘 찾기급 으로 그들을 찾기 힘들어진다.
'지금이다!' 하는 느낌이 왔다 싶을 때.
가자."
"예!"
한중훈과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앞쪽을 향해 전진했다.
약간의 인기척이 느껴져도 상관없다. 어차피 수풀이 이들의 존재감을 가려 줄 테니 말이다.
샛길 폭이 워낙 좁기 때문에 선두에 한중훈이, 그 뒤를 병사 들이 따르기로 했다.
앞서 걸어가던 한중훈이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고서 머리 위 로 들어 올렸다.
정지를 뜻하는 수신호였다.
그를 뒤따르던 병사들은 어리둥절했다.
한중훈의 시선은 아래로 향했다.
1075대대가 혹한기 훈련을 받는 동안, 이곳에 눈이 왔다.
바닥이 젖어 있다는 뜻이 된다.
그 말인즉슨…….
'발자국이 남을 수밖에 없지.'
한중훈만 아는 이 샛길에 다수의 전투화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이 샛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의미였다.
한중훈은 병사들에게 외쳤다.
"산개해서 흩어져라!"
갑자기 한중훈이 큰 목소리를 낼 줄은 몰랐다. 두 병사 중 한 명은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반면 한중훈과 거의 1 년 가까이 대항군 역할을 소화했던 또 한 명의 병사는 다른 병사와 다르게 몸이 먼저 반응했다.
동시에 샛길 좌, 우즉에서 매복하고 있던 1분대원들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꼼짝 마라!"
"움직이면 쏜다!"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 보였다. 그 덕분에 한중훈은 이들의 정 체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또 1분대군!"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대놓고 자신에게 불명예를 안겼던 바로 그자들을!
이대로 쉽게 잡혀 줄 생각은 없었다. 한중훈과 눈치가 빠른 병사는 이들의 포위망을 피해 바로 도주했다.
반면 어리둥절해 하던 병사는 황지웅과 서일주 그리고 이등 병 두 명에 의해 바로 제압되었다.
하지만 아직 둘이 남았다.
"어딜 감히!"
성태강이 움직였다.
그의 목표는 한중훈과 함께 온 대항군 병사였다.
일병 한 명이 그의 뒤를 바짝 따라잡는 게 보였다.
병사는 경악했다.
'뭐 저렇게 빨라!'
나름 속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대항군 병사 하나 성태 강보다 빠르지 않았다.
이래 봬도 성태강은 별의별 예능 프로그램을 다 겪어 봤다. 정 글에서 살아남는 콘셉트를 가진 프로그램에도 나가 봤고, 움직 이는 구조물들을 넘어 목표 지점까지 도달해야 하는 버라이어 티 프로그램도 촬영해 봤다.
추격전은 수도 없이 해 봤다.
몸 쓰는 일이라면 자신이 있다!
성태강은 연예계에서 역전의 용사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 도였다.
그런 성태강에게 쉽게 도망칠 수 있는 병사는 몇 안 된다.
불행하게도 대항군 병사는 그 몇이라는 범위에 속하지 못했다.
"으랴아아앗!"
몸을 날리는 성태강. 대항군 병사를 뒤에서 덮쳤다.
동시에 두 남자는 진흙탕을 데굴데굴 굴러야만 했다.
다행이 서로 다친 곳은 없었다.
대항군 병사가 정신을 못 차릴 때, 성태강은 그의 손을 등 뒤 로 꺾은 상태로 체중을 실어 그를 위에서 깔아뭉갰다.
"크윽!"
"얌전히 있어요, 아저씨!"
성태강이 대항군 병사가 저항하지 못하도록 제압하고 있을 때, 다른 분대원들이 와서 대항군 병사를 포승줄로 묶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인물은 단 한 명.
귀신 한중훈 중사뿐이다.
* * *
한중훈 중사는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수풀 사이를 누비 면서 잘도 도망치는 한중훈 중사.
1부소대장은 벌써부터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빨라!'
