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0화. 이발의 신 (4) >
제30화. 이발의 신 (4)
"코스로즈?"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통산반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처음 듣는데."
"유명 연예인 몇몇이 소속되어 있는 중견급 연예 기획사입니다. 거기에 소속된 연예인 중에 최청식이라는 남자 연예인이 있 는데, 최청식은 아실 겁니다."
"아! 그 사람이 거기 소속이야?"
"예."
최청식. 공중파 채널의 공채 개그맨 출신으로, 현재는 나름 인 지도 있는 예능 프로그램 MC로 활약하고 있는 중이다.
통신반장도 잘 아는 연예인이었다.
"최청식은 알지. 근데 그 사람 소속사는 몰랐네."
"앞으로 점 점 오를 겁니다. 지금 사두면 재미 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통신반장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알았다. 오늘 가서 매수할 수 있는 만큼 해둘게."
"예. 하지만 명심하셔야 합니다. 매번 오르는 종목은 없습니다. 언젠간 떨어지기도 할 겁니다. 전 그 타이밍까지는 모릅니다. 어디까지나 통신반장님 감으로 타이밍을 잡으셔야 합니다."
정보를 줄 수는 있지만,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통신반장도 거기엔! 동의를 했다.
하지만 이강진이 한 말에는 거짓말이 하나 섞여 있었다.
코스로즈 종목은 정확히 세 달 뒤에 큰 폭으로 하락할 것이 최청식 때문이다.
'그쯤에 최청식이 소속사에게 소송을 걸겠지.'
계약 문제를 가지고 소속사와 크게 다툴 것이다. 그 사건을 계 기로 거물급 연예인들이 동시에 코스로즈와 갈라서게 된다.
이때부터 코스로즈는 쭉 하향세로 돌아선 다.
만약 통신반장이 운이 좋게 일찌감치 발을 핸다면 다행이지 만.
'통신반장의 성격상 그렇진 않겠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다가 훅 가는 거다.
통신반장이 딱 그런 타입이다.
눈앞에 있는 이득만 노리다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쩔 수 있 다.
그걸 늘 조심해야 한다.
일과 시간이 끝나갈 때쯤.
통신반장이 조용히 장허국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장허국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통신반장과의 마찰 때문이었다.
통신반장은 한숨을 푹 내쉬 었다.
"2박 3일짜리 포상휴가, 두 개 받아냈다. 너희끼리 알아서 쓰 면 돼."
"…?!"
방금 통신반장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장허국은 이해하지 못했다.
"포, 포상휴가 말씀이십니까? 어제까지 만 하더 라도 안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자세히 생각해보니까 니들이 고생 많이 한 게 맞기도 하고. 그리고 행보관님도 이번만큼은 이상하게 관대하셔서 어떻게 하 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그러니까 군말하지 말고 그냥 받아."
"하하! 예, 알겠습니 다! 감사합니 다, 통신반장님!"
살다 살다 통신반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될 줄이야.
그만큼 놀랄 만한 일임을 뜻했다.
통신반장과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장허국은 바로 통신분과 분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기뻐해라! 포상휴가 2개 따냈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우와아아!!"
"역시 장허국 병장님이십니다!"
"장허국! 장허국! 장허국!"
순식간에 영웅으로 등극하게 된 장허국.
분대 분위기가 죄고조로 향할 때쯤, 한 병사가 장허국을 찾았
"충성. 일병 김철입니다. 장허국 병장님, 근무편성표 때문에 말씀드릴 게 있는데 잠깐 괜찮으십니까?"
"근무? 어, 괜찮아."
분대원들을 진정시킨 뒤에 김철과 함께 행정반으로 향했다. 행정반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철이 모니터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다음 주 월요일 근무편성표입니다. 둘번초에서 초번초로 야 근 근무 수정할까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나야 좋지."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김철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혹시 장허국 병장님이강진이한테 뭐 부탁하신 거 있었습니 까?"
