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19화 (119/347)

제37화. 5분대기조 (3)

지휘통제실 앞으로 집합한 오분대기조 인원들.

줄동 마쳤다고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현장 보존하는 절차부터 시행하겠다. 나와서 해보도록."

본부중대부터 3중대까지.

오분대기조 행동 수칙에 적혀 있는 그대로 움직여야 한다. 조금이라도 틀린다면…….

"처음부터 다시!"

중대장의 시간 되돌리기 스킬이 발동된다.

꼴찌를 해서 그런 걸까. 유독 2중대가 엄하게 평가를 받았다. 소집된 지 20분 동안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오늘은 이쯤 해서 마치도록 하겠다. 아직 마음에 안 드는 부 분이 있지만, 그 부분은 이번 주 토요일에 다시 시켜보도록 할 테니 바짝 긴장하고 있어라."

"예, 알겠습니 다!"

"내가 당직사령 차고 있는 동안에는 항상 긴장해라. 난 다른 사람들처럼 착하지 않으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2중대 중대장이었다.

소집 해제 후, 각 중대원들은 막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걸어가는 게 더 빨랐기에 1중대 오대 기 인원들은 도보를 택했다.

도중에 이강진은 고필중의 뒷덜미를 가리켰다.

"고필중 상병님. 뒤에 샴푸 거품 남아 있습니다."

"어디?"

"여깁니다."

전투복 옷소매로 대충 슥슥 닦은 고필중은 짜증 섞인 목소리 를 냈다.

"하여튼 2중대 중대장님 진짜…… 안 그래도 군생활 빡센데, 쉴 때에는 좀 쉬게 해주면 안 되나?"

오대기도 사람이다.

물론 군인으로서 훈련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그 래도 적당히라는 게 있다.

2중대 중대장은 적당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토요일날 보자. 이 말은 곧 토요일에도 상황을 걸겠다는 뜻이 었다.

"이놈의 오대기, 빨리 떼버리고 싶네."

그건 이강진도 같은 심정이었다.

토요일에 남들 다 쉴 때 오대기만 군장 차고 상황 조치 훈련 받으면 기분이 상당히 안 좋을 거 같다.

'빨리 휴가를 쌓아두든가 해야지, 원.'

답은 합법적 탈주, 즉 휴가뿐이다.

오늘도 하루라도 빨리 군대에서 벗어 나야겠다는 다짐을 굳히 는 이강진이었다.

군장과 의류대에 짐을 쑤셔넣은 황지웅은 이강진을 불렀다.

"강진아. 미안한데 같이 짐 좀 옮겨줄 수 있어?"

"예, 알겠습니다."

의류대 끈을 한쪽 어깨에 짊어진 이강진은 그와 함께 사열대 앞으로 향했다.

레토나를 정차시켜놓은 채 황지웅을 기다리고 있던 강속우가 손짓을 했다.

"짐 빨리 실어둬. 늦었다."

"알았다,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레토나 뒤에 짐을 실어놓은 후.

황지웅은 도와준 이강진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고맙다."

"일병 이강진. 아닙니다. 그보다 무사히 잘 다녀오시기 바랍 니다."

"뭐, 대단한 거 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그냥 깔짝 하고 오면 되니까 걱정은 하지 마."

차기 분대장으로 지정된 황지웅은 오늘부터 3박 4일 동안 분 대장 교육대에 입소하게 된다.

그곳에서 분대장으로서 교육을 받은 후에 다시 이곳으로 복 귀할 예정이다.

분대장을 달기로 예정되어 있는 병사들은 한 번씩 이렇게 분 대장 교육대에서 교육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나중에 이강진이 분대장을 달게 된다면, 그도 같은 길을 걸을 터.

점점 멀어지는 레토나의 모습을 보면서 이강진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쳤다.

"분대장 교육대라…."

교육은 19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진행된다. 이강진이 퇴소했던 바로 그곳이다.

"그때 만났던 조교들은 지금쯤 웬만하면 다 전역했겠지."

