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1화. 대대 체육대회 (5) >
제41화. 대대 체육대회 (5)
전광석 공략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이강진에게 주어진 숙제다.
삐 아!
곧바로 경기가 재개되었다.
라인혁은 고필중에게 공을 패스했다.
공을 넘겨받은 고필중은 그의 주특기인 빠른 돌파를 시도했 다.
그러나 이것은 전광석의 손에 의해 … 아니, 발에 의해 막히 고 말았다.
툭.
전광석은 오른발을 살짝 내밀었다.
쓸데없는 움직임 없이 전광석은 고필중한테서 교묘하게 공만 빼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법이라도 부린 줄 알 것이다.
"헉…."
놀란 고필중은 뒤늦게 공을 빼앗기 위해 전광석에게 달려들 려고 했다.
그러나 전광석은 이미 고필중한테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공을 차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전광석.
고필중보다도 더 빨랐다.
"저 녀석 막아!"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
"네!"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이 합심해서 전광석을 막기로 했다.
아무리 전광석이라 하더라도 대여섯 명의 사람들을 혼자서 뚫 어 내기란 쉽지 않았다.
"김형정 병장님!"
전광석은 다른 팀원에게 공을 패스했다.
빠르고 정확한 스루패스, 그 후에 전광석은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전광석이 1중대 미드필더, 수비수들을 따돌렸음을 확인한 김 형정은 곧장 그에게 다시 공을 돌려줬다.
공을 차지한 전광석, 골키퍼와 일대일 대진이 완성되었다. 출렁!
다시 한번 그가 찬 공이 골 망을 흔들었다.
"2 대 0!"
경기가 시작된 지 5분도 안 돼서 벌써 2점이나 실점하고 말았다.
안 좋은 흐름은 전반전 동안 계속 이어졌다.
순식간에 5 대 0이 되어 버렸다.
삐 익!!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렸다.
1중대원들은 축 처진 어깨를 보이면서 벤치로 돌아왔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응원단들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패배의 기운이 감돌았다.
반면 3중대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축구에서 1등 포인트를 얻으면, 계주에서 1등 자리를 다른 중 대한테 내 줘도 우리가 우승한다!"
"쉽네, 쉬워!"
"식은 죽 먹기보다도 더 쉽지 말입니다! 크큭!"
3중대원들의 대화 소리가 이 순간 유독 크게 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질렀기 때문이다.
대놓고 1중대원들한테 우리 가 하는 말, 얌전히 듣고 있으라는 도발 퍼포먼스였다.
그럴수록 1중대의 사기는 더욱 떨어졌다.
라인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방법이 안 보이 네."
이강진까지 합심해서 전광석을 막아 보려고 했으나, 역시 프 로는 달랐다.
격차가 너무 크다.
하늘과 땅 차이 이상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그 와중에 이강진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좌절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보는 편이 좋최소한 발버둥이라도 쳐 봐야 하지 않겠나.
이강진은 전반전 경기 내용을 다시 머릿속으로 상기시켰다.
'플레이가 전광석에게 집중되어 있어.'
저쪽은 원톱 포메이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전광석이 알아서 다해 주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을까.
3중대는 그저 뒤에서 전광석을 열심히 보좌하기만 하면 된다.
'생각해 보자.'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
그사이에 휴식 시간의 절반이 흘러갔다.
남은 시간이 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 그거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이강진은 라인혁을 찾아갔다.
"라인혁 병장님."
무겁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이강진을 바라보는 라인혁.
그의 표정에서 고됨이 엿보였다.
"어, 무슨 일이야?"
"제게 작전이 있습니다."
"작전?"
"예, 제대로 통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무기 력하게 당 하기만 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그건 라인혁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 그렇지. 잠깐만, 다들 모두 모여 보너! 강진이가 작전이 있단다!"
우르르 모여드는 1중대원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던 3중대원들은 비웃음을 날렸다.
"아무리 1중대가 날고 기어 봤자 우리 광석이는 못 이기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지, 광석아?"
"……예."
전광석의 대답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사실 전광석은 3중대의 가장 큰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 다.
알면서도 쉽게 극복되지 않는 약점이 있다.
'설마 1중대가 그걸 찾아낸 건 아니겠지?'
다른 사람들은 둘째 치더라도 이강진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비록 학창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선수로 뛰어 본 경험 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나름 큰 무대에서 공을 차 본 이강진은 확실히 남들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건 전광석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강진이 1중대원들을 소집했다.
분명 뭔가가 있을 터.
"김형정 병장님, 후반전은 특히 조심해야 할 거 같습니다."
"에이. 너무 걱정하지 마. 저 아저씨들, X밥인 거 너도 직접 확 인했잖아? 이어달리기를 생각해서라도 체력을 비축하면서 설렁 설렁해. 그렇게만 하더라도 우리가 충분히 이길 테니까, 하하 하!"
전광석은 김형정 병장 몰래 한숨을 삼켰다.
스포츠에서 가장 두려운 적은 세계 랭킹 1위 선수도, 라이벌 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방심이 제일 무서운 적이다.
압도적인 점수 차이 때문에 3중대원들은 오히려 자만과 방심 에 빠져 있었다.
만약 전광석이 병장이었더라면, 쓴소리를 날리면서 방심하지 말라고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병에 불과하다.
'군대 축구가 이래서 문제군.'
계급이 낮으면 그만큼 발언권도 없다.
불안함이 가중되는 와중에 휴식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호 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가자, 광석아!"
"예, 알겠습니다."
좋든 싫든 일단 하는 수밖에 없다.
* * *
1중대와 3중대의 운명을 가를 후반전 경기가 시작되었다.
