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91화 (91/347)

제27화. 군종병 오디션 (3)

PX에서 김철에게 웹툰, 만화 강의를 듣고 온 이강진.

그때 김철이 이강진에게 누누이 강조했던 게 하나 있었다.

웹툰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웹툰을 보는 걸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이노 블레이드는 알 거라고.

올해 최고의 기대작이자 화제작, 이노 블레이드.

스피디한 전개와 반전의 연속인 스토리 라인, 그리고 매력적 인 캐릭터 등 3박자를 고루 갖준 이 웹툰은 대한민국 모든 웹툰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웹툰, 만화가 취미인 오인섭이 이노 블레이드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설령 모른다 해도 상관없다.

다른 만화나 웹툰들을 언급하면 되니까.

일단 이노 블레이드는 성공이었다.

"제가 알려드릴 수는 있지만,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스포일러 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 그렇지. 아니, 됐다. 어차피 다음 주에 말년휴가 나가 니까. 그때까지 참지 뭐. 아, 근데 궁금해 죽겠네. 작가가 절단마 공으로 아주 절묘한 곳에서 끊어버려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휴가 복귀하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너도 이노 블레이드 볼 줄은 몰랐네. 우리 중대엔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인섭도 같은 중대원들과 자신의 취미를 공유하고 싶긴 했었다. 하지만 웹툰, 만화를 즐겨 보는 사람이 없다보니 점점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혼자만의 취미로 전 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오인섭의 취미와 관심분야가무엇인지 다들 몰랐던 것 이다.

오인섭은 근무 투입 전에 이강진에게 이렇게 부탁했었다. 스페셜한 마지막 근무로 만들어달라고.

그 바람을 이강진이 직접 들어주기로 했다.

"저는 이노 블레이드에서 '첼라'가 마음에 듭니다."

"첼라? 좋지! 초반에는 약간 비중 없게 나오다가 나중에 인기 가 많아져서 그런지 작가가 요즘 첼라의 비중을 팍팍 늘려주고 있는 게 보이더라. 작화에도 힘이 잔뜩 들어가 있기도 하고."

첼라는 이노 블레이드에서 주인공 다음으로 인기투표 2위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는 인기 캐릭터다.

빼어난 미모와 몸매 덕분에 많은 남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 고 있었다.

2D 여캐를 좋아하는 오인섭이라면 분명 첼라를 좋아할 거라 고 예상했다.

'철이 덕분에 살았네.'

PX에 있는 동안 이강진은 김철에게 이노 블레이드에 관한 설 정, 여태껏 전개되었던 스토리, 그리고 작품 외적으로 화제가 되 었던 것 등을 다 전수받았다.

웹툰 한 편 보지 않았던 이강진이 프로 웹툰러, 오인섭과 대 등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오게 된 건 김철의 도움이 컸다.

?b중에 PX 한 번 더 데려가야겠네.'

은혜에 대한 보답을 갚으려고 했더니, 졸지에 또 은혜를 입고 말았다.

마지막 외곽 근무를 마치고 행정반으로 돌아온 오인섭은 환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직병이 그런 오인섭을 보면서 물었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있었지! 아, 강진아."

생활관으로 돌아가기 전에 오인섭은 총기 현황판을 수정하는 이강진을 불렀다.

그러더니 검지와 중지 손가락만 세운 손을 들어 올리면서 윙 크를 날렸다.

"딜 그렌도."

이노 블레이드의 주인공, 게일이 자주 선보이는 인사법이었 다.

딜 그렌도라는 말은 '안녕'이라는 뜻을 가진 외계어였다.

게일식 인사법을 마치고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행정반을 나서 는 오인섭.

당직사병은 벙찐 얼굴을 했다.

"딜…… 뭐시기? 갑자기 왜 저런데. 넌 뭐 아는 거 없어?"

이강진에게 해명을 원하는 당직사병이었지만, 그러고 싶다면 각오를 굳혀야 한다.

"설명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그러기 위해선 최소 다섯 시간 정 도는 필요한 거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괜찮을 리가 있겠나.

