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5화. 찾아야 산다 (2) >
제45화. 찾아야 산다 (2)
잃어버린 탄피를 찾아라!
덕분에 1중대는 완전히 뒤집어지고 말았다.
소대장의 명령에 따라 일단 점심 식사건 뭐건 다 때려치우고 우르르 사격장으로 몰려가는 중대원들.
이동하면서 이강진은 남들 몰래 무거운 한숨을 삼켰다.
'내 이럴 줄 알았어.'
흐릿했던 기억 속에서 보였던 금빛 반짝임의 정체는 바로 분 실된 탄피였다.
그때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 시작했다.
이강진이 막 상병으로 진급했을 때, 탄피 분실 사건이 벌어져 서 거의 밤을 지새워 가며 찾았던 적이 있었다.
'결국 찾긴 찾았던 거 같은데……."
문제는 어디서 찾았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는 거였다.
일단 사격장으로 가 보기로 했다.
행정분과와 오종한 병장 그리고 간부들이 사격장을 이 잡듯 이 뒤지면서 분실된 탄피를 찾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 다.
뒤이어 중대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면서 이들을 닦달했다.
"빨리 안 찾고 뭐 해! 어서 찾으란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그깟 탄피 하나가 대체 뭐길래 부대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드 는지.
솔직히 이강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군대는 이해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본인만 손해를 보 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이강진은 그냥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1중대원들도 탄피 수색 작전에 강제로 동참하게 되었다.
백우호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이게 뭔 난리래."
"그러게 말이다."
탄피 찾는 일은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었다.
거의 100명에 가까운 인력들이 땅바닥만 보고 다녔는데도 불 구하고 30분이 넘도록 탄피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거의 1시가 가까워질 무렵.
중대장은 튀어나오려던 짜증을 애써 삼키면서 소대장을 찾았
"소대장!"
"소위 성태원!"
"일단 애들 데려가서 밥 먹여라. 그리고 다시 사격장으로 집 합시켜. 해 저물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탄피 찾아내야 하 니까."
"예, 알겠습니다! 각 분대장들 인솔하에 식사하러 갈 수 있도 록 한다. 실시!"
결국 탄피 수색 작전은 잠시 중단되고 말았다.
중대장의 말대로 해가 떨어지기 전에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 대낮에도 찾기 힘든 탄피를 밤에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해가 저물면 게임은 거의 끝난다고 봐도 무방했다.
'가만.'
밥 먹으러 가던 도중에 문득 과거의 기억이 이강진의 뇌리를 스쳤다.
'탄피는 밤에 발견되었던 거 같은데?'
대체 어떻게?
기억이 복원될수록 이강진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 * *
중대장의 예고대로 탄피 수색 작전은 오후까지도 계속 이어 졌다.
어떻게든 대대장에게 정식 보고가들어가기 전까지 탄피를 찾아내야 한다!
만약 오늘 안으로 탄피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타 부대에 요청 해서 금속 탐지기라도 대동해야 한다.
하나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대장도 알게 될 것이다.
탄피 분실 사건을 대대장이 알게 된다면 중대장은 뭇매를 맞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중대장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직도 못 찾았나!"
병사와 간부 들은 침묵했다.
이제 오후 4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태양의 위치도 슬슬 산 뒤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초조함과 불안감이 다가오는 저 녁 시간대처럼 중대장을 엄습 했다.
결국 중대장은 칼을 뽑아 들기로 했다.
"병력 전부 집합시켜!"
"예, 알겠습니다! 집합'!"
소대장의 외침에 병사들은 빠른 속도로 집합했다.
이들 앞에 선 중대장은 입을 열자마자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 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 한숨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듣도록."
중대장이 뽑아 든 칼의 정체.
그것의 이름은 바로…….
"탄피를 찾는 사람에겐 내 권한으로 2박 3일 포상 휴가를 주 겠다."
드디어 왔다.
포상 휴가의 기회가!
