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86화 (86/347)

제25화. 유격 훈련 (7)

교체로 투입될 병사가 손을 번쩍 들었다.

213번 교육생. 아니, 이병 기운상!

투스타의 아들이 강림했다!

기운상을 투입시키기 위해서 백우호는 일부러 다친 척 연기 를 했다.

한편, 3중대는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물론 나영훈 대위도 마찬가지였다.

"저, 저건 반칙이지 않습니까?!"

항의를 해보는 나영훈이었지만, 1중대 중대장에게는 씨알도 안 먹혔다.

"왜 반칙이지? 운상이도 우리 1중대원인데. 뭐 불만 있나?"

"그, 그건……."

사실 반칙 맞다.

대대장, 아니 연대장조차 쩔쩔 매는 이등병, 기운상을 참호 전 투에 투입시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는 거의 치트키 였기 때문이다.

이미 3중대에서도 기운상은 유명했다.

1075 대대에서 가장 유명한 이등병!

그가 뻘쭘한 표정으로 상의를 탈의하면서 참호 전투장에 입 성했다.

"이강진 이병님. 정말로 제가 들어와도 괜찮습니까? 저, 이렇 게 몸 부딪치고 하는 운동은 잘 못합니다."

딱 봐도 못하게 생겨 보였다.

키만 멀대 같이 크지, 근육이 있다든지 하진 않았다. 가게가 새로 개업했을 때 세워두는 기다란 풍선 인형 같았다.

도민적이 가서 어깨치기 한 번 하면 금방이라도 뼈가 부러질 것처럼 약했다.

하지만 기운상의 뒷배경 자체는 절대로 약하지 않다.

오히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

이강진은 괜히 자기 때문에 지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기운상을 안심시켜줬다.

"괜찮아. 넌 그냥 경기 시작되면 먼저 앞장서서 천천히 걸어 가기면 하면 돼. 그러면 나머지는 알아서 잘 해결될 거다."

"제, 제가 선봉장입니까?!"

"그래."

"그러다가 저, 죽습니다!"

순간 이강진은 이런 반론을 할 뻔했다.

그러다가 죽는 건 네가 아니라 3중대가 될 거라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3중대원들의 표정을 직접 확인한 이강진 은 씨익 웃었다.

'이겼다!'

투스타의 아들 카드를 내민 이강진.

이미 이 경기는 이긴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대장은 안절부절 못했다.

혹여나 투스타의 아들이 참호 전투를 하다가 다치기라도 해 봐라. 그 순간, 부대에 바로 투스타가 소환될 것이다.

"어, 어흠!"

헛기침을 하면서 일부러 3중대장에게 눈치를 주는 대대장.

바통을 이어받아 3중대장이 3소대장을 매섭게 쏘아 보냈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3소대장은 중대원들에게 에둘러 말했다.

"적당히, 아? 주 적당히 해야 한다. 제발!"

"아, 알겠습니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킨 중대원들은 마지못해 알았다고 대답했다.

1중대는 모두의 예상대로 기운상을 선봉장으로 내세웠다.

무거운 호흡을 내쉬면서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에라이, 모르 겠다! 심정으로 몸을 던지는 기운상.

"으아아아아아!!!"

기운상과 정면으로 어깨를 부딪친 도민적.

데미지는 제로(Zer.)에 가까웠다.

하지만 심적 데미지는 999,999,999였다.

"아, 아악."

도민적은 어설픈 비명을 내지르면서 쓰러지는 연기를 펼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3중대원들도 기운상의 어깨치기에 못 이기듯 쓰러졌다.

물론 다 연기다. 짜고 치는 고스톱일 뿐.

뒤늦게 눈을 뜬 기운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어느 새 3중대원들은 전부 다 쓰러진 상태고, 자기 혼자서 깃발 앞에 서 있었다.

이강진이 기운상에게 외쳤다.

"운상아! 그거 가져오면 된다!"

"아,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따라 허겁지겁 깃발을 뽑고 다시 1중대 진영으로 돌아왔다.

푹!

기운상의 손으로 직접 깃발을 꽂았다. 동시에 결승전의 승자 가 결정되었다.

"1 중대, 승!"

"이, 이겼다!"

