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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30화 (130/347)

< 제39화. 취사 지원 (4) >

제39화. 취사 지원 (4)

순간 대대장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우리 부대에서? 사단장이 식사를?

하늘이 우르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오, 오늘 말씀하시는 겁니까?"

"오늘이 아니라 지금이지. 이제 슬슬 점심 시간이지 않은가?

아니면 설마……."

사단장은 눈을 흘겼다.

"내가 자네 부대에 발을 들이는 게 싫은가?"

"그그그그그그그렇지 않습니다!"

감히 대대장의 신분으로 사단장에게 대들 수 있는 자가 몇이 나 될까.

그런 용기를 지닌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아니, 그건 용기가 아니다.

무모함이다.

특히 군대는 상급자와 하급자간의 관계가 매우 엄격하다. 사 단장이 군복을 벗은 채 휴가를 즐기고 있어도 이 계급간의 차이 는 여전히 유효하다.

연대장은 이 위기를 대대장에게 미리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 나 그럴 틈이 없었다.

준비할 시간조차 없었다.

사단장은 낚시대를 짊어진 채 차로 향했다.

연대장과 대대장이 사단장에게 곧장 다가갔다.

"낚시대는 저희가 들겠습니다!"

"아니, 괜찮네. 난 원래 내 물건은 다른 사람들한테 잘 안 맡 기거든. 그러니까 신경 안 써도 되네."

그래도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사단장이 직접 운전까지 할 생각인 듯했다.

연대장이 사단장에게 조심스러운 제안을 했다.

"사단장님. 연대에서 운전병을 데려왔습니다. 병사에게 시키 면 되니 굳이 운전까지 직접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연대장. 내가 아까 하는 말 못 들었나?"

순간 연대장의 등에 식은 땀이 소나기처럼 흘러내렸다.

사단장은 이번엔 똑바로 새겨들으라는 의도를 담은 듯 목소 리에 힘을 주고서 말했다.

"나는 내 물건, 타인한테 안 맡기네. 낚시대도 그렇고, 차도 그 렇고. 다 똑같아. 그러니까 자꾸 그런 말하지 말게."

"죄, 죄송합니다!"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사단장의 기분이 어떤가에 따라 그 밑에 있는 연대, 대대 부대의 분위기가 결정된다.

평화로운 군생활을 보내고 싶다면 사단장에게 무조건 잘 보 이는 게 좋다.

"대대장이 앞장서게. 내가 1075대대 위치를 잘 몰라서 말이 야."

"예, 알겠습니다!"

대대장은 곧장 레토나로 향했다.

운전병은 사단장과 대대장이 나눈 대화 내용이 무엇인지 알 지 못했다.

"대대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대대로 들어간다."

"설마 사단장님 모시고 가는 겁니까?"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대대장.

설마가 사람 잡았다.

아니, 어쩌면 1075대대 전체를 잡아 먹어치울지도 모른다.

줄발하기 전에 대대장은 곧장 작전과장에게 연락했다.

"난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듣도록. 비상이니까!"

곧 1075 대대 쪽으로 폭풍이 들이닥칠 예정이다.

취사 지원 이틀 차에 이강진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취사병.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일과 시간에 취사병들은 식당 뒤에서 자거나 놀거나 하는 모습을 보면, 이강진은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더 힘들게 일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동정심이 들 것 같았다.

점심 준비가 한창일 때, 오호만이 이강진을 찾았다.

"좀 쉬었다 할까?"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강진은 곧장 알았다고 답했다.

이들이 향한 곳은 식당 뒤쪽이 아니었다.

거대한 냉동 창고였다.

시원한 냉기가 이들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여기에 잠깐 앉아 있으면 금세 시원해져. 한 5분 정도 앉아 있다가 가자."

"예, 알겠습니다."

"그냥 앉아서 쉬기만 하면 그러니까…… 잠깐만 기다려 봐"

오호만은 커다란 냉동고 문 하나를 열었다.

그 안에는 우유가 다수 들어 있었다.

우유를 두 개 꺼낸 오호만은 그중 하나를 이강진에게 건넸다.