병사들의 눈에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깟 탄피가 뭐 냐면서 궁시 렁 대 던 병사들이 었으나, 포상 휴가가 걸려 있다면 이야기가 아주 많이 달라진다.
포상 휴가 사냥꾼 이강진은 입맛을 다셨다.
'그래, 그때도 중대장이 포상 휴가를 걸었어!'
이제 탄피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병사들에게 확실하게 동기를 부여해 준 중대장은 이들을 다 시 해산시켰다.
일분일초가 아깝다.
병사들은 아까와는 달리 굉장히 적극적인 태도로 탄피를 찾 기 위해 움직였다.
고필중과 백우호는 심지어 삽과 곡괭이, 호미까지 동원을 했다.
땅을 전부 다 갈아옆을 기세였다.
그런다고 여태껏 발견되지 않았던 탄피가 갑자기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질 리가 없었다.
다른 병사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탄피를 찾아 헤맬 때.
이강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현재까지 떠올린 기억 속의 단서는 하나.
'탄피가 밤에 발견되었다는 것뿐인데.'
장소만 떠올리면 된다.
'생각해 보자, 천천히 기억을 되새겨 봐 넌 할 수 있다, 강진 아!'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상당히 어이없게, 그리고 허무하게 탄피가 발견되었던 것으 로 기억한다.
어떻게 발견해야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그것들을 하나씩 추적하다 보면 알아낼 수 있을 터.
이강진이 기억 속을 여행하는 동안, 백우호가 그의 옆으로 다 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어휴! 힘들어 뒈지겠네. 누가 보면 진지 공사인 줄 알겠어."
"……조용히 해 보너, 생각할 게 있으니까."
"아까부터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던데, 대체 그 '생각할 게' 뭐 냐?"
이강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이었다.
신병 교육대 시절 때부터 유독 다른 훈련병들에 비해 군 생활 에 두각을 드러냈던 이강진.
하지만 이강진의 이런 면모는 백우호조차 아직도 낯설게 느껴 졌다.
"자연의 기운이라도 받고 있는 거냐?"
"그런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그것들이 탄피가 어디 있는지 알려 준대?"
"아마도."
"거참, 여기가 무슨 판타지 소설 세상인 줄 아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벌어진다고."
왜 없나, 회귀 트럭한테 치이고 재입대한 사람이 바로 옆에 있 는데.
삽을 지면에 '푹!' 하고 내리꽂은 백우호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얼굴에 쌓인 열을 식히기 위해 노력했다.
"하아, 이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설마 탄피가 다른 곳에서 발 견되거나 그러진 않겠지?"
"탄피가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사격장 말고 어디서 발견되겠냐?"
"짬타이거가 물어갔을지도 모르잖아."
"아니, 그러진 않을 거야."
동물들은 총 소리와 화약 냄새를 싫어한다.
아무리 짬타이거가 식욕이 좋아도 탄피까지 먹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사격장 말고 다른 곳에서 탄피가 발 견될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귀담아 들을 만했다.
탄피가 나온 장소를 알고 굉장히 어이없어 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으니까.
'혹시 사격장이 아니라는 건가?'
이강진은 현장을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백우호가 말한 것처럼 정말로 짬타이거가 물고 갔을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사로부터 10사로까지 쭉 훑어보기 시작하는 이강진.
뒤따라온 백우호가 이강진에게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거긴 다 찾아봤어."
그러나 이강진의 시선은 계속 사로에 고정되어 있었다. 탄피는 이 근처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우호야, 우리 사격할 때, 밑에 판쵸우의 깔고 했었지?"
"어? 어. 그렇지, 보통 사격할 때 판쵸우의 깔고 하잖아."
이강진의 머리가 번뜩였다.
만약 이 세계가 만화 속 세상이었다면, 이강진의 머리 위에 커 다란 느낌표 하나가 떴을지도 몰랐다.
"가자."
