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대대 체육대회 (1)
가게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휴가 복귀일이 다 가왔다.
평상시라면 그냥 혼자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강진아, 타라."
황민수가 직접 이강진을 바래다주기로 했다.
"가게는 놔두고 오셔도 돼요?"
"지금은 손님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그리고 네 어머니도 있고."
황민수는 이강진과 그의 어머니를 전적으로 믿는다. 가게에 서 유일하게 돈을 만질 수 있는 권한을 쥔 사람이 이강진의 어머니밖에 없을 정도니, 이것만 봐도 말 다한 셈이었다.
"가게가 안정되면, 나중에 어머니랑 같이 여행이라도 다녀오 세요."
"쿨럭!"
이강진의 폭탄 발언에 황민수는 크게 기침을 했다.
"미영 씨하고 여, 여행?"
"싫으세요?"
"그, 그럴 리가! 나야 좋긴 하…… 어흠! 아니, 그래도 어떻게 내 가 미영 씨랑 둘이서만 같이 여행을 가고 그러냐. 가더라도 당 일치기로 갈 수 있는 데로 가든가 해야지."
이강진이 예상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안 넘어오네.'
아쉬움에 혀를 찼다.
아직까진 황민수가 먼저 용기를 낼 만한 단계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줄 터.
'전역하고 나면 옆에서 민수 아저씨 열심히 밀어줘야겠네.'
역시 두 사람은 이강진이 없인 안 된다.
위병소에 도착한 이강진은 순간 휴가를 나갈 때의 기억이 떠 올랐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 위병소에 서 있던 적은 아마 1075대대 역사상 처음 있던 일이었겠지."
이강진도 놀랐었다.
성태강과 같이 휴가를 맞춰서 나간 게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태강이 휴가를 나갈 때마다 위병소가 난리가 난다는 말은 예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것을 눈으로……. 아니, 본인 이 직접 체험해보니 느낌이 남달랐다.
'태강이한테는 미안하지만, 다음에는 휴가 맞추지 말아야겠 어.'
오히려 피해야 할 대상으로 찍혀버리고 말았다.
위병소에서 소지품 검사를 마친 후에 이강진은 1중대 막사가 있는 곳으로 향해 걸어갔다.
도중에 눈에 띄는 광경이 펼쳐졌다.
"패스하라고, 패스!"
"김수원 병장님, 제가 공 올려드리겠습니다!"
"받아라! 독수리 슈우웃!"
대대 연병장에서 병사들이 한창 축구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 다.
축구뿐만이 아니었다.
농구, 족구 등. 병사들끼리 종목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었다.
'체육대회 연습인가.'
그것 밖에 없다.
그게 아닌 이상, 저렇게 적극적으로 연습에 임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대대 체육대회에는 여러 가지가 걸려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포상휴가.
포상휴가가 걸려 있으면, 전투력이 무조건 상승한다. 온라인 게임으로 치자면 버프 같은 느낌이다. 등급은 최상급. 포상휴가 만한 훌륭한 동기부여도 없을 것이다.
1중대도 본부중대 못지않게 연습이 한창이었다.
라인혁과 마인정이 메인이 되어 축구 연습을 주도했다.
"필중아! 패스!"
"네! 공 갑니다!"
고필중에게 공을 넘겨받은 마인정.
골키퍼와 1대1 구도가 완성되었다.
추가골을 터트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다!
그러나…….
삐 엉!
공은 어이없게도 골대 근처조차 가지 못한 채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라인혁의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왔다.
"야, 이 미 친 또라이 새끼 야! 완전 개발이 네! 그걸 못 넣냐? 초 등학생을 데려와도 골 넣었겠다!"
"발이 순간 미끄러졌다니까!"
"미끄러지긴 개뿔! 누가 들으면 우리가 빙판길 위에서 축구하 는 줄 알겠네!"
서로 무병장수 하라고 사이좋게 욕설을 날렸다.
