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9화. 취사 지원 (3) >
제39화. 취사 지원 (3)
대대 식당은 이강진도 자주 와봤다.
전역할 때까지 최소 하루에 3번은 오는 곳이 이곳이니까. 이 제는 정이 들 만도 했다.
그러나 아직 이강진이 모르는 대대 식당의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저 왔습니다."
오호만이 다른 중대 취사병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호만이 왔냐.
"충성 오호만 상병님, 부식 미리 꺼내놓았습니다.1 중대 꺼 가 져가시면 됩니다."
"땡 큐."
타 중대끼리는 서로 '요'자 체를 쓰면서 대화를 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취사병들끼리의 관계는 달랐다.
취사병은 다른 곳에 비해 특별한 관계를 유지한다.
서로 다른 중대라 하더라도 선임 대접을 한다. 아무래도 같이 일을 하는 관계다보니 이런 분위기가 절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후임이 선임 말을 안 듣고 무시하면 병력이 통제가 안 된다. 그래서 취사반은 따로 선후임 관계를 유 지하도록 만든 것이다.
"오호만 상병님. 같이 온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 강진이?"
오호만은 이강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 면서 그를 취사병들에게 소개했다.
"형국이가 화상 입어서 지금 일 못하는 상황이잖아. 그래서 형국이가 복귀할 때까지 강진이가 당분간 취사 지원 나오기로 했다.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취사병들이 먼저 이강진에게 다가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3일 동안 잘 부탁해요, 아저씨."
"저도요."
이강진은 정식 취사병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취사병들은 이강진을 선임, 후임 관계가 아닌 다 중대 아저씨처럼 대하기로 했다.
고작 3일 같이 일했다고 자신보다 계급 높은 쥐사병 아저씨 들을 선임 취급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강진도 그들에게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
모든 취사병과 인사를 나눈 후에 이강진은 오호만과 함께 대 대 식당 안쪽으로 향했다.
마치 연극 무대 뒤편에서 일하는 스태프가 된 느낌이었다.
이강진이 몰랐던 대대 식당의 또 다른 면모.
병사들이 먹는 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여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 * *
이강진은 정식 취사병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오호만은 이강진에게 전문적인 조리 직?업을 맡기지 않고 단순 노동만 할당시 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음식 젓기였다.
밥, 국, 반찬 등이 타지 않게 계속 뒤집거나 저어줘야 한다. 여기에는 특별한 도구가 사용된다.
그 도구의 이름은 바로. …."
"자, 여기 삽이다."
오호만은 이강진에게 요리에 사용되는 스페셜 아이템, 삽을 건넸다.
"이걸로 하는 겁니까?"
"이걸로 안 하면 못 해."
"아하……."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전역한 이후에 이강진은 군대 관련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취사병이 삽을 들고서 밥을 휘젓는 모습을 봤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막상 본인이 직접 그 입장이 되어보니 조금은 황당했 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받침대 위로 올라간 이강진.
그는 거의 100인분에 가까운 양의 밥이 담긴 곳에 삽을 푹! 하고 꽂아 넣었다.
있는 힘껏 찔러 넣었는데도 바닥이 안 닿았다.
'밥이 엄청 많긴 한가 보네.' 양 팔에 힘을 가했다. 첫 숟가락…… 아니, 첫 삽이 한 가득 떠 졌다.
이것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은근히 빡세네!'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빡세다.
이강진의 양 팔에는 힘줄이 불끈불끈 튀어나오려고 했다.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이강진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오호만은 쓴웃음을 짓고서 그에게 다가갔다.
"강진아. 힘들지?"
"예. 생각보다 이거, 장난 아닙니다."
"노하우가 없어서 그래. 비켜봐. 내가 알려줄게."
삽을 건네받은 오호만은 능숙한 솜씨로 밥풀들을 휘저었다.
스냅, 스냅, 퀵, 퀵!
