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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81화 (181/347)

< 제57화. 혹한기 (1) >

제57화. 혹한기 (1)

혹한기 때 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왔다. 순간 고필증은 이런 기대심이 생겼다.

"이대로 혹한기 훈련, 다음 주로 밀리면 대박일 텐데."

그러면 말년 휴가를 빌미로 잘하면 혹한기 훈련에서 열외 될 수도 있다.

"열외 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이강진도 궁금했다.

행정반 쪽 방향을 가리키는 고필중이 그것과 연관된 이야기 를 꺼냈다.

"안 그래도 지금 중대장님이 그것 때문에 분대장들 다 소집했 어."

"아, 그래서 중대장실이 닫혀 있었던 거였습니까?"

"그렇지. 지웅이가 빨리 와서 '혹한기 훈련, 뒤로 밀렸다!'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제발!"

희망을 걸어 보는 고필중.

잠시 후에 황지웅이 생활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강진이 왔냐?"

"충성 예, 20분 전에 복귀했습니다."

"운이 좋네. 제설 작업 다 끝났을 때 딱 복귀하다니."

고필중 병장과 같은 말을 하는 황지웅이었다.

동기라 그런지 두 사람이 서로 통하는 면모가 있었다.

"자, 다들 이쪽으로 모여 봐."

황지웅은 생활관으로 돌아오자마자 1분대원들을 불러 모았

"혹한기 훈련 때 눈을 거라는 말, 너희들도 알고 있지?"

"예,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중대장님이 분대장들 불렀었는데……."

황지웅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고필중이 먼저 입을 열었다.

"훈련, 뒤로 미룬대? 2월 초? 중순? 아니면 말?"

2월 말로 미뤄지면 무조건 혹한기 훈련에서 열외 된다. 왜냐 하면 고필중과 황지웅이 전역하는 날짜가 2월 15일이기 때문이 었다.

중순만 되더라도 안정권이다.

초는 좀 아슬아슬하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잘 비벼 보면 열외 될 수 있을 터.

여 러 가지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고필중이었으나.

그의 노력은 헛수고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훈련 안 미룬대. 예정된 날짜 그대로 진행한다고 하더라."

"망할!"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죄 없는 침낭을 향해 주먹질을 날리는 고필중을 뒤로하고 서 일주가 불안감을 드러냈다.

"그럼 눈 맞으면서 혹한기 훈련 진행한다는 겁니까?"

"어, 그렇게 될 거 같다."

"세상에……."

최악의 혹한기 훈련이 될 거 같은 예감이 벌써부터 들기 시작 했다.

안 그래도 힘든 훈련이 더 힘들게 되어 버렸으니 걱정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백우호가 물었다.

"눈 많이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폭설주의보가 내리지 않는 이상, 혹한기 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게 대대장님의 뜻이라고 하시 더라. 1월 말이 아니 면 다른 부대랑 혹한기 훈련 일정이 겹쳐져서 안 된다나 어쨌다나 …… 아무튼 그랬어."

여기저기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군 생활 꼬이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했다. 이강진도 마찬가지였다.

'어째 오늘 제설 작업은 잘 피했다 싶었더니……."

더 큰 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쨌든 혹한기 훈련은 그대로 진행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 었고.

병사들이 해야 할 일은 이것으로 확실하게 정해졌다.

저녁 식사 집합 당시.

행보관이 병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분대장들한테 혹한기 훈련 예정대로 진행될 거라는 전파 사 항은 다 들었을 거다. 이렇게 된 이상, 방한 대비에 최대한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살고 싶다면 무조건 껴입어라! 귀찮다 고 방한 대비에 소홀하게 하지 마라. 그러다가 어떤 꼴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예, 알겠습니다!"

이것은 생존이 걸린 문제다.

행보관은 그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식당으로 내려가기 전에 황지웅은 이강진을 불렀다.

"강진아, 막 복귀해서 정신없을 텐데, 그래도 네가 애들 방한 대비 제대로 하는지 계속 체크해 줘야겠다. 알겠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땡큐, 그리고 이번 훈련이 끝나면 네가 바로 분대장 차게 될 거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어보고."

