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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107화 (107/347)

< 제33화. 진지공사 (3) >

제33화. 진지공사 (3)

헐레벌떡 뛰어오는 당직사병의 모습에 행보관은 불안감을 느꼈다.

"위병소라고? 거기 담이라도 무너졌냐?"

그동안 비가 너무 많이 왔다. 1075 대대 곳곳에 침수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산을 타고 흘러내리는 토사물에 견디지 못하고 담벼락이 무너지는 곳도 적지 않았다.

행보관은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큰일이 벌어졌다.

"부대 앞에 민간 버스 하나가 전복되었습니다!"

"뭐?!"

차라리 담벼락이 무너져 내린 게 더 다행일지도 몰랐다. 담벼 락은 다시 복구하면 되니까.

그러나 교통사고는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다!

행보관은 병사들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지금 즉시 작업 중지하고 위병소로 달려간다! 분대장들! 각 분대 인솔해!"

"알겠습니다!"

"1 분대! 나한테 집합해라! 어서!"

"시간 없어! 빨리 가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1중대 인원들.

행보관 역시 옷이 젖건 말건 일단 뛰고 보기로 했다.

본부중대, 2중대, 그리고 3중대보다 1중대가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행보관의 진지공사 욕심에 의해 밖에서 한창 작업 중 이었다. 그러다 보니 출동도 가장 빨랐다.

위병소를 통과했을 때, 병사들은 눈앞에 벌어진 참사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강진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버스 전복 사고 같은 건 없었는데.'

과거에 있었던 일이든 아니든. 일단 사람들부터 구해내기로 했다.

일반 시외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져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져 있었다.

바로 옆에는 논두렁이가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2차 사고가 발생할 것이다.

행보관이 외쳤다.

"버스 옆으로 넘어가지 않게 단단히 잡고 있어라! 그리고 가 벼운 놓들이 위로 올라가서 창문 깨고 승객들 구줄해!"

"알겠습니다!"

1중대 병사들이 버스에 달라붙었다.

묵직한 무게를 가진 버스라 하더라도 장정이 50~60명씩 달 라붙으니 그래도 지탱할 만했다.

이강진이 성태강과 기운상을 불렀다.

"내가 올라갈 테니까 좀 도와줘!"

"예!"

"이강진 일병 님, 제 손 밟고 올라가시 면 됩 니다!"

성태강이 깍지 낀 양 손을 내밀었다.

기운상도 성태강과 마찬가지로 이강진이 버스에 올라가기 쉽 도록 발판 역할을 자처했다.

이강진의 뒤를 따라 병사들 다섯 명이 추가로 버스 위에 올라 섰다.

몇몇 창문은 깨져 있었다.

'깨진 창문은 안 돼!'

구줄용으로 사용할 순 없다. 괜히 저 깨진 창문으로 사람들을 끌어올렸다가 창문 조각이 살에 파고들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러면 더 큰 부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강진은 판쵸우의를 벗었다. 팬티 한 장만 걸친 모습이 되었 지만, 사람 목숨이 달린 일에 까짓것 쪽팔린 게 문제랴.

"민채군 상병님!"

이강진의 부름에 민채군이 고개를 돌렸다.

"부상당한 사람들은 판쵸우의로 밧줄 만들어서 올려 보내는 게 어떻습니까!"

찰과상 정도만 입은 사람들은 성태강과 기운상이 한 것처럼 군인들이 발판 역할을 자처해서 사람들을 창문 위로 올려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부상이 심한 사람들은 그럴 수 없었다.

민채군은 이강진의 의견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다들 강진이가 하는 말 들었지? 판쵸우의 가져와서 묶어!"

그동안 이강진은 밑으로 내려가 승객들의 상태를 살폈다.

운전기사까지 포함해서 총 여섯 명의 승객이 있었다.

대부분은 고령이었다.

정신을 잃은 할머니에게 다가간 이강진.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신 곳은 없나요?"

