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9화. 취사 지원 (6) >
제39화. 취사 지원 (6)
취사병들은 사단장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취사반장이 대표로 외쳤다.
"사단장님께 대하여- 경롓!"
"충! 성!"
식당 내에 취사병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본 사단장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고작 밥 한 번 얻어먹으러 온 사람인데, 너무 격식 차릴 필요 없네. 자, 다들 앉지."
간부들은 사단장을 따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식사는 이미 세팅되어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버섯 닭볶음탕에 사단장의 시선이 고 정되 었다.
"맛있는 냄새의 주범이 이 녀석이었군."
"중사 조청연! 예, 그렇습니다!"
취사반장이 대표로 대답했다.
"근데 자네 부대에는 닭볶음탕이 점심으로 나오나?"
대대장이 곧장 반응했다.
"예, 특별식으로 가끔 나오는데, 마침 사단장님께서 딱 이때 오셨습니다. 정말 타이밍을 잘 잡으셨습니다. 역시 사단장님이 십니다!"
"허허, 그런가?"
그럴 리가 있겠나.
사단장이 온다고 해서 원래 메뉴에는 있지도 않은 음식을 부 랴부랴 준비한 것이다.
한편 간부들은 취사반장을 향해 눈빛을 쏘아 보냈다.
'맛은 괜찮겠지?'라면서 묻는 듯한 그런 눈빛들이었다.
취사반장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취사반장 입맛에는 맞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취사병들도 입을 모아 오호만이 만든 오리지널 버섯 닭볶음탕을 칭찬했다.
이강진은?
그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민수 아저씨가 만든 버섯 닭볶음탕과는 다른 맛이지만, 그래 도 괜찮았어.'
하지만 문제는 사단장의 입맛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맛있다고 칭찬해도 사단장이 맛없다고 한 다면 그 요리는 맛이 없는 요리로 정해진다.
"어디
숟가락을 들어 올린 사단장.
"국물부터 맛을 봐 볼까?"
국물 한 숟가락을 떠서 그대로 입가에 가져가는 사단장의 모습은 다른 이들에겐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후르릅, 쩝쩝!"
사단장은 입맛을 한참을 다셨다.
문제라도 있는 걸까?
연대장과 대대장 그리고 취사반장의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호만 상병은 담담한 표정으로 사단장의 평가를 기다렸다.
갑자기 사단장이 이들에게 물었다.
"이거, 누가 만들었나?"
아직 겨울이 온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연대장과 대대장은 취사반장을 원망 어린 눈으로 노려봤다.
취사반장은 마치 자신이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죄인의 표정을 했다.
하지만 오호만은 달랐다.
"상병 오호만! 제가 만들었습니다!"
오호만은 당당히 나섰다.
요리에 자신이 있었다.
만약 자신이 만든 저 버섯 닭볶음탕이 사단장의 입맛을 사로 잡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건 본인의 요리 실력이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뜻할지 도 모른다.
사단장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짝짝짝!
박수를 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맛있군! 여태껏 내가 먹은 닭볶음탕 중에서 가장 맛있었네! 1075대대 밥이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 안 그런가?"
연대장과 대대장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하, 하하하!"
"자, 잘했어! 역시 우리 부대 취사병들은 달라! 굿!"
장교들은 연신 엄지를 추켜올렸다.
참으로 묘한 광경이었다.
사단장은 다시 한번 오호만표 버섯 닭볶음탕을 음미했다.
버섯에 닭볶음탕 특유의 매콤한 국물이 잔뜩 스며들어 있어 서 식감을 한층 풍요롭게 만들었다.
"바라 식당의 버섯 닭볶음탕이 유명하다던데, 그걸 보고 따라 한 건가?"
사단장의 질문에 오호만은 그렇다고 답했다.
"여기 있는 이강진 일병이 바라 식당 사장님하고 아주 친하다 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자네, 백두원의 푸드기행 바라 식당 편에 같이 나오지 않았나?"
"일병 이강진. 예! 그렇습니다!"
"허허허, 반갑네. 나랑 악수나 한 번 하지. 티비에서 보던 스타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영광이로군!"
"저야말로 사단장님과 이렇게 만나 뵙게 될 수 있어서 영광입 니다!"
스타가 (투)스타와 악수를 주고받았다.
오호만이 만든 음식들을 싹 다 비운 사단장은 매우 만족스러 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후! 잘 먹었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아주 맛있게 잘했어. 가만있어 보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았는데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지, 대대장."
"중령 오승진!"
"여기 취사병들이 원하는 것들로 해서 선물 두둑하게 챙겨 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지?"
"예, 물론입니다!"
취사병들이 원하는 것.
아니, 병사라면 모두가 원하는 것.
그것은 바로 포상 휴가다.
* * *
군대에선 인사 잘했다고 포상 휴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이런 사례도 있었다.
헬기가 지나가는데 어느 한 병사가 장난 식으로 거수경례를 했다가 제식 정신이 투철하다고 포상 휴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군대는 언제, 어느 때에 포상의 기회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이번 사단장 기습 방문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한층 기분이 좋아진 사단장 덕분에 연대장과 대대장은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사단장이 떠난 후.
연대장은 대대장에게 사단장이 했던 말을 잊지 말라고 강조 를 했다.
병사들에게 포상 휴가를 확실하게 챙겨 주라는 뜻이었다.
그 결과.
"오호만."
저녁 점호 때, 중대장은 오호만을 불렀다.
