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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33화 (133/347)

< 제40화. 돈방석 (1) >

위병소를 가득 채운 소녀팬들.

이강진은 살면서 이런 풍경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성태강과 여태껏 휴가를 맞춰서 같이 나가 본 적이 없었기 때 문이었다.

위병소 앞에 모여든 소녀팬들 때문에 조장, 위병소 근무자들 은 죽을 맛이었다.

이들은 뒤늦게 성태강과 이강진을 발견했다.

"아저씨! 휴가 나가시는 거죠?"

"빨리 좀 나가세요! 우리만으론 감당하기 힘들어요!"

"아, 네!"

이강진과 성태강은 바로 위병소 문을 통과했다. 그러자 소녀팬들이 '꺄아악!' 하는 소리를 질렀다.

"태강 오빠!"

"기다리고 있었어요, 엉엉!"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오빠, 언제 전역해요? 어서 나와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인파를 뚫고 나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태강아! 이쪽으로! 어서!"

"네!"

이강진은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저 사람이 네 매니저야?"

"예, 그렇습니다! 이강진 일병님, 어서 타셔야 합니다!"

"알았어!"

얼마 전에 받았던 대대 ATT 뺨치는 작전이 펼쳐졌다.

철벽같이 느껴지던 소녀팬들을 뚫고서 간신히 차에 오른 두 남자.

성태강의 매니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후에 뒤늦게 이강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KGE 로드 매니저, 최창우라고 합니다."

"이강진입니다.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하하, 뭐 이게 매번 제가 하는 일인 걸요. 자, 그럼 출발하겠 습니다. 안전띠 매 주세요."

이강진과 성태강을 태운 차가 빠르게 위병소를 벗어났다.

자세히 보니 소녀팬들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위기 상황에서 간신히 탈줄한 이들.

최창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아침부터 이게 뭔 꼴인지……."

"미안해요, 창우 형. 괜히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어요."

"맨날 하던 일이니까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나저나 군부대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외진 곳에 있네. 완전 산골인데?"

"보이는 거라고는 초록색, 파란색, 갈색밖에 없어요."

겨울이 되면 흰색이 가장 많이 보일 것이다.

차를 운전하면서 최창우는 성태강의 모습을 백미러로 힐긋 쳐다봤다.

"이제는 완전히 사내티가 나네. 듬직하다, 야."

"하하, 그래요?"

"옆에 있는 선임 분이 잘해 주시나 보더. 입대했는데도 얼굴에 근심 걱정이 안 보인다, 하하하!"

죄창우는 일부러 이강진을 띄워 주고 있었다.

맞선임을 기분 좋게 만들어 두는 게 좋다.

그러면 나중에 성태강을 10개 갈굴 거, 5개로 줄여서 갈굴지 도 모르니 말이다.

이강진은 죄창우의 언어 스킬에 속으로 감탄했다.

'괜히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군.'

이번에는 이강진이 먼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꺼내 보기로 했다.

"창우 씨도 군대 나오셨죠?"

"네, 그렇죠. 이래 보여도 귀신 잡는 해병대 나왔습니다. 그래 서 태강이가 군대 간다고 했을 때, 제가 조언을 많이 했죠."

"어쩐지, 태강이가 군 생활을 잘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하하하!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가요?"

주고받는 립서비스에 싹트는 으쓱함.

이런 맛도 있는 법이다.

"강진 씨, 말을 참 조리 있게 잘하시네요. 나중에 연예계 쪽으 로 진출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제가요?"

"네, 대중한테 이미지 좋고, 말도 잘하고. 예능이나 토크 프로 그램에 나가면서 잘하실 거 같은데요. 태강아, 네가 보기엔 어 떠 냐?"

"저도 같은 생각입 니다."

이번에는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투자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이강진은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나봤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말솜씨를 기를 수 있게 되었다.

외형은 20대처럼 보이지만, 속은 20년이 넘는 경력을 지닌 베 테랑 중에서도 베테랑이다.

최창우가 이강진의 말솜씨를 예사롭지 않게 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말을 들은 거 같은데.'

한지윤이 자신의 드라마에서 이강진에게 캐스팅이 제안을 할 지도 모른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직까지는 잠잠했다.

어쩌 면 다른 배우를 구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서 자꾸 연예계 쪽으로 데뷔해 보라는 추천이 많이 들어오네.'

이런 말을 듣는 건 당연했다.

자주 방송에 얼굴을 비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청자들에게 반응도 좋았다.

연예 기획사들은 이 런 인재를 쉽게 놓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강진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돈을 벌어야 한다.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엄청난 돈을 벌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철저한 대비를 해 둬야 한다.

"마음만 감사히 받도록 할게요."

"아쉽군요. 그래도 마음이 바뀌거든, 언제든 연락 주세요. 태 강아, 시트 뒤에 내 명함 있거든? 내 대신 강진 씨한테 명함 좀 드려."

"알겠습니다. 이강진 일병님, 여기 있습니다."

"뭐 이런 것까지? …."

일단은 챙겨만 두기로 했다.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성태강, 최창우와 함께 이른 점심을 먹은 이강진은 청주로 향 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바로 옷 갈아입기 '이놈의 망할 군복부터 벗어야지.'

이강진의 어머니가 출근 전에 오늘 휴가를 나올 아들을 위해 서 미리 입을 옷가지들을 정리해 둔 덕분에 빠르게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그다음은 바로 주식이다.

장 마감까지 1시간 30분밖에 안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강진 은 컴퓨터를 켰다.

'1 시간 30분 정도면 몇 천만 원을 벌 수 있는데, 포기하면 아 깝지.'

이강진의 눈과 손이 빨라졌다.