* * *

대망의 군종병 오디션 당일이 찾아왔다.

군종병을 하겠다고 지원하게 된 병사들은 그날 저 녁, 순차적 으로 오인섭을 찾아왔다.

네 명째를 만나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오인섭의 마음에 드는 병사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다섯 번째 지원자가 오인섭에게 다가왔다.

가장 유력한 후보, 박호영 일병이었다.

"우리 호영이 왔구나."

같은 분과다보니 '우리'라는 호칭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인섭의 분과 후임 이건 상당한 메리트다.

싹싹하고 눈치도 제법 있는 타입이다. 하지만 유일한 단점은 기독교 종교행사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넌 여태껏 불교만 갔었잖아."

"예, 그렇습니다."

"근데 왜 갑자기 기독교 군종병을 차려고 그러는데?"

무엇 때문이랴.

누가 봐도 휴가 때문이다.

일반 회사 면접도 마찬가지다. '우리 회사에 왜 지원하셨습니 까?'라고 묻는다면, '돈이 필요해서요.'라고 대답할 면접자는 극 히 드물다.

군종병을 뽑기 위한 면접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기독교 군종병에 도전해볼 까 합니다."

"부처님의 자애로움을 내버리고"

"자애롭고 너그러우신 분이니 아마 저의 변심 또한 이해해주실 겁니다."

"거 참……."

말은 잘한다.

그래도 같은 분과라는 것이 역시 신경 쓰인다.

박호영은 딱히 면접을 볼 게 없었다. 박호영이 신병 시절 때 부터 쭉 봐 왔었던 오인섭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오케이, 다음 차례 불러와."

"다음은 누구입니까?"

"강진이."

"1 분대 이강진 이병입니까?"

"어."

"예, 알겠습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이강진이라 한다고 해도 이번 군종병 대첩 의 승자는 박호영, 본인이 될 거라고 스스로 예상했다.

1생활관을 찾아간 박호영.

"충성. 이강진 이병 데리러 왔습니다."

박호영의 말에 이강진이 바로 반응했다.

1분대 선임들은 이강진의 줄정을 응원했다.

"가서 잘하고 와라, 강진아."

"파이 팅! 넌 할 수 있다!"

"오디션 합격하면 내가 오바르크병한테 부탁해서 군종병 마 크, 기가 막히게 오바르크 쳐줄게!"

선임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면서 박호영과 함께 박격포반 생활관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박호영은 이강진에게 미리 사과했다.

"미안하다, 강진아. 어차피 오인섭 병장님은 나한테 군종병 물 려주실 거야. 그러니까 그냥 마음 편히 면접 보면 돼."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반론을 펼치려던 이강진이었으나.

이내 말을 얼버무리기로 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강진은 박호영처럼 벌써부터 승리를 확신하고 싶지 않았다.

뜨거운 김칫국을 먼저 마셔버리면 혀만 데일뿐이다.

천천히 승리라는 이름의 맛을 만끽하면서 여유를 부려도 될 것 같다.

박격포반 생활관에 따로 칸막이가 쳐져 있는 공간이 있었다. 군종병 면접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공간이었다.

"충성! 이 병 이강진입니다."

"어, 들어와."

파티션 사이로 몸을 우겨 넣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딱 두 사람이 테이블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서 앉을 만한 작은 공간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이강진은 바로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펼쳤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린 뒤에…….

"딜 그렌도."

오른손에 흑염룡이 봉인되어 있을 것만 같은 중2병식 대사를 읊었다.

오인섭의 얼굴에 기쁨이라는 감정이 깃들었다.

그 또한 이강진과 마찬가지로 게일식 인사법을 선보였다.

"역시 강진이야. 나하고 시그널이 통했구먼!"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좀 창피했다.

만약 면접 공간이 개방된 곳에서 진행되었더라면, 이강진은 이노 블레이드의 시그니쳐라 불리는 게일식 인사법을 하지 않 았을 것이다.

창피함을 무릅쓴 만큼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강진이는 계속 기독교 행사에 나갔었지?"

"예, 그렇습니다."

"그럼 종교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겠네?"

