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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92화 (92/347)

< 제28화. 진급 (1) > 끝

제28화. 진급 (2)

휴가 복귀 후에 전마등은 느긋하게 말년으로서의 삶을 즐겼하나 말년 킬러, 행보관의 레이더망을 벗어날 순 없었다. 오전 집합 때, 행보관은 대놓고 전마등을 지목했다.

"전마등. 나랑 같이 작업이나 하자."

"병장 전마등! 갑자기 지병인 무릎 통증이……."

"무릎 안 써도 되는 거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따라와라."

어떻게든 꾀병 스킬을 활용해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달아나 봤자 결국 행보관 손바닥 안이었다.

말년병장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하더라도 행보관을 당해낼 수 는 없는 법.

그래도 김명찬에 비하면 전마등은 나은 편이었다.

그걸 위안으로 삼으며 전마등은 마지못해 알겠다고 대답했다.

행보관에게 집중 마크를 당하고 있다는 것만 빼면 나머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부대에서 특별히 큰 문제가 발생한 적도 없고. 상급 부대에서 검열을 나온다는 말도 없었다.

훈련 일정도 잡혀 있지 않았다.

그냥 떨어지는 낙엽만 조심하다가 무사히 전역하면 된다. 이 것이 전마등에게 주어진 숙제다.

저녁 점호가 시작되기 전에 전마등은 전투복으로 미리 환복을 해뒀다.

오늘이 전마등의 마지막 근무다.

외곽 근무가 아닌 불침 번 근무였다.

후임근무자는 이강진으로 정해졌다.

"강진이랑 오랜만에 근무 서는 거 같네."

처음에는 이강진과 자주 근무를 섰던 전마등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이강진이 아닌 다른 후임근무자와 계속 근무에 투입 되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이강진은 요즘 유독 말년들 과 근무를 서는 일이 많았다.

오인섭이야 이강진이 스스로 자처했던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 다 치더라도.

'김명찬 병장 전역할 때에도 그러지 않았나.'

특별히 문제될 건 없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저녁 점호가 끝나자마자 이강진은 불침 번으로서 해야 할 일 들을 빠르게 마쳤다.

온도, 습도를 확인하고, 인원 체크를 해야 하고. 그리고 주기 적으로 막사 내부를 순찰해야 한다.

중간에 이강진은 창문에 붙어 있는 거대한 나방을 목격했다.

거의 손바닥만 한 크기를 가진 나방. 군대 내에서는 '팅커벨'이 라고 불리고 있다.

예쁜 이름과 다르게 외형은 상당히 혐오스럽다. 놈들이 날갯짓을 한 번 하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은 기겁을 할 정도다. 모기장에 계속 붙은 채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팅커벨.

'혹시 모르니 떼어내는 게 좋겠지.'

이강진이 수를 쓰려고 하기 전이었다.

"오, 팅커벨이네. 아주 실한 녀석이구먼."

전마등 병장이 팅커벨에 관심을 보였다.

"저런 녀석은 말이다……."

화장실에 세워져 있는 막대 걸레를 가져온 전마등은 끝으로 모기장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러자 나방이 놀라 퍼덕거리며 저 멀리 도망쳤다.

모기장이 없었더라면 도망치는 쪽은 나방이 아닌 이강진과 전 마등이었을 것이다.

"이 런 식으로 퇴치하면 된다, 강진아."

"명심하겠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굳이 아는 척은 하고 싶지 않 았다.

"전역하고 나면 저런 놈들도 이제 볼 일 없겠지."

군대에서 봤던 모든 것들이 처음에는 다 신기하게 느껴졌다. 고라니, 멧돼지, 독수리 등등.

하지만 사회로 돌아가게 되면, 이것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이 제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전역을 앞두면 사람이 매우 감상적으로 변한다. 김명찬도, 그 리고 앞서 전역한 자들도 똑같았다.

전마등도 약간 그런 기미를 보였다.

"강진아. 넌 담배 안 피우지?"

"예. 전마등 병장님도 안 피우시지 않습니까?"

"원래는 피웠어. 이병 때만 하더라도 열심히 피웠는데, 금연 프로젝트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끊었었지. 근데 간만에 피우고 싶어져서. 잠깐 나갈까? 가서 바깥 공기도 쐬고, 별도 좀 보면서 수다나 떨자."

"네, 알겠습니다."

사열대 쪽으로 향한 두 사람.

시멘트 계단에 앉으며 자리를 잡았다.

