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1화. 대대 체육대회 (2) >
제41화. 대대 체육대회 (2)
4명의 공격수.
이강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참, 답도 없는 포메이션이네.'
학창 시절, 선수로 뛰었던 이강진은 많은 경기를 토대로 이런 교훈을 하나 얻었다.
공격보다는 수비다.
뒤에서 수비가 안정적으로 버텨 줘야 공격수들이 마음 놓고 상대편의 골문을 계속 두드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수비가 불안정하게 되면 마음껏 공격을 할 수가 없다.
역공을 당하는 순간, 바로 실점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격 라인이 소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군대 축구는 수비가 단단하다느니 워니 하는 것 따위 는 없었다.
오로지 공격, 공격, 공격!
전투 축구라는 단어가 괜히 파생된 게 아니다.
'어차피 내가 여기서 뭐라고 말해 봤자 씨알도 안 먹힐 테고.'
그냥 얌전히 있는 게 정신 건강상 좋아 보였다.
작전 회의를 마친 뒤에 병사들은 새로운 포메이션을 연습하기 위해 바로 사열대 앞으로 향했다.
대대 연 병장은 본부중대가 이용하고 있었기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대신에 1중대는 사열대 앞에서 연습을 하기로 했다.
"주전 멤버들, 모여 봐
주장을 맡은 라인혁은 10명의 1중대 전사들을 소집했다.
"자, 파이팅 하고 시작하자. 하나, 둘, 셋! 1중대!"
"파이 티이 잉!"
기합을 넣는 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군대에선 더더욱.
라인혁과 마인정, 고필중 그리고 이강진, 이렇게 네 사람은 최 전방에 나란히 섰다.
이강진이 맡은 쪽은 오른쪽 날개.
'난 공격만 하기보다는 미드필더 역할을 하는 게 좋겠어.'
어차피 경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포메이션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다 무쓸모가 된다.
그냥 공만 잡았다 하면 수비수든 골키퍼든 무작정 달리고 본 다.
어차피 난장판이 될 거, 차라리 이강진이 중앙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 주면서 팀의 호흡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 가는 쪽이 더 좋아 보였다.
삐이 익!
호루라기가 울렸다.
출전 멤버들로 팀을 꾸려서 연습 경기를 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 봐서 그런 걸까, 전반전은 팀플레이보다 개인플레이 위주가 너무 많이 나왔다.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바로 마인정의 개인기 욕심이었다.
되도 않는 헛다리 개인기를 펼치는 마인정 덕분에 상대방에게 공을 수시로 빼앗기곤 했다.
그 때문에 벌써 2점이나 내주고 만 것이다.
작전 회의 타임.
라인혁은 마인정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너, 후반엔 빠져라."
"엥? 왜! 나만큼 활약해 주는 공격수도 없는데!"
"지랄하네, 너 때문에 지금 2골이나 먹혔잖아. 헛소리하지 말 고 후반전은 빠져 있어라. 정태야! 네가 대신 들어와라."
"예, 알겠습니다!"
만약 마인정이 라인혁보다 짬이 높았더라면 이런 결정은 쉽 게 못 했을 것이다.
마인정이 빠진 후에 후반전이 진행되었다.
"강진아!"
큰 포물선을 그리 면서 날아오는 축구공.
이강진은 그것을 가슴 트래핑으로 받아 냈다.
고개를 돌려 전방을 주시했다.
'패스할 곳이 없네.'
이럴 때에는 이강진이 직접 공을 몰고 나가는 편이 좋다.
그동안 고필중이 상대 쪽 진영을 향해 빠르게 파고들었다.
고필중이 자기 여기 있다고 따로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이강진은 고필중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 파악해 둔 상태였다.
우리팀의 위치를 파악해 두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시야가 넓어야 한다.
선수로 활동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강진은 다른 병사 들에 비해 경기를 보는 시야가 헐씬 넓었다.
'그냥 패스하기에는 아깝지!'
이강진은 일부러 시간을 지체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상대 선수들이 이강진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총 3명이었다.