"예. 뿐만 아니라 목사님, 그리고 지윤 씨하고도 어느 정도 친 분이 있습니다."

이강진이 한지윤의 대학 레포트를 도와줬다는 건 중대 내에 서도 꽤 유명했다.

"두 분하고 친분이 있다는 건 확실히 메리트가 있지. 주말마 다 같이 얼굴 봐야 하는 사람들이 니까. 사이가 좋아야 작업도 원 만하게 진행할 수 있고."

객관적으로 봐도, 주관적으로 봐도 이강진은 여러모로 호감 이었다.

다른 이야기를 좀 더 주고받은 후에, 오인섭은 이강진과의 면접을 끝마치기로 했다.

"내일 오전에 결과 알려줄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면 될 거 야."

"어떻게 알려주시는 겁니까?"

"그건 비밀. 대신에 걱정은 안 해도 돼. 누가 봐도 '당신은 합 격입니다.'라고 알아차릴 수 있도록 표시해줄 테니까."

그냥 말로 해주면 안 되나.

이게 살짝 불만이었지만, 그래도 참기로 했다.

'오인섭 병장은 웹툰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런 서프라이즈 식 이벤트도 좋아하나 보군.'

그에 관한 정보가 또 하나 갱신되었다.

이젠 별로 필요 없을 거 같긴 하지만 말이다.

새벽 6시가 되자마자 기상나팔 소리가 막사 내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몸을 뒤척이던 이강진은 힘겹게 상반신을 일으키면서 군대에 서의 아침을 맞이했다.

그때였다.

툭.

뭔가가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뭐지?'

처음에는 군번줄인 줄 알았다. 간혹 가다가 군번줄이 풀어지 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면 군번줄은 아닌 것 같았다.

모르겠으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면 된다.

모포를 걷자, 떨어진 물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군종병이라 적혀 있는 휘장이었다.

'이런 뜻이었군.'

군종병 오디션의 최종 승자는 이강진으로 결정되었다.

* * *

박호영이라는 강력한 라이벌과 맞붙게 되었지만, 이강진은 당 당하게 승리했다.

군종병 마크를 전투복 상의에 부착한 이강진.

오바르크병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전투복을 들어올렸다.

"어떠냐, 강진아. 이 정도면 만족하지?"

사제 오바르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 박혔다.

"예. 감사합니다."

"군종병 된 거 축하한다. 하하."

이강진은 감회가 남달랐다.

'설마 내가 군종병이 될 줄이야.'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다.

신앙심이 깊은 것도 아니고. 사실 종교행사가 좋아서 교회를 매번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한지윤이 보고 싶어서였다.

욕망에 따라 움직이다보니 어느 순간 군종병이라는 타이틀까 지 달게 되었다.

'벌써부터 일요일이 기다려지네.'

하루라도 빨리 한지윤과 만나서 자랑하고 싶었다.

1분대와 박격포반의 분대장 교체식이 진행되었다.

새롭게 분대장을 달게 된 안준렬 상병. 1분대는 이제 안준렬을 중심으로 새로운 체제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동안 전마등과 박이율, 그리고 오인섭. 이렇게 셋은 말년 휴가를 떠났다.

시간이 흐르고, 이강진이 그토록 기다렸던 일요일 오전이 찾아왔다.

군종병은 종교행사가 시작되기 1시간 전에 미리 종교행사가 진행되는 장소에 가 있어야 한다.

기독교의 경우에는 당연히 교회다.

마침 오늘도 한지윤이 나와 있었다.

"지윤 씨. 안녕하세요."

"어머, 강진 씨! 아직 시작하려면 멀었는데, 어쩐 일이세요?"

"저, 사실 군종병 됐습니다."

군종병 마크를 보여주자, 한지윤의 얼굴이 잔뜩 상기되었다.

"저도 앞으로 아빠 따라서 교회 자주 나와야겠어요."

한지윤의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렵게 군종병을 차지한 보 람이 느껴졌다.

