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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90화 (90/347)

< 제27화. 군종병 오디션 (2) >

제27화. 군종병 오디션 (2)

대화를 주고받던 중에 오인섭이 이강진에게 물었다.

"아까 준렬이가 기독교 군종병 지원자 명단 주고 갔던데. 보 니까 네 이름도 있더라?"

"예. 이번 기회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대 전입하고 나서 교회에 많이 나왔었지. 나도 기억하고 있어."

"하하, 그렇습니까?"

줄발이 좋다.

면접은 수요일 저녁에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외곽 근무를 서면서 이강진만 미리 면접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1시간동안 남자 둘이서 가만히 서서 뭘 하 랴. 이야기라도 해야지.

게다가 오인섭은 꽤 말이 많은 스타일이었다. 심심한 건 못 참 는 성격. 그래서 안준렬과 같이 근무 투입되는 걸 별로 달가워 하지 않았다.

"사회에 있을 때 교회 다녔던 적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다녔습니다. 그 이후로는 다닌 적이 없습니다."

"왜 계속 안 다녔어?"

"가정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입 니다. 교회에 나가는 걸 아 버지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 그랬구나."

민감한 이야기다.

오인섭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내가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네."

"괜찮습니다. 지금은 다 잊었습니다. 새 출발한다는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너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실제로 회귀 트럭 덕분에 새 출발에 성공했다.

재입대는 예상 못했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가 고 말았다.

후번근무자와 당직사병이 초소를 향해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 기 시작했다.

"근무 시간 다 끝났나 보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강 진아. 재미있었어. 내일도 잘 부탁하마."

"예, 알겠습니다."

이번 외곽 근무에 높은 만족도를 드러내는 오인섭이었지 만, 이강진은 전혀 아니었다.

'젠장. 내 이야기만 하다가 끝났네.'

이게 아닌데.

원래 목적은 오인섭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소득이 없었다.

이강진 입장에선 시간만 날린 셈이었다.

'그래도 오인섭 병장과 조금 친해졌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하나.'

거리를 약간 좁힌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다.

'내일이 마지막 기히다. 어떻게 해서든 오인섭 병장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해!'

그렇지 못한다면, 애써 찾아온 기회를 다른 자에게 빼앗길 수 도 있다.

좀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월요일 하루 동안 접수된 기독교 군종병 오디션 희망자의 총 숫자는 총 7명이었다.

오인섭이 예상했던 것보다 헐씬 많았다.

그와 같은 박격포반에 속해 있는 박호영 일병도 기독교 군종병에 지원했다.

그 소식을 듣게 된 이강진은 무의식적으로 관자놀이를 지그 시 눌렀다.

좋은 소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선임이 작업병을 하나 가지고 있으면, 웬만하면 그 작업병은 다른 분과가 아닌 자신의 분과에게 대대손손 물려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선임으로서 후임들에게 포상휴가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박호영의 등장은 이강진을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난감한데.'

이강진이 아는 한, 박격포반 소속 병사들 중에서 오인섭처럼 기독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병사는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박호영도 마찬가지일 터.

'신앙심이 없다. 이게 유일한 희망이긴 한데.'

사실 반드시 신앙심이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이곳은 군대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그냥 억지로 다 끼워 맞 추면 그만이다.

기독교 종교행사에 대해 잘 모른다? 이제부터 배우면 된다. 신앙심이 없다? 이제부터 쌓아 가면 된다.

이것이 바로 군대 스타일.

박호영까지 참전하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어. 오늘 안에 반드시 승부를 봐야 한다!'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오인섭의 숨겨진 취향을 알아내야 한다.

그게 유일한 희망이 되어버렸다.

오인섭이 좋아할 만한 게 무엇이 있을까.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이강진은 열심히 삽을 들고 땅을 까고 있는 추민복에게 다가갔다.

"추민복 상병님.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네가?"

"예. 곡괭이질만큼은 잘할 자신 있습니다."

이강진이 땅을 헤집어준 덕분에 추민복은 어렵지 않게 단단 하게 굳은 흙들을 퍼낼 수 있었다.