훈련소에서의 기억을 잠시 떠올려본 이강진.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이 군생활도 나중에 전역하고 나면 추억으로 남게 될 터.

하지만 아름다운 추억은 아니다.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추억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다.

'오늘만 지나면 내일은 주말이군.'

그러나 주말이 주말이 아니다.

'내일도 그 빌어먹을 오대기 상황 터지겠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주말에는 활동복을 입은 채로 아침 점호를 받는다. 그러나 오 대기들은 주말에도 예외다.

이제 이틀만 오대기를 차고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전에 이들 앞에 커다란 시련이 눈앞에 놓어 있었다.

오늘, 과연 사이렌이 울릴지 안 울릴지. 이것이 초미의 관심 사였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닌 오대기 인원들.

침대에 누워 있어도, 트리 니티 스타가 나오는 가요 무대를 봐 도.

속은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강진은 차라리 이런 생각도 해봤다.

'그냥 오전에 상황조치 훈련 한 번 해버리고 마는 게 더 편할 텐데.'

그러면 적어도 남은 시간은 편하게 쉴 수 있으리라.

이강진의 이런 바람을 듣기라도 한 걸까.

-에에에에엥!

오전 11시.

사이렌이 울렸다.

"오대기 비상!!!"

병사들이 목청껏 외쳤다. 안에서 조용히 티비를 보고 있던 고 필증과 이강진은 출동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도 화요일에 비해서는 훨씬 나았다. 그때는 상황이 걸릴 지 안 걸릴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토요일에는 2중대 중대장이 대놓고 상황을 걸겠다고 선언을 한 덕분에 대처하기 가 수월했다.

두돈반에 올라 탄 병사들.

"줄발한다!"

운전병인 소기원 병장이 곧장 시동을 걸었다.

저 멀리서 2중대원들이 탄 차량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안 늦었다.

지휘통제실에 전원 집합한 오대기들.

2중대 중대장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좀 더 빠릿빠릿하게 못 움직이냐."

"죄송합니다!"

역대급으로 빨리 뭉친 오대기였지만, 2중대 중대장에게는 느 림보 거북이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소집 이후에 다시 화요일에 했던 것을 그대로 반복했다.

속으로 욕지거리를 간신히 삼키 면서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움 직이는 이들.

너무 많이 삼킨 탓에 점심도 안 먹었는데 벌써부터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오전 11시 반이 되어서야 오대기들은 다시 막사로 복귀할 수 있었다.

주말에 오대기 비상이 걸린 것만으로도 굉장히 짜증날 만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상황 걸었으니까 이제는 안 걸겠지?"

"또 걸면 그게 사람이냐? 악마지."

"오늘은 늘어지게 잠이나 자야겠다."

1중대 오대기들은 안심을 했다. 2중대 중대장이 상황을 자주 걸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두 번 이상 건 적은 아직까지 없었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푹 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샘솟았다.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 무엇을 할까.

순간 이강진의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후임병에게 물었다.

"철민아. 오늘 미세스 블레스 1, 2화 재방송 하는 날 아니냐?"

"이병 오철민. 예, 그렇습니다."

한지윤이 나오는 드라마, 미세스 블레스.

공중파 수목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었기에 이강진은 리얼 타 임으로 미세스 블레스를 시청하지 못했다.

저녁 10시부터 11시까지 방영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 에 군인들은 누워서 자야 한다.

'지윤 씨가 나오는 드라마니까 꼭 챙겨봐야지.'

이건 녹화를 해서라도 챙겨봐야 한다.

한지윤이 나오는 드라마, 미세스 블레스는 첫 방영부터 화제 몰이를 하고 있었다.

개성적인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드라마 팬들의 눈 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대로 쭉 승승장구할 수 있기를. 이강진 은 진심으로 바랐다.

드라마 시청을 끝내자마자 이강진은 전화박스로 향했다.

그곳에는 기운상과 곽분섭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충성!"

"충성. 전화 기다리고 있는 거야?"

