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20화 (120/347)

제37화. 5분대기조 (4)

방심했다.

설마 2중대 중대장이 이렇게까지 악랄한 사람일 거라고는 미 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찌하랴. 상급자가 하라고 하니, 하는 수밖에.

"다음, 1중대."

그는 1중대 오대기들에게 밧줄을 내밀었다.

포승줄이었다.

"아무리 민간인이라 하더라도 위 병소 근무자들에게 위해를 가할 경우, 무력으로라도 제압을 해야 한다. 우리가 군바리에 군 인 찌끄레기라는 소리 듣고 다니긴 하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맞 고 다니기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안 그러냐."

"예, 그렇습니다."

"포승줄로 포박 한 번 해봐라. 거기 너."

중대장에게 가장 먼저 지목을 당한 이는 고필중이었다.

"상병 고필증."

"네가 나와서 한 번 해봐라."

"예, 알겠습니다."

고필중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잠시 후에 밝혀졌다.

두 손을 뒤로 넘기고 포승줄을 묶었다.

2중대 중대장이 포박 당한 병사에게 말했다.

"풀어봐라."

살짝 힘을 주는 순간.

포승줄이 아래로 주룩 흘러내렸다.

순간 2중대 중대장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상병 짬에 아직도 포승줄 묶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

"죄송합니다! 다리를 다쳐서 몇 달 쉬다 보니 까먹었습니다!"

"얼씨구? 까먹은 게 자랑이냐? 다음 오대기 순번에 너 보이 면 또 이거 시켜볼 테니까 그전까지 확실하게 숙지하고 있어라. 나 알지? 말로 끝나지 않고 직접 다 내 눈으로 확인해보는 성격이 라는 거."

"예! 알고 있습니다!"

2중대 중대장의 성격을 모르는 1075 대대 병사들은 없었다. 간부들 사이에서도 그는 유명했다.

물론 안 좋은 의 미로.

"거기 옆에 너."

"일병 이강진!"

이번에는 이강진이 지목되었다.

"1 중대 일병 대표로 나왔다고 생각하고 확실하게 묶어봐라."

이강진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병사가 풀지 못하게 확실히 꽉 묶을 생각이었다.

"아야야! 아저씨, 살살 좀 해요!"

"중대장님이 보고 계시니까 조금만 참아요."

상대방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강진이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다 묶었습니다."

"풀어봐라."

병사는 온 몸을 바동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움직이려고 해봐 도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못 움직이는 건 둘째 치고.

"아픕니다, 중대장님 이것 좀 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 녀석이. 그깟 것도 못 참고."

중대장은 이강진에게 포승줄을 풀어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무난하게 합격점을 받은 이강진.

그제야 2중대 중대장은 만족한 듯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

"몇 명은 잘하네. 그래도 미흡한 점이 한두 개씩 보인다. 다음 오대기 차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보완하도록.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좋다. 이상, 해산! 밥 먹으러 가라."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오대기도 끝이다.

내일까지 오대기를 차야 하지만, 적어도 상황 걸리는 일은 없 게 되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이강진과 고필중은 그제야 한숨을 돌 렸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혹시 세 번째 상황을 걸진 않겠지?'

그것은 사탄 수준을 아늑히 뛰어넘은 것이다.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양심이 있으면 세 번째 집합까지는 안 시키겠거니 하고 생각 했다.

실제로 저녁 점호까지 더 이상의 상황은 걸리지 않았다.

1부소대장은 점호를 진행하면서 고필증과 이강진을 한 번씩 훑었다.

"너희가 고생이 많구나. 주말에 난데없이 고생하고."

"상병 고필증. 부소대장님이 오늘 TV 연등 허락해주시면 오늘 고생한 거, 한꺼 번에 치유 받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절묘하게 틈을 파고 든 고필중.

그의 말에 라인혁이 맞은편에서 그에게 몰래 1따봉을 선물했 다.

다른 병사들도 기대감이 가득한 시선으로 부소대장을 바라봤 다.

부소대장은 피식 웃었다.

"하여튼 고필중, 저 녀석…… 오늘 10에 뭐 하냐?"

"'미 녀 8총사' 하는 날입니다!"