"자, 이거 마셔라. 적당히 얼어서 딱 좋을 거다."

"감사합니다, 오호만 상병님."

더운 날씨에 살얼음이 떠 있는 우유를 마시 니 잠깐 천국의 문 이 보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맛이 기가 막힙니다."

"그렇지? 이게 또 녈미거든."

얼린 우유를 맛볼 수 있는 건 취사병의 특권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자리를 잠시 비운 오호만은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시 재등 장했다.

설탕이었다.

"달달한 우유를 마시고 싶다 싶으면 여기에 설탕을 약간 섞어 주면 돼. 너무 많이 넣으면 과해지 니까 아주 조금만."

오호만의 팁대로 설탕을 추가했다.

달달함과 시원함이 적절하게 섞여 이강진을 잠시나마 행복하 게 만들어줬다.

오호만은 이것뿐만 아니라 각종 반찬에 자신이 만든 오리지 널 양념을 살짝 첨가해서 맛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곤 했었 다.

1075 대대 밥이 맛있다는 소문이 자자한 이유도 오호만 덕분 이었다.

"오호만 상병님은 사회에 있을 때 요리를 자주 즐겨 하셨습니 까?"

이강진은 그가 분명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다가 온 사람일 줄 알았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대답이 튀어 나왔다.

"아니, 입대하기 전에는 주방에서 칼 한 번 잡아본 적 없었어.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고는 라면이 전부였고."

"정말입니까? 그런데 어떻게 취사병이 되신 겁니까?"

요리 실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오호만의 대답은 간단했다.

"훈련이 싫었으니까."

마치 '왜 문과를 택했어?'라고 물었더니 '수학이 싫어서.'라는 것과 비슷한 패턴처럼 들렸다.

"취사병이 되긴 했는데, 생각보다 요리하는 게 재미있더라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

뒤늦게 자신의 재능에 눈을 뜬 케이스였다.

이런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있다. 오호만은 그중 하나였다.

'민수 아저씨랑 비슷한 경우네.'

황민수도 오호만처럼 뒤늦게 요리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경우 였다. 평범하게 회사 일을 다니다가 퇴직하고 가게를 차렸으니 말이다.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보였다. 서로 만나면 이야기도 잘 통할 것 같았다.

"5분 지났으니까 슬슬 다시 일해볼까?"

"예."

다시 주방으로 복귀하려고 하던 찰나였다.

갑자기 대대 식당이 어수선해졌다.

"다, 다들 집합! 집합해!"

취사반장이 취사병들을 다급하게 찾았다. 취사병들은 벌써부터 불안감을 느꼈다.

이들이 긴장해야 할 건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위생검열.

그리고 두 번째.

어느 높은 부대의 간부가 이곳 1075대대에서 식사를 할 거라 는 말을 들었을 때.

이번 경우는 후자였다.

"사단장님께서 밥 드신다고 우리 부대를 방문하겠다고 하셨 다!"

취사병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연대장까지는 이해하겠다.

하지만 사단장은 오바다.

오호만이 취사반장에게 물었다.

"사단장님은 간부 식당에서 식사하시는 거 아닙니까?"

"원래는 그래야 하는데, 최근에 새로 취임하신 사단장님은 부대를 방문했을 때 간부 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적이 거의 없다고 하더라. 병 식당에서 직접 밥을 먹어봐야 병사들의 식사 환경을 잘 알 수 있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웬만하면 병 식당에서 식사하실 거 같으니까 준비 단단히 해라, 어서!"

취사병들은 훈련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화스트페이스를 외칠 뻔했다.

그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 펼쳐졌다.

긴급 작전회의가 시작되었다.

취사반장은 오늘의 메뉴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오늘 메뉴는?"

"두부무침, 콩나물국, 배추김치, 김, 조기튀김, 그리고 부식으 로 초코우유입니다."

"미쳤어기 메뉴가 뭐 그 따위야! 절대로 안 돼! 다른 메뉴로 바 꿔!"

"어떤 메뉴로 바꿉니까?"

"그건……."

