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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89화 (89/347)

< 제27화. 군종병 오디션 (1) >

제27화. 군종병 오디션 (1)

1부소대장의 부름에 따라 행정반으로 향한 오인섭 병장.

"충성. 병장 오인섭,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인섭이 왔냐. 행보관님께서 찾으시니까 들어가 봐라."

"행보관님, 부대 오셨습니까?"

"어. 안에서 업무 보고 계시는 중이야."

"예, 알겠습니다."

유격 훈련을 치루는 동안 밀린 부대 업무가 산더미였다. 행보관은 그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주말에도 출근길에 올랐다.

또또또

"병장 오인섭입 니다."

"들어와라."

허가가 떨어지고 나서야 행보관실의 문을 열었다.

말년병장의 천적이라 불리는 행보관 앞에 마주서니 불안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혹시 뭐 작업이라도 시키려는 건 아닐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민복이하고 운동이나 갈 걸 그랬네.'

그래봤자 어차피 불려오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앉아봐라."

"예."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름이 아니고…… 가만 보니까 너, 전역 얼마 안 남았더라."

"예. 20일 후면 전역입니다."

하루하루 달력에 체크를 해가면서 전역까지 며칠 남았는지 확 인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정확하고 빠른 답변을 선보이 는 게 가능했다.

헛웃음을 삼킨 행보관.

"전역도 좋지만, 슬슬 인수인계도 해야 하지 않겠냐."

"분대장 말입니까?"

"아니. 군종병."

분대장이야 어차피 1분대 분대장 교체식 때 같이 진행할 예 정이다. 참고로 박격포반의 차기 분대장은 추민복. 박격포반 이 미지에 아주 딱 어울리는 병사였다.

"군종병 누구에게 물려줄지 후임자를 정해두고 전역해야지. 설마 그대로 나 몰라라 전역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다만……."

"다만?"

여태껏 군종병을 물려주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눈에 확 들어오는 녀석이 없어서 고민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기독교 군종병을 물려줄 수는 없었다.

기독교 종교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신앙심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요일 주말 오전을 포기할 수 있는 봉사심을 갖추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물론 4박 5일 포상휴가가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이틀밖에 없는 주말 하루의 오전을 매주 날려먹는 건 꽤 크다.

다른 작업병에 비해 조건이 굉장히 까다롭다보니 군종병을 하 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원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있긴 하 다. 문제는 오인섭이 생각하는 기준치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본인이 고생하기 싫다면 아무나 골라선 안 된다. 무조건 똘똘 한 녀석으로 골라야 한다. 만약 후계자를 잘못 선정하게 되면, 문제가 터질 때마다 오인섭이 직접 뒤치다꺼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역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 고생을 하고 싶진 않다.

상황이 이러니 오인섭 병장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행보관도 마찬가지였다.

"큰일이군."

펜대를 굴리기 시작하는 행보관.

오인섭이 전역하기 전에 후임을 정해둬야 원활한 인수인계가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문제가 많이 발생할 터.

"일단 한 번 지켜보자꾸나.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하고 싶 다는 애들 중에 한 명 골라. 그럼 바로 군종병 인수인계 하게끔 진행시켜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오인섭도 하루 빨리 군종병을 떼고 싶었다. 이미 포상휴가는 다 챙겼는데, 일요일 오전마다 나가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있으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나.

하아.

행보관과 오인섭의 한숨 소리가 한동안 행보관실을 채웠다.

* * *

행보관실에서 나온 오인섭 병장은 행정병을 찾았다.

"일문아."

"상병 정일문."

"미안한데. 포스터 하나만 만들어줄래?"

"포스터 말입니까?"

정일문은 귀를 의심했다.

"뜬금없이 무슨 포스터입니까?"

"군종병 구인 광고 포스터."

"아하."

동시에 왜 오인섭이 행보관에게 불려오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 었다.

"그냥 텍스트로 몇 자만 적어줘. 군종병 인수인계 받을 후임 병 구한다고. 그리고 두 가지만 굵은 글씨로 강조해서 넣어줘 라."