"다, 다리가……."

다행히도 부러지거나 하진 않은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상태도 살폈다.

첫 번째로 부상 여부를 확인한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나머진 괜찮았다.

한편. 위에서 판쵸우의 밧줄을 만든 민채군이 고필중과 함께 아래로 내려왔다.

이강진은 자신이 파악한 환자의 상황을 빠르게 공유했다.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 다리가 많이 아프시답니다. 그리고 나 머지 분들은 괜찮으신 거 같습니다."

"알았어. 그럼 이분만 우리가 판쵸우의로 위까지 끌어올리자. 나머지 분들은 먼저 위로 올려 보내고."

이강진과 민채군, 고필중 세 명이 할머니를 제외한 나머지 승객들을 위로 올려 보냈다.

위에서 승객들을 붙잡아 바깥까지 끌어올렸다.

이제 할머니 한 명만 구출하면 된다.

민채군이 고필중에게 지시했다.

"필중아. 나하고 강진이는 위로 올라가서 애들이랑 같이 판쵸 우의 끌어올릴 테니까, 네가 밑에서 할머니 떨어지지 않도록 잘 받히고 있어라!"

"예, 알겠습니다!"

고필중만 남고 나머지는 다시 버스 위로 향했다.

비는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민간인들을 구출하겠다는 군인 들의 의지를 꺾진 못했다.

"민채군 상병님! 끌어올리시면 됩니다."

"하나, 둘…… 셋!"

"으라차차차!"

평소에 갈고 닦은 노가다 근육들이 울부짖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여 럿 뭉치니 할머 니 한 명 정도는 손 쉽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강진이 할머니를 그대로 붙잡아 안아 올렸다.

때마침 현장으로 출동한 구조대원들이 이강진으로부터 부상 당한 할머니를 인수인계 받았다.

버스 승객, 전원 구줄!

무사히 작전을 마치고 버스 아래로 내려온 병사들.

그러자 갑자기 주변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짝짝 j

"잘했다!"

"멋있어요!"

사건 현장을 발견하고 돕기 위해 온 민간인들이 이강진과 병사들에게 환호를 보냈다.

군대 내에선 병역의 의무라는 이름 아래에 노예처럼 지내던 병사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들은 영웅이 되었다.

1075 대대 1중대의 평가는 근처 시민들에게 칭찬을 받은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다.

큰일을 치루고 부대로 복귀한 병사들.

이강진과 1분대원들의 시선이 티비에 집중되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젊은 병사들이 빗길에 미끄러진 버스 안의 승객들을 구해냈습니다.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이명진 기자 를 통해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명진 기자.]

[이명진입니다. 저는 지금, 사고가 벌어졌던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아직도 현장에는 사고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요. 저기 보 이는 1075 대대의 병사들이 폭우 속에서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냈다고 합니다. 그때의 상황을 목격한 시민을 모시고 짧게 인터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어땠나요?]

[어휴, 말도 마세요. 갑자기 앞에 있던 버스가 막 흔들거리더 니, 논두렁이 쪽으로 확 기울어졌다니까요! 얼마나 놀랐는지…… 저희끼리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택도 없었죠. 근데 갑자기 저 쪽 부대에서 군인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구해줬어요. 영웅이 죠, 영웅!]

인터뷰에 협조한 시민은 1075 대대 1중대 병사들을 크게 칭 찬했다.

1분대원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우리가 영웅이란다."

"뭐…… 그래도 사람들 목숨 구해줬으니까, 영웅 맞지 않습니까?"

"그런가?"

이들은 아직도 얼떨떨했다.

이강진도 같은 심정이었다.

군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다이나믹했던 하루는 처음 겪었다.

'회귀하니까 별 희한한 일을 다 겪네.'

그래도 나쁜 일은 아니니까 기분은 좋았다.

갑자기 라인혁이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엇가 영상도 나오는데?"

"그게 정말입니까?"

