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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72화 (172/347)

< 제52화. 특별한 전역 (2) >

제52화. 특별한 전역 (2)

식사 집합 전에 통신반장은 약속대로 고생하는 김철에게 맛 있는 거라도 사 주기 위해서 PX로 향했다.

"당직, 나 PX 갔다 온다."

"예, 알겠습니다."

사열대로 나간 통신반장은 도중에 걸음을 멈췄다.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요즘 부쩍 담배가 늘었다. 주식 때문이었다.

"뭐야? 라이터가 없네."

다시 행정반까지 갔다 오긴 귀찮았다.

그렇다고 하늘에서 갑자기 라이터가'툭!' 하고 떨어지진 않는 다.

어쩔 수 없이 통신반장은 다시 행정반에 들르려고 했다. 그러던 찰나에 이강진이 불쑥 등장했다.

"통신반장님, 여기, 불 있습니다."

어느 새 라이터를 손에 들고 나타난 이강진.

"고맙다, 근데 네가 담배를 피웠나?"

"전 안 피웁니다."

"근데 라이터는 왜 들고 다녀?"

"이등병 때부터 습관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담배 피우고 싶을 때 통신반장님처럼 라이터를 깜빡 잊은 선임들이 한두 명씩 꼭 있지 않습니까? 그걸 대비해서 이렁게 라이터를 하나씩 들고 다 니곤 했습니다."

통신반장은 웃음을 흘렸다.

"선임들이 널 좋아하는 이유가 있군."

"그래야 군 생활이 편해지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지. 나 같은 간부도 마찬가지고."

상급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래서 연대장 혹은 사단장이 떴 다는 소식이 들리면 대대장이 이등병 못지않게 바짝 군기 든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담배를 다 피운 통신반장은 PX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저도 같이 가도 됩 니까?"

"네가?"

"예, 통신반장님한테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뭔데?"

이강진은 목소리를 한껏 낮줬다.

"좋은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통신반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하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대신 통신반장님께서 해 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말해 봐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할 테니까!"

협상 테이블을 펴기도 전에 벌써부터 이강진이 원하는 결과 가 나올 것만 같았다.

* * *

저녁 7시에 1생활관에서 오종한의 전역 기념 파티가 시작되 었다.

PX에서 사온 각종 냉동식품이 오종한의 눈앞에 쫙 펼쳐졌다.

한 번씩 다 먹었던 것들이다.

그러나 앞으로 못 먹을지도 모르는 것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인지 오종한은 각 제품별로 하나씩 맛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 맛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고 싶었다.

오종한이 알려 줬던 건브레이크 파르페도 마찬가지였다.

"사회로 나가면 지금 이 맛이 안 날 텐데, 큰일이네."

벌써부터 걱정이 들었다.

오종한이 틈만 나면 만들어 먹었던 대표적인 간식이 바로 이 건브레이트 파르페다.

맛은 둘째 치고, 이 파르페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을 오종한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오로지 군대 PX에서만 파는 제 품. 그래서 더욱 걱정이 되었다.

고필중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했다.

"부사관 지원하면 계속 먹을 수 있어."

"미쳤냐? 부사관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라."

모든 말년 병장들이 그랬듯, 오종한도 부사관 이야기는 끔찍 이도 싫어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 나가서 뭐 할 건데?"

"뭐하긴."

오종한에게는 아직 못 다 이룬 꿈이 있었다.

"다시 프로게이머 도전해 볼 거다. 얼마 전에 휴가 나가서 감 독님 만났는데, 감독님이 나한테 다시 프로 생활해 볼 의향 없냐면서 생각 있으면 자기 구단으로 들어오라고 했거든."

"오오!"

"역시 종한이 형! 종목은 FIFA지?"

"물론이지. 내가 잘하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예전에는 전략시뮬레이션이, 요즘은 AOS 게임이 대세긴 하 지만, 그래도 잘하던 걸 해야 원하는 만큼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종한은 다시 FIFA 프로 게이머에 도전해 볼 생각이 었다.

"목표는 내년 안에 프로 리그 결승 진출로 잡았다. 만약 내가 결승에 오르면, 휴가 나와서라도 와서 응원해라."

"당연하지!"

"무조건 응원하러 가겠습니다!"

FIFA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이강진은 그렇게까지 FIFA> 열심히 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 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이 결승 무대에서 게임하는 모습을 관전 하면서 응원하면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종한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1분대원들은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오종한의 마지막 저녁 점호 시간이 다가왔다.

1생활관을 방문한 통신반장은 오종한을 불렀다.

"종한아."

"병장 오종한!"

"행보관님이 너 찾으시더라. 저녁 점호 끝나고 행정반으로 와 라."

드디어 오종한에게도 이런 기회가 찾아왔다.

전역자들을 대상으로 행보관이 사주는 치킨과 맥주!

말로만 듣던 1중대 특유의 문화를 오종한이 몸소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녁 점호가 끝난 뒤, 오종한은 통신반장의 말대로 행정반으 로 향했다.

가장 먼저 오종한을 반긴 건 사복을 입은 행보관도, 이제 막 근무 투입을 하려는 병사들도 아닌 바로 치킨 냄새였다.

"냄새 좋네."

감탄하는 사이에 행보관이 오종한을 불렀다.

"종한이 왔냐. 행보관실로 와라."

"예, 알겠습니다."

잔뜩 기대감이 어린 표정으로 행보관실로 향했다.

먹음직스러운 치킨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원한 맥주까지 동반되어 있었다.

그래도 오종한은 일부러 모른 척을 했다.

"행보관님 이게 대체……?"

"애들한테 못 들었냐?"