유명한 걸그룹에서 몇몇 멤버들이 나와 펼치는 리얼 버라이 어티 예능 프로그램, 미 녀 8총사.

걸그룹이 출연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군대 최고의 인기 프 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토요일 저녁 10시부터 11시까지가 방영 시간 이라는 것이었다.

재방송으로 봐도 상관은 없지만, 그러면 다음 주까지 기다려 야 한다.

그건 군인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부소대장은 마지못해 W 연등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것만 보고 자는 거다. 그 이상은 안 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부소대장님!"

여기저기서 1부소대장을 향한 고백이 쏟아졌다.

저녁 점호가 끝난 후에 이들은 자리에 누웠다.

시선은 티비에 고정시켰다.

잠시 후, 미녀 8총사 인트로 화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화에는 시청자들이 투고한 동영상을 보면서 미녀 8총사멤버들이 투고작들을 평가하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재미있는 투고 영상들이 많이 나왔다. 활짝 웃는 그녀들을 보 면서 라인혁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 이게 얼마 만에 리얼 타임으로 보는 미녀 8총사냐. 고맙다, 필중아. 강진아. 너희가 고생해준 덕분에 이렇게 티비를 다 보네."

"그러니까 앞으로 저하고 강진이 오대기 걸렸을 때 이상한 장 난치면 안 됩니다, 라인혁 병장님."

"하하하, 그래. 명심할게."

잠을 청하기 전까지 이들은 1시간 동안 눈과 귀가 행복해지 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탄약고 초소가 있는 산 중턱까지 올라선 정일문과 김철. 초소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지,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가면."

정일문이 답했다.

"오징어 간짬뽕."

"누구냐."

"북한군."

"용무는?"

"니 엉덩이 걷어 차주려고 왔다. 귀찮으니까 후딱 나와."

"짜식. 뭐 이런 거 가지고 귀찮다고 그러냐."

정일문의 동기인 주연구가 혀를 찼다.

"쯧쯧.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까 체력이 바닥이지."

"나도 차라리 니들처럼 밖에서 작업이나 했으면 좋겠다. 그러 면 적어도 개인정비 시간에는 쉴 수 있잖아."

보병이든 행정병이든 각자만의 힘든 점이 있는 법이다.

근무 교대를 마친 후에 정일문은 바로 총과 방탄모를 내려놓았다.

"어휴. 죽겠다, 죽겠어."

"고생하셨습니다, 정일문상병님."

"고생은 무슨. 이제 시작인데."

막 근무 교대를 끝낸 참이다.

여기서 1시간을 버텨야 한다.

간만에 행정팀이 탄약고 초소 근무에 나섰다. 오랜만에 근무 를 나오게 된 정일문은 초소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천장 쪽을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김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뭐하시는 겁니까?"

"가만히 있어 봐."

판자 하나가 분리되었다.

그 안에는 작은 나무 상자가 들어 있었다.

상자를 여는 순간.

"헉…."

김철은 헛숨을 삼켰다.

안에 각종 간식거리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부들조차 모르는 우리 병사들만의 비밀이지. 후후후."

"일병 달 때까지 이런 게 있다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래? 너랑 같이 근무 나왔던 선임들은 간식거리가 별로 안 땡겼던 모양인가 보네."

사탕 하나를 꺼내 입 안으로 털어 넣은 정일문은 김철에게도 초코맛 사탕을 하나 건넸다.

"먹어."

"잘 먹겠습니다."

입 안에 감도는 단맛.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대신에 간부가 오는지 잘 봐야한다. 들키면 끝장이니까."

"예, 알겠습……!"

김철의 말이 도중에 끊어졌다.

근처에서 수상한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일문 상병님! 앞에…… 뭔가가 있습니다!"

"멧돼지냐?"

"그 정도 덩치 되는 거 같습니다만…… 아, 아닙니다!"

김철은 분명 봤다.

그것은 멧돼지 따위가 아니었다.

"사, 사람입니다!"

-에에에에엥!

난데없이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이강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루 종일 사이렌 소리에 시달려서 그런가. 이제는 꿈속에서 도 사이렌 소리가 들리네.'