이강진은 요주 인물이다.
공을 잡으면 무조건 2~3명이 달라붙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이강진의 작전이었다.
'지금이군!'
뻥!
수비수들을 최대한 끌어들인 후에 이강진은 고필중에게 롱 패 스를 했다.
"나이스, 이강진!"
고필중은 이강진에게 따봉을 날린 뒤에 무사히 공을 건네받 았다.
수비수 1 명과 골키퍼 1명만 남은 상황.
고필중은 그 상태에서 바로 중거리 슛을 날렸다.
그가 찬 공이 머지않아 상대 진형의 골 망을 갈랐다.
"아싸!"
"잘했다, 필중아!"
"역시 필중이야!"
그러나 고필증은 이 공적을 이강진에게 양보했다.
"강진이가 패스를 너무 잘해 줘서 넣을 수 있었습니다. 전 그 냥 숟가락 하나 얹은 것뿐입 니다, 하하하!"
사실이었다.
이강진의 패스가 너무 예술이었다.
이런 식으로 패스만 잘해 줘도 고필중이나 라인혁이 알아서 골을 넣어 줄 것이다.
이강진이 압도적으로 축구를 너무 잘해서 그렇지, 두 사람도 나름 공 좀 찰 줄 안다.
'대회에서도 이 런 식으로 하면 되겠어.'
이강진은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연습 경기를 통해서 확실하게 인지했다.
축구팀뿐만 아니라 농구, 족구 연습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농구 쪽에는 기운상이, 족구에는 안준렬이 배치되었다.
곽분섭과 황지웅은 어느 종목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기 에 응원만 열심히 하기로 했다.
모든 연습을 끝낸 뒤에 생활관으로 돌아온 병사들.
저녁 식사 집합을 하기 전에 먼저 샤워를 하기로 했다.
이강진은 곽분섭과 함께 샤워실로 향했다.
온수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 곽분섭이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종목 중에 왜 야구는 없는 겁니까? 야구가 있었더라면 제가 죄소 S점 이상은 낼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아쉽습니다."
곽분섭은 야구 마니아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군대에서 야구는 메이저가 아니었다.
물론 야구 경기는 자주 보지만, 실제로 야구를 즐겨 하는 병사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대 체육대회 종목에서 제외된 것 이다.
"배트도 필요하고, 글러브도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넓은 공간에서 해야 하는데, 대대 연병장 말고는 없잖아."
축구는 좁은 곳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굳이 11 명 VS 11 명이 아닌 그 이하의 인원수로도 즐길 수 있 는 구기 종목이었기에 자주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야구는 그렇지 못했다.
곽분섭의 아쉬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몸에 남아 있는 물기를 닦아 내는 이강진.
그러던 와중에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알림 방송이 들려왔-아아, 행정반에서 알려 드립니다. 전 병력은 s시 50분까지 사열대 앞으로 집합하시기 바랍니다.
식사 집합이라고 하기에는 좀 일렀다.
'뭐지?'
누군가가 집합을 걸은 듯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단 활동복부터 빠르게 갈아입기로 했다.
곽분섭과 함께 뒷정리까지 다 끝낸 이강진은 거의 마지막으 로 집합 대열에 합류했다.
앞에 있는 백우호에게 슬쩍 물었다.
"누가 집합시킨 거야?"
"중대장님."
"왜 ?"
"몰라, 표정이 안 좋으시던데?"
불안한 느낌이 몰려왔다.
혹시 갈굼의 시간인가?
중대장이 직접 집합을 걸었다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오후 5시 50분.
중대장이 사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주목한다, 주목!"
백우호가 말한 대로 중대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잔뜩 일그러진 미간, 병사들은 바짝 긴장했다.
"체육대회에 관해서 전달할 사항이 있다. 우선 단체 종목 중 에 줄다리기가 포함되었다. 이건 계주처럼 중복 출전이 가능하 니, 그렇게 알아두도록."
"예, 알겠습니다!"
고작 줄다리기 하나 추가되었다고 저렇게까지 인상을 쓸까? 천만에.
