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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25화 (125/347)

< 제38화. 공포의 대대 ATT (4) >

제38화. 공포의 대대 ATT (4)

곽분섭이 당당하게 손을 들어올렸다.

귀신같은 존재에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고필증은 곽분 섭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너, 괜찮겠어?"

"예. 어렸을 적부터 무서운 거 좋아해서 이런 건 익숙합니다."

"그, 그래?"

1분대 이등병 라인들은 하나같이 다들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기운상은 투스타의 아들, 성태강은 아이돌 줄신, 그리고 곽분섭은 근성과 깡다구가 있다.

이렇게 보면 1분대만큼 개성 넘치는 분대도 없을 것이다.

곽분섭 덕분에 안쪽 라인이 정해졌다.

어느 자리에 누가 누워 잘지 대부분 다 정해졌다.

아니, 한 명이 빠졌다.

"다들 잘 준비 끝났냐?"

1 부소대장이었다.

간부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부소대장이 병사들에게 물었다.

"나는 어디서 자면 돼?"

그때, 라인혁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부소대장님이 텐트 안쪽에서 주무시면 됩니다."

"내, 내가?"

화들짝 놀란 부소대장.

동공이 크게 흔들리 기 시작했다. 딱 봐도 당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라인혁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부소대장님, 안쪽에서 주무시는 거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오,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밖에서 자고 싶네. 하, 하하하!"

귀신 무서워하는 건 병사나 간부나 다를 바가 없었다.

대대 ATT 첫날은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새벽 6시 정각.

기상나팔 소리 대신 불침 번들이 각 분대의 텐트를 일일이 돌 아다니 면서 잠든 병사들을 깨웠다.

"기상입니다!"

"아침 점호 5분 전입니다."

눈을 뜬 이강진은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눈을 딱 떴을 때, 자신의 방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 상을 수십 번도 넘게 해봤다.

'빨리 휴가를 나가든가 해야지, 원.'

전역을 제외한다면, 답은 오로지 휴가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둘째 날도 대부분 상황조치 훈련으로 꾸 며 졌다.

그러던 도중에, 갑자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차가운 무언가가 이강진의 볼을 때렸다.

손으로 그 무언가를 스윽 닦아냈다.

"비?"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장대비가 쏟아졌다.

"우왓?!"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외쳤다.

"판쵸우의 꺼내서 입어라, 어서!"

"일단 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해!"

"저기 나무 밑이 좋을 거 같습니다!"

병사들은 허겁지겁 비를 피하기 시작했다.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도배되었다. 그러더니 일 기예보에도 나오지 않았던 소나기가 훈련을 방해했다.

우수수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병사들은 내심 이런 기 대를 품었다.

"비 오니까 오늘 오후 훈련은 짬처리 될 거 같지 않습니까?"

서일주가 기대와 희망에 가득 찬 상태로 물었다.

하지만 그건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부소대장은 "글쎄.'라는 말을 시작으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

"원래 이런 비는 금방 그쳐. 봐봐."

부소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빗줄기가 약해지고 있었다.

채 5분도 안 되는 기우였으나, 남기고 간 흔적들은 어마어마했다.

바닥이 온통 진흙탕으로 변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 다 전투화에 흙탕물이 튀겼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악은 역시 습도였다.

"이 빌어먹을 습도!"

"아 씨! 비가 올 거면 진지공사 때처럼 하루종얼 내리든가 하지, 습도만 잔뜩 높이고 갔네!"

병사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비가 그친 탓에 훈련은 다시 시작되었다.

안 그래도 습도 때문에 불쾌지수가 죄고치를 찍게 되었는데, 여기서 더 절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화생방 상황조치 훈련 시작하겠다. 지금부터 전 병력은 방독 면 착용한 채 훈련에 임하도록 한다. 실시!"

"시, 실시!"

방독면을 꺼내 보호두건까지 전부 착용한 병사들.