취사반장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오호만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사단장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이 뭔지 알면 메뉴를 선정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지 않겠습니까?"

모르면 물어보면 그만이다.

취사반장은 오호만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대대장에게 연락을 해 사단장의 음식 취향이 뭔지 물었다.

통화를 마친 뒤. 취사반장은 자신이 입수한 정보를 취사병들 에게 공개했다.

"닭볶음탕이라고 하더라."

닭볶음탕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강진은 백두원의 푸드기행 때를 떠올렸다.

버섯 닭볶음탕으로 백두원과 제작진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남 자, 황민수.

이강진은 이들에게 아이디어 하나를 제안했다.

"제가 바라식당 사장님하고 아주 잘 아는 사이인데, 연락해서 레시피 좀 알려달라고 해보겠습니다."

취사반장의 눈이 반짝였다.

"바라식당이면 백두원의 푸드기행에 나왔던 그 집 말하는 거 지?"

"예, 그렇습니다. 그 편에 저도 출연했었습니다."

"아, 그랬었지! 근데…… 사장님이 레시피를 쉽게 알려주실까? 자영업자들은 그런 거 기밀이라고 잘 안 알려주시잖아."

"이미 방송에서 다 공개한 거니까 괜찮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이강진의 작전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다.

"부탁한다, 강진아!"

"네, 알겠습니다."

사단장 접대 작전의 막이 올랐다.

일과 시간에는 원래 전화 통화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오늘처럼 예외적인 경우에는 어쩔 수가 없다.

이강진으로부터 자초지좋을 들은 황민수는 혀를 찼다.

-쯧쯧쯧, 불쌍한 녀석. 하필이면 딱 3일 일하는 동안에 사단장 이 와서 밥을 먹는다고 하다니. 하긴, 나도 예전에 취사병으로 일할 때 갑자기 사단장이 들이닥친 적이 있었지. 그때도 부대가 뒤집어졌었는데, 이 아저씨가 엄청난 활약을…….

"아저씨. 옛 추억 이야기는 제가 휴가 가서 원 없이 들어줄게 요. 근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서요."

-그렇지, 참. 근데 넌 참 운도 없구나. 어휴.

황민수는 이강진에게 재수 옴 붙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이강진은 생각이 달랐다.

위기는 곧 기회다. 이강진은 이런 경우를 수도 없이 맞이했고, 그것을 역으로 자신만의 기회로 바꿨다.

결과는 언제나 성공이었다.

이번에도 이강진은 자신있었다.

단지 약간 불안한 게 있다면…….

'요리는 내 종목이 아니라는 거지.'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

-바쁜 거 같으니까 일단은 레시피부터 알려주마. 적을 건 있 지?

"예. 말씀하세요."

-우선은…….

필요한 재료를 비롯해서 양념을 조합하는 비율까지 상세하게 이강진에게 불러줬다.

이강진은 황민수가 말해준 것들을 전부 다 받아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중요한데.

"어떤 건가요?"

다 적은 줄 알았더 니 아직 하나가 남아 있었다.

-이건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하는 말인데, 레시피대로요 리를 해도 맛은 일관적이지 않아. 분명 내가 만든 것과 다른 맛 이 날 거야. 나도 항상 하는 요리인데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맛 이 똑같지 않거든. 그때는 감으로 맛을 내야 해.

"설마 먹는 감은 아니죠?"

-아니지. 필(Feel)이지, 필. 언더스탠드?

오호만과 같은 말버릇을 보여주는 황민수였다.

-음식의 맛을 결정짓는 건 80퍼센트가 레시피, 나머지 20퍼센 트는 자신만의 감이야. 조리 중에 맛을 보면서 간을 맞추는 것. 이게 사실 굉장히 어려운 거거든.

황민수가 직접 와서 조리해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1075 대대 취사반이 해내야 한다.

-아무튼 힘내라, 강진아. 응원하마.

"고마워요, 아저씨."

황민수에게 전수받은 황금 레시피.

과연 버섯 닭볶음탕이 사단장의 입맛을 휘어잡을 수 있을까?

'그건 해봐야 알겠지!'

< 제39화. 취사 지원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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