오인섭의 주문은 간단했다.

빠르게 텍스트 작업에 들어간 정일문.

'기독교 군종병 선발 오디션 개최!'라는 문구와 함께 오인섭이 강조해달라고 한두 가지 사항이 아주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다! 4박 5일 포상휴가 지급!

-화제의 인기 여배우, 한지윤 씨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절 호의 기회!

"이 정도면 만족하십니까?"

오인섭은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고개를 수차례 끄덕였다.

"좋아, 좋아. 이 정도는 되어야지! 이거 몇 장만 더 출력해줘. 여기저기에 붙여두게."

"행보관님한테는 허락 받으신 거 맞습니까?"

"물론이지! 행보관님도 하루라도 빨리 후임 병 구하라고 난리 시다. 나도 어서 이 지긋지긋한 군종병 타이틀 떼버려야지."

"오인섭 병장님, 처음에 군종병 달았을 때, 엄청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땐 그때고."

마음이 떠났을 때.

그때가 바로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기독교 군종병을 뽑은 오디션을 개최하겠다는 소식이 하루도 안 되어서 1중대 전체에 퍼졌다.

이강진은 포스터를 예의주시했다.

'예전에도 이런 포스터를 걸었었나.'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때는 기독교 군종병에 별로 관심이 없을 때라서 기억을 못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한지윤이 여력이 될 때까지 당분간 계속해서 종교행사에 참 가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무조건 군종병을 달아야 한다.

이 절호의 기회를 다른 이들에게 양보할 수 없다.

절대로

'오디션 일자는 수요일 저녁이군.'

수요일 당일까지 포함하면 3일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다.

'면접은 오인섭 병장이 직접 볼 테고.'

그렇다면 작전은 오히려 심플해진다.

'오인섭 병장만 공략하면 되겠군.'

바로 행동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이강진은 김철을 찾아갔다.

컴퓨터 앞에 앉아 근무자 편성표를 짜고 있는 김철의 모습에 눈에 들어왔다.

이강진은 조용히 김철을 불렀다.

"철아."

"응? 무슨 일이야?"

"혹시 오인섭 병장님, 외곽 근무 언제 들어가시는지 알 수 있을까? 오늘하고 내일."

"오늘 거는 지금 막 부랴부랴 짜고 있어서 아직 안 나왔는데."

"그래? 잘 됐네."

이강진은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끔 작은 목소 리로 부탁했다.

"나하고 오인섭 병장님하고 같이 근무 투입될 수 있게끔 해주면 안 될까?"

"그거야 어렵진 않은데…… 근데 왜?"

오디션이 개최되기 전에 이강진은 오인섭과 친분을 쌓아두고 싶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한 번이라도 얼굴을 자 주 본 사람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가제는 게 편이다. 이런 말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강진은 조금이라도 오인섭과 거리를 좁히고자 이런 승부수를 띄우려는 것이다.

일종의 사전 작업이다.

하지만 그걸 김철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괜히 이야기가 새어나가기라도 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나중에 말해줄게. 일이 잘 성사되면, 내가 거하게 한 턱 쏠 테니까 부탁 좀 하마."

신병교육대에서 이강진에게 숱하게 도움을 받아왔던 김철이다. 이강진이 이렇게까지 부탁을 해오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알았어. 대신,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야. 특히 우리 선임 들한테는 더더욱."

"나만 믿어. 나, 입 무거운 거 알잖아?"

"알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유격 훈련이 끝난 후부터 1분대 분과별 간담회는 안준렬 상 병이 주도하기 시작했다.

분대장 결산 회의도 이제는 더 이상 전마등의 몫이 아니었다.

"전마등 병장님. 이번 주 목요일에 박격포반하고 같이 분대장 교체식 가질 거라고 합니다.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될 거 같습니다."

"오케이, 오케이. 알았어."

"그리고 또…… 아, 중요한 걸 잊을 뻔했네."