"팔의 힘만으로 젓는 게 아니라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자연스 럽게 밥을 뒤집으면 돼. 언더스탠드?"
"에,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
그러기 위해서 이강진을 취사 지원으로 부른 거 아닌가.
이강진은 습득이 빠른 편이었다. 오호만이 몇 번 보여준 것을 이강진은 얼마 안 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좋아! 우리 강진이, 잘하네! 소질이 있어!"
"일병 이강진, 감사합니다!"
"그거 다 하고 멸치 볶음도 부탁할게."
"예, 알겠습니다."
이건 취사병의 전체 업무로 따지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
오전 일과를 마친 1분대원들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대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분대원들의 시선은 오늘의 점심 메뉴가 아닌 취사병 복장을 하고 있는 이강진에게 쏠렸다.
"올~ 이강진!"
"쥐사병 다 됐네! 크큭!"
선임들과 백우호가 이강진을 보면서 농담이 반쯤 섞인 어투 를 보였다.
분대원들의 놀림에도 불구하고 이강진은 기죽지 않았다.
오히 려 반격을 가했다.
"점심으로 나온 불고기 배식, 제가 하기로 했습니다. 보니까 라인혁 병장님하고 황지웅 상병님, 고필중 상병님, 그리고 우호. 이렇게 네 사람은 불고기가 싫으신가 봅니다?"
"어, 어흠!"
순간 네 사람은 헛기침을 했다.
빠르게 눈빛을 교환한 넷은 곧바로 아부 모드를 발동시켰다.
"아이구, 우리가 놀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취사복을 입어도 핏이 여전히 살아나는 걸 보니, 모델인 줄 알아서 놀라가지고 그 런 말을 했던 거야. 그렇지, 필중아?"
"무, 물론입니다! 강진아, 난 너처럼 잘생긴 취사병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진심이야!"
온갖 사탕발림이 난무했다. 너무 달아서 토해내고 싶을 정도 였다.
이것이 취사병의 권력이다.
오늘 하루, 취사병으로서의 업무를 모두 마친 이강진은 저 녁 7시 반이 되어서야 오호만 상병과 함께 막사로 돌아올 수 있었오자마자 이강진은 그대로 뻗었다.
'아…… 죽겠다.…"
1박 2일 포상휴가 따내는 게 이리도 힘든 일이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하루 더 밖에 있고 안 있고의 차이 가 너무 크다.
게다가 이강진이 이번에 나가려는 휴가 시기는 단타 하기 딱 좋은 때다.
장이 조만간 호황을 이를 것이다. 그때 이강진은 더 많은 돈 들을 쓸어 담을 생각이었다.
정 급하면 황민수에게 부탁할 수도 있지만, 황민수는 요즘 가 게 일이 너무 바쁜 탓에 이강진저럼 단타를 할 만한 여건이 되 지 못했다.
'내가 직접 하는 게 가장 속 편하긴 하지.'
결론은 포상휴가를 어떻게든 최대한 많이 따내야 한다는 것 이다.
그러기 위해선 노력을 해야 한다. 이강진의 손에서 오늘 하루 동안 물이 마른 적이 거의 없었다. 이 정도 노력은 해야 포상휴 가를 나갈 자격이 있다.
하지만 힘든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취사병이 굉장히 빡센 보직이었군.'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세삼 깨달았다.
한 10분 정도 엎드려 있었다고 생각했건만. 벌써 청소할 시간 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쉬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네.'
일단은 샤워부터 해야 한다.
샤워로 짬내부터 씻어내고 싶었다.
'움직이자, 움직여!'
점호가 끝나고 침대에 누워 취침을 할 때까지.
아직 쥐사병의 하루가 끝난 건 아니다.
취사병 업무 이틀째.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 걸까.
국을 휘젓는 내내 이강진은 온몸이 쑤셨다.
힘들어 죽겠다는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걸까. 오호만 은 이강진을 보면서 외쳤다.
"강진아. 됐으니까 좀 쉬었다가 해."
