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1화. 대대 체육대회 (6) >
제41화. 대대 체육대회 (6)
아직 대대 체육대회는 끝나지 않았다.
우승 후보는 이제 둘 중 하나.
1중대 아니면 3중대다.
이어달리기에서 1위를 차지하는 중대가 무조건 우승이다.
여기에는 이변이 없었다.
첫 주자로 나서게 된 고필중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강진 다음으로 1중대 두 번째로 빠른 사나이가 바로 고필 중이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응원전의 열기는 더더욱 뜨겁게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1 중대! 파이 팅!"
"본부중대! 가즈아아아아아아!"
"무조건 우승하자! 2중대!"
"무적 3중대!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고래고래 외치는 병사들.
이강진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자신의 위치로 향했다. 전광석도 마찬가지였다.
자리로 이동하면서 이강진은 전광석을 슬며시 바라봤다.
축구에서는 1중대가 3중대를 꺾고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내가 전광석, 저 사람을 꺾은 건 아니야.'
내용 면에서는 결국 전광석에게 진 거나 다를 바 없었다.
만약 고필증이나 라인혁처럼 3중대에 전광석을 제대로 서포 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1중대가 졌 을지도 모른다.
전광석 원맨팀이었기 때문에그나마공략법이 보였던 것이다 . 축구라는 전장을 떠나서 이어달리기라는 새로운 전장으로 이동하게 된 이강진과 전광석.
두 남자는 첫 주자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인사 장교가 스타트 라인에 섰다.
"다들 준비 됐나!"
"예!"
첫 주자들이 각자 자세를 취했다.
긴장되는 순간.
삐이이이익!
호루라기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튀 어 나가는 고필중.
상당히 빠르다!
이강진 못지않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를 자랑했다.
순식간에 앞으로 치고 나가며 선두를 유지했다.
"그렇지! 필중아!"
"잘한다, 잘해!"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뛰어! 뛰라고!"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있는 힘껏 외치는 병사들.
그들의 응원 덕분일까, 고필중이 1등으로 골인했다.
하지만 아직 경기가 끝난 건 아니었다.
종목 명칭이 '이어달리기'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마지막 주자까지는 한참 남았다.
바통을 이어받은 두 번째 주자들이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달 리기 시작했다.
1등으로 바통을 건네줬음에도 불구하고 1중대 주자는 순식간 에 3중대 주자에게 따라잡혔다.
"아아악!"
"뭐하는 거냐!"
1중대에서 아쉬움이 가득 묻은 외침이 새어 나왔다.
반대로 3중대는 기세가 등등해졌다.
"옳지! 이 페이스 그대로!"
"무적 3중대! 파이 팅!"
두 번째 주자를 시작으로 세 번째 주자까지 3중대는 계속해서 1등을 유지했다.
2등은 1중대.
차이를 좁혀야 한다.
네 번째 주자로 나선 라인혁의 어깨가 무겁다.
앞 주자가 도착하기 전에 라인혁은 손뼉으로 스스로의 뺨을 두세 번 '짝짝!' 소리가 나게 쳤다.
"정신 차리자, 라인혁!"
이 자리까지 어떻게 왔는가.
노력의 결과는 하늘이 점지해 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라인혁의 눈빛이 변했다.
"전역하게 전에 나도 강진이처럼 영웅 소리 한번 들어 보자!"
마침내 바통을 건네받았다.
"으랴아아아아아아아!"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하는 라인혁.
통제가 불가능한 적토마처럼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렸다.
눈앞에 3중대의 네 번째 주자, 김형정 병장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 아저씨! 어딜 가!"
라인혁의 외침에 김형정 병장은 혀를 찼다.
"곱게 보내 주는 적이 없네!"
김형정도 점점 속도를 냈다.
하나 라인혁의 기세가 더 우위에 있었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라인혁이 혼자서 3중대와의 격차를 단숨에 좁혀 버렸다.
이강진은 저 멀리서 오는 라인혁을 향해 외쳤다.
"최곱니다, 라인혁 병장님!"
흰색 바통이 이강진의 손에 들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통을 건넬 때, 후발 주자에게 뭔가 멋 진 말이라도 건네주고 싶었던 라인헉이었으나.
털썩!
"해…… 해…… 혜……"
-I -I ―I
숨이 너무 차서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김형정 병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전광석에게 바통을 건네준 후에 그도 바닥에 대(大) 자로 누 워 버렸다.
좋은 승부를 펼친 두 명의 병장들.
이제 각 중대를 대표하는 두 일병의 어깨에 모든 것이 달렸다.
전광석은 나름 달리기에 자신이 있었다.
프로팀 내에서도 전광석보다 빠른 이는 한두 명을 제외하곤 없었다.
그래서 이어달리기만큼은 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나 그건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발상이었다.
자신보다 더 빠른 이가 설마 같은 대대에 존재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말도 안 돼!'
전광석은 자신의 속도를 따라잡는 이강진의 모습에 경악했다.
그러나 이강진은 담담했다.
'이 정도 되어야 달릴 맛이 나지!'
축구는 몰라도 달리기는 자신 있다.
전광석보다도 더!
거의 비슷한 속도로 달려 나가는 두 남자.
눈앞에 결승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진아! 조금만 더 함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 한다, 광석아!"
두 사람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하나 이강진과 전광석의 귀에는 정작 본인들을 응원하는 소 리가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거라고는 심장의 고동 소리와 바로 옆에서 뛰고 있는 라이벌의 거친 숨소리.
군대에 와서 이렇게까지 무언가를 열심히 했던 적이 있었을 까?
유격 때에도 이런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포상 휴가만 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포상 휴가보다 더 욕심을 부리고 싶은 게 나타 났다.
