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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81화 (81/347)

< 제25화. 유격 훈련 (2) >

제25화. 유격 훈련 (2)

유격 입소 행군의 막이 올랐다.

유격 훈련을 고달프게 하는 대에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한다.

PT체조, 강도 높은 코스 훈련, 위생과는 거리가 먼 텐트 생활 등등.

하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건 바로 더위다.

"헉, 헉……."

"하악……."

병사들의 입에서 뜨거운 숨결이 주기적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덥다. 무진장 덥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추워서 바들바들 떨었던 기억 이 새록새록 한데. 날씨가 갑자기 180도 바뀌었다.

이 무더위는 이강진조차 버티기 어려웠다.

'이 빌어먹을 군대 날씨는 줍거나 아니면 덥거나. 둘 중 하나 밖에 없냐!'

이강진의 말이 정확했다.

군대 날씨에 포근함, 따사로움 같은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엄청 줍거나 아니면 엄청 더울 뿐이다. 이것이 군대 날씨다.

벌써 두 번째 군생활을 하게 된 이강진은 아직도 말로 형용하기 힘든 거지같은 군대 날씨의 원인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앞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병사들.

행군이 시작된 지 이제 2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 밀착한다, 앞으로 밀착!"

"앞으로 밀착!"

부소대장의 말을 복명복창하면서 앞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는 병력들.

이들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9382 대대로 진입했다.

이강진이 속해 있는 1075 대대와 전혀 상관없는 타 부대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1중대 소대장이 중대원들에게 외쳤다.

"점심식사 진행할 테니까 군장 내리고 앉아서 대기하고 있어 라. 전원, 착석!"

"착석!"

쿵!

무거운 군장이 지면 아래로 낙하했다. 군장을 벗은 순간, 백 우호는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대로 하늘까지 점프할 수 있을 거 같아. 진짜로."

"그러면 한 번 해보시든가."

이강진에게는 농담이 통하지 않았다.

그는 군장을 내려놓자마자 후임인 기운상을 살폈다.

"운상아. 괜찮냐? 할 만하지?"

"이병 기운상! 예! 할 수 있습니다!"

"그래. 행군이 어려운 거 없이 그냥 걷기만 하면 되는 훈련이 니까 마지막까지 정신출 놓지 말고 해보자."

"예!"

사회에 있을 때 자주 농구 주전멤버로 뛰었던 기운상이라 그 런지 체력 또한 남달랐다.

백우호야 물집 면역 속성을 지닌 축복 받은 발을 가졌기에 크 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이강진도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1분대 후임들은 쌩쌩했다. 여긴 오히려 선임들이 문제였다.

"헥헥……! 아, 힘들어 뒈지겠네, 진짜!"

전마등의 진심 어린 외침. 슬슬 말년이 되어가다 보니 체력도 예전만한 느낌이 아니었다.

서일주나 황지웅은 예전부터 행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고필중은 막 붕대를 풀고 처음으로 참가한 훈련이 하필이면 유 격이라서 그런지 약간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건 라인혁이었다.

안준렬의 빈자리를 대신해야 했기에 라인혁은 차기 분대장으로서의 역할을 소화해냈다.

가장 먼저 분대원들의 상태를 살폈다.

"부상자는 없지? 물집 심하게 잡혀 있다거나 하는 사람 있으 면 거수해라."

실시간으로 환자를 파악해두는 건 매우 중요하다.

이때,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전마등 병장이었다.

"인혁아. 나, 아프다. 환자라고."

"어디가 아프십니까?"

자신이 환자라고 주장하는 전마등 병장.

"마음이 아파."

"그 말을 듣는 제 마음도 아픈 거 같습니다. 되도 않는 농담 따 먹기는 그만 하시고 양말 벗고 발이나 좀 말리시기 바랍니다."

"쳇, 재미없는 녀석."

평소의 라인혁이었더라면 전마등의 말장난을 받아줬을 테지만, 오늘은 그럴 틈이 없었다.

쉬는 시간 동안 환자를 파악하고, 인원수 보고 이후에 분대원 들의 숫자에 맞게 전투식량을 챙겨 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안준렬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두 명만 따라오!라. 밥 받으러 가게."

"이병 이강진!"

"이병 기운상!"

이강진과 기운상이 알아서 지원했다. 그러나 라인혁은 두 사람 대신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지웅이, 필중이. 너희가 오f라. 짬 안 되는 막내 둘만 데리고 가면 행보관님이 분명 뭐라고 하실 게 뻔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간부들은 엉덩이가 무거운 선임급들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전 마등을 데려갈 순 없었기에 라인혁은 바로 아래 라인업인 황지 웅과 고필중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이들이 가져온 전투식량을 받은 이강진은 누구보다도 빠른 속 도로 전투식량 봉지에 달린 끈을 잡아당겼다.

머지않아 김이 모락모락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한편, 이강진의 행동을 곁눈질로 훔쳐보던 기운상은 결국 참 지 못하고 직접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이강진 이병님, 제껀 잘 안 당겨집니다."

"그냥 힘 팍 줘서 당기면 돼. 자, 이렇게."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동작으로 흰색 끈을 잡아당기는 이강진.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가까이서 보고 나서야 기운상도 이강진의 동작을 완벽하게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기운상은 난생 처음 보는 전투식량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맛도 있었다.

"대박입니다! 이거, 엄청 맛있습니다!"

"이럴 때나 한 번씩 먹으면 맛있지, 너무 자주 먹으면 질리더 라."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 게 당연하다. 군데리아도 마찬가지다.