"우승이다, 우승!"

"더 이상 PT체조 안 받아도 된다! 이얏호!!"

점수도 따고, PT체조도 안 받을 수 있고.

이거야말로 금상첨화다.

시무룩해 하는 3중대원들을 바라보면서 이강진은 속으로 미 안함을 드러냈다.

'치트키 쓰게 된 건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유격왕을 곱게 넘겨줄 수는 없지.'

포상휴가를 얻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이런 희생도 필요한 법이다.

참호 전투에서 우승한 중대는 남은 시간 동안 자유를 허락받 을수 있게 되었다.

다른 중대는?

약속한대로 유격 체조훈 련 이다.

텐트로 돌아오던 중에 황지웅이 이강진을 불렀다.

"강진아.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예, 어떤 겁니까?"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운상이를 투입시키면 무난히 이길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정 말 좋다고 보거든? 근데 처음부터 이런 전략을 꺼냈더라면, 보다 쉽게 우승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맞는 말이다.

본부중대와 맞붙었을 때부터 기운상을 주전 멤버로 활용했으 면 고생 안 하고 우승까지 바로 거머쥐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강진은 필살의 카드를 가장 마지막에 꺼 냈다.

참호 전투 전략을 짠 게 이강진이라는 건 1중대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황지웅은 이강진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정 말 궁금했다.

이강진은 작게 웃었다.

"처음부터 운상이를 투입시켰다면 재미없지 않습니까?"

너무 쉬운 경기는 재미없다. 어차피 기운상이라는 카드를 보 유하게 된 이상, 승리는 무조건 확정된 셈이다. 기왕 이길 거, 재 미까지 챙길 수 있는 전략으로 이기면 좋지 않은가.

이게 이강진의 대답이었다.

대답을 들은 황지웅은 깨달았다.

군대에 정말 많은 괴짜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괴짜는 이강진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 * *

유격 훈련 4일째.

이번에도 변함없이 오전 PT 체조가 진행되었다.

인간은 적응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다. 유격체조훈련도 받 다보니 이제는 적응이 슬슬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옥 같았던 시간도 4일째가 되니까 지옥까지는 아니고 지옥 문턱 정도 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지옥인 건 여전했다.

오후에는 약간의 코스 훈련과 더불어 교육생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훈련 중 하나가 일정으로 잡혀 있었다.

화생방 훈련이다.

유격에서도 화생방 훈련을 받을 수 있다.

화생방 훈련을 받기 전에 이론 교육부터 먼저 받는다.

화생방 상황 조치 훈련을 비롯해서 방독면 마스크, 화생방 보 호의 착용 훈련 등등. 여러 가지 것들을 교육 받는다.

이강진이 속한 조는 다른 조들과 함께 화생방 전시 상황이 발 생했을 때 사용하는 신경작용제 해독 키트, KMARK-1 사용법에 대해 교육받을 예정이다.

조교 한 명이 두 개의 주사기를 들어보였다.

"지금 교육생들이 보고 있는 게 KMARK-1 키트에 들어 있는 해독 주사기입니다. 작은 주사기가 아트로핀, 큰 주사기가 옥심 입니다. 중독 현상이 나타났다 싶을 때에는 이것을 들고 허벅지, 엉덩이에 꽂으면 됩 니다. 그러면 알아서 바늘이 튀어나와 해독 제를 신체 내에 투여합니다."

영화에서도 자주 나왔던 주사기다.

특히 전쟁이나 액션 영화에서 저 해독 키트를 자주 사용하는 걸 볼 수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에 이강진은 저들의 설명을 귀 담아 듣지 않았다.

대신,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들었다.

'그러고 보니 4일째에 뭔가 사고가 하나 나지 않았었나?'

누군가가 병원에 실려 가는 사고였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리 중대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화생방 교육을 받을 때라는 건 기억이 난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봤지만,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 와중에 화생방 조교가 앞선 줄에 있는 교육생들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부터 아트로핀, 옥심 주사기를 허벅지, 엉덩이에 꽂는 실 습을 할 겁니다. 실제로 주사 바늘이 튀어나오는 진품은 아니고, 교육용 모조품이 니까 안심하고 체험하면 됩니다."

