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76화 (176/347)

제54화 한 해를 보내며 (2)

최영고 일가와 더불어 이강진, 황지웅까지. 총 8명이 면회실 에 들어서니 벌써 한쪽이 꽉 차고 말았다.

죄영고의 어머니가 황지웅과 이강진을 불렀다.

"이거, 부대 사람들이랑 같이 먹으라고 좀 사온 건데, 불러서 같이 드세요."

치킨과 피자가 양손 가득 두둑하게 들려 있었다.

원래는 부대원들을 면회실로 불러서 같이 먹곤 한다. 생활관 으로 음식물을 올리 려 면 당직사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음식 물도 따로 처리해야 하고. 손이 가는 게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면회실에서 먹고 깔끔하게 이 자리에서 치우 는 게 가장 편하고 좋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적이었다.

"면회 끝나고 저희가 막사로 가져가겠습니다."

황지웅은 가져가는 걸 택했다.

괜찮은 선택이다. 이강진은 황지웅에게 '나이스!'라고 외치고 싶었다.

괜히 부대원들을 내려오게 만들면, 면회실은 말 그대로 전쟁 터가 될 것이다.

죄영고의 누나들한테 어떻게든 잘 보이 려고 하는 수컷들의 전 쟁.

황지웅은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뒷수습하기도 귀찮고 말이다.

최영고의 가족들과 함께 나란히 자리에 앉은 황지웅과 이강진.

그제야 최영고가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했다.

"제 어머니하고 아버지시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제 첫째 누나입 니다. 옆은 둘째, 그 옆은 넷째 누나라고 기억해 주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호호."

누가 보면 소개팅 자리가 아닐까 하고 오해할 수도 있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예뻤다.

한편으로 이강진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대원들이 봤으면 난리가 났겠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죄영고의 넷째 누나라고 소개 한 여성이 이강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언니, 저분,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

"어머, 그러게?"

최영고의 아버지가 그녀들에게 이강진을 소개했다.

"티비에서 나왔었잖니. 국민영웅 이강진 씨."

"아!"

"어쩐지!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어요!"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강진의 얼굴이 낯이 익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특히 최영고의 넷째 누나, 최영혜가 이강진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티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잘생기셨어요!"

"감사합니다, 하하."

처음에는 그냥 사탕발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죄영고의 폭탄 발언이 이어졌다.

"저 입대하기 전에 같이 뉴스 보고 있는데, 영혜 누나가 이강진 상병 님이 본인 타입이라고 했습니다."

"야! 그걸 왜 말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최영혜가 남동생에게 헤드락을 걸었 다.

하나 뒤늦게 이강진이 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인지 바로 원래대로 돌아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조용히 웃었다.

"제 남동생이 허언증이 심해서요. 호호, 그냥 무시해 주세요."

"허언증은 무슨! 누나들도 다 들었잖아. 그렇지?"

"조용히 하라니까!"

참다못한 최영혜가 결국 남동생의 발등을 '콱!' 하고 찍어 버 렸다. 고통 어린 신음을 토로하는 최영고. 매를 번 셈이었다.

이강진은 방금 한 최영고의 말은 못 들은 셈 치기로 했다.

최씨 가문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 * *

짧은 인사를 마친 후에 최영고는 가족들과 함께 면회 외출을 나섰다.

그제야 황지웅과 이강진은 다시 막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 다.

치킨과 피자가 양손에 가득했다.

막사로 가는 도중에 황지웅은 이강진에게 이런 말을 넌지시 흘렸다.

"영고 넷째 누나가 너 좋아한다는 거, 비밀로 하마. 괜히 말했다가 다른 녀석들이 너 엄청나게 질투할 거 같으니 말이다."

"하, 하하하……."

황지웅의 말대로 하는 게 좋아 보였다.

안 그래도 한지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강진은 여기저기서 많은 견제를 받고 있었다.

여기에 최영고의 누나한테까지 호감을 사게 되었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사방이 적으로 변할 것이다.

'인기 남은 죽어라!' 하고서 말이다.

'어째 회귀하기 이전보다 군 생활이 더 빡세지는 거 같은데.'