한중훈 중사는 1부소대장보다 헐씬 더 많은 게릴라전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수풀이 우거진 지형에서 달리는 일에 능숙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작전은 실패했지만, 잡히지만 않으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한중훈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같은 부대한테 두 번이나 진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절대로 붙잡히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하나 아직 추격자들을 완벽하게 따돌린 건 아니었다.
"강진아! 왼쪽으로 가라! 난 오른쪽으로 돌아서 가마!"
"예, 알겠습니다!"
1중대에서 가장 빠른 남자들, 이강진과 고필중이 그의 뒤를 바짝 추격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뭐가 저 렇게 빨라!'
여유롭게 따돌릴 줄 알았건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포위망을 좁혀 가는 고필중과 이강진.
바로 앞은 논두렁이다. 하나 오른쪽으로 가려면 고필중이 있 고, 왼쪽으로 가려면 이강진이 있다.
선택을 해야 한다.
한중훈은 이강진이 다가오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난번, 1중대와의 싸움에서 결정적인 패배 요인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이강진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강진과의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해 자존심이라도 회복하고 싶었다.
중사 VS 상병!
단 둘만의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한중훈 중사는 이강진의 빈틈을 찾기 위해 빠르게 눈을 굴렸다.
왼쪽? 오른쪽?
둘 중에 하나다.
한편 이강진은 자세를 낮준 채 곧바로 수비 모드에 돌입했다.
이 런 대치 상황은 축구를 할 때 많이 접해 봤었다.
비록 공은 없었지만, 어느 방향으로 공격할지. 선택은 한중훈 중사의 몫이었다.
이강진은 그를 막아야 하는 수비수 역할이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은 한중훈.
그러나 이강진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강진은 한중훈의 눈을 바라봤다.
사람은 자신이 나아가려는 방향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중훈의 시선이 향하는 쪽은 바로…….
'왼쪽이 다!'
이강진이 움직이려고 함과 동시에 한중훈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차!' 싶은 표정을 짓는 한중훈.
너무 섣부르게 움직인 것이다.
팔을 뻗은 채 한중훈의 허리를 감쌌다. 그러자 두 남자가 동 시에 바닥을 뒹굴었다.
전투복이 흙먼지투성이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대항군을 잡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뒤늦게 합류한 고필중과 1부소대장이 이강진을 도왔다.
아무라 한중훈 중사라 하더라도 세 남자의 완력을 당해 낼 순 없었다.
게다가 일반인도 아니고 현역 군인들이지 않은가.
결국 완벽하게 제압을 당해 버 린 한중훈.
1부소대장이 무전기를 통해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대항군 3명, 전부 제압했습니다!"
1075대대에겐 승리 선언이.
한중훈 중사에겐 두 번째 패배 선언이 되어 버렸다.
* * *
한중훈 중사를 붙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연대장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훈련이 시작된 지 아직 30분도 채 지 나지 않았는데 벌써 잡힌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러나 붙잡혀 온 한중훈 중사를 두 눈으로 직접 본 이상, 현 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군! 한 중사 자네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잡힌 건 처음 보네."
"죄송합니다, 연대장님."
"미안할 게 뭐가 있나. 그만큼 1075대대가 준비를 잘했다는 소리겠지. 허허!"
연대장은 대대장의 지휘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때는 어쩌나 걱정했던 대대장과 중대장들.
그러나 이강진과 1분대의 대활약 덕분에 연대장 앞에서 망신 당하는 꼴은 면할 수 있었다.
연대장이 1075대대 간부들을 칭찬하는 동안, 한중훈 중사는 이강진을 찾았다.
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였다.
"이강진."
"상병 이강진!"
혹시 한중훈 중사와 몸싸움을 한 것 때문에 쓴소리를 하려는 것일까?
이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하나 그 이야기가 아니었다.
"너, 나랑 같이 대항군이나 하러 다니자."
뜬금없이 이강진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 제57화. 혹한기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