"알겠습니다."

사실 궁금한 건 없다.

이미 분대장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든 혹한기가 되겠군.'

어쩌면 작년 유격 훈련보다도 더 혹독한 훈련이 될지도 모른겠다.

* * *

혹한기까지 채 일주일이 안 남은 상황.

개인 정비 시간에 이강진은 백우호를 비롯해서 자신의 밑에 있는 후임들을 전부 다 생활관으로 집합시켰다.

누가 뭔가를 잘못해서 내리 갈굼을 하기 위해 집합시킨 게 아니었다.

"너희들에게 혹한기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마."

혹한기가 어떤 훈련인지 이들에게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그때 티비를 보고 있던 서일주 병장이 도중에 이강진의 말을 끊었다.

"혹한기에 대해서 잘 설명해 줄 수 있어? 너하고 우호도 혹한 기안 뛰어 봤잖아."

1분대에서 혹한기 훈련 경험이 있는 사람은 황지웅, 고필중 그리고 서일주. 이렇게 셋뿐이었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론 이강진도 포함된다.

"제가 설명할 수 있습니다.서일주 병장님께서 굳이 나서실 필요까진 없습니다."

"그렇다면야 나야 편하긴 한데……. 그래, 일단 설명해 봐라."

"예, 알겠습니다."

서일주는 이강진의 설명만으로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 가 나서서 보충 혹은 정정 설명을 할 심산이었다.

목청을 가다듬은 이강진은 잠시 후 '혹한기 훈련이란 무엇인 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매해 12월에서 2월, 늦으면 3월에도 받는 훈련이기도 하며, 유격 훈련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아주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대 대 ATT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 된다. 바로 행군이지."

유격 때와 마찬가지로 혹한기 훈련에서도 행군은 여지없이 포 함된다.

"혹한기 행군은 유격처럼 두 번에 나눠서 진행된다. 훈련이 시작되었을 때 한 번 그리고 부대로 복귀할 때 한 번. 둘 다 40km 가 넘는 거리를 걸을 예정이니 준비 단단히 해두는 게 좋을 거 야."

행군 이야기가 나오자 후임들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이강진의 귀에까지 들렸다.

그냥 행군을 하는 것도 힘든데, 혹한은 날씨 속에서 행군을 한 다면 얼마나 더 힘들어질까.

아직 이들은 머릿속으로 그 현장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동기인 백우호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백우호도 후임들처럼 이강진의 강의를 경청하는 수강 생의 입장이 되어 버렸다.

"8790 임시 진지까지 행군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도착한 다음 에 우리 분대가 4박 5일 동안 머물 텐트를 친다. 여기까지가 딱 혹한기 훈련 1일 차 내용이다. 2일 차부터 4일 차까지는 ATT 때 마다 하던 훈련을 그대로 반복할 거다. 문제는 5일 차지."

혹한기의 꽂이자 훈련의 마지막 시련.

"마지막 날에 복귀 행군을 할 거다."

이때 병사들은 다시 한번 추위와의 싸움을 진행해야 한다.

"너희들도 들어서 알겠지만, 혹한기 훈련받는 동안 눈이 올 거 다. 바닥이 미끄러울 테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해라. 다치 면 안 된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이걸 무조건 머릿속에 새 겨 둬라. 다들 알겠나."

"예!"

이강진의 설명은 서일주조차 집중하고 들을 정도로 몰입감이 있었다.

세세한 주의 사항 같은 게 있었지만, 그건 훈련이 시작되기 전 에 말해 줘 봤자 의미가 없다. 금세 까먹을 테니 말이다.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알려줘도 늦지 않다.

서일주는 이강진을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혹한기도 안 뛰어 본 녀석이 어찌 그리 잘 아냐?"

"다른 선임 분들에게 이것저것 많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게다가 직접 체험까지 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혹한기 전문가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설명은 대충 이것으로 끝났고. 궁금한 거 있는 사람?"

질문 타임까지 가지는 이강진 강사.

수강생들은 생각보다 열정적이었다.

"이병 곽분섭!"

"말해 봐"

"대항군 잡으면 정말로 포상 휴가 줍니까?"