상한가로 치솟을 것들만 노린다.

장 마감 시간이 되고 나서야 이강진은 기지개를 켰다.

"나쁘지 않았네."

이강진이 목표로 잡았던 수익보다 1.3배 정도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너무 모니터만 뚫어져라 바라봐서 그런 걸까.

눈이 침침하고 피로가 몰려왔다.

티비를 보면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잠이라도 잘까?'

그러기에는 너무 애매한 시간이었다.

'차라리 저녁을 일찍 먹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안 그래도 휴가를 나오면 꼭 한 번 들려야 할 곳이 있었다.

'이번에 새로 옮겼다던 아저씨네 가게로 가 볼까?'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지, 이강진은 본인의 눈으로 직접 확인 하고 싶어졌다.

집에서 청고 맞은편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도보로 15분 정도.

나갈 채비를 마친 이강진은 곧장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횡단보도의 건너편에서 한눈에 봐도 새 가게로 보이는 휘황 찬란한 가게 하나가 이강진의 눈을 사로잡았다.

인테리어며 간판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번쯤은 휘어잡을 그런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보다 가게 이름이 더 빛이 났다.

[바라 식당]

"세상에, 이게 정말 내가 아는 그 바라 식당이야?"

이강진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너무 낯설었다.

그가 알던 바라 식당은 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 1층에 자리 잡 은 아주 작은 한식 가게였다.

얼마 전까지도 그랬고, 회귀 이전의 삶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과거의 바라 식당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못지않을 정도로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고급 한식 가게, 바라 식당.

문도 자동문이 었다.

'민수 아저씨, 줄세했네.'

방송 출연 한 번으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다.

"어서 오세요!"

종업원들의 숫자도 늘었다.

20대의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이 서빙을 도맡고 있었다.

그중 몇몇은 이강진을 알아봤다.

"혹시 이강진 씨 아니세요?"

"네, 맞습니다. 민수 아저씨…… 가 아니라 사장님 만나러 왔는 데요. 어디 계신가요?"

"주방에 계세요. 부사장님하고 같이요."

"부사장님?"

낯선 단어였다.

일단 황민수에게 가 보기로 했다.

누가 부사장을 맡게 되었는지, 황민수에게 직접 물어보면 알 수 있을 터.

주방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버섯 일정한 크기로 자르라고 했잖아요! 이런 식으로 너무 크 게 자르면 손님들이 한 입에 다 못 먹어요!"

"죄, 죄송합니다!"

황민수의 호통이 주방을 가득 채웠다.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을 이강진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회귀 이전에도 본 적이 없는 낯선 모습이었다.

크게 확장된 가게, 늘어난 손님.

이 덕분에 황민수는 어쩔 수 없이 주방 보조를 몇 명 더 구해 야만 했다.

하지만 같이 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주방 보조로 데 려온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황민수의 성에 찰 리가 없었다.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일을 누가 처음부터 잘해 낼 수 있을 까.

황민수도 그걸 아는 모양인지 더 이상 목소리를 높이진 않았다.

대신 이런 식으로 요리를 하면 된다고 다시 한번 차근차근 교 육시 켰다.

'민수 아저씨답네.'

황민수는 성격상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진 못한다.

방금처럼 살짝 목소리를 높일지언정, 그 이상의 단계로는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민수 아저씨 같은 사람이 내 맞선임이어야 했는데.'

자연스럽게 서일주 일병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강진은 쓴웃음을 삼켰다.

'휴가 나와서까지 군대 생각은 하지 말자.'

군대 이야기는 금기다.

"어흠!"

이강진은 일부러 헛기침 소리를 크게 냈다.

그제야 황민수가 이강진이 왔음을 알아차렸다.

"어이쿠, 강진이 왔구나!"

"오랜만이에요, 아저씨."

"오랜만이긴, 몇 달 전에도 봤으면서. 너, 휴가 너무 자주 나오는 거 아니냐?"

"자주 나오는 게 더 좋지 않나요? 그만큼 제 얼굴을 많이 볼 수 있잖아요."

"하하하! 요 녀석!"

황민수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근데 어머니는요?"

"잔돈이 없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어. 이제 네 엄마, 여기 가게 부사장님이 시다."

"부사장님이 우리 어머니였어요?"

"하하, 그래!"

이강진의 어머니를 부사장으로 임명한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 는 황민수다.

"나랑 같이 오랫동안 일해 온 유일한 사람이니까. 네 어머니 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지."

"그렇긴 하죠."

"저 녁 안 먹었지? 뭐라도 줄까? 그러고 보니 저 번에 사단장 온 것도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아직 제대로 못 들었네."

풀어야 할 썰이 산더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일단 가게 일부터 마무리 지으셔야죠. 저도 도와드릴게요."

두 팔을 걷어 올리는 이강진을 보면서 황민수는 손사래를 쳤

"됐다, 됐어. 모처럼 휴가 나온 군인한테 일을 시킬 순 없지."

"괜찮아요, 어차피 만날 사람도 없고. 집에서 뒹굴거리기만 해 야 하는데, 그것보단 부지런히 일하는 게 낫죠. 혹시 또 모르잖 아요? 일하고 나면 아저씨가 알바비라도 챙겨 줄지."

"어째 넌 점점 능구렁이가 되어 가는 거 같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알바비 짭짤하게 챙겨 주마!"

"고마워요, 아저씨."

원래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마치 최창우와 이강진이 서로 립서비스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일을 하는 대신, 그만 한 알바비를 받는다.

그래야 황민수 입장에서도 덜 부담스러울 것이다.

'취사반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해 볼까!'

비록 3일밖에 안 해 봤지만 말이다.

< 제40화. 돈방석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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