"상병 오호만."
"3박 4일 포상 휴가증이다. 대대장님이…… 아니, 사단장님이 주시는 거니까 잘 쓰도록 해라."
"예! 감사합니다!"
병사들은 부럽다는 시선으로 오호만을 바라봤다.
오호만뿐만이 아니었다.
버섯 닭볶음탕 레시피를 실시간으로 구하고, 거기에 주방에 서 오호만 다음으로 많은 활약을 펼쳤던 이강진에게도 2박 3일 포상 휴가가 떨어졌다.
이로써 이강진은 기존에 나가려고 했던 포상 휴가에 취사 지 원으로 받은 1박 2일 그리고 사단장이 특별히 하사한 2박 3일을 붙여서 총 7박 8일의 휴가를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다.
이강진은 이것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깨달았다.
물론 얻어 걸린 타이밍이긴 하지만, 원인이 뭐가 중요한가.
포상 휴가를 받았다는 결과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사단장 기습 방문 사건은 취사반에게, 특히 오호만에게 큰 변 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강진의 취사 지원 마지막 날.
갑자기 오호만이 이강진에게 이런 폭탄 발언을 날렸다.
"나, 전역하면 요리사에 도전해 볼까 하는데."
원래는 요리에 큰 꿈을 두지 않고 있었던 오호만.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그는 요리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이강진은 오호만의 그런 결정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오호만 상병님이라면 훌륭한 요리사가 되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맙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어떤 겁니까?"
취사병인 오호만이 이강진에게 부탁할 만한 게 뭘까.
이강진은 이게 궁금했다.
"별건 아니고. 너, 바라 식당 사장님하고 친한 관계라고 했잖아?"
"예, 그렇습니다."
"나중에 정식으로 한번 소개시켜 주면 안 될까? 그분 밑에서 요리를 배워 보고 싶어서."
"요리를…… 말입니까?"
이건 이강진도 예상 못한 전개였다.
"어, 바라 식당 사장님이 한 그 말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박혀 서 빠질 생각은 안 하더라. 20퍼센트의 감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는 말이 내게 너무 와닿았거든. 그래서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그 분 밑에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 어떻게 좀 안 될까?"
여기서 바로 답을 들려주고 싶지만, 이건 이강진이 어떻게 해 볼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누군가를 가 르치는 걸 본 적이 있나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아무튼 부탁 좀 하마!"
"예, 알겠습니다."
취사 지원이 끝나고 다음 주 월요일에 이강진은 바로 휴가를 나갈 예정이었다.
'그때 나가서 물어보면 되겠지.'
전화상으로 물어볼 수도 있지만, 중요한 이야기인 만큼 직접 얼굴을 보면서 말을 나눠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 당장 급한 일도 아니고 말이다.
황민수가 설령 오케이를 한다고 하더라고 오호만의 전역이 먼 저다.
그러고 난 다음에 요리를 배우든 말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저씨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하네.'
휴가를 나가는 재미가 하나 더 추가됐다.
* * *
취사 지원이 끝나고 다시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온 이강진.
1분대는 그의 귀환을 환영했다.
모두가 고생했다고 이야기할 때, 백우호만 이강진에게 원망어린 목소리를 냈다.
"너 없는 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어휴."
"뭔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
백우호가 말할 때마다 기운상과 성태강 그리고 곽분섭, 세 이 등병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심지어 백우호의 눈치까지 보고 있었다.
'뭔가 단단히 실수했나 보군.'
분위기만 봐도 대충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매번 이강진과 같이 후임 관리를 하다가 혼자서 하려니까 힘 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후임이 한 명도 아니고 자그마치 셋이나 되지 않던가.
'그래도 하긴 해야지.'
다음 주면 이강진은 8일이나 자리를 비워야 한다.
"다음 주에도 더 고생해 줘, 우호야."
"하아! 이 망할 녀석."
백우호는 오늘따라 자신의 동기가 너무 밉상을 보였다.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이강진과 성태강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휴가 준비를 서둘렀 다.
아침도 생략했다.
어차피 나가서 먹으면 그만이니까.
휴가를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밤새도록 당직 근무를 선 사람도 있는 법이다.
안준렬처럼 말이다.
"충성 일병 이강진 외 1 명,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휴가 신고하려고 왔지?"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깔린 안준렬이 이강진과 성태강을 보면서 물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2부소대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밥 먹으러 내려가셨어."
이러면 곤란하다.
휴가 신고하고 나가야 하는데, 밥을 먹으러 자리를 비우면 어 쩌란 말인가.
굳어 버린 두 후임을 보면서 안준렬은 피식 웃었다.
"걱정 안 해도 돼. 휴가 신고는 받은 셈 칠 테니까 너희 준비 다 되면 그냥 내보내라고 부소대장님이 말씀하셨어."
십년감수했다.
휴가 나가는 날은 일분일초가 아깝다.
그런 와중에 당직사관이 복귀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강진과 성태강은 안준렬에게 대신 신고를 마친 뒤에 빠르 게 위 병소로 향했다.
"태강아, 네 매니저는 도착했어?"
"예, 이 시간쯤에 도착해 있을 거라고 했으니까 대기 중일 겁니다."
"좋았어, 그럼 빨리 내려가자!"
"예!"
두 사람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하나 위병소에 도착한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이강진과 성태강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성태강의 팬임을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위 병소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제39화. 취사 지원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