"예, 그렇습니다. 이강진 일병님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

"아니, 됐어. 너희 먼저 해. 내가 나중에 왔는데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지."

간혹 선임 중에서 후임이라고 차례를 무시하고 자기가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강진은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이강진이 괜찮다고 말하자, 기운상과 곽분섭은 안도하는 표 정을 지었다.

오래 기다릴 것 같진 않았다. 아마 5분 정도? 그쯤이면 충분 하지 않을까.

자리가 하나 생겼다. 기운상은 곽분섭부터 먼저 안으로 들여 보냈다.

그런 뒤, 기다리기 심심한 모양인지 이강진에게 먼저 말을 걸 었다.

"이강진 일병님은 누구한테 전화 하시려고 오신 겁니까?"

"나? 나는……."

한지윤한테 전화를 하기 위해 왔다.

드라마 잘 봤다고. 그리고 축하한다고. 이 말들을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화 상대가 한지윤이라는 걸 오픈하고 싶진 않았다.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어머니한테 하려고."

"그렇습니까. 역시 이강진 일병님. 효자십니다!"

"하하…… 고맙다."

이강진은 속으로 어머니께 사과의 말을 전해야만 했다.

전화박스 자리가 2개가 연달아 났다.

기운상과 함께 각자 하나씩 차지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지윤 씨 전화번호가……."

수첩으로 전화번호를 확인하지도 않고 알아서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이강진이 부대 안에서 전화를 거는 사람은 단 세 명뿐이다.

어머니, 황민수, 그리고 한지윤.

그러다 보니 한지윤의 전화번호를 자연스럽게 외우게 되었다.

"공일공, 육사칠……."

번호를 하나하나씩 정성을 담아 눌렀다.

마지막 번호 하나만을 남겨두었을 때였다.

-에에에 에에엥!

처음에 이강진은 귀를 의심했다.

사이렌 소리다.

혹시 환청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오대기 비사아아앙!!!"

병사들의 외침이 이강진의 의구심을 싹 날려버렸다.

'미친! 하루에 상황을 두 번이나 건다고?!'

오늘, 2중대 중대장의 기분이 상당히 별로인 듯했다.

설마 상황이 두 번이나 걸릴 줄은 아무도 예상 못했다.

심지어 이강진조차.

이들은 차를 타고 내려가면서도 '이거, 꿈 아니지?'라는 얼떨 떨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상황이 발생된 장소도 지휘통제실이 아닌 다른 곳이 었다.

위병소에 도착한 오대기들은 빠르게 하차를 했다.

그곳에는 어이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야. 이 녀석들아. 나 땐 말이야. 그러니까……."

마치 국어책을 읽는 것처럼 어색한 어투로 말을 하는 한 병사.

누가 봐도 1075 대대에 근무하고 있는 병사다.

병사는 대사를 까먹은 모양인지 주머니 속에 있던 수첩을 들 고서 다시 연기에 몰입했다.

"내가 오늘 8시부터 14시까지 시내에서 소주 다섯 병을 마시 고 이곳까지 걸어와서 위병소 근무자들에게 시비를 거는 설정 …… 이 아니라, 아무튼 술을 마셨는데, 그래서…… 중대장님! 이 부분, 뭐라고 쓰신 겁니까?"

"그냥 적당히 난동 피우는 척만 해. 일일이 다 읽을 필요는 없 어."

연줄, 권빈수 대위, 각본도 권빈수 대위

작품명은 '위병소 앞 취객'. 개봉하면 바로 망할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면서 고필중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흘렸다.

"아주 쌩 쇼를 하네."

말 그대로 쇼(Show)였다.

대충 어떤 설정인지 보여준 2중대 중대장은 오대기들에게 외 쳤다.

"갑자기 취한 민간인이 위병소에 와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 그 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각 중대별로 상황조치 훈련 실시하도 록 하겠다."

병사들의 한숨 소리가 깊어지는 건 덤이었다.

< 제37화. 5분대기조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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