역시 두 사람은 캐미가 좋다.
죄고 선임인 라인혁과 마인정의 말싸움이 시작되었을 때, 고 필중이 뒤늦게 이강진을 발견했다.
"강진이 왔냐."
"충성 일병 이강진, 휴가 복귀했습니다."
이강진의 복귀 소식은 라인혁과 마인정의 말싸움조차 멈추게 만들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 강진이 왔구나!"
"1 중대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이제야 오면 어쩌자는 거냐. 후딱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튀어나와! 연습이다, 연습!"
"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오자마자 바로 체육대회 연습에 투입되고 말았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체육대회가 바로 코앞이다.
'포상휴가를 따내려면 무조건 열심히 해야지.'
한 번 맛보면 절대로 끊을 수 없는 것.
이름하야 포상휴가다.
대대 병사 식당을 찾은 이강진은 휴가 복귀 후에 첫 식사를 치뤘 다.
밥을 다 먹고 난 후에 이강진은 안준렬에게 양해를 구했다.
"안준렬 병장님. 오호만 상병한테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데, 저만 나중에 따로 막사로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알았다."
"감사합니다."
비록 3일이 긴 하지만, 그래도 그 3일 동안 거의 취사반에만 살 았다 보니 이강진은 대대 뒤쪽까지 해매는 일 없이 바로 향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오호만 상병은 식당 뒤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짧은 휴식을 보내고 있었다.
"충성."
"오, 강진이네? 휴가 복귀했어?"
"예, 그렇습니다. 이번에 민수 아저씨한테 가서 오호만 상병 님이 부탁했던 거, 물어보고 왔습니다."
"민수 아저씨라면…… 바라식당 사장님 맞지?"
"예."
"뭐라고 하셨는데?"
오호만은 담뱃불을 끄고 이강진의 말에 집중했다.
무슨 대답이냐에 따라 오호만의 전역 이후의 행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제자로 받아준다면 오호만은 당분간 청주에 방을 얻어 서 생활할 생각이었다.
이강진은 미소와 함께 오호만이 그토록 기다리던 대답을 전 달해줬다.
"오케이라고 하셨습니다."
"진짜로가 고맙다, 강진아! 정말로 고마워!"
"고마워해야 할 대상은 제가 아니라 민수 아저씨입니다. 저는 그저 전달만 했을 뿐입 니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고 실력이 좋아도 인맥이 없으면 힘든 게 요즘 세상이잖아. 연결해주는 것도 결국 인맥의 힘이지. 아무튼 고맙다. 내가 나중에 꼭 보답할게!"
보답을 원해서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은혜를 갚겠다고 하 는 사람을 막고 싶진 않았다.
이번 일이 황민수와 오호만, 두 사람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를.
이강진이 원하는 건 딱 그 정도였다.
* * *
막사로 돌아온 이강진은 그동안 밀린 빨랫감들을 들고 세탁 실로 향했다.
세탁물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하나 1분이 지나기도 전에 세탁기가 크게 덜컹거리더 니, 이내 작동을 멈췄다.
"또 이러네."
이럴 때에는 다 방법이 있다.
뻥!
발로 차면 된다. 그러 면 대부분은 제대로 작동이 된다.
그러나 한 번으론 부족한 모양인지 세탁기는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다.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세 번이 네 번이 되었다.
다섯 번째 킥을 날렸을 때가 되어서야 세탁기가 제대로 작동 하기 시작했다.
"이놈의 세탁기가 사람 열받게 하네."
이강진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얼마 전에 라인혁은 세탁기 때문에 너무 열이 받아서 화병 생길 거 같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었다.
세탁기는 1중대 모두의 고중이었다.
탈수기도 마찬가지다. 세탁기가 전혀 작동을 안 하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손빨래를 해야만 한다. 그럴 때 탈수기가 거의 필수인데, 문제는 탈수기도 세탁기와 마찬가지로 상태가 영 안 좋 다는 것이었다.