숨을 들이 마실 때마다 답답함이 온 몸에 퍼졌다.

방독면을 쓰고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강진은 마음 같으면 지금 당장 방독면을 바닥에 내팽개치 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무슨 잔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적 포탄 낙하!"

"적 포탄 낙하!"

또 다른 상황이 부여되었다.

병사들은 최대한 자세를 낮췄다.

잠시 후.

진영 가운데를 향해 한 여인이 병사들을 대동하고 빠른 속도 로 뛰어갔다.

오이향과 화학병들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방독면 마스크에 습기가 찬 탓에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관찰할 수 없었다.

머지않아 화생방 상황이 해제되었다.

그제야 병사들은 방독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푸하!"

"으아…… 땀 봐!"

"질식할 뻔했네!"

조금만 늦었더라면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병사들이 속출했을 지도 모른다.

둘째 날 훈련을 무사히 마친 병사들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분대별로 각 텐트 앞에 모여들었다.

라인혁이 성태강에게 신호를 보냈다.

추진해온 것을 가져오라는 신호였다.

고개를 끄덕인 성태강은 자신의 군장에 손을 뻗었다.

우르르!

추진해온 먹거리들이 한 가득이었다.

그것들을 보던 이강진은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렸다.

'지윤 씨가 줬던 고추참치를 깜빡했네.'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군장 안에 있는 고추참치를 꺼내려고 했다.

순간 이강진의 행동이 멈췄다.

그의 머릿속에 갈등이라는 이름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한지윤이 먹으라고 준 소중한 고추참치다. 분대원들과 같이 먹으라고 준 거긴 하지만, 뭐랄까…….

'독식하고 싶은데.'

고추참치가 욕심이 나서가 아니다.

한지윤이 준 물건이라서 그런 것이다.

결국 이강진은 군장에서 손을 떼고서 다시 텐트 앞으로 돌아 왔다.

백우호가 맨손으로 돌아온 이강진을 보면서 물었다.

"뭐 가지려고 간 거 아니었어?"

"응? 아니. 그냥."

대답을 얼버무렸다.

가슴 한 쪽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

그것은 아마도 '양심'이라는 녀석이 아닐까.

또 다시 취침시간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안준렬과 곽분섭이 텐트 안쪽 자리를 차지했다.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 훈련을 받느라 힘이 든 모양인지 두 사람은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다른 분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3시간 후.

이강진은 다시 눈을 떠야만 했다.

"강진아. 근무 시간이다."

"……일병 이강진. 예, 알겠습니다."

불침번을 설 시간이다.

터져 나오는 하품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텐트 밖으로 나왔다.

이강진과 같이 근무를 서기로 예정되어 있는 선임은 고필중 이다.

가장 먼저 이강진이 나오고 나서 뒤늦게 고필중이 나왔다.

새벽 1시.

딱 정각에 맞춰서 근무 교대를 했다.

전번 근무자들은 이강진, 고필중 조에게 좋은 정보를 흘렸다.

"CP 텐트에 컵라면 있으니까 먹고 싶으면 하나씩 꺼내서 먹 어. 행보관님이 허락하셨으니까 눈치 안 봐도 돼."

"오, 진짜?"

고필중의 눈이 반짝였다.

안 그래도 출출하던 찰나에 잘 됐다.

우선 이강진과 고필중은 각 텐트를 돌아다니 면서 인원수가 맞 는지 먼저 확인부터 했다.

그리고 텐트 실내 온도와 실외 온도를 체크한다.

여기까지 완료하는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CP 텐트로 향하자, 그곳에는 소대장이 졸린 눈으로 스마트폰을 매만지는 중이었다.

"충성 소대장님, 인원 현황 및 온도 보고하러 왔습니다."

"둘 다 이상 없고?"

"예, 그렇습니다."

"온도는 저기 현황판에 따로 적어둬라. 매 시간마다 적어두는 항목이 있으니까 거기다가 적으면 돼. 다 했으면 앉아서 좀 쉬 어도 된다."