모조품 주사기들을 건네받은 교육생들.

이강진 앞에 있던 병사가 약한 소리를 했다.

"아, 주사기 무서운데?-…."

동기로 보이는 남자가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모조품이래잖아. 무서울 게 뭐 있어? 어차피 팍팍 찔러도 바 늘 안 나올 텐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모조품 중에 진품이 숨겨져 있을지 도."

"꼭 너처럼 걱정하는 놈들이 있더라. 그런 거 일일이 다 걱정 되면 세상 무서워서 어떻게 사냐? 겁쟁이 녀석 같으니라고. 이 런 건 말이야. 이렇게 한 방에 팍……!"

있는 힘을 다해 오른쪽 허벅지에 뭉툭한 주사기 끝을 내려찍 은 병사.

그 순간, 병사의 입에서 '억!' 하는 비명이 튀어나왔다.

비명 소리가 꽤 컸다. 화생방 조교들은 상황이 이상함을 눈치 채고 해당 병사에게 다가갔다.

"교육생. 왜 그럽 니까?"

"주, 주사가……!"

손으로 주사기를 들어 올리자 병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바, 바늘이 튀어나와 있잖아!"

"자, 잠깐만! 저거, 진품이었어?!"

"의무병! 의무병 데려와, 어서!"

훈련용 모조품인 줄 알았건만. 설마 진짜 주사기가 섞여 있을 줄이야!

덕분에 의무병이며 군의관이며 죄다 사건 현장으로 달려올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화생방 이론 교육은 잠시 중단되었다.

그제야 이강진은 떠올렸다.

'아, 이 사건이었군.'

이미 너무 늦은 거 같았다.

아트로핀, 옥신이 실제로 몸속에 투여되었다고 해도 건강에 큰 지장이 생기진 않는다. 대신, 당분간 안정을 취해야 한다.

허세를 부리던 병사는 진짜 주사를 맞은 덕분에 본의 아니게 화생방 훈련에서 열외 되었다.

이론 교육이 끝난 뒤에 드디어 본론이 시작되었다.

화생방 훈련을 받기 위해 모여든 병사들.

탁! 탁!

문이 굳게 닫힌 화생방 훈련장 안에서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연달아 들려왔다.

CS탄이 터지는 소리라는 것을 모르는 병사는 이 자리에 없었다.

"아니, 왜 저렇게 많이 터트린데?"

"글쎄…"

"우리가 뭐 잘못하기라도 했나?"

"잘못한 게 너무 많아서 짐작도 안 간다, 야."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CS 연기를 살짝 맡은 것만으로도 눈물, 콧물이 절로 튀어나왔다.

전마등은 1분대원들에게 각오하라는 식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우린 죽은 목숨인 거 같다. 애들아, 꼭 살아서 보 자!"

마음을 단단히 잡아야 했다.

"다음!"

드디어 이강진 조가 투입되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앞이 제대로 안 보일 만큼 많은 연기가 병사들의 시야를 방해했다.

욕지거리가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씨발, 대체 얼마나 많이 터트린 거야!'

이강진은 속으로 애써 욕지거리를 삼켰다.

화생방은 어제 치룬 참호 전투처럼 전략을 짠다든지 하는 그 런 게 없었다. 전략보다 요령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요령!

화생방 교관이 이들에게 명령했다.

"마지막 구호는 생략하고 팔 벌려 뛰기 10회 시작한다. 몇 회?"

"10 회!"

"9회, 시작!"

다른 때에는 몰라도 화생방 훈련에서 마지막 구령을 잘못 외 치는 순간, 말 그대로 역적이 된다.

바짝 날이 서 있는 1분대원들.

다행스럽게도 트롤짓을 하는 병사는 없었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화생방 훈련은 시작도 안 했다.

"지금부터 정화통 해체한다. 실시!"

정화통을 분해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화생방 가스가 방독면 안으로 들어오기 시 작했다.

"콜록, 콜록!"

"켁 !"

"우, 우웨엑……!"

사방에서 들려오는 기침 소리.

이강진은 이를 악 물었다.

'화생방도 지겨워 죽겠네! 씨발!'

이러다가 정 들지도 모른다.

< 제25화. 유격 훈련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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