'이 사람만큼은 반드시 이긴다!'
비록 축구에서는 이기지 못했지만, 달리기만큼은 지지 않겠 다!
이강진의 몸이 점점 가속했다.
두 사람 다 거의 동시에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심판이 손을 들어 올려 1등을 가리켰다.
흰색 결승선을 먼저 건드린 사람은 바로…….
이강진.
"와아아아아!"
"장하다, 강진아!"
"네가 해낼 줄 알았다!"
1중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튀어나와 이강진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시작된 헹가래.
"하나, 둘, 셋!"
이강진의 몸이 위로 붕 떴다.
잠깐이었지만, 이강진은 일순간 넓고 푸른 하늘이 자신의 코 앞까지 도달했던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을 나는 기분이 아닐까.
'해냈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성취감이 이강진의 몸을 감쌌
* * *
해가 저물기 전에 대대 체육대회 폐회식이 거행되었다.
1중대 소대장과 함께 라인혁이 병사들을 대표해서 단상에 올 라섰다.
"제39회 1075대대 체육대회 우승! 1중대!"
우승기를 들어 올리는 1중대 소대장과 라인혁.
1중대원들은 함성을 질렀다.
체육대회 우승기는 여태껏 3중대의 것이었다.
하나 내년 체육대회까지는 1중대의 것이 되었다.
3중대는 깔끔하게 승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대장을 비롯해 병사들도 1중대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이겼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래도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않 은가.
매번 삽과 곡괭이를 들고 노가다를 하다가 하루라도 이렇게 뭔가에 미친 듯이 열중하고 즐겨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기분 전환도 되고 좋다.
이건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즐길 만큼 즐겼으니.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1 중대, 집합!"
소대장은 1중대원들을 한 곳으로 집결시켰다.
"막사로 이동한다, 앞으로 가!"
왼발을 시작으로 발을 맞춰 걷는 병사들.
각자의 막사로 돌아가려고 할 때.
이강진은 3중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전광석도 1중대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던 찰나 였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곤 처음으로 웃었다.
'좋은 승부였어.'
내년 체육대회가 벌써부터 기대되기 시작했다.
* * *
대대 체육대회라는 커다란 행사를 무사히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포상 휴가 분배뿐.
1등을 차지했던 축구, 족구 그리고 이어달리기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체육대회 내내 병사들을 이끌었던 라인혁이 먼저 말을 꺼냈
"강진이가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개인적으로 강진이한테는 포 상 휴가 한 장을 챙겨 주고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
가장 많은 활약을 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는 게 옳다.
이강진에게 포상 휴가 하나를 주자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이강진 덕분에 축구, 이어달리기 두 종목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1중대는 많은 포상 휴가들을 휩쓸어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탁기, 탈수기까지 차지하게 되었으 니, 이 정도면 당연히 줘야 하지 않겄!나.
라인혁은 중대장한테 받아 온 포상 휴가증 하나를 이강진에게 넘겼다.
"강진아, 고생했다."
"일병 이강진,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오히려 우리가 너에게 해야지. 다음 제육대 회 땐 난 없겠지만, 계속 우리 1중대가 체육대회 우승기를 보관 할 수 있도록 힘내 줘."
"예, 알겠습니다."
포상 휴가와 세탁기, 탈수기 등 원하는 것들을 모두 얻어 낸 이강진.
이번 체육대회에는 전광석이라는 예상치 못한 커다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포상 휴가 분배를 끝마친 뒤에 이강진은 라인혁과 함께 1생활관으로 향했다.
"라인혁 병장님은 언제쯤 말년 휴가 나가십니까?"
"2주 뒤? 말년 휴가 나갔다가 복귀하고 하루 뒤에 바로 전역 이야."
"안준렬 병장하고 같이 맞춰서 나가시는 겁니까?"
"뭐, 그렇지."
곧 있으면 두 사람이 한꺼번에 전역한다.
라인혁은 아쉬움을 가득 표현했다.
"필증이하고 지웅이 병장 다는 거 보고 전역하면 좋았을 텐 데, 그게 좋아쉽네."
"전역을 10일 정도만 미루면 가능하실 겁니다. 아니면 부사관 지원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강진아, 엎드려뻗칠래 아니면, 입 다물래."
"하하, 죄송합니다."
말년 병장 앞에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소리 중 하나가 바로 부사관 지원이다.
이강진은 방금 그 금기를 어길 뻔했다.
* * *
안준렬이 라인혁과 같이 말년 휴가를 나가기 전에 분대장 교 체식이 먼저 진행됐다.
새로운 분대장이 된 황지웅.
초록 견장을 착용한 그는 거울 앞에서 한동안 계속 시간을 보 냈다.
"드디어 분대장이구나, 후후후!"
동기가 분대장을 찬 모습을 보며 고필증은 감탄을 했다.
"국방부 시간이 흘러가긴 흘러가나 보네. 이등병이었던 네가 어느새 분대장이라니."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조만간 안준렬 병장님하고 라인혁 병장님이 말년 휴가 나가고 전역하시면, 우리가 이제 최고 선임 이니까."
"이 런 날이 오긴 하는구나."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분대 최고 선임이 되면 이젠 더 이상 눈치 볼일이 없어질 터.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생활관으로 향하는 황지웅과 고필중. 1생활관 문을 연 순간.
이들은 눈을 의심했다.
"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1생활관에 앉아 있었다.
신병?
아니었다.
계급은 병장, 하지만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저기- 누구십니까?"
황지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자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이렁게 말했다.
"이 번에 새로 전입 오게 된 오종한 병장이라고 해, 잘 부탁해."
궁금증만 쌓여 가는 자기소개였다.
< 제41화. 대대 체육대회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