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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94화 (94/347)

제29화. 빈틈을 보여라 (2)

회귀 이전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는 이강진.

황지웅과 고필중은 노골적으로 성태강을 싫어했다.

하지만 라인혁과 안준렬이 있어준 덕분에 대놓고 성태강을 괴 롭히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황지웅, 고필중과 다르게 두 사람은 성태강을 좋게 봤기 때문 이었다.

물론 이강진도 성태강 편이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성태강은 일을 굉장히 잘한다. 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적극적으로, 열심히 임하려고 한다.

이른 나이에 그 힘들다는 연예계에서 구르고 구르다보니 자 신이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이강진이 성태강을 신경 쓸 일은 거의 없었다.

알아서 잘하는 후임이 니까.

그러나 황지웅과 고필중의 성태강 견제는 걸림돌이다.

두 선임과 성태강의 갈등은 일찌감치 해결해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태강아. 전투화 어디서 닦는지 알려줄 테니까 잠깐 따라올 래?"

"이 병 성 태강! 예, 알겠습니다!"

일부러 성태강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이강진.

사열대 앞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전투화는 실내에서 닦으면 안 돼.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닦 아야 하니까 잘 기억해둬."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아까 너무 경황이 없어서 묻는다는 걸 깜빡한 게 있었다.

"아까 나를 알고 있다는 것처럼 보였는데. 누구한테 나에 대해서 듣기라도 했었나?"

"신교대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전설의 훈련병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고, 그 사람의 이름이 이강진이라고 조교들이 입버릇 처럼 이야기했습니다."

"현무중대 나왔나 보네."

"예, 그렇습니다."

이강진이 신교대에서 임팩트를 제대로 남기긴 했다.

그게 아직도 유효하게 작용할 줄은 몰랐다.

'뭐, 아무튼 그건 그렇다고 치고.'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솔직하게 말할게. 사실 황지웅 상병님하고 고필중 상병님은 너를 좋게 안 보고 있어. 그건 어렴풋이 눈치 챘지?"

"예, 그렇습니다."

연예계에서 눈칫밥만 5년 가까이를 먹었다. 연습생 시절까지 고려한다면 근 10년에 가깝다. 성태강이 이런 걸 눈치 못 챌 리 가 없다.

"네가 특별히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남자 연예인 이 군대랑 얽히면 좋은 이야기보다 나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그러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진 마."

이름하야 '편견'이다.

단지 연예인이라고 모두가 다 우호적으로 성태강을 대하진 않 는다. 오히려 연예인이라는 게 독이 될 때가 있다.

앞으로 성태강은 이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한다.

원래는 혼자 싸워서 이겨내야 하지만…….

특별히 이강진이 도와주기로 했다.

"너, FIFA 잘해?"

"예. 잘합니다."

확인해볼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강진은 성태강의 FIFA 실력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백우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한다.

하지만 군대에선 잘하면 안 된다.

"고필중 상병님하고 FIFA 몇 차례 붙어. 그리고 일부러 지면 돼. 자리는 내가 마련해줄 테니까."

"일부러…… 말입니까?"

"그래."

이강진은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재차 확인한 뒤에 말을 이어갔다.

"너에게 군생활 꿀팁을 하나 알려주마. 잘 듣고 기억해."

이강진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하자, 성태강의 귀가 쫑긋 움 직였다.

선임이 알려주는 군생활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군대에서 '만능'은 오히려 '저주'다."

"잘 못 들었습니 다?!"

"뭐든지 잘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설령 잘한다고 해도 잘하 는 티를 내지 말라는 거지. 저기 봐라."

오른손을 들어 올려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저 멀리서 페인트 통과 붓을 들고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병사가 있었다.

"김철이라는 녀석인데, 웹툰 작가 지망생이거든."

"그렇다면 그림 잘 그리시는 거 아닙니까?"

"잘 그려. 그래서 저 신세가 되었지."

안 그래도 행정병 업무로 바쁜 와중에 행보관이 담벼락에 그 림까지 그리라고 시킨 것이다.

김철은 자신의 그림 능력을 숨기지 않고 여실히 드러내고 다 녔다. 그 행동이 이런 참사를 부르게 된 것이다.