오이향도 그렇고. 여복이 있는 거 같기도 하면서 이상한 쪽으 로 얽히는 느낌이었다.

막사로 돌아가니, 분대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왜 우리를 안 부른 거야!"

"A급 전투복 입은 상태로 1시간 넘게 대기 타고 있었는데…… 너무하십니다, 황지웅 병장님!"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너희들 부를 거라는 말도 안 했는데 김칫국 마시고 기다리고 있던 너희 잘못이지. 잔말 말고 이거나 먹어라."

치킨과 피자가 이들 앞에 영롱한 자태를 뽐냈다.

순간 불만 어린 목소리들이 쏙 들어갔다.

불만을 잠재울 때에는 역시 먹을 게 최고다.

비록 최영고의 누나들을 직접 눈으로 못 보게 된 건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치킨과 피자를 먹게 되었으니 이득은 이득 이다.

"아, 이강진 상병님."

음식을 먹던 성태강이 이강진에게 말했다.

"이강진 상병님 근무 시간 바뀌었습니다."

"야간?"

"예, 저하고 같이 둘번초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 가서 사인해야겠네."

2013년 마지막 탄약고 초소 근무를 이강진이 장식하게 되었다.

"근무 마치고 돌아오면 제야의 종소리 들을 수 있겠네. 아니 지. 근무 교대하고 내려오는 길에 들으려나?"

"삼번초한테 조금 빨리 근무 교대해 달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삼번초 누군데, 나보다 선임이야?"

"백우호 상병입니다."

이강진은 백우호를 응시했다. 마침 두 사람이 딱 눈이 마주쳤 씨익 웃은 백우호.

"강진아, 세상에 공짜란 없다."

이럴 줄 알았다.

이강진도 맨입으로 부탁할 생각은 없었다.

"PX 한 번 사줄게."

"한 번이 뭐냐? 두 번은 사 줘야지."

PX2번과 제야의 종소리.

서로 맞바꿀 만한 가치가 있을까?

물론 있다.

2013년은 이강진에게 기념비적인 해다. 회귀한 이후로 두 번 째 삶의 기회를 얻게 된 이강진. 특별한 해였던 만큼 마무리도 확실하게 짓고 싶었다.

"좋아. 두 번 사줄게."

협상이 체결되었다.

* * *

올해 마지막 저녁 점호를 맡게 된 당직사관은 바로 소대장이 었다.

"부대 차렷!"

황지웅의 외침에 1분대원들이 차렷 자세를 취했다.

"충성! 1생활관 저녁 점호 인원 보고. 총원 아홉! 열외 무! 현 재 인원 아홉! 번호!"

"하나!"

"아홉, 번호 끝!"

"이상 저녁 점호 준비 끝!"

"쉬어."

"쉬어!"

공교롭게도 마지막 저녁 점호에 1분대원들 모두가 휴가, 외박 없이 전원 생활관에 남아 있었다.

평상시라면 이것저것 주의 사항들을 공지하면서 저 녁 점호 시 간을 길게 끌었을 소대장이었으나, 오늘은 달랐다.

"올 한 해 동안 다들 정말 고생 많았다. 이제 2시간 15분 정도 남았을 텐데, 다들 마무리 잘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내년에 보 도록 하자! 그리고……."

소대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늘은 자정까지 TV 연등 허락하겠다."

"감사합니다, 소대장님!"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FM의 화신이라 불리는 소대장이 TV 연등이라니. 그것도 자 정까지.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소대장의 자비심이 폭발했다.

저 녁 점호가 끝난 뒤, 탄약고 초소 근무 초번초인 서 일주는 근무 투입 준비를 서둘렀다.

"저 근무 끝나고 올 때까지 다들 주무시면 안 됩니다?"

서일주의 건방진 말에 고필중이 웃음을 흘렸다.

"저 녀석 봐라? 감히 상병 나부랭이 주제에 중대 왕고들한테 취침 통제를 걸어?"

"에이, 어차피 자정까지 잠 안 자실 거 다 압니다. 저녁 때 라 면 취식이라도 같이 하시지 말입니다."

"크큭, 좋지!"

라면 취식은 언제든 환영이다.