치익!

라이터에 불을 붙인 전마등은 그동안 잊었던 담배의 맛을 회 상하고 음미했다.

"오랜만에 피니까 맛있네. 사람들이 이래서 담배를 못 끊겠다 고 하는가 보느 강진아. 넌 이런 거 피우지 마라. 후우."

"하하, 알겠습니다."

이미 20년 넘게 지겹도록 피웠던 담배다. 회귀 이후에는 담배 를 안 피우기로 결심한 이강진이었기에 얌전히 전마등의 중고 를 귀담아 듣기로 했다.

"전마등 병장님은 전역하시면 무엇 하실 겁니까?"

"음, 글쎄. 일단 복학부터 해야겠지? 그런 다음에 천천히 취업 루트 밟아야지."

전역하고 난 후에 전마등과의 연락이 끊어진 탓에 이강진은 그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되는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뭔가 충고해줄 만한 게 없었다.

해준다고 해도 전마등이 과연 귀 기울여 들을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뭐,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하든 군대보다는 낫겠지. 안 그러냐?"

"하하하! 맞습니다."

"나가서 또 열심히 발버둥 쳐봐야지."

군대에서의 발버둥이 전역을 위한 거라면, 사회에서의 발버 둥은 생존에 가깝다.

담뱃불을 끈 전마등은 다시 한 번 밤하늘을 바라봤다.

이미 그는 이별의 준비를 모두 마쳤다.

전역.

그것은 끝임과 동시에 시작이다.

"저 밤하늘을 보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네."

순간 전마등은 결심했다.

지금 본 이 밤하늘의 풍경과 함께.

자신이 악착같이 보냈던 지난 군생활을 평생 가슴 속에 간직하기로.

전마등의 전역날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다.

병사들은 김명찬 병장이 전역하기 전날에 했던 것처럼 병사 식당을 임시로 대여해 작은 파티를 열었다.

PX에서 맛있는 음식이란 음식은 다 구해왔다.

종류별로 나열되어 있는 냉동을 바라보면서 전마등은 헛웃음을 흘렸다.

"여태껏 내가 군생활 하면서 이렇게 많은 냉동식품이 차려진 건 본 적이 없었을 거다."

후임들의 정성이 지극했다. 그만큼 전마등이 군생활을 잘해 온 것임을 뜻한다.

전마등의 전역 덕분에 후임들도 때 아닌 포식을 하게 되었다.

라면과 냉동으로 잔뜩 배를 채운 이들.

너무 배가 불러서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했다.

"전마등 병장님."

안준렬이 대표로 그에게 무언가를 전달했다.

"뭔데, 이거?"

"롤링 페이퍼입니다."

벙찐 얼굴을 한 전마등. 분대원들이 생전 안 하던 것을 하니 까 놀라는 게 당연했다.

"생활관 돌아다니 면서 1중대 전원한테 받았습니다. 욕은 가급 적이면 삼가하라고 했으니까 안심하고 보셔도 됩니다."

"욕 쓰려고 했던 놈이라도 있었냐?"

"그건 비밀로 하겠습니다. 후후."

그래도 정성이 갸륵하다.

전마등은 1분대원들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왕고 전역한다고 이런 이벤트까지 해주고. 아무튼고맙다. 너희 덕분에 좋은 추억 남기고 간다."

이번 전역자 이벤트도 대성공이다.

전마등, 오인섭, 그리고 박이율.

세 남자가 나란히 사열대 앞에 섰다.

전역자를 배웅하기 위해 병사들은 두 줄로 나란히 섰다.

중대장과 행보관도 오늘, 이들의 전역을 축하해주기 위해 이 른 출근길을 자처했다.

안준렬이 대표로 외쳤다.

"부대~ 차렷!"

각 잡힌 차렷 자세를 취하는 병사들.

"전역자들께 대하여 경롓!"

"충! 성!"

"고생하셨습니다! 전마등 병장님!"

"전역 축하해, 이율이 형!"

"오뱀! 나가면 꼭 연락하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세 남자의 전역을 축하했다.

느닷없이 오인섭이 울음을 터뜨렸다.

"고맙다…… 흑! 정말 고마워……!"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마!"

"오인섭 병장님, 뜬금없이 왜 우십니까! 자기는 절대로 안을 거라고 하더 니만!"

박격포반 인원들이 오인섭에게 다가가 그를 위로했다.