군데리아나 전투식량이나. 처음 먹을 때는 기운상처럼 의외 로 맛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짬을 많이 먹을수록 그 생각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맛있다는 감정이 사라졌을 때.

그때는 '아, 내가 전역할 때가 왔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 이다.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다시 유격 입소 행군에 오를 때가 되 었다.

무거운 완전군장을 들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병사들.

말년들의 경우에는 가끔 행군 때 가라 군장을 만들어 몰래 행 군에 참가하곤 했다. 하지만 유격 행군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실제로 자신이 유격장에서 실제로 사용할 물건들을 군장에 넣고 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완전군장을 꾸려야만 했다.

행군이 시작된 지 일곱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주변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저기, 계곡 아니야?"

백우호가 앞쪽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경사진 절벽. 그리고 아래에 졸졸 흐르는 맑은 물.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계곡이 병사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 냈다.

그야말로 절경이다.

"와…… 대박이다."

"멋진데?"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나?"

숨겨진 명소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었다.

관광객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보니 주변에 사람 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 하나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병사들은 할 말을 잃 었다.

지친 심신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듯했다.

하지만 이강진은 계곡의 존재를 마냥 좋게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계곡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건……."

유격 입소 행군의 하이라이트 코스가 곧 이들 앞에 등장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 였다.

샛길을 통과해 코너를 도는 순간.

병사들은 경악했다.

"저, 저게 뭐야?!"

"사람이 갈 수 있는 길 맞아?"

"아니, 저걸 어떻게 올라가!"

이들을 이토록 겁에 질리게 한 존재가 눈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거의 40도에 육박하는 엄청난 비탈길!

이곳이 유격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난코스.

유격 배전 지옥 언덕이다.

유격 지옥 언덕은 경사도 경사지만, 지면 상태도 문제였다. 바닥이 자갈밭이다. 그러다보니 미끄러짐에 유의해야만 했다.

간부들도 이것을 강조했다.

"정신 차리고 똑바로 걸어라! 자칫 잘못하다가 뒤로 굴러 넘어지기라도 하면 단순한 부상으로 안 끝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비탈길이 너무 가파른 탓에 한 번 미끄덩해서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게 되면, 저 밑까지 내려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상당히 경사진 언덕이었다.

옆에는 절경이 펼쳐지고 있는데. 병사들의 몸은 비명을 지르 고 있었다.

어서 이 고통의 시간이 끝나기만을 빌었지만, 야속하게도 이 코스는 생각보다 꽤 길다.

이강진이 기억하는 바로는.

'2시간 정도 걸렸지.'

말 그대로 미친 코스다.

2시간 동안 계속해서 언덕 코스를 오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중간에 휴식 시간을 한 번 가질 수밖에 없었다.

"10분간 휴식한다, 10분간 휴식!"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병사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도중에 백우호가 비명을 질렀다.

"악! 이 빌어먹을 돌덩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돌을 계곡 아래로 던져버렸다.

돌 떨어지는 소리가 한참 뒤에서야 들렸다. 낭떠러지가 따로 없었다.

군장을 내려놓은 라인혁은 1분대원들에게 물었다.

"애들아, 살아 있지?"

"아직까지는…… 숨 붙어 있습니다."

"근데 이다음은 어떻게 될지 장담 못하겠습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이건 정신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안 된다.

이미 한 번 유격 훈련을 겪어본 경험자답게 라인혁은 후임들을 토닥여줬다.

"조금만 더 힘내라. 이제 딱 50분만 더 걸어가면 유격장 나올 테니까."

그 50분조차 견디기 힘들 거 같은 게 지금 병사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슬슬 해도 저물어간다. 어두워지기 전에 유격장에 도착하는 것이 1075 대대의 목적이다.

소대장이 돌아다니면서 외쳤다.

"출발 준비해라! 다들 군장 매!"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병사들.

계속 앉아 있으면 엉덩이와 자갈밭이 일심동체가 될 거 같았 기에 억지로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섰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쓰러지더라도 유격 장에서 쓰러지리라!

병사들의 눈에 이채가 감돌기 시작했다.

1중대 중대장이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크게 외쳤다.

"1 중대 파이 팅!"

"파이팅!!!"

유격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었다.

* * *

끝이 없을 줄 알았던 유격 입소 행군.

그러나 점점 희망적인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앞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 짝, 짝.

절도가 넘치는 박수 소리였다.

병사들의 시선은 언덕 위로 향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바로…….

"유격장 입구다!"

"드디어 끝이 보이는구나!"

"다 왔다, 다 왔어! 조금만 더 힘 내라, 아그들아!"

붉은색 배경에 검은 글씨로 '유격 입소 환영'이라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붉은 모자와 티를 입은 조교들이 흰색 장갑을 착용한 채 무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입소 행군을 무사히 마친 병사들을 환영하는 그런 박수였다.

그중에는 안준렬의 모습도 보였다.

전마등은 안준렬을 발견하자마자 씨익 웃어 보였다.

"우리 준렬이, 빨간 모자 잘 어울리네."

그러나 안준렬은 전마등이 말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른 조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는 선임, 동기, 후임이 말을 걸어도 그들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로봇처럼.

이강진은 그들을 보면서 느꼈다.

저들은 병사들의 입소를 축하한다고 박수를 치는 게 아니다.

'5일 동안 니들은 좆됐다는 뜻이겠지.'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다.

< 제25화. 유격 훈련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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