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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95화 (95/347)

제30화. 이발의 신 (1)

신병위로휴가를 나갔다가 중대로 다시 복귀한 기운상은 눈앞 에 펼쳐진 황당한 광경에 말을 잃었다.

여기도 편지, 저기도 편지.

행정반에 보이는 거라고는 온통 편지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뭡니까?"

한숨을 푹 내쉬 던 정일문 상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네 맞후임 때문이잖아."

"저한테 맞후임이 있습니까?"

"뭐야. 분대에서 말 안 해줬냐? 아, 말 못해줬을 수도 있겠다. 신병 들어온지 하루밖에 안 됐으니까."

휴가를 다녀오고 나니 맞후임이 생겼다.

자신에게 후임이 생겼다는 말이 기쁘긴 하지만…….

이 편지 사태의 주범이 맞후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본인처럼 후임도 범상치 않은 녀석이라는 걸 단번에 눈치 챘다.

"대체 누구입니까?"

"네 후임의 정체? 그건 말이다…… 아, 마침 우호하고 저기에 같이 오네."

백우호와 함께 걸어오는 남자.

분명 첫 만남일 텐데도 불구하고 기운상은 1분대에 새로 전 입 온 신병의 얼굴과 이름을 알 것 같았다.

"헉! 여, 연예인 아닙니까?! 그 KGE의 리더!"

"잘 아네."

행정반에 들어온 백우호가 기운상을 발견했다.

"운상이 왔냐?"

"충성 뒤에 서 있는 그 사람이 정말 제 후임입니까?"

"어. 굳이 소개 안 해줘도 되겠지? KGE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 잖아."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7인조 보이그룹, KGE.

10대부터 40대, 50대까지 대부분은 KGE를 알고 있었다.

기운상도 마찬가지였다.

이제야 맞선임을 처음 접하게 된 성태강은 늦은 인사를 건넸

"충성! 이병 성태강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운상 이 병님!"

"어? 어…… 나도 잘 부탁해."

'기운상 이병님'이라는 말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후임이 생기니 자신도 어느 정도 짬을 먹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뿌듯함도 잠시.

"운상아. 기왕 이렇게 된 거, 너도 이거 같이 나르자."

백우호가 편지더미를 가리켰다.

장정 세 명이 달라붙어도 옮길 수 있을지 어떨지 감이 잘 안 올 만큼 양이 어마어마했다.

"읏차!"

편지가 가득 담긴 박스들을 하나씩 든 채 1생활관으로 향했 다.

이 편지들의 정체가 뭘까 궁금해 하던 기운상은 이제야 사건 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성태강이 있다. 그리고 방금 전, 정일문 상병이 성태 강 탓에 이런 편지들이 쌓이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즉, 이 편지들은 성태강한테 온 팬레터들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인기였다. 유명한 아이돌 가수라는 건 기운 상도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인기가 폭발할 줄은 몰랐 다.

한 사람이 받은 편지 개수로 따진다면, 아마 1075 대대가 창 설된 이례에 역대급일 것이다.

틀림없다.

1생활관으로 들어서자, 라인혁이 기운상의 등을 탁! 쳤다.

"우리 막내, 휴가 복귀하자마자 고생이네. 아니지, 이제 막내 라고 부르면 안 되겠구나. 새로운 막내가 들어왔으니까."

오랜만에 1분대 전원이 한 생활관에 모이게 되었다.

실로 오랜만이다.

라인혁이 갑자기 이런 제안을 했다.

"간만에 다 모였는데, 단체로 PX라도 갈까?"

"아, 라인혁 병장님. 저하고 태강이는 늦게 합류해도 됩 니까?"

백우호의 말이었다.

"왜. 뭐 할 거 있어?"

"태강이 머리 깎아주려고 합니다. 오늘 행보관님이 위생 검사 실시할지도 모른다고 아까 철이가 귀띔해줬습니다."

"그러고 보니……."

유심히 성태강의 두발 상태를 관찰하는 라인혁.

"좀 자르긴 해야겠네. 신교대 이발병들 실력이 완전 엉망이었 나 보네. 들쑥날쑥 하고."

"동기들끼리 서로 잘라주다 보니 그런 거 같습니다. 하하하."