"아, 네."

행보관이 준비한 서프라이즈를 헛수고로 만들고 싶지 않기에 끝까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유지했다.

"전역자 있으면, 이렇게 내가 따로 불러서 치맥을 사주곤 한다. 보쌈, 족발 쪽으로 잠깐 외도했었는데. 그래도 역시 치킨이 가장 반응이 좋더구나."

아무렴 어떠랴.

오종한에게는 치킨이든 보쌈이든 족발이든, 뭐든 좋았다.

"자, 앉아라."

"예."

행보관과 함께 잔을 들었다.

짠!

고개를 틀어 맥주를 음미했다.

꿀꺽꿀꺽!

여름에 먹어도, 추운 겨울에 먹어도 맛있는 차가운 맥주의 맛 이 오종한을 더욱 기분 좋게 만들었다.

"크으!"

오종한은 자신도 모르게 기쁨의 탄성을 냈다.

부대에서 공식적으로 술을 마셔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체육대 회 끝나고 삼겹살 파티를 할 때, 소주 몇 잔 마셔 본 게 다였다. 그 이후로 오종한은 군대에서 술을 접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애초에 영내에선 술이 금지되어 있었다. 행보관의 이런 조촐 한 전역자 파티도 원래는 하면 안 된다. 그러나 군대는 들키지 만 않으면 장땡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오종한은 행보관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였다.

타 부대에서 전출 와서 3개월밖에 같이 지내지 않았던 오종한. 그러나 그 어떤 말년 병장들보다도 각별했다.

"갑자기 다른 부대에 와서 낯설고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무사히 잘 적응해 줘서 고맙다."

"행보관님하고 1분대원들이 저를 잘 품어 줘서 그렇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오히려 제가 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정말 감사 합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구나. 군 생활하면서 여러모로 부족한 게 많았을 거야, 아쉬운 건 더 많았을 테고. 그래도 인생에 딱 한 번 있을 이 기회가 너에게는 악몽이 아닌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구나."

행보관의 바람은 그것뿐이었다.

악몽이 아닌 추억으로.

오종한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바람이라면 이미 이루어졌다. 오종한은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전역의 아침이 밝았다.

아침 점호를 마친 뒤, 오종한은 마지막 식사를 하기 위해서 부대원들과 같이 대대 식당으로 향했다.

원래는 아침 식사를 안 하고 바로 전역하면 된다. 그러나 오종한은 1 중대원들과 함께…… 아니, 1 분대원들과 함께 마지막 아 칭 식사를 하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이어서 그런 걸까.

아침에 군대리아가 나왔다.

"마지막 짬이 군대리아라니, 하하."

기억에 안 남을 수가 없는 메뉴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막사로 올라가기 위해 1분대원들이 대대 식당 앞으로 집합했다.

그동안 오종한은 2중대가 식사하는 곳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황지웅이 그런 오종한에게 조용히 말했다.

"갔다 와도 돼, 형. 그동안 잠시 기다리고 있을 테 니까."

"아니, 괜찮아."

오종한은 스스로 그 기회를 거절했다.

어쩌면 2중대원들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 다.

사실 오종한은 부대를 떠난 자신이 갑자기 불쑥 얼굴을 내밀 었을 때 그들이 반겨할지 솔직히 장담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2중대에 큰 문제를 일으키고 떠난 오종한 아닌가. 그 래서 한편으로는 오종한을 꺼 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행보관의 말대로 악몽보단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2중 대원들과 억지로 만나려고 하지 않는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일 지도 몰랐다.

1생활관으로 돌아간 오종한은 행정반으로 향했다. 중대장과 행보관 그리고 당직이었던 통신반장과 이번 주 오대기 소대장 인 1부소대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사일대 앞으로 향하자 1중대원들이 전역자를 위해서 양쪽으 로 길게 줄을 늘어섰다.

전출 왔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광경이 펼쳐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던 오종한.

그는 환하게 웃었다.

"고맙다, 애들아. 너희들 덕분에 악몽이 될 뻔한 내 군 생활이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어. 이 모습 그리고 이 기억, 절대로 잊 지 않을게."

병사들의 박수갈채와 함께 사열대 아래로 내려온 오종한은 가장 먼저 이강진을 찾았다.

그와 포옹을 나눈 오종한은 이강진에게 미처 하지 못한, 하지 만 반드시 해 주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강진아, 정말 고맙다. 네 덕분에 군 생활 잘하고 간다."

"나중에 휴가 나가면 연락할 테니까 그때 봐, 형."

"그래, 연락 기다리마."

"그리고 아직 우리가 준비한 선물이 하나 더 남았으니까 기대 하고."

"응? 선물?"

"위병소로 가 보면 알아."

마지막에 서프라이즈.

위병소에 도착했을 때, 오종한은 이강진이 했던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위병소 앞에 모여 있는 병사들.

오종한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2중대원들이었다.

"종한이 형!"

"나가서 꼭 연락해! 반드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종한이 형, 절대로 잊지 않을게!"

한종덕을 비롯한 2중대원들이 오종한의 마지막 전역을 축하 해줬다.

순간 오종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다리고 있던 한종덕과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한종덕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종한이 형……!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해…… 흑!"

"괜찮아, 짜식아, 괜찮아. 이걸로 된 거야, 이걸로……."

등을 토닥여 주면서 한종덕을 진정시켜 주는 오종한.

2중대원들과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나눈 오종한은 힘 있게 위병소 밖으로 걸음을 내밀었다.

쓰라린 기억은 더 이상 없다.

좋은 기억만을 간직한 채 오종한은 못 다 이룬 자신의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 제52화. 특별한 전역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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