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74화 (174/347)

제53화 군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2)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했던 기독교 종교 행사가 드디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지막 찬송가 제장과 함께 1시간의 크리스마스 특별 종교 행사를 마무리 지은 목사는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이강진도, 한지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뒷정리만 남았다.

준비한 게 많았던 만큼 마무리하는 데에도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의 점심이 다 되어 갈 때쯤.

목사가 잠시 어 딘가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비웠 5분 정도 지났을 때, 다시 목사가 교회로 돌아오더 니 군종병 들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다들 고생 많았으니까 내가 나가서 점심이나 사줄까 하는 데, 같이 갈 텐가?"

군종병들의 눈이 반짝였다.

잠시 동안 허락받은 외출이지만, 이들에게는 천금과 같은 기 회였다.

대대장이 허락한 덕분에 군종병들은 목사와 함께 나가서 점 심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향한 장소는 얼마 전, 이강진도 한 번 들렀던 바로 그 가게였다.

목사와 한지윤 그리고 4명의 군종병까지 합해서 총 6명이 나 란히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목사는 군종병들에게 진심을 다해 고마움을 전했다.

"올 한 해 동안 다들 고생 많았네. 아직 다음 주 예배가 남긴 했지만, 내년에도 잘 부탁하네."

"예, 알겠습니다!"

"저희야말로 매번 잘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1075대대 목사만큼 군종병들을 잘 챙겨 주는 사람 또한 없었한창 식사를 하던 도중에 목사가 뒤늦게 뭔가를 떠올렸다.

"여기 사장님한테도 선물 준다는 걸 깜빡했군. 지윤아, 미안 한데 잠깐 차에 좀 갔다 오거라. 짐이 많을 테니까 강진이도 데 리고 가고."

왜 하필이면 이강진일까?

순간 목사는 이강진을 향해 작게 윙크를 날렸다. 그것만으로 도 이강진에겐 충분한 대답이 됐다.

'목사님이 나를 좋게 봐주시는 건 좋긴 한데? …."

너무 노골적으로 한지윤하고 엮어 주려고 하니까 좀 부담스 럽기도 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다.

이강진은 목사의 말대로 한지윤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때 한지윤이 이강진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강진 씨. 아빠 때문에 밥 먹다가 말고 이 런 일을 맡 게 해서……."

"괜찮습니다. 오히려 목사님한테 감사하고 있는 걸요."

"네? 왜요?"

"지윤 씨랑 둘이서만 이야기할 시간이 생겼으니까요."

한지윤의 얼굴에 홍조가 번졌다.

처음에는 이런 멘트 같은 것도 꺼내지 못했던 이강진이었으 나, 한지윤과 자주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점점 자신감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남자는 자신감이다. 이강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자신감이 과연 얼마나 통했을지.

그건 오로지 한지윤만 알고 있을 터.

갑자기 한지윤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 오늘 날씨가 엄청 맑네요!"

부끄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는 것인지, 갑자기 날씨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러게요. 일기예보 보니까 오늘은 하루 종일 맑을 거라고 하 더군요."

"아쉽네요."

씁쓸한 듯 입맛을 다시는 한지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 저, 크리스마 스 때 눈 내리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었거든요."

여태껏 말로만 들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이번에도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강진도 같이 하늘을 올려 다보면서 말했다.

"눈…… 왔으면 좋겠네요."

만약 부대원들이 들었더라면 이강진을 파묻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 제설 작업 따윈 두렵지 않다.

아마도.

군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밤.

서일주의 주도하에 1분대원들끼리 생활관에서 조졸한 파티 를 벌이기로 했다.

파티라고 해 봤자 PX에서 사온 먹거리들밖에 없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남들은 가게에서 스테이크 썰고 있을 때, 우리는 냉동이나 씹 고 있구나."

만두 하나를 입안으로 털어 넣은 고필중은 아쉬움에 가득 찬 목소리를 냈다.

여자 친구가 있는 황지웅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매번 크리스마스가 되면 여친이 만들어 준 케이크 먹으면서 지냈었는데, 젠장!"

