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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80화 (180/347)

< 제56화. 작은 식구 (2) >

제56화. 작은 식구 (2)

행복이를 산책시키던 중에 우연히 마주치게 된 죄영고의 넷 째 누나, 죄영혜.

여건이 된다면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라도 한잔 하고 싶었으 나.

행복이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밖에다 묶어 둘 수도 없고 말이다.

덩치가 워낙 작은데다가 겁이 많은 행복이를 밖에 혼자 둘 수 가 없었다.

그래서 이강진은 최영혜와 함께 중앙 도서관 앞에 마련되어 있는 벤치에서 따뜻한 캔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가기로 했다.

"이 아이, 말티즈죠? 이름이 뭐예요?"

"행복이 입니다."

"어머, 귀엽네요."

최영혜가 손을 내밀자, 행복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최영혜의 손을 할짝였다.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여워 보였다.

하나 이강진은 쓴웃음을 몰래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 처음 봤을 때에는 엄청 짖어 대더만. 영혜 씨한테는 얌전 하게 구는군.'

아니면 군복을 싫어해서 그런 걸까.

생각해 보면 행복이와 처음 만났을 때, 이강진은 군복을 입고 등장했었다. 군복에서 풍겨오는 짬내 때문에 행복이가 거부감을 드러낸 것일지도 몰랐다.

실제로 사복으로 갈아입고 난 다음에는 행복이가 먼저 다가 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잠깐 동안 행복이의 애교를 보면서 미소 짓던 최영혜가 이강진에게 관심을 돌렸다.

"휴가 나오셨나 봐요?"

"네, 혹한기 훈련 뛰기 전에 나왔습니다."

"안 그래도 영고한테 들었어요. 혹한기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하긴 했었는데……. 엄청 추운 환경에서 훈련하는 거라고 하더라 고요."

"간단하게 축약하자면 그렇게 되겠죠."

아무리 잘 설명해도 최영혜에게 혹한기 훈련이 무엇인지 이 해시키는 건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군대에 관련된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야 이해하기가 쉽다.

죄영혜가 오이향처럼 딱히 여군을 지원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번에는 이강진이 최영혜에게 물었다.

"강의 들으러 오신 건가요?"

"아니에요. 저, 작년에 졸업했어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회인이죠. 오늘은 동아리 사람들 보려고 왔어요."

"어떤 동아리인가요?"

"마케팅 동아리에요.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도 마케팅 부서에 소속되어 있어요."

홍보 쪽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회사 이야기가 나오자, 최영혜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지 기 시작했다.

"아마 회사는 오래 못 다닐 거 같아요. 슬슬 이직을 생각해 보 려고요."

"대우가 안 좋은 곳인가요?"

"대우도 그렇고, 거리도 멀어요. 대전에 있는 회사인데, 아침 에 일어나자마자 시외버스 타고 청주에서 대전까지 출퇴근 하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정말 죽을 맛이에요."

힘들 만했다.

타 지방으로 출퇴근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강진도 잘 안다.

예전에 일했던 사무보조 아르바이트가 딱 그런 경우였기 때 문이다.

"기왕이면 청주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좋은 직장이 안 보이네요."

요즘 시대에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서울도 아니고 지방이면 더더욱 찾기 어려워진다.

이강진은 싱긋 웃으면서 그녀를 응원했다.

"힘내세요. 계속 찾다 보면 원하시는 곳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고마워요, 강진 씨. 나중에 시간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 제 동생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제가 살게요."

"하하하, 그럼 다음에 휴가 나올 때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 고 보니 연락처가 어떻게 되나요?"

"잠시만요."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이강진과 최영혜.

번호 교환을 마친 뒤, 최영혜는 동아리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계속 바라보던 이강진은 고개를 돌려 최영혜의 번호가 적힌 액정 화면을 응시했다.