때마침 행보관이 사열대 앞을 지나갔다.

"철아! 그림 제대로 잘 그리고 있겠지?"

"일병 김철! 예, 그렇습니다!"

"이번 주 안으로 다 칠해둬라. 연대에서 조만간 부대 검열 나 올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아, 알겠습니 다!"

저 긴 담벼락을 혼자서 칠해야 한다. 김철의 소리 없는 울부 짖음이 이강진과 성태강에게 닿을 정도였다.

담벼락뿐만 아니라 선임들의 깔깔이 뒤에 그림을 그려주는 잡일도 하고 있었다.

김철에게 추가 작업을 지시해둔 행보관은 이강진과 성태강 쪽 으로 고개를 돌렸다.

"충성!"

최고선임인 이강진이 대표로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벌써부터 후임 갈구는 거냐."

"하하하, 아닙니다. 전투화 닦을 때 밖으로 가져와서 닦으면 된다고 교육시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하긴. 강진이 네가 후임들 막 괴롭히는 그런 성격은 아니니 까. 난 먼저 들어갈 테니까 저녁 식사 집합 전까지는 할 일 다 끝내둬라."

"예, 알겠습니다. 충성!"

"오냐, 충성."

행보관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강진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강진이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거였다.

"군대는 너무 잘해도, 너무 못해도 안 되는 곳이지. 때로는 일부러 병신인 척 연기하는 게 좋을 때도 있어. 너무 잘하면, 철이 처럼 뜬금없이 작업이 생길 때가 있거든."

"아하……."

"적당히. 이 세 글자만 기억하면 될 거다. 완벽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어. 황지웅 상병하고 고필중 상병 앞에서도 마찬가지 야. 지금 두 사람은 너한테 질투하고 있어. 그 질투의 원인은 바로 열등감이지."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네 부족한 모습을 일부러 보여주면 돼. 그러면서 선임들 비행기 태워주는 거지. 그러면 앞으로 너한테 잘해줄 거야."

내공이 느껴지는 이강진의 조언에 성태강은 절로 고개를 끄 덕였다.

황지웅과 고필중을 공략하라! 이것이 이강진이 내준 숙제였다.

첫 번째 타깃은 바로 고필중.

그는 마침 라인혁과 휴게실에서 FIFA를 플레이하고 있었다.

'절호의 찬스군!'

신이 내린 완벽한 타이밍이다.

이강진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태강아. 너, FIFA 잘한다고 했지?"

"이병 성태강! 예, 그렇습니다! KGE 멤버들끼리 FIFA 대회를 펼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우승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우리 중대 넘버 원, 투이신 라인혁 병장님과 고 필증 상병님한테 검증 한 번 받아야겠네. 처음에는 우호도 자기가 게임 잘한다고 엄청 허세 부렸다가 라인혁 병장님한테 탈탈 털렸었거든. 그렇지 않습니까?"

때마침 경기를 끝낸 라인혁은 크게 웃었다.

"하하! 그렇지! 우호, 그 녀석. 좆밥이라니까? 태강이도 FIFA 좀 하는 거 같은데. 한 판 붙어볼까?"

그때, 고필중이 나섰다.

"라인혁 병장님까지 나설 필요 없습니다. 제 선에서 정리하겠 습니다."

"그럼 내 오른팔 실력 한 번 믿어보마."

라인혁의 오른팔, 고필중과 성태강이 동시에 패드를 잡았다.

게임을 세팅하는 사이에 이강진은 성태강과 빠르게 눈빛을 교 환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겠지?'

성태강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되었다.

솔직히 성태강이 본 실력을 발휘하면 압도적으로 바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성태강은 이강진이 지시한대로 빈틈을 계속 보였다. 일부러 패스를 흘린다든지. 일부러 슈팅 기회를 날린다든지. 그 덕분에 아직 전반전임에도 불구하고 스코어는 벌써 4대 0 이었다.

당연히 고필중이 앞서가고 있는 상황이다.

흐름을 탔을 때, 성태강의 립 서비스 신공이 펼쳐졌다.