서 일주가 근무를 나간 사이, 병사들은 침대에 누운 채 티비 쪽 으로 고개를 돌렸다.

몇몇은 피곤한 모양인지 티비를 보는 것보다 그냥 눈을 붙이 는 걸 택했다.

나머지는 이제 2시간도 채 남지 않은 올해의 마지막을 티비 를 통해 생생하게 지켜보기로 했다.

이강진도 후자에 속했다.

부족한 잠은 내일 자면 되 니까.

* * *

10시 45분에 행정반으로 들어선 이강진과 성태강.

이들이 올해 마지막 근무자들이다.

소대장은 두 사람으로부터 근무 투입 신고를 보고받았다.

"혹시 대대장님께서 갑자기 순찰을 도실 수도 있으니까 경계 근무 똑바로 서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투입!"

"트이 !"

당직을 맡게 된 추민복 병장과 함께 산을 올랐다.

신년이 코앞이어도 군부대 일대는 상당히 조용했다.

시내에서도 한참 동떨어진 산골짜기에 위치해서 그런 것일지 도 몰랐다.

터벅터벅. 조용한 산행이 계속되었다.

매번 오르는 산길이지만, 올라올 때마다 항상 힘들다.

저 멀리 탄약고 초소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일주가 후번초들을 재촉했다.

"내려가서 고필중 병장님하고 라면 먹어야 하니까 빨리 와라."

"예, 알겠습니다."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근무 교대를 마친 이들.

초소로 들어오자마자 이강진은 좋을 내려놓았다.

성태강도 이제는 선임 근무자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좋을 내려놓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강진 상병님, 핫팩 필요하십니까? 저, 2개 가져왔는데 필요하시 면 말씀해 주시 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 괜찮아. 나도 많이 가져왔어."

핫팩 하나는 뒷목에, 또 하나는 안주머 니에 넣어 뒀다. 마치 온천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뜨끈함이 몰려왔다. 근무 투입 후 20분이 지났다.

이제 대략 40분 후면 2014년이다.

성태강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강진 상병님, 내년이면 전역의 해 아닙니까?"

"아니. 나, 내후년 1월에 전역해."

"헉, 그렇습니까?"

내년이 와도 전역은 아직 멀었다.

대신 거의 내년이나 다를 바 없는 날짜였다.

"1 월 1일에 전역하지."

새로운 해를 봄과 동시에 새로운 인생도 시작된다.

"그럼 내일이면 전역까지 딱 365일 남는 겁니까?"

"그렇지, 드디어 1 년 깨진다."

"크으…… 부럽습니다."

성태강은 아직 한참 멀었다. 그도 어서 전역하고 싶었다.

"전역하면 뭐 할 거야?"

"연예계로 바로 복귀할 겁니다. 복귀하자마자 월드 투어 준비 해야합니다."

"이야! 대박이네."

역시 성태강은 클라스가 달랐다.

"이강진 상병님은 전역하고 난 다음에 어떤 거 하실 겁니까?"

"나는 뭐, 주식이지. 그리고 당분간은 투자 공부 좀 하면서 지 내려고."

"방송 활동은 안 하십니까?"

"가끔씩 하려고."

할 게 많다.

하지만 이것들을 하려면 우선 무사히 전역부터 해야 한다.

성태강과 잡담을 나누는 사이.

11시 51분에 백우호와 곽분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진아! 약속대로 자정이 되기 전에 왔다!"

"땡 큐."

백우호의 배려 덕분에 이강진은 정확히 11시 59분에 행정반 에 들어설 수 있었다.

소대장이 병사들을 불렀다.

"온 김에 제야의 종소리나 듣고 가라."

이강진과 성태강은 당직들과 함께 티비 앞으로 모여들었다.

화면 한 가운데에 커다랗게 숫자가 새겨졌다.

[5! 4! 3! 2! 1!]

댕, 댕, 댕……!

종소리와 함께 2014년을 맞이하는 이들.

이강진은 감회가 남달랐다.

'이제 딱 1년 남았다!'

남은 1년만 잘 버텨 보자!

이강진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제54화 한 해를 보내며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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