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공포의 대대 ATT (5)
소대장은 어느 새 잠에 빠져들었다.
CP 텐트를 혼자서 지키게 된 이강진.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별은 참 많단 말이지.' 군대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전마등을 비롯한 전역자들도 다시 사회로 돌아갈 때, 이 밤 풍 경과 이별하는 것을 꽤나 아쉬워했다.
물론 이강진은 아직 한참 멀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혼자서 감상에 젖어 있을 때.
고필증의 비명 소리가 잔잔한 새벽 분위기를 망가뜨렸다.
"으아아아악!!!"
꾸벅꾸벅 졸던 소대장도 놀라 일어났다.
"뭐, 뭐야기 어디서 비명 소리가 들렸는데?"
"고필중 상병입니다!"
이강진은 곧장 고필중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튀어갔다. 소대장도 부랴부랴 이강진의 뒤를 쫓았다.
맞은편에서 바지를 제대로 올려 입지도 못한 채 겁에 질려 뛰 어오는 고필중의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러십니까, 고필중 상병님?"
"바, 방금……!"
고필중은 손을 바르르 떨었다.
뒤늦게 도착한 소대장은 고필중의 상태를 살폈다.
"왜 그래? 귀신이라도 봤냐?"
"마, 맞습니다, 소대장님! 귀, 귀신입니다! 저쪽 폐가에서 귀신 이 튀어나왔습니다!"
"……뭐?"
고필중의 말을 들은 이강진과 소대장은 동시에 폐가 쪽을 바라봤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필중아. 네가 잘못 본 거 아니냐?"
"아닙 니다! 분명히 봤습니다! 폐가에서 막 빛이 번쩍였습니다! 제 눈으로 틀림없이 확인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이강진과 소대장을 향한 서운함이 복합적으로 묻어 나오고 있었다.
소란이 좀 컸던 걸까.
CP 텐트 안에서 단잠에 빠져 있던 행보관이 주섬주섬 옷을 챙 겨 입고 나왔다.
"뭔디 이리 시끄러워?"
고필증을 대신해서 소대장이 어떤 상황인지 행보관에게 전달 했다.
"필중이가 폐가 쪽에서 불빛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불빛 말입니까? 이상한데…… 저긴 사람 사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흐음."
행보관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직접 가서 확인해볼 수밖에 없겠군요."
고필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저는 못 갑니다! 아니, 죽어도 안 갈 겁니다!"
"허이구, 사내 녀석이 이런 걸로 벌벌 떨고 지랄이여."
혀를 찬 행보관은 이강진에게 손짓했다.
"강진이, 네가 나하고 같이 저기 좀 가보자. 소대장님은 그동안 CP 텐트 좀 지켜주셨으면 좋겠군요."
"아, 네. 알겠습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행보관님."
"허허.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행보관은 진짜로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이걸 확인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폐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가자, 강진아."
"예, 알겠습니다."
손전등을 들고 행보관과 함께 폐가 쪽으로 향하는 이강진.
'영 내키질 않는데.'
어쩌면 정말로 귀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강진은 초자연현상이니 뭐니 하는그런 것들을 잘 믿 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걸 결정적으로 믿게 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귀 트럭. 이강진은 도시 괴담 같은 존재에 의해 정말로 회귀에 성공했다.
과거로 회귀시켜주는 트럭도 있는데, 귀신이라고 없을까. 그렇다고 행보관 혼자서 저 위험한 곳을 보낼 순 없었다.
'진짜 이놈의 군생활…….'
이제는 하다하다 심령 현상 조사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겉모습만으로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충분한 폐가.
아니, 흉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외형이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함부로 들어갈 용기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산전수전 공중전을 넘어 우주전까지 다 겪어본 노장, 행보관은 달랐다.
"저쪽으로 들어가 보자."
"예, 알겠습니다."
오른쪽 통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애초에 문도 아니었다. 벽이 허물어져서 생긴 공간이었다.
'귀신도 귀신이지만, 집이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겠군.'
위험천만한 장소임에 틀림이 없었다.
내부는 보기와 다르게 꽤 넓었다.
군데군데 거미줄 같은 게 있어서 그런지 이동하는데 방해가 됐다.
뿐만 아니라 나무판자 같은 것들이 바닥에 다수 널려 있었다.
앞서가던 행보관이 이강진에게 주의를 줬다.
"조심해라. 바닥이 낡은 부분이 있으면 밑으로 확 꺼질 수 있 으니까."
"예. 행보관님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강진은 바짝 긴장한 상태로 폐가 내부를 살폈다.
'아무것도 없잖아?'
귀신은 커녕,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행보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필중이, 그 녀석이 똥 싸다가 헛것을 봤나 보군. 돌아가자."
"네."
아무런 소득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행보관과 이강진. 폐가를 막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음?'
이강진의 시선이 창가 아래쪽으로 고정되었다.
다른 곳은 먼지가 자욱하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유독 오른쪽 구석 쪽만 깨끗했다.
마치.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보이는데.'
새벽에 벌어진 귀신 소동은 결국 고필증의 착각으로 결론이 났다.
아침부터 이어진 대대 ATT 훈련.
오늘은 연대장이 방문하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훈련의 강도가 앞선 이틀에 비해서 헐씬 높았다.
어제 벌어진 귀신 소동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잔 고필중은 지 금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 밑에 짙게 깔린 다크서클이 그의 컨디션이 영 별로라는 걸 실시간으로 표현했다.
쉬는 시간에 안준렬은 고필중의 상태를 살폈다.
"필중아. 괜찮아?"
"……괜찮습니다. 졸려서 그런 겁니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다 싶으면 의무대라도 한 번 들렸다 와."