'뭔가가 있겠지.'
이강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대대 체육대회 종목 추가에 관련된 전달 사항을 마친 중대장 은 더욱 인상을 스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 더 알아 둬야 할 게 있다. 아주 중요한 거 니까 잘 새겨듣도록."
중대장이 이렁게까지 말을 하는데, 귀를 안 기울일 수가 없었다.
"이 번 대대 체육대회에서는 무조건 우리 1중대가 우승해야 한다."
그제야 이강진은 감을 잡았다.
중대장이 왜 이렇게까지 우승에 목을 매는지.
이유야 뻔했다.
"특히 3중대한텐 지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또 3중대 중대장한테 도발당했나 보군.'
유격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참호 전투 당시, 3중대 중대장은 대대장 앞에서 자신의 부대 가 이번에도 이길 거라고 자랑 비스무리한 걸 늘어놓았다.
거기에 1중대장은 열이 받아서 그날 저녁, 병사들을 집합시킨 뒤에 무조건 3중대는 이기라고 압박을 가했었다.
다행스럽게도 참호 전투에선 1중대가 3중대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만약 그 반대였다면 중대 분위기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지.'
상상하기조차 싫다.
중대장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무조건 우승한다! 아자, 아자, 아자! 1중대 파이팅!"
병사들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행보관이 중대장 뒤에서 '안 따라하고 뭐 하냐!'라는 신호를 보낸 탓에 어쩔 수 없이 따라해야만 했다.
"파, 파이 팅!"
날이 갈수록 우승해야 하는 이유가 추가되고 있었다.
더불어 부담감도 같이 더해졌다.
체육대회 당일 아침.
병사들의 얼굴엔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 결전의 날이다!
체육대회 우승 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 1중대 소대장은 병사들과 함께 대대 연병장으로 내려가기 전에 명심해야 할 것들을 설명했다.
"훈련 때도 했던 말이지만, 너희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뛰 다가 상태가 영 별로다 싶으면 바로 나나 혹은 선임에게 말하도 록 해라. 괜히 무리할 필요 없다. 중대장님께선 반드시 우승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슬쩍 뒤를 돌아 중대장이 듣고 있나 없나 살피는 소대장. 다행히도 중대장은 이 자리에 없었다.
"어흠! 아무튼 다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인솔자, 위치로."
안준렬이 병사들을 이끌고 대대 연병장으로 향했다.
1075대대 체육대회는 하루에 날을 잡아서 이날 모든 경기들을 전부 다 진행한다.
우승한 중대에게는 신형 세탁기와 탈수기가 주어진다.
여기에 더해서 종목별로 MVP를 몇 명 선정해 3박 4일 포상 휴가를 수여한다.
이강진이 노리는 건 바로 포상 휴가다.
물론 세탁기와 탈수기도 중요하지만, 포상 휴가만큼 중요한 건 없을 것이다.
이건 대부분의 병사들도 같은 생각이다.
종목에 참가하지 않는 병사들도 포상 휴가의 기회를 거머쥘 수 있다.
응원 점수를 따로 매길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열정적으로 응원을 하는 병사에게도 포상 휴가가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응원 열기 또한 뜨거웠다.
"본부 중대! 어이~ 자! 어이~ 차! 어이~ 차!"
"멋지다 2중대! 잘생겼다 2중대!"
"무저어어어억! 3중대! 으!! 악! 아아악!"
응원단장을 맡게 된 황지웅이 머리끈을 꽉 조여 맸다.
"우리도 질 수 없지! 간다! 이번 체육대회 우승은?"
"1! 중! 대!"
"1075대대 최고의 중대는?"
"1! 중! 대!"
"에브리바디 다 같이!"
"1! 중! 대에에에에!"
미리 준비해 온 구호를 외치는 1중대 병력.
응원전부터 굉장히 치열했다.
하지만 아직 싸움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강진은 활동화 끈을 바짝 맸다.
'기다려라, 포상휴가여. 내가 간다!'
포상 휴가 사냥꾼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제41화. 대대 체육대회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