< 제27화. 군종병 오디션 (3) > 끝

일과 시간이 끝나고 개인 정비 시간이 돌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백우호와 함께 막사로 복귀하는 이강진은 그 의 한탄을 거의 30분 동안 들어줘야만 했다.

"라인혁 상병님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하는데…… FIFA 하 자고 할 때마다 자꾸 뭔가 일이 생겨서 제대로 승부를 가를 수 가 없단 말이야. 하아."

그 덕분에 백우호는 아직도 라인혁에게 좆밥 소리를 듣고 다 녀야만 했다.

실력은 확실히 백우호가 위였다.

하지만 계속 타이밍이 안 맞아서 그 실력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억수로 운이 안 좋다.

타이밍이 안 좋은 건 백우호뿐만이 아니었다.

"강진아!"

사열대에서 이강진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남자.

통신반장이 다시 한 번 목소리를 키웠다.

"오늘 시간 되지?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

이강진에게 주식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고 할 때마다 자꾸 타 이 밍이 어긋나서 말 한 번 제대로 붙이지 못했다.

마치 백우호가 라인혁에게 FIFA 실력을 제대로 증명 못하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불행하게도 이번 역시 꽝이었다.

"죄송합니다, 통신반장님. 저, 바로 외곽 근무 나가야 합니다."

"뭐?! 이런 썅……."

이 정도면 정말 인연이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통신반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근무 갔다 온 다음에는?"

"청소 시간이라서 바로 청소하러 가야 합니다."

그 이후에는 저녁 점호다.

여러모로 운이 참 안 따라준다.

한숨만 늘어가는 통신반장. 막사로 들어오자마자 백우호는 이 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통신반장님이 왜 자꾸 너한테 이야기 좀 하자고 쫓아다니는 거야?"

"주식 때문에 그런 거겠지."

"아하."

이강진이 주식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는 건 백우호도 아는 사 실이다. 하지만 그 주식으로 거액의 돈을 만지고 있다는 사실까 지는 모르는 상태였다.

이강진이 말하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없다.

자기가 돈 이렇게 많이 번다고 자랑하고 다녀봤자 군대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너, 돈 많이 버니까 네가 PX 쏴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잖아?'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차라리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게 도움이 된다.

1생활관에는 황지웅과 고필중이 나란히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안준렬은 티비엔 관심이 없는 모양인지 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티비에선 연예계 소식에 관련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기 보이그룹 KGE의 멤버, 태강이 오늘 군에 입대했습니다. 태강은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짊어져야 한 다며 성실히 군 복무에 임하겠다는 의사를 예전부터 드러낸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리모컨을 쥐고 있던 황지웅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저 사람도 결국 입대하는구나."

"요즘 연예인들은 어떻게든 군대 쌔려고 발악을 하던데. 그래 도 용기는 가상하네."

고필중의 말대로였다.

연예인 병역 기피는 항상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문제였설령 군에 입대했다 하더라도 연예 병사니 뭐니 해서 일반병 이 누릴 수 없는 온갖 특혜란 특혜는 다 누리고 전역을 하는 게 비일비재하다.

물론 성실히 군 복무를 마치고 당당하게 전역하는 연예인들 도 많지만, 원래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이 더 자주, 그리고 더 강하게 부각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연예병사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게까지 좋지 않았다, 연예인과 군대. 참 미묘한 관계다.

'태강이 라……."

이강진의 시선은 한동안 티비에 계속 머물렀다.

훈련소에 입대하는 태강의 모습이 영상으로 재생되었다.

[오빠!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 반드시!]

[기다릴게요오오!!!]

[엉엉……! 오배너, 가지 마세요……!]

소녀 팬들의 울음을 애써 뒤로한 채 태강은 연병장으로 향했잘생긴데다가 체격까지 좋다. 심지어 인성까지 좋다고 소문 이 났다.

황지웅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짜식, 좋겠네. 나 입대할 때에는 저런 거 없었는데."

남자 입장에선 참으로 부러운 광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질투심이 드는 건 당연했다.

고필중도 황지웅과 같은 마음이 었다.