"우왓……! 고필중 상병님, 엄청 잘하십니다. 방금 그 드리블 컨 트롤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이거? 간단한 건데?"

"저는 도저히 못 따라하겠습니다. FIFA 프로게이머 아니십니 까?"

"? …사실 프로가 될까 하고 망설인 적은 있었지. 하하하!"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성태강을 별로라고 생각했던 고필중. 그러나 성태 강의 접대 게임에 점점 마음이 녹아내려가고 있었다.

후반전이 마무리되었다.

결과는 9대 0.

"제가 완전히 졌습니다. 대단하십니 다, 고필중 상병 님. 괜찮으 시다면 나중에 FIFA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

"내가? 너를?"

"예.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스승이라는 말에 고필중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고려해 보마. 하하!"

"감사합니다!"

겉으로는 성태강의 패배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성태강이 승자다.

고필증 공략에 성공한 이강진은 바로 다음 타깃 사냥을 나서 기로 했다.

1생활관으로 복귀한 이강진과 성태강.

안준렬과 황지웅이 나란히 티비를 보고 있었다.

이강진은 성태강에게 몰래 손짓을 했다. 티가 안 나게 고개를 끄덕인 성태강은 곧장 황지웅의 관물대로 향했다.

"황지웅 상병님. 사진 같이 찍으신 분, 혹시 여자친구분이십니까?"

"……엉. 왜."

황지웅의 어투는 굉장히 퉁명스러웠다.

하지만 성태강은 여기에 굴하지 않았다.

"엄청 미인이십니다! 제가 지금까지 봤던 여성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우신 거 같습니다."

"……그래?"

"예!"

사실 그렇게까지 미인은 아니다.

그냥 평범하게 생겼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성태강은 황지웅의 여자 친구의 미모를 찬 양했다.

"제 직업 특성상 아이돌 걸그룹들을 많이 봐 오지 않았습니 까. 단언컨대, 그 아이돌 가수들보다도 예쁩니다. 이 정도면 길 거리에서 캐스팅 많이 들어왔을 텐데…… 그런 적 없으십니까?"

"물어보진 않았는데, 아마 몇 번 있을 거 야. 하긴, 우리 자기가 많이 예쁘니까. 분명 있겠지."

황지웅 공략법은 고필중보다 간단하다.

여자 친구를 칭찬하기만 하면 된다.

그 효과가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어느 새 황지웅은 티비에서 눈을 뗐다. 본인의 관물대 앞에 자 리를 잡은 상태에서 성태강과 여자 친구의 미모에 관한 열띤 대 화를 이어나갔다.

"이런 여자 친구 분을 두시다니. 황지웅 상병님은 죽복받으신 거 같습니다. 혹시 전생에 나라를 구하신 거 아닙니까?"

"아무래도 그런가 보더! 아, 갑자기 우리 자기 목소리 듣고 싶어 지네. 가서 이야기해야지. 태강이가 자기 엄청 칭찬했다고. 잘나 가는 아이돌이 자기 미모 칭찬했다고 하면 분명 기분 좋아할 거 야."

"필요하시다면 저도 같이 가서 직접 여자 친구 분께 말씀드리 겠습니다."

"정말로? 고맙다, 태강아!"

"후임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않습니까. 말만 하시기 바 랍니다, 황지웅 상병님. 제가 할 수 있는 범주 내라면 다 하겠습니다!"

"좋지, 좋아!"

처음에는 성태강을 그렇게나 싫어하던 황지웅이었으나.

지금은 '우리 태강이, 우리 태강이'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황지웅과 성태강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안준렬이 이강진에게 물었다.

"강진아. 방금 그거, 네가 시킨 거지?"

"들켰습니까?"

"빤히 보이는 건데, 뭘. 지웅이만 모르는 거 같지만."

군대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관계다.

인간관계가 꼬여버리면, 남은 군생활이 고통스러워진다.

성태강은 앞으로 이강진의 충실한 후임으로 많은 활약을 해 줘야 한다. 그걸 대비해 미리 수를 써둔 것이다.

책략가 이강진.

이번에도 그의 작전은 여지없이 통했다.

< 제29화. 빈틈을 보여라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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