"내가? 강진이한테? 그런 거 없는데?"
이강진이 장허국한테 머리 좀 잘라달라고 온 적은 있어도, 그 런 적은 없었다.
"아까 우연히 들은 건데, 강진이가 통신반장님한테 통신분과 가 이번에 고생 많이 한 거 같으니 포상휴가 좀 챙겨주시면 안 되겠냐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강진이 가?"
"예."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점이 하나 있었다.
"내 말도 안 듣는 통신반장님이강진이 말을 왜 들어줘?"
"주식 정보 몇 개 흘려줘서 그런 거 같습니다."
"아…."
이제야 사건의 내막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통신반장이 태도를 달리하게 된 건 결국 이강진이 뒤 에서 수고를 해줬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
"죄송합니다. 저는 장허국 병장님이강진이한테 같이 통신반 장 설득해줄 수 있겠냐고 따로 부탁하신 줄 알았습니다."
"아니, 네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결과는 좋게 나왔 으니까. 그나저나 강진이가 그랬단 말이지."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을 하는 게 인지상정.
이번 일을 모른 척 한다는 건 장허국 성격상 말이 안 된다.
이강진 덕분에 고생한 후임들에게 포상휴가를 챙겨주게 되었고, 분대원들 앞에서 망신당하지 않게 되었다.
기
"강진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생활관에서 잠깐 쉬고 있을 겁니다."
"그래? 고맙다, 철아!"
빠르게 사라지는 장허국의 뒷모습을 보면서 김철은 의미심장 한 미소를 몰래 지었다.
"강진아!"
1생활관 문을 벌컥 연 장허국은 오자마자 이강진을 찾았다.
잠깐 눈 좀 붙이고 있던 라인혁은 덕분에 화들짝 놀라 깼다.
"아잇, 깜짝이야! 뭔 일이야!"
"강진이 좀 빌릴게."
"강진이를? 왜."
"이야기할 게 있어서 그래. 강진아, 잠깐 나 좀 보자."
"예, 알겠습니다."
갑작스런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강진은 침착했다.
마치 장허국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고 있는 것처럼.
장소를 옮긴 장허국은 머리를 긁적였다.
말을 해야 하는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 니까 말이다……."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장허국을 대신해 이강진이 물었다.
"통신반장님이 포상휴가 주기로 하신 것 때문입니까?"
"어, 그래. 그거."
"괜한 참견이었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장허국 병 장님하고 통신분과를 돕고 싶 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할 입장인데도 이강진은 도리어 죄송 하다고 사과했다.
장허국은 고개를 거세게 가로저었다.
"너 혼내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부른 거지. 여하튼 내 체면 살려줘서 정말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분대원들 앞에서 그렇게나호언장담을 했는데, 통신반장의 완 고한 태도에 한때는 어찌 되나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 고민을 이강진이 말끔하게 해결해준 것이다.
"아닙니다. 해야 할일을 한 것뿐입니다."
이강진은 겸손했다.
만약 김철이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장허국은 이강진이 베푼 은혜를 평생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너, 휴가 나가기 전에 머리 손질해야 한다고 했었지?"
"예, 그렇습니다."
"내가 머리 잘라줄게. 그것 말고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허국 병장님."
"내가 더 고맙지."
결국 이강진의 작전이 통했다.
위이잉!
경쾌한 바리깡 소리.
이강진의 짧은 머리카락들이 바닥 아래로 툭툭 떨어져 내렸
"자, 끝났다. 어때, 마음에 들어?"
"예. 완벽합니다!"
괜히 이발의 신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군대 머리는 역시 장 허국에게 맡겨야 한다.
백우호와 다르게 머리카락 한을 삐져나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구레나룻도 자연스럽게 다듬어져 있었다.
사재 미용실에서도 이 정도 퀄리티는 구현하기 힘들 것이다.