이번에는 곽분섭이 말문을 열었다.

"저는 크리스마스만 되면 친구들이랑 다 같이 모여서 프로 야구 명경기 모음집 보곤 했었습니다."

"그거 말고 좀 특별하고 재미있는 크리스마스 추억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냐?"

어느 순간 크리스마스 일화를 주제로 한 토크 배틀이 펼쳐졌이중에서 가장 우승에 근접한 사람은 백우호였다.

"래퍼들끼리 모여서 클럽에서 파티 벌였습니다. 그때 유명 래 퍼들도 몇몇 왔었습니다."

백우호는 유명하다고 했으나, 듣는 사람들은 사실 누군지 잘 알지 못했다.

래퍼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사람들이었으나, 일반인의 기준으 로 봤을 때에는 잘 모르는 사람들뿐이 었다.

하나 성태강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작년에는 단독 콘서트 가졌습니다. 재작년에는 가요무대 섰 었고…… 올해는 군대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입 니다, 하하하."

"생각해 보니까 태강이 너, 여자 아이돌 많이 알고 있지?"

벽에 걸려 있는 후배 아이돌들의 롤링 페이퍼만 봐도 알 것 같았다.

"예, 그렇습니다."

"걸그룹 중에서 크리스마스라고 너한테 전화하겠다는 아이돌 없어?"

"몇 명 있었습니다만, 제가 부대 전화번호를 안 가르쳐 줬습니다."

갑자기 버럭 소리치는 선임들.

성태강에게는 맨날 보는 아이돌들일지 모르지만, 군인에게는 여신과 거의 동급인 존재들이었다. 여신들이 직접 전화를 걸겠 다는데, 그걸 거절하는 성태강이 이들에겐 이해가 안 됐다.

"행정반에서 전화받기 눈치 보여서 그랬습니다."

"그럼 행정반이 아니면 된다는 거지?"

"그거야 …."

순간 고필중의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강진아, 우호야."

"상병 이강진."

"상병 백우호."

고필중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삽 들고 따라와라. 보물 찾으러 가자."

* * *

이들이 향한 곳은 분리수거장 뒤편이었다.

이곳에 고필중이 언급한 '보물'이 묻혀 있었다.

"강진아, 그때 묻었던 게 어디쯤이었지?"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위치가…… 여기입니다."

이강진은 삽을 두 번 푹, 푹 찔러 넣으면서 X 자를 표기했다. 이곳에 보물이 있다.

"좋아, 파라!"

"예!"

두 상병의 삽질이 시작되었다.

잠시 뒤에 작은 나무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자 안에는 검은 봉지가, 검은 봉지 안엔 또 다른 검은 봉지 가 들어 있었다.

마침내 내용물을 꺼냈다.

스마트폰 하나와 MP3 하나.

고필중과 백우호의 것이었다.

대대장의 갑작스러운 소지품 검사 때문에 이곳에 잠시 묻어 물건들이었다. 원래는 전역할 때쯤 찾으러 올 생각이었지만 계 획이 변경되었다.

고필중이 스마트폰을 몰래 챙기는 동안, 이강진과 백우호는 흔적이 남지 않도록 다시 땅을 덮어 뒀다.

그렇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막사 아래로 내려가던 와중이 었다.

"너희들, 삽은 왜 들고 있냐?"

1부소대장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고필중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추, 충성 분리수거장 뒤쪽에 쥐구멍 같은 게 있어서 그거 메꾸고 왔습니다!"

"행보관님이 시켰어?"

"아닙니다. 저희가 자발적으로 한 겁니다."

1부소대장은 희한하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해가 서쪽에서 떴나. 너희들이 웬일이냐? 스스로 작업을 다 자처하고."

"저희도 이제 철들었나 봅니다, 하하하!"

고필증의 센스 있는 거짓말 덕분에 1부소대장은 더 이상 이들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칫 잘못했다가 좆될 뻔했던 이들.

