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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11화 (111/347)

제35화. 방송의 힘 (1)

육군 포스터 홍보 모델이 되어준 덕분에 이강진은 7박 8일이 라는 적지 않은 포상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럼 휴가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이강진은 1분대원 선임들에게 휴가 신고를 짧게 마쳤다.

잘 다녀오라는 분대원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이강진은 곧장 사열대로 향했다.

원래는 콜택시를 부르려고 했었다. 혼자 나간다고 하면 택시 비가 부담될 수 있지만, 이강진은 택시비를 신경 쓸 정도로 돈 이 없는 게 아니었다. 몇 만 원이 나오든 간에 이강진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휴가 나가서 수백, 수천 배를 더 벌어오면 되니까.

그러나 부대까지 올 수 있는 콜택시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오늘따라 택시들이 바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시내버스를 타고 나가야만 했다.

'배차 시간이 그지 같아서 얼마나 기다려야 좋을지 모르겠네.'

위병소를 막 통과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이강진을 불렀다.

"휴가 나가는 거야?"

군대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

오이향 소위가 이강진을 불러 세운 것이다.

"충성. 예, 그렇습니다."

"택시는? 설마 버스 타고 가려고? 여기 배차가 너무 안 좋아 서 버스 기다리 려면 한 시간은 있어야 할 텐데."

"콜택시도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버스 기다려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

고민하던 오이향이 갑자기 문득 이런 제안을 해왔다.

"그럼 내가 시내까지 바래다줄게."

"아, 아닙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됩니다."

"괜찮아. 안 그래도 비품 사러 시내까지 나갈 예정이었거든. 좀 당겨서 미리 간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행보관 차를 타고 가면 그나마 마음은 편했다. 주식이라는 공 통점이 있어서 시내까지 가는데 줄곧 그 이야기를 하면 적어도 어색해 할 틈은 없으니까.

하지만 오이향은 달랐다.

자가 차를 타고 간다 하더라도 시내까지 족히 30분은 걸린다.

'그때까지 무슨 이야기를 한담.'

저번에 포스터 촬영을 마치고 둘이서 밥 먹을 때에도 어색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어떻게든 거절해보려 했지만, 오이향은 거세게 밀어붙였다.

"설마 내 차 타기 싫어서 그런 거야?"

"아닙니다! 타겠습니다!"

간부를 적으로 돌리고 싶진 않았다. 비록 서로 중대는 다르지 만, 그래도 가급적이 면 간부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좋다. 그래야 견제를 덜 받기 때문이다.

결국 오이향의 차를 얻어 타기로 한 이강진.

일분일초도 소중한 휴가 시간을 아끼게 된 건 좋지만…….

'지불해야 할 대가가 좀 크군.'

어떻게든 되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이강진은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 번째는 오이향이 이강진에게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

물론 이성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는 별개의 관심 이었다. 계급은 이강진보다 한참 높은 오이향이지만, 그녀는 이강진의 활약을 동경하고 있었다.

"사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남자 아이들하고 같이 어울려 놀면서 히어로 놀이를 자주 했었 거든. 위기로부터 사람들을 구해주는 히어로의 모습을 꽤 동경 했었지. 그래서 처음에는 소방관? 그쪽으로 지원하려고 했었는 데 잘 안 돼서 결국 군인이 되었어. 근데 너도 알겠지만, 전시 상황이 아니고선 평상시에는 줄곧 작업 밖에 없잖아. 그렇지?"

"예, 맞습니다."

"한때는 '내가 진로를 잘못 택했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었는 데, 너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어. 내가 어느 곳에, 어느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건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한 게 아니었어. 다른 사람들이 곤란에 쳐했을 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용기.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대. 네가 그것을 나에게 깨닫게 해준 거야."

이강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내 팬임을 자처하는 건가.'

좋은 현상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솔직히 이강진은 잘 모 르겠다.

일단 오이향이 이강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게 되 었다.

하지만.

'이런 걸로 괜히 나 귀찮게만 안 했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낌새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오이향이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았다.

끼이이 익!

"뭐, 뭡니까?!"

이강진은 산에서 들짐승이라도 튀어나온 줄 알았다.

하나 그게 아니었다.

"속도 좀 줄이려고 한 건데?"

브레이크 좀 살살 밟을 수 없나?

이렇게 항의하고 싶었던 이강진이었으나…….

'상대는 간부다, 간부! 참자!'

급브레이크는 기본이오, 롤러코스터를 연상케 하는 과감한 코너링까지 선보였다. 덕분에 이강진의 몸은 좌, 우로 급격하게 쏠 렸다.

'운전 더럽게 못하네!'

이것이 이강진이 오이향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낸 두 번째 요소였다.

목숨을 건 드라이 빙 끝에 겨우 시내에 도착한 이강진은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차에서 내리려던 순간.

땅!

뭔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다이아몬드가 두 개. 중위 계급장이었다.

"화학장교님 겁니까?"

"아, 응. 내 거야. 다음 달에 중위로 진급하거든."

"미리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휴가 잘 다녀오고. 나중에 괜찮다면 따로 이야기 나 눠보자. 네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가 내 이야기만 하다가 끝난 거 같아서 많이 아쉽거든."

"하하…… 네, 알겠습니다."

생긴 것과 다르게 굉장히 터프한 여자였다.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한 이강진은 그제야 자유를 만끽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안전운전 하면서 가겠지?"

더 이상의 난폭 운전은 사양하고 싶었다.