"지웅아. 보통 저렇게 카메라 앞에서 잘 웃는 연예인들이 뒤 에서 구린 행동 많이 하고 다니더라. 저 남자도 틀림없이 일진 출신에 성격 더럽게 안 좋고 그럴 거야. 세상에 저렁게 완벽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안 그래?"

"그렇지, 그래. 네 말이 맞다. 내 후임으로 온다면 저 가면을 확 벗어재끼게 만들어줄 텐데. 아깝다, 아까워."

"트리니티 스타 무대나 보자. 슬슬 나올 때 된 거 같으니까."

인기가 많은 아이돌 가수이기에 분명 연예병사로 빠질 것이다. 두 남자는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이강진은 말없이 티비를 응시했다.

뭔가 말을 해주고 싶은 모양인지 입이 씰룩거렸다.

하나 이내 단독군장을 몸에 걸치면서 근무 투입될 준비를 서 둘렀다.

'아직은 모르지.'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설령 회귀를 했어도 그건 변함없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작업을 나가기 전에 이강진은 얼굴과 팔 부분에 선크림을 듬 뿍 발랐다.

이런 이강진의 모습에 고필중이 관심을 보였다.

"강진아. 선크림 너무 많이 바르는 거 아니냐?"

"휴가 나갈 예정이어서 미리 관리해둘까 합니다."

"벌써?"

"예. 유격왕 때 받은 포상휴가로 다음 달에 한 번 나가려고 합 니다."

가서 집 이사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인테리어 공사는 잘 마무리 되었다고 황민수로부터 연락을 받 았다. 이제 짐만 들어놓으면 된다.

이강진이 딱 휴가를 나가고 둘째 날이 바로 이사하는 날이다.

그때는 황민수도 가게 문을 닫아두고 이강진 모자의 이사를 도와주기로 했다.

이강진은 이사하는 도중에 그의 어머니에게 그을린 얼굴과팔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 봐도 아들이 군대에서 고생을 많이 한다고 절로 연상시키는 게 바로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 걱 정조차 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러 선크림을 듬뿍 바르는 것 이었다.

물론.

'지윤 씨를 만나려는 목적도 있고.'

원래는 일병 정기 휴가까지 붙여서 휴가를 길게 나가고 싶었지만, 이사 일정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4박 5일 포 상휴가만 미리 사용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한지윤이 직접 청주로 내려오기로 했다. 그때를 대 비해서 한껏 몸을 가꿔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부럽다, 부러워. 나도 부상만 안 당했으면 너처럼 휴가 많이 쟁여놨을 텐데."

"체육대회 때 저하고 한 건 하셔서 같이 포상휴가 따시면 어떻습니까?"

"나야 좋지. 그러고 보니 체육대회가 언제 하지?"

"나중에 확인해봐야 할 거 같습니다."

벌써부터 체육대회가 기다려지는 두 사람이었다.

작업 준비를 마친 이강진은 고필중과 함께 정글모를 쓰고 사열대로 향했다.

그때, 두 사람의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있었다.

"앞으로 두 바퀴 남았다!"

"그런 속도로 달리다간 이번 진급 테스트에서 떨어질지도 모 른다고! 좀 더 힘을 내 봐! 할 수 있잖아!"

숨을 헐떡이면서 사열대 앞을 뱅뱅 돌기 시작하는 병사들.

그중에는 서일주도 껴 있었다.

'진급 시험, 벌써 시작했나 보군.'

2009년 이전까지는 가만히 있어도 자동으로 진급할 수 있었 지만, 그 이후부터는 국방부의 정책이 바뀌었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진급이 누락된다. 그렇다고 전역 때까지 평생 누락되는 건 아니다. 최대 2달까지 진급이 누락될 수 있다.

하지만 누락 자체만으로도 병사들에겐 굉장히 치명적이다.

계급에 따라 받는 월급이 다르다. 당연한 말이지만 계급이 높 을수록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 얼마 차이 안 나지만, 군대에선 이 간소한 차이 마저도 크게 느껴 진다.

뿐만 아니라 진급 누락을 당하게 되면 동기, 후임보다 계급이 낮아지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거기에서 오는 창피함을 계속 무릅써야 한다.