요즘 1중대를 핫하게 만든 이야깃거리가 있다.

"오인섭 병장님이 군종병 후임 뽑으려는 거,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혹시 군종병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 있어? 지원자 모아서 오 인섭 병장님한테 좀 있다 취침시간 전에 명단 전달해주려고 하 는데."

서로 눈치만 보고 보던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단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이병 이강진!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1분대원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윤 씨를 노리고 있구먼."

"속이 빤히 보인다, 이 녀석아."

"뭐, 지윤 씨도 강진이 좋게 보고 있는 거 같으니까."

하지만 한지윤이 좋게 본다고 기독교 군종병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조건 오인섭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안준렬은 분대장 수첩 한 장을 찢어 이강진의 이름을 적었다.

그러면서 백우호 쪽을 돌아봤다.

"우호는?"

"저 말씀이십니까?"

"어. 강진이가 뭐 하면 너도 하겠다고 나서고 그랬잖아. 이번 에는 아니야?"

백우호는 작게 웃었다.

"후후후. 저는 군종병 말고 다른 걸 노리고 있습니다."

"뭔데?"

검지와 중지로 브이(V) 자를 만들어 보이고서 자신의 머리카 락을 자르는 시늉을 선보였다.

"이발병입니다."

"이발병?은근히 귀찮은데, 그거. 오바르크병이라든지 제초병, 공병, 보일러병 같은 건 생각 안 해봤어?"

"여러모로 고민을 해봤는데, 그래도 이발병이 저한테 그나마 잘 맞는 거 같습니다. 그냥 바리강으로 밀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글쎄다. 네가 생각하는 거랑 많이 다를 텐데."

같은 머리 스타일이라도 은근히 테크닉을 요한다. 그것이 이 발병이다.

그래도 안준렬은 본인이 하고 싶다는 걸 억지로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래. 우리 1분대에 작업병이 하나도 없으니까, 너희들이 많 이 가져와서 분대 후임들에게 물려주고 그래라. 응원하마."

"예, 알겠습니다!"

"힘내겠습니다!"

졸지에 작업병 헌터가 된 이강진과 백우호.

이들의 총성 없는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된 거나 다름없다.

새벽 2시.

이강진은 오인섭 병장과 함께 탄약고 초소를 올랐다.

탄약고 초소로 들어오자마자 이강진은 행정반에 키를 넣어 초 소 투입 보고를 진행했다.

다시 키를 내려놓자마자 오인섭이 먼저 이강진에게 말을 걸 었다.

"너하고 외곽 근무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인 거 같은데."

"예, 그렇습니다."

"주로 누구랑 섰지?"

"전마등 병장입니다."

"마등이라. 재미있지, 그 녀석. 마등이 말고 다른 선임은?"

"안준렬 상병입니다."

"으아…… 안준렬, 난 별로인데. 너무 재미가 없어."

"하하하, 그래도 무박 3일 때에는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전역하기 전에 한 번 같이 서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오인섭은 고개를 거세게 가로저으며 격렬하게 거절 의사를 드 러 냈다.

"죽어도 싫다. 차라리 추민복이랑 서고 말지. 그 녀석, 근육에 미친놈이긴 해도 나불대는 것 하나는 잘해서 적어도 심심할 일 은 없거든. 그러고 보니 너, 민복이하고 같이 근무 선 적 있지?"

"예. 연대장님 순찰 오셨을 때입니다."

"타이밍 참 기가 막히네."

이미 그 일은 중대 내에선 전설적인 일화로 취급받고 있었다.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궁금해 하는 오인섭을 위해 이강진 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도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은 끊임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오인섭 병장이 무엇을 좋아했었지?'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뿌엿게 만들어진 기억의 안개를 어떻 게 해서든 걷어내야 한다.

오인섭의 취향이 무엇인지.

그가 뭘 좋아하는지.

이것만 알아낸다면…….

'군종병은 내 차지다!'

< 제27화. 군종병 오디션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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