"감사합니다."

소대장은 피곤한지 그 짧은 사이에 세 번의 하품을 연달아 내 뱉었다.

병사들 못지않게 간부 역시 피곤에 찌들 수밖에 없었다. 장교 중에서 막내인 소대장은 더더욱 그렇다.

고필중이 소대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대장님. 라면 먹어도 됩니까?"

"응? 어, 먹어."

"소대장님 것도 하나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손을 저었다.

"아니, 난 됐어. 아까 너희가 근무 교대하기 전에 하나 먹었거 드 …."

어쩌면 그것이 졸음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소대장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고필중은 이강진과 함께 라면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보급으로 나온 육X장 컵라면과 이온음료를 챙겨든 두 사람.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고 나무젓가락을 살짝 벌려 컵라 면의 뚜껑을 고정시켰다.

아직 여름 날씨라 하더라도 밤이 되면 은근히 쌀쌀해진다. 특 히 전방은 일교차가 유독 심하다.

한기를 느낀 고필증은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야상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네."

"많이 추우십니까?"

"많이는 아니고. 그냥 으슬으슬 떨리는 정도? 컵라면 먹으면 괜찮아지겠지."

추울 때 먹는 컵라면만큼 맛있는 음식도 없을 것이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컵라면을 사이좋게 하나씩 들었다. 후르릅!

뜨거운 면발이 두 남자에게 소소한 행복을 선물했다.

유독 군대에서 먹는 라면이 맛있다. 전역한지 20년이 지났어 도 이강진은 군대에서 먹은 라면만큼 맛있는 라면을 먹어본 적 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라면을 다시 맛보게 될 줄이야.

'그래, 이 맛이지!'

마치 라면에게 홀린 듯 정신없이 면발을 먹어치웠다.

국물까지 전부 싹싹 비웠다.

추위가 싹 가시는 그런 기분이었다.

고필중도 마찬가지였다.

"어휴, 라면이 왜 이렇게 맛있대."

"그러게 말입니다."

"하나 더 먹고 싶네."

"그러다가 체합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두 개는 오버다.

그리고 다음 근무자들을 위해서라도 라면을 남겨둬야 한다.

급하게 라면을 먹어서 그런 걸까.

갑자기 고필중의 뱃속에서 꾸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강진은 고필중의 뱃속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화장실 갔다 오셔도 됩 니다. 그때까지 저 혼자서 불침번 서고 있겠습니다."

"그, 그래? 미안하다. 강진아."

"아닙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땡 큐!"

화장지를 챙긴 고필중은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을 향해 나아 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고필중은 단독군장에 달려 있는 작은 손전등을 켰다.

"화장실이 어디였더라……."

1분대 텐트 근처에 있었다.

그 말인즉슨.

"하아, 씨 발."

폐가 근처에 화장실이 있다는 뜻이 된다.

"좆같네, 진짜."

고필중은 귀신이라는 걸 끔찍이도 싫어한다. 이제 와서 이강진에게 화장실 좀 같이 가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 큰 어른이 그런 추태를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자신은 선 임이기도 하고. 게다가 불침번 근무자가 둘 다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한 명은 CP 텐트 앞을 지켜야 한다.

"젠장. 어쩔 수 없지."

그냥 혼자 가기로 했다.

차라리 소변이었다면 굳이 화장실까지 갈 필요 없이 근처 아 무 곳에 가서 싸고 왔을 텐데. 대변은 그럴 수 없었다.

야외 화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고필증.

문이 나 있는 방향이 폐가 쪽이라는 것도 굉장히 불만이었다.

바지를 내리고 빠르게 볼 일을 보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야 좀 살 거 같네!"

초고속으로 볼 일을 마친 뒤에 바로 화장실을 나왔다.

그 순간.

고필중은 보고 말았다.

"헉…."

폐가 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 제38화. 공포의 대 대 ATT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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