"강진아. 우리도 다음 달에 진급 시험 아니냐?"

"예, 그렇습니다."

휴가 가기 전에 진급 테스트를 볼 예정이다. 진급을 일찌감치 확정지은 다음에 편안한 마음으로 휴가를 가고 싶었다.

고필중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다음 달 너와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우울 해지네."

"그래도 한 번만 고생하면 고필중 일병님은 바로 상병 달지 않습니까?"

작대기가 2개에서 3개로 늘어난다. 그 정도면 구슬땀을 흘릴 가치가 있다.

이강진은 1개에서 2개로.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이러면 서 점점 성장하는 거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할 때다.

1분대에서 유일하게 진급 테스트를 치렀던 서일주.

모두의 걱정을 보란 듯이 재치고 당당하게 일병 진급을 확정 짓는 데 성공했다.

분과별 간담회 시간에 안준렬은 서일주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일병 마크는 달 바뀌면 그때부터 착용하고 다니는 거, 잊지 마라. 요즘 중대장님이 아직 진급 확정도 안됐는데 병사들이 자 꾸 상병 마크, 병장 마크 착용하고 다닌다고 뭐라고 그러시 더라. 걸리면 벌점 받을지도 모르니까 주의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디 보자. 다음 달 진급 대상자가 누구누구 있지?"

라인혁과 황지웅, 고필중, 이강진, 백우호까지.

총 다섯 명이 손을 들었다.

아니, 보이는 숫자로만 따지면 다섯이지, 사실은 여섯이라고 봐야 한다.

라인혁과 안준렬은 동기다. 그 말은, 진급 시기도 같다는 뜻 이 된다.

"우리 분대만 여섯 명이라. 다음 달에 장난 아니겠네."

진급이 상대 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여서 천만 다행이다. 그 게 아니었더라면 1분대끼리 서로 피 튀기는 싸움을 하게 되었 을지도 몰랐다.

"그래. 아무튼 다들 진급 누락하는 일 없도록 하고. 그리고 다 음 주에 전마등 병장님 전역하시는 거,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우리 중대를 위해서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으니까 김명찬 병 장 때처럼 송별회라고 해드리자."

말년이 될수록 손을 놓긴 했지만, 그래도 전마등이 고생을 많 이 했다는 걸 모르는 이는 자대 전입한지 얼마 안 되는 기운상을 제외하곤 없다.

분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준렬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전마등이 휴가 복귀까지 이제 이틀 남았다.

그때까지 1분대원들은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같이 휴가를 나갔던 박이율, 오인섭과 다르게 전마등은 이른 시기에 부대로 복귀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여태껏 받은 포상휴가를 병장 정기휴가에 붙여서 길게 사용했지만, 전마등은 그렇지 못했다.

포상휴가는 이미 써버렸고. 병장 정기휴가만 남아 있던 탓에 4박 5일만 휴가를 즐기다 왔다.

"언제 봐도 좆같은 위병소구먼."

하나 이 위병소 볼 날도 이제 채 일주일이 남지 않았다.

앞으로 6일 후면 전역이다.

조장실에 가서 반입이 금지된 물품을 들고 왔는지 검사를 맡 은 후에 1중대 막사로 향했다.

"동생들아! 형 왔다!"

"충성!"

"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4.5초 휴가였는데 잘 다녀왔을 리가 있겠냐. 나 없는 동안 부대에 별 일 없었고?"

"예. 조용했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군대만큼 잘 어울리는 곳은 없을 것이다.

여기는 오히려 조용해야 다행이다.

"우리 준렬이하고 인혁이, 병장 다는 거 보고 전역했어야 했는데. 아쉽네."

두 사람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라인혁이 장난 식으로 툭 던진 말이 있었다.

"부사관 신청하시면 가능합니다."

"미쳤냐. 안 그래도 행보관님이 자꾸 부사관 지원 안 하냐고 협박하시던데. 그것도 싫다고 하고 왔는데, 니들까지 이러기냐. 그러지 마라. 부사관의 '부' 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거 같으 니까."

이강진도 같은 생각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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