혹한기 훈련 때에도 대항군 훈련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백우호가 가로챘다.

"어, 진짜로 줘. 여기 대항군 잡아서 포상 휴가 탄 전설적인 인 물이 있잖냐."

백우호가 가리킨 인물은 바로 이강진이었다.

이강진이 1중대에 남긴 전설적인 행보는 생각보다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대항군을 잡아서 포상 휴가를 챙긴 일이었후임들에게 있어서 이강진은 우상 같은 존재였다.

군 생활을 잘해서 그런 의미도 있지만, 사실 포상 휴가를 많 이 따는 모습 때문에 후임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군대에선 포상 휴가를 많이 따내는 병사가 가장 부러운 법.

1중대에서 부러움의 대상을 고르라면 단연 이강진이었다.

이강진은 백우호의 대답에 보충해서 설명했다.

"대항군 잡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야. 네가 마음먹는다고 쉽게 잡혀 줄 사람들도 아니고. 그러니까 무리해서 잡겠다는 생 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적절한 운과 실력. 그리고 회귀한 덕분에 얻게 된 미래 지식 만 있으면 대항군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앞에 두 가지는 어찌저찌 중족시킬 수 있다 치더라도, 마지막 것을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곽분섭.

하나 포기하기엔 아직 일렀다.

"너희들한테 저 번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포상 휴가를 따낼 수 있는 기회는 진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올 때 가 있어. 생각보다 많아. 저번에 대대장님한테 거수경례 잘했다 고 포상 휴가 얻은 선임 이야기, 기억나지?그것처럼 혹한기 훈련 때에도 그런 기회들이 올 수 있으니까 잘 노려 보너."

"예, 알겠습니다!"

이것으로 이강진 강사의 혹한기 훈련 강의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실전뿐이다.

혹한기 당일 아침.

병사들의 얼굴에 긴장이 흘렀다.

ATT와 같은 과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오전 9시가 되자마자 화스트페이스가 걸릴 것이다.

그전에 병사들은 짐 꾸릴 수 있는 건 일찌감치 다 꾸려 놓았다. 이래야 상황이 걸렸을 때 옮기기가 편해지기 때문이다.

화스트페이스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황지웅은 다시 한번 분대원들에게 강조했다.

"생활관에 아무것도 남기면 안 된다! 대대장님이 오셔서 직접 검사하실지도 모르니까 꼼꼼하게 다 살펴. 알겠지?"

"예!"

"그리고 목진지 투입조는 상황 걸리면 바로 K-2 챙기고 뛰어 나가. 진지 점령이 우선이라는 거,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좋아. 나하고 필중이가 마지막으로 받는 훈련이니까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훈련 잘 받도록 하자!"

마지막 훈련이 혹한기라니.

군 생활을 상당히 성대하게 마무리를 짓는 느낌이었다.

모든 병사들의 시선에 벽시계에 집중되었다.

8시 58분, 59분, 59분 30초.

9시.

에에에에에에엥!

"화스트페이스!"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 했다. 방송에서 훈련 상황이 흘러나왔다. 이강진은 진지 점령조 에게 외쳤다.

"지금 상황 나오는 거, 수첩에 받아 적고 가! 대대장님이 분명 무슨 상황 걸렸는지 물어보실 테니까!"

"오케이, 알았어!"

이강진은 이번엔 진지 점령조에서 제외되었다. 막사에 남아 서 병사들과 함께 훈련 물자 정리, 군장과 의류대 운반 등을 맡을 예정이었다.

"태강아! 창고로 올라가자!"

"예!"

하는 역할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게 있었다.

바로 뛰어다니는 거다.

있는 힘을 다해 언덕에 있는 훈련 물자 보관 창고를 향해 뛰 어가는 두 사람.

뛸 때마다 K-2가 크게 흔들거리면서 이강진의 움직임을 방해 했다.

'하여 간 이 망할 놈의 종……!'

종뿐만이 아니었다.

단독 군장에 걸려 있는 '그' 자 형태의 손전등도 오늘따라 상 당히 거슬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쓰이는 것투성이다.

< 제57화. 혹한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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