"응? 어디로?"
장소는 뻔했다.
"막사로!"
두 사람의 걸음이 빨라졌다.
* * *
막사로 돌아오자마자 이강진은 행정반을 찾았다.
때마침 김철이 혼자 행정반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철아! 사격 훈련할 때 사용했던 판쵸우의들, 어디다 넣어놨 어?"
"그거? 창고에 있는데."
행정반 옆쪽에 창고로 사용하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이강진은 김철을 재촉했다.
"창고 열쇠 가지고 있지? 거기 문 좀 열어 줘, 빨리!"
"갑자기 왜?"
"탄피가 거기 있을지도 몰라서 그래."
탄피라는 말에 김철은 하던 업무도 내팽개치고 즉각 반응했얄쇠 꾸러미를 들고서 이강진, 백우호와 함께 창고로 향했다.
철컹!
문을 열자마자 이강진은 안으로 빠르게 들어섰다.
둘둘 말려 있는 판쵸우의들이 창가 옆쪽에 쌓여 있었다.
"이것들이 지?"
"어, 근데 어느 게 사격 때 사용했던 판쵸우의들인지는 잘 모르겠어."
몰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강진은 이것들을 다 펼쳐 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촤라락!
거침없이 판쵸우의를 펼쳤다.
그러는 동안, 김철은 바빠 보이는 이강진을 대신해서 백우호 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요구했다.
"탄피가 정말 여기에 있는 거야, 응?"
"몰라, 나도 강진이 따라서 온 거라 잘……."
내막을 아는 건 이강진뿐이다.
정신없이 판쵸우의를 펼쳐 털어 냈다.
정확히 7개째 판쵸우의를 펼쳤을 때였다.
팅!
경쾌한 금속음이 모두의 행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땅에 떨어진 그것은 바닥에 데구루루 굴러 이강진의 발 앞에 서 멈췄다.
"찾았다!"
그들이 애타게 찾던 탄피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 * *
탄피가 왜 판쵸우의에서 발견된 걸까.
아주 간단했다.
"사격을 하다가 탄피받이에서 빠져나온 탄피가 판쵸우의 후 드 부분에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이강진이 설명한 사건의 전말이었다.
이강진으로부터 자초지좋을 듣게 된 중대장과 간부들은 그제 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정말 잘했다, 강진아! 잘했어!"
"상병 이강진,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 니다."
이강진이 중대장에게 듣고 싶은 말은 뻔한 칭찬이 아니었다.
"고생했으니 내가 어떻게든 포상 휴가 챙겨 주마!"
"감사합니다!"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이다.
백 번 칭찬해 봤자 무슨 소용이랴.
다 필요 없고 그냥 포상 휴가를 챙겨 주는 게 최고다.
중대장도 그걸 아는 모양인지 거두절미하고 바로 포상 휴가 증을 이강진에게 건네줬다.
"그리고 다른 병사들한테도 강조했지 만, 이 번 일은 다른 사람 들한테? …. 특히 대대장님한테는 비밀로 해라.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탄피를 찾아서 받은 포상 휴가가 4박 5일이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었다.
2박 3일 포상 휴가도 사실 따내기 어려운 죽에 속한다.
'대대 체육대회에서 받은 포상휴가에 붙여서 쓰면 되겠군.'
언제 휴가를 나갈까.
이강진은 행정반에 걸린 달력을 보면서 빠르게 생각을 정리 하기 시작했다.
그때 였다.
"아, 강진아."
소대장이 이강진을 찾았다.
"상병 이강진."
"휴가 쓰려면 이 번 달은 빼고 써 줘."
"무슨 일 있습니까?"
어차피 다음 달 초에 쓸 생각이긴 했다.
딱히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왜 이 번 달에는 휴가를 스스지 말 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대부분은 훈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달에는 큰 훈련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았었다.
소대장이 마침내 그 이유를 언급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 제45화. 찾아야 산다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