"빨리 내려가자."

"예!"

또 다른 위기가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빠르게 현장을 뜨기로 했다.

?

* * *

최영고는 눈앞에 있는 물건에 놀라고 말았다.

"이거…… 스마트폰 아닙니까?"

"많은 사연이 담긴 스마트폰이지."

지난날의 아슬아슬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고필중.

그러나황지웅은 그런 감상에 잠기려는 고필중에게 꿀밤을 먹 였다.

"사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들키기 전에 후딱 해."

"쳇, 알았다고."

이들이 무리를 해서 고필중의 스마트폰을 다시 가져온 데에 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주 중요한 이유가.

"태강아,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우리에게 아이돌들의 목소리 를 들려줄 수 있겠니?"

"으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제발!"

선임이 이렇게까지 애원하는데,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성태강도 오랜만에 회사 후배들 목소리를 듣고 싶기 도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화 한번 걸어 보겠습니다. 대신 전화 하고 나면 번호는 삭제해야 합니다. 개인 번호 유출은 회사에서 엄 격히 금하고 있기 때문입 니다."

"물론이지! 명심할게."

"그럼…… 일단 플라워걸 쪽에 먼저 걸어 보겠습니다. 제가 알 기론 오늘, 플라워걸 애들이 스케줄이 없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전화 걸면 바로 받을 겁니다."

플라워걸. 나쁘지 않다.

전화를 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여보세요?

성태강의 예상대로 그녀들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예니니? 나, 태강 오빤데."

-어머, 오빠! 휴가 나오셨어요? 그보다 이 번호, 뭐예요?

"아니, 휴가 나온 건 아니고……."

자세하게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간부나 타 분대 병사들에게 들켜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기운상이 망을 보는 동안, 성태강은 스피커폰으로 모드를 바 꾼 후에 통화를 계속 이어 갔다.

"지금 여기 내 선임들 계시거든. 인사 좀 부탁할게."

-안녕하세요! 플라워걸의 예니에요!

예니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 군인들은 바짝 긴장했다.

"어, 저기…… 그러니까……."

고필중이 인사를 해 보려고 했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목소 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은 모양인지 보다 못한 이강진이 결국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강진이라고 합니다."

-어머머! 그 국민 영웅 이강진 씨요?

"네, 맞습니다."

-태강 오빠! 강진 씨랑 같은 부대였어요?

"어, 맞아."

예니뿐만 아니라 소문을 듣고 찾아온 다른 플러워걸 멤버들 의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가 이강진과 플라워걸 멤버들의 통화가 계속 이어 졌다.

그 순간 갑자기 기운상이 다급하게 외쳤다.

"부소대장님 오고 계십니다!"

플라워걸 멤버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틈도 없이 바로 통화를 끊어 버린 성태강.

스마트폰 전원까지 끄고 난 뒤에 고필중에게 빠르게 패스했 다.

황지웅이 대표로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충성. 파티는 재미있게 잘하고 있냐."

"예! 그, 그렇습니다!"

혹여나 들키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부소대장은 병사들의 굳은 표정을 보면서 물었다.

"다들 얼굴이 왜 그러냐?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아, 아닙니다! 하, 하하하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병사들.

부소대장은 아무렴 어떠냐는 식으로 가볍게 넘겨 버렸다. 그보다 큰일이 생겨 버렸다.

"지금 사열대 앞으로 집합해라. 눈 치워야 한다."

"눈 말입 니까?"

"어, 밖에 눈 오고 있잖냐. 오면 치워야지."

최악의 크리스마스다.

하나 이강진은 좀 다른 관점으로 바라봤다.

'지윤 씨가 좋아하겠군.'

자신도 모르게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백우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황지웅 병장님! 강진이 저 녀석, 정신 나갔나 봅니다! 눈 보 면서 웃고 있습니다!"

"강진아, 정신 차려라. 이런 걸로 실성하면 안 돼!"

괜한 오해를 받고 말았다.

< 제53화. 군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2) - 7권 완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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