때마침 안준렬이 세탁실을 방문했다.
"세탁기 먼저 돌리고 있었구나."
그도 세탁기를 사용하려고 했었으나, 먼저 온 이강진 때문에 잠시 차례를 미뤄야 했다.
세탁물을 세탁기 위에 올려놓은 안준렬. 다음 차례를 예약했 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희는 세탁기하고 탈수기, 교체 안 하는 겁니까?"
"여러 차례 건의는 해봤지. 근데 부대 운영비가 없으니까 그 냥 그런대로 살으라나 어쨌다나……."
운영비가 없다는 말을 믿는 병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부정부패가 심하면 심했지, 절대로 덜하지 않은 곳이 바로 군대다.
고립되어 있는 곳일수록, 그리고 통제가 심한 곳일수록 이런 현상은 심화되기 마련이다.
이강진도 그걸 잘 안다.
그렇다고 이 불편함을 끝까지 감내할 순 없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안준렬은 최근에 그 해답을 들었다.
"이번에 대대 체육대회에서 우승한 중대에게 세탁기하고 탈 수기 준다고 하더라."
결론은 체육대회에서 우승하면 된다.
하지만 세탁기와 탈수기를 탐내는 곳이 1중대만은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다른 중대들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겠군.'
어쩐지. 체육대회 최약체라 불리는 본부중대가 너무 빡세게 연습을 한다 싶었다.
이강진은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우승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세탁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1중대가 반드시 우승기 를 들어야 한다.
축구 팀 주장을 맡게 된 라인혁은 체육대회에 참가할 멤버를 최종적으로 확정지었다.
이강진, 라인혁, 고필증, 백우호, 성태강까지. 1분대에만 자그 마치 다섯 명이 포진되어 있었다.
라인혁은 축구 멤버 명단을 보면서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혼잣말을 흘렸다.
"역시 우리 1분대야. 괜히 축구 명가라 불리는 게 아니지."
1분대는 전통적으로 축구를 잘하는 병사들이 주로 몰렸다.
일부러 간부진이 의도한 건 아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이런 경 우가 많이 발생했다.
하나 1분대원 전부가 다 주전 멤버는 아니었다.
"태강이하고 우호는 후보로 돌릴게. 주전은 나하고 강진이, 필 중이. 1분대에서는 이렇게 셋만 간다."
"예, 알겠습니다."
백우호와 성태강은 딱히 큰 불만은 없었다.
다만…….
아쉬움은 있었다.
주전 멤버에 마인정이 들어가 있는 게 자꾸 신경이 쓰인 것이
'마인정 병장님은 나오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저 자리에 차라리 다른 주전 멤버를 넣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체육대회에 나서는 이들 모두가 다 이런 생각을 했다.
마인정은 축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인물이긴 하지만, 열정 과 실력이 항상 비례되진 않는다.
라인혁의 경우에는 그래도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 편이긴 했다. 하지만 마인정은 그렇게까지 잘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전 멤버 한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뿐이다.
계급이다.
중대 최고선임이라는 걸로 그냥 밀어붙인 것이다.
군대에선 계급이 깡패라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 서 주전 명단에 오류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병사들은 일부러 침 묵했다.
라인혁은 주전 멤버들, 그리고 후보들까지 싹 다 1생활관으로 소환했다.
"포메이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 로는 나하고 인정이, 그리고 필증이하고 강진이. 이렇게 4명을 공격수로 두고 싶거든? 너희들 생각은 어때?"
공격수가 4명이나 필요할까?
아니, 그전에 마인정은 빠져도 될 거 같은데.
병사들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해졌다.
불만이 가득한 포메이션이다.
하지만 대답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네! 좋습니다!"
"역시 라인혁 병장님! 명장이십니다!"
"그 포메이션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병사들은 그저 대답만 하면 된다.
< 제41화. 대대 체육대회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