"마케팅 부서라고 했지

어쩌면 최영혜가 원하는 이직 자리를 이강진이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 * *

휴가 복귀 당일날 아침이 되었을 때, 이강진은 이번 휴가의 최 대 목적이었던 것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어머니가 만들어 준 떡국을 먹는 것이었다.

뜨끈한 떡국 위에 김 가루를 솔솔 뿌렸다.

크게 한 술 떠서 그것을 그대로 입안에 가져갔다.

꿀꺽!

"맛은 어떠니?"

그의 어머니가 물었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맛있어요. 아마 이 떡국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을 거예요."

"호호, 그럼 민수 씨한테 말해서 이 떡국도 메뉴에 넣어 달라고 해 볼까?"

"에이, 안 돼요. 이건 저만 먹을 거예요."

"얘도 참."

이강진만 알고 있는 세계 제일의 떡국.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어서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행복이에게도 먹여 주고 싶었지만, 사람이 먹는 걸 반려견에게 함부로 먹이면 안 된다.

군침만 질질 흘리는 행복이에게는 사료밖에 줄 게 없었다.

아삭, 아삭!

바로 근처에서 뼈다귀처럼 생긴 사료를 먹기 시작하는 행복 이.

이강진은 열심히 사료를 먹고 있는 행복이의 등을 쓰다듬어 줬다.

"나중에 행복이가 입을 옷 같은 것도 사 주면 좋겠네요. 다음 휴가 때 차 나올 거니까 그때 행복이 데리고 같이 옷 사러 가요. 민수 아저씨도 시간 되면 같이 가자고 해 보세요. 가게 하루 정 도는 쉬어도 되잖아요?"

"호호, 알았다. 이야기해 보마."

다음에 휴가를 나왔을 때에는 황민수와 함께 요식 사업에 관 련된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나누기로 했다.

전역하기 전에 가닥이라도 미리 잡아 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 나도 공부 좀 해 둬야겠어.'

선임급이 되다 보니 이제 다른 사람들 눈치 볼 것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이버 지식 정보방 이용 같은 것도 그랬다.

이등병, 일병 시절 때에는 자리에 30분 이상 앉아 있는 것도 눈치가 보이곤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전역날까지 1 년도 채 남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두 번째 인생의 기회를 거머쥘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떡국을 먹 던 중에 티비에서 오늘의 날씨 예보가 흘러나왔다.

[서울, 경기도 지방에 많은 눈이 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온 도 또한 영하로 뚝 떨어질 거라고 보이는데요. 이에 따라 정부 는…?]

"하아."

숟가락을 내려놓은 이강진은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부대로 복귀하자마자 또 눈 치우게 생겼다.

* * *

부대 근처 시내로 오게 된 이강진은 자신의 발밑을 살폈다.

푸욱.

눈이 쌓였다.

순식간에 발목까지 잠겼다.

분명 부대에도 제설 작업이 한장일 터.

'갑자기 부대 들어가기가 싫어지네.'

어디서 적당히 시간이라도 때우다가 아슬아슬한 시간에 맞춰 서 들어갈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나온 김에 이강진은 용사의 집을 방문했다.

온갖 군용품이 모여 있는 만물 가게.

"어서 오세요."

온풍기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던 나이 든 가게 주인이 이강진을 맞이했다.

작은 티비에선 여전히 오늘의 날씨 예보가 흘러나오고 있었 다.

슬쩍 몰래 엿들어 보니, 눈은 더 이상 오지 않을 거라는 희소 식이 들려왔다.

'그럼 지금 쌓인 눈만 치우면, 이후에는 제설 작업 안 해도 된 다는 뜻이군.'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하기야 가끔은 이렇게 운이 좋을 때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여태껏 이강진은 단 한 번도 제설 작업에서 열외 되어 본 적 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열심히 일한 자여, 떠나라. 아니, 열외 되어라.

지금 이강진의 상황이 딱 그러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혹여나 필요한 군용 물품이 뭐가 있을까 살피던 와중이었다.