선공을 시작한 1중대.
라인혁이 공을 몰고 가던 도중에 상대 미드필더에게 공을 빼 앗기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런!"
공을 빼앗은 병사는 전방을 살폈다.
전광석에게 공을 주기 위함이었다.
'좋았어'
전광석의 위치를 확인한 3중대 선수는 곧장 그에게 패스를 날 렸다.
그러나…….
턱!
갑자기 이강진이 튀어나와 공을 가로챘다.
"뭐, 뭐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저 아저씨!"
당황하는 3중대원들.
그들이 혼란에 빠져들었을 때, 이강진은 빠른 속도로 돌파를 시도했다.
전광석이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이 역습을 성공시켜야 한다!
수비수들이 이강진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
하나 이강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록 전광석만큼은 아니지만, 이강진도 사회에 있을 때 나름 공 좀 찼던 사람이다.
순식간에 수비진을 재친 이강진은 고민도 없이 바로 공을 때 렸다.
골키퍼는 미처 반응조차 못 했다.
"1 중대, 득점!"
5 대 1.
첫 득점이다!
"잘했다, 강진아!"
"구웃!"
1중대원들의 사기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편 패스 미스를 저지른 병사는 전광석에게 다가가 미안하 다는 말을 건넸다.
"쏘리, 내가 좀 더 집중했어야 했는데."
"아닙 니다, 괜찮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광석의 시선은 이강진에게 계속 고정 되어 있었다.
곧이어 시작된 경기에서도 아까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엇!"
전광석에게 향하던 패스를 중간에 가로챈 이강진은 아까와 같이 엄청난 스피드로 3중대 진영을 휘저었다.
삐어엉!
이강진의 과감한 슈팅이 득점으로 연결되었다.
벌써 2점을 기록한 1중대.
경기를 지켜보던 3중대 중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 녀석들, 갑자기 왜 저래?"
반면 1중대 중대장은 다시 희망의 불씨를 지피기 시작했다.
"그렇지, 강진아! 그대로만 하면 된다! 가즈아!"
같은 방식으로 2점을 내준 3중대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전광석은 알고 있었다.
'저 이강진이라는 사람, 우리 중대의 약점이 뭔지 알아낸 게 틀림없어!'
첫 실점 때에는 긴가민가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실점 때,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3중대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약점.
그것은 바로 전광석 한 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 이었다.
공을 잡는 족족 3중대원들은 무조건 전광석에게 패스를 했다.
그러다 보니 전광석이 대부분의 골 혹은 어시스트를 기록했 다.
이 말은 즉…….
전광석에게 가는 공만 가로채면 된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이강진은 전광석의 근처에서 어슬렁거리 고 있다가 3중대가 공을 잡았다 싶었을 때, 패스 경로를 미리 예 즉해 그곳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이강진이 서 있는 곳으로 공이 절로 굴러왔다.
3중대원들은 전광석이 있는 위치만 확인하고 패스를 한다.
그러다 보니 이강진의 위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5점이었던 차이가 순식간에 2점, 1점까지 줄어들었다.
결국…….
"5 대 5다!"
"동점이라고, 동점!"
"조금만 더 힘내자, 1중대!"
"파이티이잉!"
경기 흐름은 완전히 1중대로 넘어갔다.
추가로 주어진 시간은 고작 3분.
여기서 마지막 골을 넣는 중대가 승리한다!
3중대는 중간에 작전을 바꿔야만 했다.
전광석 을인 플레이가 가로막힌 탓에 답답한 상황이 계속 이 어 졌다.
이 틈을 발견하고 절묘하게 찌른 이강진.
김형정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이강진은 오른발을 뻗어 그의 공을 가로채는 데 성공했다.
"가자! 강진아!"
"마지막 기회다!"
1중대의 응원 소리가 커졌다.
전광석은 이강진을 직접 막기 위해 황급히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조금만 더!'
이강진을 거의 따라잡은 전광석.
측면에서 태클을 날렸으나, 이강진은 그가 태클을 걸어올 거 란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어림도 없지!'
앞으로 나아가던 이강진은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그 탓에 전광석의 발은 허공을 갈랐다.
전광석을 완전히 제친 이강진은 있는 힘을 다해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골키퍼가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날려 봤지만…….
철렁!
공은 3중대 골 망을 시원스럽게 뒤흔들었다.
5 대 6!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30초.
그 시간 안에 어떻게든 한 골을 넣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는 3중대였으나, 시간이 그들의 역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삐이 이익!
"경기 종료! 1중대 승리!"
승리 선언과 동시에 1중대 중대장은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 고서 포효했다.
"나이 쓰으으으으으!"
반면 3중대 중대장은 고개를 떨궜다.
무조건 이길 줄 알았던 축구에서 우승을 놓치게 될 줄이야.
3중대 입장에선 참으로 얄미운 기적이다.
* * *
축구 결승이 끝난 후에 이어달리기 경기 차례가 되었다. 총 5명의 대표 선수를 뽑아 펼치는 이어달리기. 나름 발이 빠르다는 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라인혁은 이강진을 따로 불렀다.
"강진아, 네가 마지막 주자다."
"예, 알겠습니다."
1중대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이강진이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문제는 3중대 라인업이었다.
선봉을 시작으로 순서에 따라 일렬로 나란히 정 렬한 각 중대 원들.
3중대 가장 마지막 주자가 바로 전광석이었다.
이강진과 전광석의 시선이 교차했다.
이들은 말을 섞지 않았다.
대화는 필요 없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느냐.
그리고 누가 포상 휴가를 따느냐.
중요한 건 결과다.
< 제41화. 대대 체육대회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