청주로 내 려오자마자 이강진은 곧장 어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저 왔어요. 저 없는 동안 별 일 없었죠?"

"별 일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이강진의 어머니는 그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이강진의 것이었다.

"너 없는 사이에 사방에서 연락이 막 오더구나. 전화며 문자 며…… 하루에 몇 통이 오는지 새어볼 수도 없을 정도였어."

이것이 인기 스타가 된 남자의 삶일까.

누구에게 연락이 왔는지 천천히 살펴보기로 했다.

'어차피 휴가 동안 할 것도 없으니까.'

차 보러 다니고, 장 열렸을 때 단타 좀 하고. 이 정도가 다였다.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뒹굴 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강진의 어머니는 밖에 나가서 사람 좀 만나보라고 권유했 지만, 만날 사람이 없다는 게 함정이었다.

친구를 제대로 사귄 적도 없고.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았던 사람들은 연락이 끊겼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일 뿐.

회귀 이후는 달랐다.

국민적 영웅으로 급부상한 이강진. 그를 알아본 옛 지인들이 오랜만에 이강진에게 먼저 연락을 해온 것이다.

전화 통화 목록에 그리운 이름들이 한가득이 었다.

그중에서 유독 가장 눈에 들어오는 이름 하나.

이용진.

'용진이 형도 나한테 전화 했었구나.'

물류창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를 계기로 친해진 다섯 살 연상 의 형이었다.

22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애 아빠가 된 젊은 가장. 어떻게든 아내와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이용 진은 돈 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강진과 상황은 달랐지만, 그래 도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한다는 목적 때문인지 동질감을 느꼈다.

이 동질감 덕분에 이강진과 이용진은 다른 알바생들보다 빠 르게 친해졌다.

이강진의 집에도 몇 번 놀러온 적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도 이용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전화나 한 번 해볼까.'

과연 받을까?

이게 좀 걱정이었다.

그래도 한때 친하게 지냈던 형이었기에 근황이 궁금했다.

용기를 내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그리웠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용진이 형?"

-강진이냐?

"응, 맞아. 형은 잘 지내지?"

-나야 요즘 정신없이 지내고 있지. 아무튼 전화해줘서 고맙다. 안 그래도 티비에서 너 나오기에 깜짝 놀라서 연락했었는데. 설마 군대에 가 있을 줄은 몰랐지. 휴가 나온 거야?

"어. 나, 참모총장님한테 표창장 받았거든. 그때 포상휴가도 같이 받았어."

-이야……! 우리 동생, 장하네! 내가 한 턱 쏴야겠구먼. 나, 내일하고 모레 비번이거든. 그때 시간 한 번 내줘라.

"물론이지."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할 때, 이강진은 그제야 이용진이 청주 가 아닌 서울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기에 이강진이 서울로 올라가기 로 했다. 이용진이 먹을 거를 사준다는데, 청주까지 내려오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내일 저녁 6시에 서울역 근처에서 봐, 형."

-오냐. 내일 보자!

어머니, 황민수, 한지윤 이외에 다른 사람과 휴가 때 따로 약 속을 잡아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활발한 대인관계는 사회생활에서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사람들 좀 많이 만나고 다녀야겠군.'

군대에서 지겹도록 만나고 있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다.

* * *

하루 만에 다시 청주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은 이강진은 곧장 버스에 탑승했다.

올라가면서 그는 잊었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용진이 형이 어디에 취직했는지 물어보질 못했네.'

청주 토박이를 자처하던 이용진이 서울로 올라갔다는 건, 분 명 어딘가에 취직을 했다는 뜻일 터.

고작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 서울까지 올라가진 않았을 거 라고 생각했다. 홀몸이라면 가능하지만, 이용진은 가정을 책임 지고 있는 남자다. 서울로 올라가는 데엔 그만한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뭐, 가서 물어보면 되겠지.'

어차피 오늘 만나기로 하지 않았던가. 모르면 물어보면 그만이다.

서울역은 여러 차례 와본 적이 있었기에 손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2번 줄구에서 만나기로 한 이강진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한 남자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다.

"형! 여기야, 여기!"

"강진아!"

이용진의 걸음이 빨라졌다.

이강진을 보자마자 그는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이게 대체 얼마만이냐!"

"글쎄…… 한 2년? 그 정도 된 거 같은데."

회귀 이전의 기간까지 포함하면 22년 정도가 될 것이다.

이강진에겐 너무나도 그리웠던 얼굴이었다.

"뭐 먹고 싶어? 오늘 형이 살 테니까 다 말해 봐."

"그럼 간만에 목에 기름칠 좀 해도 돼?"

"물론이 지! 자, 가자. 괜찮은 가게 알고 있거든. 그쪽으로 데려 가줄게."

이용진이 데려간 가게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20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겨우 한 테이블을 차지했다.

세트 메뉴를 주문한 뒤, 두 남자는 먼저 나온 소주로 가볍게 목을 축였다.

"크으……! 좋네, 좋아! 우리 동생하고 오랜만에 술잔 기울이 니 까 더 맛있는 거 같네."

"그러게. 그나저나 용진이 형. 요즘 무슨 일 하고 있는 거야?"

무엇 때문에 서울까지 올라왔는지가 궁금했다.

벌써 취기가 올라오는지 이용진은 벌게진 얼굴로 대답했다.

"별 건 아니고. 그냥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어."

예상외의 대답에 이강진은 잠깐 혼란을 겪었다.

< 제35화. 방송의 힘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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