땡볕 아래에 구슬땀을 흘리며 그렇게 작업을 시작하게 된 두 남자.

일과 시간 동안, 다른 병사들도 이들 못지않게 노가다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2부소대장이 병사들에게 '10분간 휴식!'을 선언했다.

그제야 이강진과 추민복도 삽과 곡괭이를 잠시 땅바닥에 내 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추민복 상병님. 음료수 뭐 드시겠습니까?"

"물이면 된다. 탄산은 식이조절의 적이거든."

"그럼 저도 물마시겠습니다."

꿀꺽, 꿀꺽, 꿀꺽!

순식간에 종이컵에 담긴 물을 비워버린 추민복은 이강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내 도움이 필요한가 보군."

"하하, 눈치 채셨습니까?"

"네가 슬쩍 내 쪽으로 올 때부터 바로 알아차렸지. 원래 1중 대 사람들은 나랑 같이 작업 안 하려고 하거든."

추민복과 같이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체력과 피지컬을 앞세운 추민복의 작업 속도는 평범한 병사 들은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속도만 빠를 뿐일까.

천만에. 지구력도 어마어마하다.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삽질, 곡괭이질을 한다. 이러니 누가 추민복과 작업하고 싶겠나.

이런 와중에 이강진이 슬쩍 그에게 말을 붙여온 것이다. 무슨 의도가 있음에 틀림이 없다. 추민복은 그렇게 느꼈다.

헬스장에 꾸준히 다닌 덕분에 제법 체력이 붙은 상태였다. 그 렇다 보니 추민복의 작업 템포에 어느 정도 어울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바라는 게 뭐냐, 강진아."

"어려운 건 아닙니다. 아주 간단한 겁니다."

"어려운 거든, 간단한 거든. 네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협력하마."

아직 이강진이 어떤 부탁을 하려는지도 모르는 상태임에도 불 구하고 추민복은 이강진에게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했다.

추민복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데에는 역시 지난 날, 연대장의 기습 순찰사건 덕이 컸다.

"너 덕분에 4박 S일 포상휴가도 따냈으니까. 나도 은혜는 갚 아야지."

"감사합니다, 추민복 상병님."

이강진에게 빚을 진 추민복. 이것 때문에 이강진은 일부러 추 민복에게 접근했다.

"오인섭 병장님에 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같은 박격포반인 추민복이라면 오인섭 병장에 대해 어느 정 도 알고 있을 터.

오인섭의 맞후임이 바로 추민복이다. 가장 오랫동안, 그것도 가장 가까이서 서로를 봐 왔기에 타 분과 병사들이 모르는 점들 역시 알 거라고 생각했다.

"군종병 오디션 때문이지?"

"예, 그렇습니다."

"하긴. 오인섭 병장님한테 잘 보여야 군종병 자리를 따낼 수 있을 테니까."

갑자기 추민복이 목소리를 낮줬다.

"오인섭 병장님이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한 게 있거든. 그러 니까 비밀 지켜라. 설령 들켜도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마."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김철에게도 말했지만, 이강진의 입은 굉장히 무겁다.

지킬 건 지키는 남자.

그가 바로 이강진이다.

"오인섭 병장님이 말이다. 실은 숨겨진 취미를 가지고 있거 드 w 어쩐지.

오인섭의 취향이 뭔지 종처럼 안 떠오른다 싶었건만. 본인이 숨기고 싶어 한 탓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강진이 쉽게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게 무엇입니까?"

목소리를 더 낮추는 추민복.

조심스럽게 일급비 밀을 누설했다.

"오인섭 병장님, 만화하고 웹툰 엄청 좋아하셔. 실제 여자보다 2D 여성 캐릭터를 더 좋아하실 정도거든."

"만화, 웹툰……."

조금씩 해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인 정비 시간에 이강진은 김철과 함께 PX를 찾았다.

근무 시간표를 이강진이 원하는 대로 편성해준 보답을 하기 위해서였다.

"잘 먹을게, 강진아."