이 번에야말로 환청 이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번 또한 진짜였다.

"오, 오대기 비사아앙!!"

문을 열고 등장한 불침 번이 다급하게 외 쳤다.

병사들은 비몽사몽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현재 시각, 새벽 3시.

그제야 이강진은 이게 꿈이 아닌 현실임을 알아차렸다.

'설마 2중대 중대장이 또?'

일단 출동부터 하기로 했다.

반면, 고필중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습을 보였다.

"뭐야. 오대기라고? 진짜?"

"예, 실제상황입니다. 고필중 상병님!"

고필중의 입에서 걸쭉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시발, 개 좆같은! 무슨 삼연벙도 아니고, 하루에 세 번이나 비 상이 걸리냐!"

두 번 오대기 상황이 걸린 것도 모자라서 새벽에 실제 상황까지 벌어지다니.

최악의 오대기였다.

행정반에서 총을 찾아가는 동안, 당직이 이강진과 고필중에게 현재 상황을 들려줬다.

"탄약고 초소 쪽에서 수상한 사람이 목격되었다고 하니까 당 장 올라가 봐!"

"예, 알겠습니다!"

1075 대대 전체가 뒤집어졌다.

가장 먼저 준비를 마친 이강진은 바로 산으로 뛰어올라갔다.

고필중은 이강진에 이어 두 번째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와중에도 이강진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했다.

'무장공비인가?'

자신이 일병을 달았을 때, 이런 일은 없었다.

'그럼 대체 뭐지?'

약초를 캐러 다니던 산골 주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낮에 산을 탄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야심한 새벽에 산을 돌아다닐 이유는 전혀 없다.

'위험할지도 몰라.'

침을 꿀꺽 삼켰다.

탄약고 초소 근처에 도착했을 때, 김철이 이강진을 향해 외쳤

"강진아! 저쪽으로 갔어!"

"사람 맞아? 확실해?"

"어! 사복 입고 있던데, 나이는 젊어 보였어. 그리고 손에 뭔 가를 들고 있더라!"

들을수록 점점 더 수상했다.

때마침 고필중이 이강진과 합류했다.

"어느 쪽이래?"

"고필중 상병님 서 있는 곳 기준으로 오른쪽 방향이라고 합니다. 저기!"

누군가가 달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어딜 도망가려고!"

추격이 시작되었다.

상대방은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다.

버벅거리는 틈을 타 이강진이 그의 뒤를 바짝 ?았다.

김철의 말대로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무언가.

하지만 흉기처럼 보이진 않았다.

'저건 대체 뭐기에 도망치는 와중에도 끝까지 들고 있는 거 지?'

붙잡아서 확인해보면 된다.

일단 허락도 없이 군대 영지로 발을 들였기 때문에 침입자로 간주된다.

남자의 뒤를 쫓으면서 이강진은 냄새를 맡았다.

'이건 포상휴가의 냄새다!'

이강진의 발이 점점 빨라졌다.

한때 축구 선수를 꿈꿨던 이강진. 그는 중대 내에서…… 아니, 1075 대대를 통틀어서 가장 발이 빠른 남자였다.

산 속이라고 해도 이강진에게 큰 방해 요소가 되진 못했다. 군 생활을 하면서 산은 지겹도록 타봤기 때문이었다.

반면, 상대방은 산행이 익숙하지 않았다.

거의 뒤를 다 따라잡았을 때였다.

이강진은 그대로 몸을 날렸다.

쿵!

"아악!"

남자를 그대로 뒤에서 깔아뭉갰다.

그 와중에도 남자는 손에 들린 무언가를 놓지 않았다.

이강진은 뒤따라온 고필중에게 외쳤다.

"고필중 상병남 제가 붙잡고 있을 테니까 포승줄로 어서 묶 으시기 바랍니다!"

"니가 해, 임마! 나, 포박 못하는 거 봤잖아!"

그랬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떠올린 이강진은 결국 고필중에게 남자를 잠시 붙잡고 있으라고 한 다음에 직접 포승줄로 남자의 양 손목을 묶었다.

그제야 남자가 들고 있던 게 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 제37화. 5분대기조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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