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77화 (77/347)

< 제24화. 두 번째 휴가 (1) >

제24화. 두 번째 휴가 (1)

일요일 오전에 종교행사를 가기 위해 연병장으로 집합하는 1 중대 병력들.

기운상은 원래 무교였으나, 군대에서 무교라고 종교행사에 참 가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종교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 그게 군대식 방법이다.

어느 곳을 갈까 고민하던 기운상은 선임들이 유독 많이 가기 를 희망하는 기독교 종교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백우호 이병님. 원래 1075 대대는 기독교 인원이 이렇게 많 습니까?"

"여기는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서 그래."

"이유? 그게 뭡니까?"

"교회에 가보면 안다. 그렇지, 강진아?"

이강진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강진조차 반해버린 첫 사랑.

한지윤.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교회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 딛었다.

교회에는 벌써부터 많은 병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은 한지윤이 줄석 도장을 찍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한지윤은 피아노를 두드리면서 리허설을 펼치고 있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녀의 모습에 병사들의 관심이 집중되었 다.

기운상은 그제야 백우호가 한 말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 다.

한지윤 덕분에 1075 대대 한정으로 기독교가 제대로 인기몰 이를 했다. 예수님이 아닌 한지윤을 보기 위해 오는 병사들도 적 지 않았다.

오늘의 예배는 비교적 빨리 끝났다.

끝나고 난 뒤에 항상 가지는 먹거리 배분 시간.

이번에도 한지윤이 먼저 이강진에게 말을 걸었다.

"강진 씨, 강진 씨."

그녀는 웃으면서 초코파이를 한 가득 이강진에게 건넸다.

"강진 씨한테만 특별히 서비스로 몇 개 더 드릴게요."

"감…… 사합니다. 하하하."

사실 초코파이에 목을 맬 단계는 이미 지났다. 단 게 땡긴다 면 PX에 가서 더 맛있는 것들을 먹을 수 있다. 굳이 초코파이를 찾지 않아도 된다.

훈련소에서는 초코파이 가 훌륭한 간식 거 리 였을지 모르지 만, 자대에서는 훈련소만큼 엄청나게 선호되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래도 한지윤이 주는 건데, 어찌 거절하랴.

이강진은 건빵 주머니 안에 4개의 초코파이를 쑤셔 넣었다.

"휴가 나가신다고 하셨죠?"

"예. 내일입니다."

"그렇 저희 약속도……."

"내일이죠."

이들은 휴가 첫날에 만나기로 말을 맞춰둔 상태였다.

휴가 도중에 만나려면 이강진이 경기도 지역까지 와야만 했다.

청주에서 경기도. 거리도 가깝지 않을뿐더러, 천금 같은 휴가 를 이동시간으로 날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저번처럼 휴가 복귀 때 만나거나, 아니면 휴가를 막 나갔을 때 만나는 게 좋아 보였다.

마침 내일, 한지윤은 별다른 약속이 잡혀 있지 않았다.

한지윤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윙크했다.

"내일 봐요, 강진 씨."

이 모습을 이강진 혼자 독점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일 이었다.

이강진은 월요일 아침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휴가 첫 날의 아침이 밝자마자 이강진은 바로 눈을 떴다. 기상나팔이 울리기까지 10분이나 남은 상황이었다. 눈을 감으려 던 찰나였다.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다시 눈을 뜬 이강진.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전마등 병장님?"

이름을 불린 전마등은 이강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 일어났어? 아니면 내가 깨웠나? 미안."

"아닙니다. 그보다 뭐 하고 계신 겁니까?"

"짐 싸는 중이지. 강진이, 너도 미리 짐 꾸려둬라. 아침 점호 마치자마자 밥 바로 먹고 와서 휴가 나갈 거니까."

짬이 되는 선임과 같은 날에 휴가를 나가면 이게 좋다.

눈치 안 보고 최대한 빠르게 위병소를 나갈 수 있다는 점 말이다.

휴가자 신고 하고 뭣하고 하다보면 한 9시 반쯤에나 부대를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군인들에겐 그 시간조차 아깝다.

이강진도 전마등을 따라 빠른 속도로 짐을 꾸렸다.