유독 이강진의 눈에 밟히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병장 계급장이었다.

4개의 작대기로 구성된 계급장이 오늘따라 왜 이리도 탐이 나 는지.

물론 평상시에도 탐이 나긴 했었지만, 오늘이 유독 심했다.

'미리 사 둬도 상관은 없겠지.'

달고 다니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혹시 모르는 법이다. 병장 진급자가 많아서 계급장이 부족해진 나머지 병장으로 진급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상병 계급장을 달고 다녀야 할지도.

실제로 그런 사례가 몇 번 있었다.

이강진은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 사 두자.'

미래를 위한 투자는 언제나 과감해야 하는 법.

"사장님, 이거 계산해 주세요."

이강진만의 투자 방식이 이번에도 발휘되었다.

* * *

택시를 타고 부대로 향하는 이강진.

금일 휴가 복귀자가 이강진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늘은 외로운 복귀를 해야만 했다.

위병소에 들어선 순간.

이강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살았다!'

눈이 전부 다 치워져 있었다. 타이밍을 잘 맞춰 복귀한 것이다.

이것이 재입대한 자의 안목이다.

이강진은 한층 가벼운 발걸음으로 위병소를 향해 걸어가기 시 작했다.

하도 휴가를 많이 나가서 일까. 위 병소 조장 중에서 이강진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을 정도였다.

"충성!"

"충성. 반입 금지 물품은 없겠지?"

"예, 그렇습니 다!"

부사관은 직접 이강진의 몸을 수색했다.

부대에서 한 번 난리가 나서 그런지 이제는 철저하게 검사를 받아야 했다.

찔리는 게 전혀 없었기에 이강진은 당당하게 수색을 받았다.

대신 낯선 남자의 손이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는 건 좀 그랬 다.

그것만 빼곤 문제될 만 한 건 없었다.

"좋아, 올라가도 좋다."

"예, 알겠습니다. 충성!"

"그래, 충성."

막사로 올라가는 길에도 전부 제설이 다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 많은 눈들을 치우느라 병사들이 아침부터 얼마나 고생했 을지. 안 봐도 뻔했다.

행정반에는 오늘의 당직사관인 2부소대장이 힘없이 축 늘어 진 채 앉아 있었다.

"충성 상병 이강진, 금일부로 휴가 복귀했습니다."

"……강진이 왔구나. 총기 현황판 고치고, 말판 수정하고. 그러 고 들어가라."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만큼 간부도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생활관으로 복귀했어도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모든 병사들이 침대에 늘어진 상태였다.

피로 앞에서 항복 선언을 한 것이다.

눈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승리에서 오는 허무함과 공허 함만이 병사들을 짓눌렀다.

이강진은 일부러 노크를 하면서 기척을 냈다.

그제야 후임들이 벌떡 일어서면서 이강진에게 경례를 했다.

"추, 충성!"

"충성. 다들 눈 치우느라 고생 많았다."

후임들을 다독여 준 뒤.

선임들에게 다가갔다.

"충성. 상병 이강진, 휴가 복귀했습니다."

"어서 오너라, 강진아. 기가 막힌 타이밍에 복귀했구나. 눈이 조 금만 더 늦게 왔더라면 너도 눈 치우고 우리랑 같이 이렇게 늘 어져 있었을 텐데."

이강진은 아쉬워하는 고필중의 말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하하하, 운이 좋았습니다."

"아니, 아직 속단하지 마라."

운이 좋다고 생각했나?

천만에.

고필중은 손으로 티비를 가리켰다.

"놀라지 말고 잘 들어라, 강진아."

거의 자포자기를 한 것처럼 좌절감이 가득 묻어 나오는 미소 를 보이는 고필중.

"혹한기 훈련 때…… 눈 온단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아직 악마의 똥가루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 제56화. 작은 식구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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