그 와중에 기운상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백우호 일병님. 이발병 결국 따내신 겁니까?"

"후후. 그래. 내가 이 이발병 자리 하나 얻어내려고 얼마나 고 생을 했는지 아냐? 고우삭 병장한테 가져다 바친 바나나 우유 개수만 하더라도 30개는 될 거다."

고우삭 병장이 바나나 우유를 좋아한다는 걸 알려준 이는 동 기인 이강진이었다.

이강진이 정보를 흘려준 덕분에 백우호는 근 20일 동안 꾸준 히 고우삭 병장에게 바나나 우유 한 개씩을 헌납했다.

달짝지근한 걸 마시고 싶을 때쯤에 한 개.

목이 마를 때 한 개.

심심할 때 한 개.

계속해서 바나나 우유를 헌납했다. 이런 정성이 결국 하늘에 …… 아니, 고우삭 병장의 마음에 닿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을 가능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강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운상이, 너도 잘라줄까?"

"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오냐! 안 그래도 내가 요즘 연습을 엄청 해뒀거든. 기 대해도 좋다!"

이 말을 믿는 사람은 기운상 말고 아무도 없었다.

이강진은 몰래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운상. 불쌍한 녀석.'

그의 머리카락들의 명복을 빌어주기로 했다.

위이이이잉!

오늘따라 바리깡 소리가 이렇게 무섭게 들린 적이 있을까. 백우호의 이발 솜씨는 누가 봐도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첫 타자가 된 성태강의 머리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구레나룻도 제대로 정리 안 되어 있고. 머리카락의 높낮이도 제각각이다.

후발대 멤버들과 함께 하기로 결심한 이강진은 성태강의 머 리 상태를 보면서 이런 소감을 드러냈다.

"만약 KGE 팬들이 지금 태강이의 모습을 봤다면, 우호 너는 죽을 목숨일 거다."

"아, 아직 바리깡이 손에 안 익어서 않아서 그렇다니까! 몇 번 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져!"

익숙해지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병사라면, 본인이 스스로 연습 대상이 되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자신의 소중한 머리를 희생시켜야 하는 건데. 누가 스스로 이 희생을 자처할까.

당연히 아무도 없다. 그러다 보니 백우호는 초강수를 두게 되 었다.

자기보다 짬 안 되는 후임들을 대상으로 연습을 하기로 한 것 이다.

결국 짬 안 되는 불쌍한 이등병들은 눈물을 머금고 백우호의 이발 연습의 희생양이 되었다.

성태강의 뒤를 이어 기운상이 의자에 앉았다.

기운상은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휴가 갔다 온 다음이어서 참으로 다행이 라고.

위이잉!

다시 한 번 백우호의 바리깡이 움직였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바리깡의 궤도가 한 번 크게 엇나갔다.

뒤에서 지켜보던 성태강이 헛숨을 삼켰다. 불길하기 그지없 는 반응이었다.

"왜. 태강아, 뭔 일이야. 말해봐."

기운상이 그를 재촉했다.

성태강이 먼저 입을 열려고 하기 전에 백우호가 말을 가로챘

"아,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아주 작 은, 정말로 아주 작은 땜빵 하나 생겼을 뿐이야. 그, 그렇지, 태 강아?"

"그, 그게……."

얼버무리려고 했던 백우호였으나, 이강진의 한 마디로 인해 모든 게 다 파투났다.

"500원짜리 동전만 한 땜빵이 아주 작은 거냐. 제대로 구멍 냈 구 먼."

대참사다.

분위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눈치만 보던 백우호가 억지웃음을 흘렸다.

"하, 하하! 요, 요즘은 이게 유행이야! 머리에 땜빵 하나 딱 내 주면 개성 넘치잖아. 이런 게 바로 리얼 힙합 스타일이지. 안 그 러냐, 태강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답을 회피했다.

아무리 선임이라도 동조를 해줄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다.

이건 후자 쪽에 가까웠다.

결국 사고를 치고 만 백우호. 하지만 기운상은 이런 걸로 백 우호에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맞선임이니까.

"저, 저는 괜찮습니다, 백우호 일병님. 어차피 휴가 나가려면 한참 멀었으니까, 그때까진 괜찮을 겁니다."