완전군장, 그리고 의류대에 자신의 개인 물품들을 챙겨 넣었휴가자들은 이런 식으로 짐을 미리 싸둬야 한다. 나중에 휴가 자들이 휴가를 떠났을 때, 남은 분대원들이 휴가자들의 군장과 의류대를 창고에 올려둔다. 그리고 휴가 복귀날에 다시 창고에 서 군장과 의류대를 꺼내 생활관에 가져다 놓는다.

이강진은 가지고 있는 짐이 별로 없었다. 기껏 해봐야 주식 관 련 서적 몇 권과 노트 정도.

어차피 가지고 있는 주식 서적은 이제 버릴 것이다. 다 읽었 기 때문이었다.

'나가서 새로 출판된 거 몇 권 사와야겠군.'

주식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고 적당히 둘러대면, 별다른 의심 없이 검필 도장을 바로 받을 수 있다. 검필 도장이 찍혀 있으면 그 서적은 반입이 가능해진다.

휴가를 준비할 때마다 나가서 해야 할 일들이 하나씩 추가되 는 그런 느낌이었다.

점호를 마치자마자 이강진은 전마등과함께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아침 메뉴는 최악이었다.

그래도 이들은 딱히 상관이 없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나갈 거 니까.

"강진아. 차라리 나가서 사먹자. 아침 겸 점심. 괜찮지?"

"예, 알겠습니다."

사실 점심부터 한지윤과 데이트 약속이 잡혀 있었다. 그렇다 고 전마등에게 한지윤과 점심을 먹을 예정이니 난 싫다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뭐, 점심 먹을 때쯤이면 다 소화 되어 있겠지.'

이런 이유도 있었기에 전마등의 제안을 바로 수락했다.

바로 생활관으로 올라온 전마등과 이강진.

행정반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던 당직사관, 통신반장 이 행정반으로 들어오는 두 병사를 바라봤다.

"오, 휴가자들이냐"

"예, 그렇습니다."

"강진이도 나가네? 너한테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 오늘도 포 기해야겠구먼."

통신반장은 운이라고 해야 할까. 이강진에게 오붓하게 주식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타이밍이 영 나질 않았다. 기회가 생겼다 싶으면 행보관, 혹은 중대장이 통신반장을 찾거나 아니면 다른 급한 일이 생겨버리곤 했다.

이 정도면 인연이 아니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통신반장은 끈질겼다.

"강진아. 휴가 나갔다 오면 형이랑 진득하게 이야기 좀 하자."

"예, 알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잘 갔다 오고. 휴가자 신고는 필요 없으니까 바로 나가라."

"감사합니다!"

역시 AM 스타일, 통신반장다웠다.

중대장, 행보관이 출근하기 전에 두 사람은 빠르게 위병소로 향했다.

이미 전마등이 센스 있게 콜택시를 미리 불러뒀다. 1분 1초라 도 빨리 이 더러운 곳에서 탈줄하고야 말겠다는 그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위병소를 통과한 직후.

두 남자는 바로 택시에 올라탔다.

"아저씨! 시내로 가주세요!"

"하하, 알겠슴다시"

택시 기사도 한때 이들처럼 군인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 라도 빨리 부대를 탈출하고 싶다는 두 사람의 바람을 바로 알아차렸다.

빠르게 멀어지는 1075 대대.

6박 7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이곳에 오게 되겠지만

'지금은 쳐다보기도 싫군.'

휴가 기간 동안이라도 이강진은 자신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워버리고 싶었다.

50여일 만에 느끼는 사회의 공기.

다른 사람들은 매연이니 미세먼지니 하면서 공기가 영 안 좋 다는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군인들에게는 이만큼 활력 넘치게 만드는 공기도 없을 것이다.

이등병 계급을 달고 맡는 마지막 사회의 공기에 이강진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무엇보다 점심에 한지윤과 데이트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 사실이 그를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그전에 전마등과 먼저 말을 맞춰뒀던 것을 행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근처 국밥집을 찾은 두 남자.

"사장님! 여기 순대국밥 2개, 그리고 수육 하나 추가해서 주세 요!"

"예, 갑니다!"

순대국밥과 수육이 나란히 테이블에 세팅되었다.

이 런 메뉴에 소주가 빠질 수가 없다.

"강진아, 한 잔 받아라."

"감사합니다, 전마등 병장님."

"어허! 사회에 나왔을 때에는 병장님이라고 하지 말고 형이라고 불러. 자, 해봐."

"……마등이 형."