"아무래도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혼자서 보내기엔 좀 불안했기에 안준렬은 백우호를 따로 불 러서 고필증을 부죽하게끔 했다.
의무대로 향하는 고필중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이강진 은 어제 폐가에서 철수하기 전에 자신이 본 것을 다시 떠올렸
'누군가가 그곳에 들린 게 맞는 거 같은데.'
증거는 있다.
하지만 증거만 있고, 용의자가 없다.
후보조차 없다는 게 답답했다.
일단 병사들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시골 주민이 아닐까? 하지만 야밤에 폐가에 무슨 볼 일이 있어서 가 겠나.
그리고 그 시간에는 모두가 잠을 자고 있었다. 당시에 불이 켜 진 민가가 없었다.
'이상해.'
새벽에 봤던 창가의 흔적이 자꾸 눈에 밟혔다.
연대장 앞에서 실수 없이 무사히 훈련을 마친 1075 대대. 그리고 드디어 대대 ATT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고필중은 어서 이 밤이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트라우마가 꽤 심하게 남은 모양인지 저 녁에는 아예 화장실을 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는 불침 번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대신 안준렬이 고필 중의 빈자리를 채우기로 했다.
새벽 2시.
안준렬과 이강진은 부스스한 몰골로 텐트 밖을 나섰다.
불침번 근무교대를 마친 뒤, CP 텐트를 지키고 있는 통신반 장에게 인원 보고를 마쳤다.
CP 텐트 앞에 마련되어 있는 접이식 의자를 하나씩 차지해 앉 았다.
안준렬이 이강진에게 캔 커피를 내밀었다.
"마실래?"
"그거, 간부님들이 마시는 음료박스에서 꺼낸 거 아닙니까?"
"통신반장님이 주신 거니까 괜찮아."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이강진은 폐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안준렬이 물었다.
"필중이가 한 말이 신경 쓰이는 거야?"
"Alfi
이강진은 행보관과 함께 폐가를 들렀을 때 봤던 무언가의 흔적을 안준렬에게도 들려주려고 했다.
하나 그전에 잠시 자리를 비웠던 통신반장이 '으악!' 하고 비 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통신반장님!"
"폐, 폐가에서…… 불빛이……!!"
고필중이 했던 말과 같았다.
틀림없다.
'저곳에 뭔가가 있어!'
이강진은 그렇게 확신했다.
같은 일이 두 번이나 반복되었다.
결국 1중대 중대장은 통신반장과 행보관, 그리고 병사 셋과 함께 직접 폐가 수색에 나섰다.
안준렬과 이강진 다음으로 불침 번 근무를 서기로 예정되어 있던 병사는 황지웅과 곽분섭이었다.
불침번이 전부 다 폐가 수색 작전에 대동대면 안 된다. 그래 서 황지웅은 소대장과 함께 CP 텐트를 지키기로 했다. 겁이 없 기로 소문이 난 곽분섭만 안준렬, 이강진과 함께 수색조에 참가 하게 되었다.
폐가의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일까. 중대장은 침을 꿀꺽 삼켰
"정말 불빛이 보였다고?"
"예, 그렇습니다! 확실합니다!"
통신반장은 자신 있게 답했다.
이곳에 두 번이나 온 행보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행보관이 보기에는 헛걸음이다. 하지만 고필증에 이어서 목 격자가 또 나왔으니, 확인을 안 해볼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행보관이 먼저 앞장섰다.
그를 뒤따르던 곽분섭이 갑자기 어느 한 쪽을 가리켰다.
"저쪽에도 길이 있습니다."
짙은 어둠만이 가득한 좁은 통로였다.
그것을 보자마자 중대장은 몸서리를 쳤다.
통신반장도 마찬가지였다.
길이 두 갈래로 나뉜 이상, 인원도 따로 나눌 필요가 있어 보 였다.
행보관이 먼저 제안을 했다.
"두 팀으로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중대장님, 저쪽 통로 수색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제, 제가요?!"
중대장은 헛숨을 삼켰다.
그는 마음 같으면 행보관 곁에 딱 달라붙은 채로 있고 싶었 다.
하지만 체면이 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중대장은 행보관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중대장 조에 이강진, 곽분섭이 배치되었다.
"가, 가자!"
중대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가 든 손전등 빛도 떨렸다. 반면, 곽분섭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을 성큼성큼 잘도 나아갔다.
이렇게 겁이 없는 사람은 이강진도 처음 봤다.
앞서 가던 도중에 갑자기 위에서 우르르 하는 소리가 났다.
"뭐, 뭐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식겁하는 중대장. 반면, 곽분섭은 침착했다.
"위에 나무판자들이 떨어져 내린 겁니다."
"그…… 래?"
깊은 한숨을 내쉬는 중대장이었다.
그 와중에 이강진은 바닥에 불빛을 비줬다.
"발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이강진의 추즉대로 폐가에 누군가가 있다.
순간 곽분섭이 손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저기 입니다!"
"가자!"
"네!"
이렇게 된 이상, 이강진은 본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졌다.
폐가에 몰래 숨어든 존재의 정체를!
이강진과 곽분섭은 앞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뒤 에서 중대장이 '나도 같이 데려가!'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코너를 돈 순간.
다수의 불빛이 이들을 비췄다.
"헉;"
"누, 누구야!"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이강진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전방을 주시했다.
손전등을 든 채 놀란 얼굴로 이강진 일행을 바라보는 사람들.
인근 주민처럼 보이진 않았다.
수상한 외부인들.
이강진은 경계심을 놓지 않은 상태로 이들에게 물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던 겁니까?"
자초지좋을 물었다.
그제서야 일행의 대표로 보이는 남자가 입을 움직였다.
< 제38화. 공포의 대대 ATT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