"그래. 마음껏 먹어."

김철이 냉동식품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이강진은 추민복이 알려준 오인섭에 관한 정보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의외네.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전혀 티가 안 났었다. 평소에 만화를 즐겨보는 것도 아니고. 웹툰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취미가 남들에게 알려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나 보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 아닌데도 그 냥 자신의 취미를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타입.

오인섭도 그런 쪽 중에 하나일지도 몰랐다.

반면, 오인섭과 다르게 당당하게 서브컬처 마니아임을 블4히 고 다니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 김철이었다.

"철아. 너, 만화나 웹툰 같은 거, 잘 알지?"

"알다마다. 웹툰 작가 하려면 그쪽 지식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신병교육대에서 같이 훈련을 받을 당시, 김철은 쉴 때마다 자 신의 서브컬처 지식을 자랑한 적이 있었다.

올해에 어느 웹툰이 반응이 가장 핫한지. 또 무슨 만화가 이 번에 애니메이션화가 결정이 되어서 팬덤에서 난리가 났다든지. 이런 식으로 이강진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지식들을 30분 동 안 쉼 없이 떠들어댔었다.

그 당시에는 대충 맞장구만 쳐주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으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요즘 유행하는 만화나 웹툰이 뭐야? 아무튼 서브컬처? 그쪽 에서 핫한 거 있으면 나한테 좀 알려줄래?"

이강진의 제안을 들은 순간, 김철의 행동이 멈췄다.

갑자기 그가 섬뜩한 말을 했다.

"진짜로?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후회까지 해야 되나?"

"왜냐하면 내가 지금부터 너를 붙들고 최소 다섯 시간은 이야기해야 할 거 같거든."

발을 들여놓으면 안 될 곳에 들어선 불길함이 엄습했다.

화요일 저녁 점호가 끝나자마자 병사들은 이강진을 제외하고 바로 취침 준비를 서둘렀다.

이강진은 오늘, 외곽 근무 초번초에 투입될 예정이다.

물론 파트너는 오인섭 병장이다.

"근무 수고해라, 강진아."

"예. 오늘 하루 고생하셨습니다. 취침 소등 하겠습니다."

이강진은 나가는 김에 취침 소등 역할까지 도맡았다.

행정반에 들어선 뒤에 말판, 총기현황판을 수정하고 오인섭 병장을 기다렸다.

오늘이 오인섭 병장의 마지막 외곽 근무다.

그는 속이 후련한 듯 한껏 미소를 머금으며 행정반에 등장했다.

"강진아. 형, 오늘 마지막 외곽 근무니까 잘 부탁한다."

"예, 알겠습니다."

아주 스페셜한 마지막 근무를 원했다.

인솔자와 함께 탄약고 초소로 향하는 두 남자.

초소에 들어서자마자 오인섭은 곧장 좋을 내려놓고 방탄모를 벗었다.

"하아. 이 지긋지긋한 산 풍경도 이제 마지막이구나."

"전역하시면 뭐부터 하실 겁니까?"

"글쎄다. 일단 집에 쳐 박혀서 게임이나 좀 할까 고민 중인데. 어차피 복학하려면 반년은 기다려야 하고. 그때까지 알바라도 해둘까 생각도 해봤는데, 전역하자마자 바로 알바 뛰면 좀 억울 할 거 같아서 놀다가 복학하려고. 아니면 뭐 할 만한 거 없나? 추천 좀해줘 봐."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휴가 나갔을 때 '이노 블레이드'라는 웹툰을 봤었는데, 그거 한 번 보시면 어떻습니까?"

웹툰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오인섭의 표정이 변했다.

"너…… 그거 보냐?"

"예. 미리보기까지 다 결제해서 보고 왔습니다."

"그, 그래? 최신화 어떻게 전개됐냐? 메리가 진짜로 배신자였 어? 수잔은? 베리커드는 살아 있고?"

잔뜩 흥분해 묻는 오인섭.

그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이강진의 입 꼬리 또 한 위로 향했다.

< 제27화. 군종병 오디션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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