병사들이 시 민들을 구줄하는 모습을 누군가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듯했다.

도중에 영상을 시청한 아나운서가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그가 이 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하필이면……."

"팬티바람일 때의 모습이냐."

속옷 한 장만 걸치고 사람들을 구줄하는 모습이 뭐랄까. 분명 좋은 일을 하곤 있는데, 복장이 참 낯설었다.

특히 이강진의 모습이 아주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었다.

전국민들이 이강진의 속옷 자림을 보고 있으리라.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쥐구멍이 어디 있더라.'

당분간 잠적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 * *

버스 구줄 사건 덕분에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한동안 '1075대대 병사들'이라는 키워드가 1위를 차지했다.

이강진의 이름도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병사들의 복장이 아주 큰 화제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뻐해야 좋을지. 아니면 창피해야 할지. 참으로 오묘한 기분 이었다.

이 와중에 독보적인 승리자가 있었다.

바로 중대장이었다.

부대로 돌아온 중대장은 1중대 병사들을 집합시켰다.

"기뻐해라! 육군참모총장님께서 우리 부대에게 표창을 수여 하시기로 했다!"

그러나 병사들은 솔직히 확 와 닿지가 않았다.

차라리 포상휴가나 주지.

이런 바람이 더 컸다.

하지만 중대장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다.

중대장의 진급에 플러스 요소로 작용할 테니 말이다.

사실 중대장은 당시 사건 현장에 없었다. 다른 부대에 가서 볼 일을 보고 있었는데, 부대로 복귀하니 난데없이 1075 대대 1중 대가 국민적 영웅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얻어걸린 성과였다.

잔뜩 흥분한 중대장은 몇 명의 병사들을 지목했다.

"강진하고 채군이, 그리고 태강이."

"일병 이강진!"

"상병 민채군!"

"이병 성태강!"

"너희 셋은 이 중대장하고 같이 내일, 육군본부로 간다."

"……?!"

뜬금없이 육군본부를?

이강진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저희가 병사들 대표로 표창 받으러 갑니까?"

"정확하다. 실제로 활약한 건 너희들인데, 우리 간부들만 가 면 좀 그러니까. 나하고 소대장, 행보관님, 그리고 너희 셋. 이렇 게 갈 거니까 오늘 저녁에 준비 다 해둬라. 가서 육군참모총장 님이 직접 표창장 수여해주실 테니까 최대한 복장 단정하게 하 고."

"……."

그래도 참모총장이 부대로 오는 것보단 나았다. 만약 그렇다 고 한다면, 병사들은 오늘 밤을 새서 청소를 해야 할지도 몰랐 으니 말이다.

이강진과 민채군이 뽑힌 이유는 복잡하지 않았다.

공개된 영상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사람이 바로 이 둘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성태강은 왜 뽑혔을까.

뻔했다.

'연예인이니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사용하는 확실한 카드가 바로 연예인이다. 군 홍보 효과를 위해서라도 일부러 성태강까지 명 단에 넣기로 했다.

집합이 끝나고 이강진은 곧장 생활관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내일 참모총장 앞에 서야 했기에 할 일이 많아졌다.

'가서 A급 전투복 옷도 다려야 하고…… 전투화 광도 내야겠군.'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행정반에 있던 김철이 이강진을 찾았다.

"강진아. 전화 왔어."

"누구한테?"

"어머니한테서. 아마 아까 뉴스 보고 전화하신 거 같던데?"

"알았어. 곧 갈게."

행정반으로 향한 이강진은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강진아! 몸은 좀 어떠니? 다친 곳은 없고?

"네, 괜찮아요. 그보다 티비 보시고 연락하신 거죠?"

-그래. 갑자기 뉴스에 네가 나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우리 아들 덕분에 막 주변에서 연락 오고 난리도 아니야. 호호! 엄마 는 아들이 자랑스러워.

의도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강진은 강제로 스타가 되어 버렸다.

< 제33화. 진지공사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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