"잘하네! 크큭. 일단 마시자. 첫 잔은 원샷이다."

가끔 같이 외박, 외출, 휴가를 나올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형 이라 불러달라는 선임들이 존재한다.

전마등도 그중 한 명이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이강진은 전마등이 원하는 대로 형 이라 불러주기로 했다.

군대에선 형이어도 형이라 부르지 못한다. 하지만 사회로 나 오면 가능하다. 홍길동조차 하지 못한 일을 이강진은 포상휴가 덕분에 손쉽게 해냈다.

"크으! 좋다, 좋아! 그래, 바로 이맛이지! 역시 휴가 나온 이후 에는 바로 소주를 마셔줘야 해. 왜 그런지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군대에서는 술이 금지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밖에서는 원하는 만큼 마셔도 된다. 즉, 소주를 마시 는 일을 통해서 전마등은 '내가 사회로 나왔구나!' 하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비슷한 예로 ?주머니에 손 넣고 다니기.'가 있다.

"너는 바로 청주로 내려갈 거냐?"

이강진은 전마등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실 거짓말을 했다.

저녁이 되기 전까지 한지윤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 었다. 그러나 전마등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면 골치 아파질 거 같아서 이강진은 일부러 데이트 여부를 숨겼다.

"그래? 하긴. 아무리 시내라 하더라도 군부대 근처에 있는 시 내는 빨리 벗어나고 싶어지는 법이지."

"전마등 병장님一 아니, 마등이 형도 바로 인천 가는 겁니까?"

전마등의 본가는 인천에 있다. 이강진보다는 가까운 편.

"음, 글쎄. 예전 군대 선임이 이 근처에 산다고 해서 잠깐 얼굴이나 보고 갈까 생각 중이긴 한데. 아마 넌 모를 거다.

나원태 라는 사람인데, 내 아버지 군번이었거든. 진짜 골 때리는 형이 었지. 예전에 사고도 많이 쳐서 영창도 한 번 갔다 온 사람이고. 난 그 사람, 사회에 제대로 적응이나 할 수 있으려나 걱정했는 데, 그래도 나름 회사 취직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더라."

"군대에서의 모습과 사회에서의 모습은 또 다르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지. 아무튼 그 형 만날 수도 있다. 확실하진 않고.

연락 안 되면 그냥 가야지."

"그렇습니까."

전마등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강진은 오늘 두 사람의 약 속이 성사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괜히 한지윤과의 데이트 현장이 전마등에게 발각될지도 모르 기 때문이었다.

* * *

전마등과 식사를 마친 후에 이강진은 근처 옷가게를 찾았다.

"어서 오세요! 어떤 거 필요하세요?"

"남자 옷 좀 보려고 하는데요."

여성 점원은 이강진의 모습을 빠르게 훑었다.

"어머, 휴가 나오셨나 보다. 그렇죠?"

"아, 네. 조금 있다가 친구 만나기로 했는데, 군복 입고 돌아다 니는 거를 개인적으로 별로 안 좋아해서요. 어차피 살이 좀 빠 져서 옷도 새로 사야하고. 괜찮은 걸로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 습니다."

순간 여성 점원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성 친구인가요? 아니면 동성 친구?"

눈치가 빠른 여성이었다.

이강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성 친구입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제가 추천하는 의류가 있는데, 한 번 보실 래요? 요즘 유행하는 코디가 뭐냐 하면 말이죠……!"

신이 난 여성 점원은 이강진을 데리고 매장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몰랐다.

사실 이강진은 옷 잘 입는 법을 모른다. 매번 청바지에 검은 색, 혹은 회색 티셔츠만 입고 다니다보니 코디라는 것 자체가 낯 설었다.

차라리 매장 점원이 직접 코디를 해주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 다.

그리고 생각보다 양심적인 점원이었다.

"너무 비싼 건 추천 안 드릴게요. 가격은 적당한 걸로 맞춰드 리면 되겠죠?"

이강진의 신분이 군인이라는 것 때문에 가격까지 고려를 해 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건 괜한 배려였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한테 맞을 거 같다면 가격 상관하지 마시고 골라주세요."

"어머, 군인 월급 많이 올랐나 봐요?"

"월급은 그대로고요. 그냥 제가 돈이 많은 거예요."

사실 이게 정답이다.

< 제24화. 두 번째 휴가 (1)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