"……알겠습니다!"
웬만하면 '아닙니다! 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던 이강진 조차 바로 GG를 칠 정도였다.
쉬는 동안 오호만은 이강진을 식당 뒤편으로 따로 불렀다.
일반 병사는 올 수 없는 곳.
그래서인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오호만은 담배를 하나 꺼내들었다.
"한 대 필래?"
"죄송합니다. 전 비흡연자입 니다."
"아, 그래? 미안. 내가 우리 중대 사람들 스타일을 잘 몰라서."
치익
스스로 불을 붙인 오호만은 담배연기를 쭉 내뱉었다.
"나도 한때는 비흡연자였지.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렇 게 담배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되어버렸더라."
"일이 힘들어서 그렇습니까?"
"맞아."
군대에 와서 담배를 배우는 사람들이 꽤 많다.
오호만도 그중 하나였다.
"물론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끊어야지. 근데 적어도 전역하기 전까지는 못 끊을 거 같다. 매번 밥하는 것도 지옥인데, 요즘 들어서 대대장님이 자꾸 우리한테 압박 넣으시잖아. 취사병들도 예외 없이 훈련 다 받으라고. 특히 행군. 아니, 이해는 하는데, 그 러고 나면 우리는 언제 밥 해? 밥 하다가 쓰러지면 대대장님이 우리 인생 책임져주는 것도 아닌데."
병사들끼리 모이면 간부의 뒷담화가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가 없다.
취사병이라고 간부들에게 불만이 없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일반 병사들보다 더 많은 축에 속했다.
"위생 검열 뜨는 날에는 며칠 동안 지옥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고. 하여튼 이놈의 취사병도 참 못해먹을 짓이야. 어휴."
다른 병사에게 물려주고 싶어도 못 물려준다.
취사병을 하고 싶다고 나서는 병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취사 지원 조사 현황만 봐도 답이 나온다. 중대를 통틀어서 이강진 혼자뿐이지 않았던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취사병 하겠다고 손들지 말 걸 그랬 네. 그때부터 내 군생활이 꼬인 거야. 하아."
누구든 과거의 일에 후회를 하게 마련이다.
이강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는 회귀를 간절히 원했고,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까 지 했다.
물론 입대 전날로 회귀해버렸다는 건 원치 않았지만 말이다.
담배를 내려놓은 오호만은 이강진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 내 이야기만 너무 했나 보네."
"괜찮습니다. 조금이라도 오호만 상병님의 기분이 풀리셨다 면 다행입니다."
"착한 녀석이네. 강진아. 너, 취사병으로을 생각 없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이강진은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그건 힘들 거 같습니다."
"쳇, 아쉽네."
이강진은 다른 곳에서 원하는 만큼 포상휴가를 뽑아낼 수 있 는 남자다.
굳이 취사병까지 맡아서 필요는 없었다.
대대장은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고 부대 근처에 있는 호수로 부리나케 향했다.
그곳에는 사복 차림의 한 남자가 낚싯대를 챙겨든 채 서 있었대대장은 그를 보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충! 성!"
눈앞에 있는 남자는 평 범한 존재가 아니다.
19사단을 이끄는 총수.
사단장이다.
그는 낚시로 휴가의 마지막을 보냈다.
한편, 연대장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대대장에게 눈치를 줬다.
뭔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듯한 눈빛이었으나, 사단장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때 마침 사단장이 말문을 열었다.
"근처에서 밥을 좀 먹으려고 했는데…… 하나같이 너무 비싸더 군. 맛도 없다고 하고. 그러다가 연대장하고 대화하던 중에 번 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지."
대체 무슨 생각일까.
침을 꼴깍 삼키는 대대장.
그에게 난데없이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
"자네 부대 밥이 아주 맛있게 나온다면서? 기왕 이렇게 된 거, 1075 대대에 가서 식사를 할까 하는데. 괜찮겠나?"
< 제39화. 취사 지원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