반면, 전마등과 박이율은 웃으면서 각 분대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특히 안준렬과 라인혁이 전마등과의 이별을 가장 아쉬워했다.

"고생했어, 마등이 형."

"나중에 휴가 나가면 연락할게. 그때 술이라도 사줘."

"그래. 알았어. 연락만 해. 그리고 우리 애들, 잘 케어해주고."

"걱정 마."

마지막까지 전마등은 1분대를 걱정했다.

세 남자가 위 병소를 통과할 때까지 1중대원들은 그들을 배웅 했다.

미리 부른 택시를 타고 점점 부대와 멀어지는 전역자들.

그제야 1중대원들은 다시 발길을 돌렸다.

"남은 사람들끼리 다시 열심히 해보자."

"예, 알겠습니다."

감상에 젖어들 때는 이제 지났다.

할 일이 태산이다. 다시 열심히 움직여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진급 시험의 날이 밝았다.

사실 이강진은 진급 테스트를 두고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어차피 일병 진급 시험인데.'

상위 계급으로 갈수록 진급 테스트의 커트라인이 올라간다. 즉, 일병 진급 시험이 가장 난이도가 쉽다.

진급 시험 내용은 사격, 필기시험, 화생방, 체력 테스트. 이렇게 크게 4가지로 나뉜다.

필기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미리 문제와 답안을 내주고, 그것을 외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사격도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가장 큰 난관이라고 한다면 의외로 화생방이다.

방독면 마스크를 제시간 안에 써야 한다. 기회는 단 두 번. 이 안에 방독면 마스크를 제한시간 내로 착용하지 못하면, 그대로 0점 처리 된다.

화생방 파트에서 0점 처리된다고 진급에 실패하는 건 아니지 만, 누락될 확률은 매우 높아진다.

다행스럽게도 1분대는 전원 합격했다. 백우호와황지웅이 약 간 아슬아슬했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통과했다.

체력 테스트도 가볍게 합격 기준을 넘었다.

진급 시험 결과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발표되었다.

"진급 즉정 대상자 전원 합격.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즉정관의 확답을 듣고 나서야 병사들은 안심했다.

이로서 이강진은 다음 달부터 일병 마크를 달게 되었다.

'이제 겨우 한 단계 레벨업 한 셈이네.'

어서 만렙까지 쭉 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생활관으로 들어온 라인혁은 마침 점심 식사를 마치고 쉬는 중인 백우호를 찾았다.

"우호야."

"이병 백우호."

그의 관등성명을 듣자마자 라인혁이 키득키득 웃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너, 이번 달도 계속 이병으로 살고 싶 냐?"

"헉……! 이, 일병 백우호! 죄송합니다!"

새로운 계급이 입에 달라붙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백우호에 이어 이번에는 이강진이 라인혁의 타깃으로 지정되었다.

"강진아!"

"일병 이강진."

그는 빈틈이 없었다.

기대했던 반응이 안 나오자, 라인혁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

"역시 우호가 놀리는 맛이 있다니까."

칭찬인지, 아니면 욕인지. 백우호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6명이 한꺼번에 윗 단계로 진급을 한 탓에 호칭이 상당히 햇 깔렸다.

선임들이야 어차피 후임들을 계급 붙이고 부를 일이 없어서 상관없지만, 후임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강진과 백우호가 가장 부담스러웠다.

한 명도 아닌 네 명이나 동시에 바뀌었으니까.

병장이라고 불려야 할 것을 상병이라고 부르면 은근히 기분 이 나쁘다. 이런 것들을 조심해야 한다.

심심한 모양인지 라인혁은 다음 타깃을 찾았다.

"지웅이하고 필중이가 안 보이네. 일주도 어디 갔대."

그때, 멀리서 '다다다다다!'하며 누군가가 급하게 뛰어오는 소 리가들렸다.

서일주 일병이었다.

"크, 큰일났습니다!"

"큰일? 뭔데. 북한이 전방에서 기관종이라도 쐈냐?"

"그것보다 더 큰일입니다!"

그것 이상이라는 소리에 병사들이 바짝 긴장했다.

"신병이 들어왔습니다."

"씨발, 신병 들어온 게 뭐가 큰일이야. 상황 걸리는 줄 알고 깜 짝 놀랐잖아."

"거의 그런 급이긴 합니다."

침을 꿀꺽 삼킨 서일주.

호들갑을 떤 이유를 천천히 설명했다.

"신병이…… 연예인이라고 합니다."

< 제28화. 진급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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