군인 머리 한정으론 역시 장허국을 따라잡을 사람이 없다.
"지금 당장 휴가 나가고 싶은 기분입 니다."
"하하하! 그 정도냐?"
"예. 감사합니다, 장허국 병장님."
"그래. 가서 머리 감고."
"알겠습니다!"
세면실로 향하는 이강진의 발걸음은 굉장히 가벼웠다.
머리를 감은 뒤에 1생활관으로 돌아가던 이강진은 때마침 맞 은편에서 오는 김철과 마주치게 되었다.
씨익 웃은 이강진은 김철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도와줘서 고맙다, 철아."
이강진의 작전에 큰 공을 세운 숨은 조력자.
그가 바로 김철이었다.
김철은 장허국과 통신반장이 말다툼을 했다는 걸 확인하자마 자 이강진에게 바로 이 사실을 공유했다. 뿐만 아니라 이강진 덕분에 통신반장이 포상휴가를 물어다 줬다는 걸 장허국에게 알 린 것도 김철이었다.
"나중에 PX 또 쏴라."
"물론이지."
두 말하면 잔소리다.
4박 5일 포상휴가를 떠나게 된 이강진은 아침에 행보관의 차 를 얻어 타고 시내로 향했다.
운전대를 돌리던 행보관이 문득 이런 질문을 꺼냈다.
"주명이한테 들었다. 네가 코스로즈라는 종목을 추천했다고 하던데."
"예, 맞습니다."
"나도 가지고 있는 종목 몇 개 처분하고 그쪽 사둬 야 하나."
이강진은 바로 부정했다.
"안 그러셔도 됩니다. 행보관님 지금 넣어둔 종목이 수익성이 더 좋습니다."
"그러냐? 그러면 말아야지."
행보관까지 사지로 몰아넣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통신반장은 차라리 이번 일로 크게 한 번 데여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나는 주식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말이다.
'오히려 통신반장 같은 타입은 주식에 손을 안 데는 게 좋지.'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이강진은 통신반장에게 도움을 준 거 나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일까. 딱히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한 번 데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식에 도전하겠다고 한 다면…….
'그건 자기 손해일 뿐이지.'
어차피 남 일이다. 이강진은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이강진은 행보관에게 인사를 건넸다.
"바래다주셔서 감사합니다."
"휴가 잘 즐기다가 오고. 하루에 한 번씩 부대로 전화하는 거 잊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충성!"
유격 훈련이 끝나고 맛보는 첫 사회의 공기.
'달콤하다, 달콤해.'
이발의 신에게 은총을 받으려고 머리를 많이 굴렸으니. 사회에서 머리 좀 식히다가 갈 생각이었다.
이강진은 새로운 집 주소가 아닌 기존의 집 주소를 먼저 찾았 이미 이사를 가고 난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이곳에 왔
"예전에는 여기서 5년 이상을 더 살았는데."
주식으로 성공하기 이전이어서 계속 이곳에 신세를 져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
미래 지식 덕분에 돈을 모을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이강진 의 어머니가 매번 꿈꾸던 예쁜 집으로 이사했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렸다.
'다신 이곳에 올 일 없겠지.'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났다.
가난했던 시절을 계속 떠올리게 만드는 집이었기에 이강진은 이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곧장 새로 이사 간 집으로 향했다.
주소는 미리 받아뒀다.
힘찬 걸음으로 골목길에 들어섰다.
저 멀리 보이는 2층짜리 집 하나.
이강진의 어머니는 예전부터 자신만의 화단을 만들고 싶어 했다. 새로 이사 간 집에서 그 꿈을 마음껏 펼치는 중이었다.
온갖 꽃들이 집을 한층 더 예쁘게 수놓고 있었다.
문 앞에 멈춘 뒤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이강진.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그 시작을 알리듯 초인종 소리가 오늘따라 경쾌하게 울려 퍼 졌다.
< 제30화 이발의 신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