"그래! 그런 마인드지!"

괜히 기운상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기라도 하면 어쩌 나 쫄아 있던 백우호는 다시금 미소를 찾았다.

백우호가 기운상의 선임이어서 다행이다.

만약 후임이었더라면, 백우호의 군생활은 끝난 거나 마찬가 지다.

우여곡절 끝에 성태강과 기운상의 머리를 모두 이발해준 백 우호는 이제 이강진에게 관심을 돌렸다.

"강진아. 너도 자를래? 내가 아주 잘해줄게."

이강진은 대답 대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일 뿐이었다.

일병 정기 휴가가 얼마 남지 않은 이강진인데, 백우호에게 머 리를 맡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한지윤이 직접 이강진을 보러 청주까지 오 기로 했다.

가급적이 면 꽃단장을 해야 한다.

이강진은 통신분과가 모여 있는 생활관을 찾았다.

"충성. 일병 이강진입니다. 혹시 장허국 병장님 계십니까?"

"장허국 병장님? 지금 사지방 가 있을 텐데? 통신반장님하고 같이 작업 중이셔."

"이 시간까지 작업하시는 겁니까?"

"부대 검열 오기 전에 사지방 빨리 원상복구 시켜둬야 한다고 행보관님께서 엄청 닦달하셨으니까. 우리도 방금 전까지 작업 하다가 왔다."

1075 대대에도 사지방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태껏 사용이 불가능했다.

이유가 있었다.

이강진이 자대에 전입 오기 전, 여름에 갑자기 비가 폭우처럼쏟아 내렸다. 이때 당시만 하더라도 사지방은 조립식 건물로 막 사 옆에 따로 동떨어져 있었다.

여기까진 괜찮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다음이다.

배수로 작업이 덜 된 모양인지, 아니면 비가 너무 많이 쏟아 져 내렸는지. 사지방이 침수되고 만 것이다.

이 때문에 안에 있던 컴퓨터 10대가 모조리 다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신막사 2층 빈 공간에 사지방을 새로 만 들기로 했다.

하지만 컴퓨터도 새로 사야 하고, 책상도 사야 하고. 구해야 할 물건이 한두 개가 아니다보니 작업이 계속 늦어지게 되었다.

거의 1년 가까이 질질 끈 것이다.

이제 겨우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상급 부대에서 검열을 나온다고 하니, 부랴부랴 사지방 재오픈에 박차 를 가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통신분과만 고생 중이었다.

'이러면 골치 아픈데.'

장허국 병장은 1중대에서 '이발의 신'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이강진은 그에게 자신의 머리 손질을 맡기려고 했다.

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과연 장허국이 이강진의 머리 손질을 맡아주려고 할까?

게다가 장허국 병장은 슬슬 이발병 업무에서 손을 뗄 생각이 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가 머리 손질을 맡아줄 확률은 줄어든다.

'큰일인데.'

적당히 PX 몇 번 사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건만.

이러면 그 이상의 각오를 굳혀야 할지도 모른다.

'일단 가서 말이라도 붙여보자.'

속으로 걱정만 해봤자 무슨 소용이랴.

부딪혀보고, 안 되면 그때 걱정하면 된다.

사이버 지식 정보방, 통칭 사지방으로 향한 이강진. 멀리서부터 작업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허국야! 케이블 타이 다섯 개만 가져다 줘라!"

"예, 알겠습니다!"

통신반장과 장허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지방 문 위에 전선을 보기 좋게 정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충성."

"강진이냐?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혹시 나한테 볼 일 있어 서?"

통신반장의 눈빛에 기대감이 감돌았다. 이강진에게 주식 잘 하는 법 좀 전수받으려고 계속해서 도전해보는 통신빈장이었지 만, 영 기회가 생기질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장허국 병장한테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통신반장.

"허국아. 강진이가 너한테 할 말 있다니까 5분만 쉬었다가 하자. 그리고 강진아. 나중에 나하고도 꼭 이야기 좀 하자. 알겠 지?"

"예, 알겠습니다."

통신반장의 집착은 이젠 거의 스토커 수준이다.

< 제30화. 이발의 신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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