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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76화 (76/347)

< 제23화. 이등별님 오셨다 (5) >

제23화 이등별님 오셨다 (5)

면회실에는 이미 연대장과 대대장이 모여 있었다.

소장이 온다는데, 연대장이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나. 연대장은 연신 대대장에게 물었다.

"내 전투복 상태 어떤가. 어디 주름지거나 흐트러진 곳은 없 겠지?"

"예, 완벽합니다!"

"자네 군복도 깔끔하군. 좋은 태도야."

"소장님께서 오신다는데, 이 정도 준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 까. 부대도 다 청소시켜놨습니다."

"잘했어! 소장님께서 면회실에만 계시진 않을 테니까. 분명 1중대 막사도 한 번 둘러볼 게야."

검열이 목적이 아닌 아들을 보러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9시 50분쯤 되었을까.

중대장 일행이 면회실에 도착했다.

"충성!"

"충성. 자네가 기운상이로군."

"이병 기운상. 예, 맞습니다!"

연대장조차 기운상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그래, 그래. 중대장하고 대대장이 잘해주지?"

"예, 그렇습니다! 다들 친절하시고 아들처럼 잘 대해주십니 다!"

"그 말, 소장님한테도 꼭 전해드리게. 꼭!"

어떻게든 1075 대대가 좋은 부대임을 강조해야 한다.

서로 말을 맞추는 동안, 위병소에서 연락이 왔다.

대대 작전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알았어. 바로 통과시켜드려."

굳은 얼굴로 연대장 일행에게 다가온 작전과장.

"지금 기정수 소장님께서 오셨다고 합니다."

드디어 그분께서 오셨다!

기운상의 아버지, 기정수.

그는 사복 차림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자신의 가족들을 태우 고 직접 이곳 1075 대대를 찾았다.

위병소 조장뿐만 아니라 근무자들까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추우웅! 서어엉!"

"충성. 아들 보러 왔는데 말이지."

"안으로 들어가셔서 차 주차하신 후에 면회실로 바로 들어가 시면 됩니다!"

"면회증은 따로 필요 없나?"

"예, 없습니다. 저희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부디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추우웅! 서어엉!"

받들어총을 하는 경계 근무자들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겉으로 봤을 때에는 그냥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이 생긴 기 정수.

하지만 그의 계급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

차에서 내림과 동시에 기정수의 아내가 부대 전경을 빠르게 훑었다.

"여보. 여긴 뭐 아무것도 없네? 육군 본부는 뭔가 이것저것 많 았잖아."

"여기는 전방이라 그런 거지. 원래 다른 부대들은 이렇게 되어 있잖아. 나 예전에 야전부대에서 근무할 때 당신도 이런 곳 몇 번 봤을 텐데."

"그래도 그렇지. 너무 휑해 보이잖아. 호수라든지 아니면 병사들 산림욕 즐길 수 있게 나무라도 심어져 있으면 보기 좋지 않아?"

호수, 산림욕.

이 단어들이 튀어나오는 순간, 근처에 있던 간부와 병사들이 몸서리를 쳤다.

투스타가 산을 옮기라고 명령하면 진짜로 산을 옮겨야 하는 게 군인들의 입장이다.

머리에 별을 달고 있는 자는 적어도 군대에선 그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혹시 기정수가 아내의 말에 따라 정말로 그런 걸 만들라고 하 면 어쩌지? 병사들은 이런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그러나 기정수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됐어. 뭐 만들라고 하면 오히려 운상이 입장만 난처해져. 그 리고 당신, 간부들 앞에서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 진짜로 만 들려고 할지도 모르니까."

"알았어요, 알았어. 어휴. 하여튼 꽉 막힌 사람이라니까."

기정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 는 병사와 간부들이었다.

기정수의 가족들은 아들이 기다리고 있을 면회실로 향했다.

연대장 일행들은 이미 면회실 입구에서 기정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충! 성 먼 길 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 휴일인데 뭐 하러 다들 나와 있어. 그냥 쉬고 있지."

"대령 황영일! 아닙니다! 마침 1075 대대에 볼 일이 있어서 나 와 있었습니다! 그렇지, 대대장?"

"중령 오승진! 예, 그렇습니다!"

투스타 앞에선 대령, 중령도 이등병이나 다를 바 없었다.

바깥에서 간부들끼리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에 전마등은 기운 상에게 물었다.

"운상아. 나…… 지금 떨고 있니?"

"심하게 많이 떠시는 거 같습니다."

"그, 그래?"

이게 정상이다.

투스타 앞에서 안 떠는 병사가 어디 있을까. 말 한 마디 잘못 하면 바로 영창인데 말이다.

머지않아 면회실의 문이 열렸다.

햇살과 동시에 투스타의 후광이 전마등을 덮쳤다.

한편. 기운상을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히던 그의 어머니가 빠른 걸음으로 아들에게 다가갔다.

"우리 아들!"

"충성! 어머니,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아들 걱정이 한 가득인데 어떻게 잘 지내니. 다친 곳은 없고? 선임들이 잘해줘?"

잘해주지 않으면 큰일이다. 기운상은 빙그레 웃으면서 답해줬다.

"잘해줘요. 아, 그리고 옆에는……."

기운상보다 전마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충성! 병장 전마등! 운상이의 선임입니다!"

뒤에서 기정수가 전마등의 초록 견장에 관심을 보였다.

"자네가 분대장인가보군."

"예! 그렇습니다!"

기정수가 등장하자, 기운상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부자 지간의 사이가 영 불편하다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아는 사 실. 그래서인지 1075 대대 사람들은 지금의 이 대면이 굉장히 불안했다.

"……오셨습니까."

"안 오려고 했는데. 네 엄마가 하도 오자고 닦달해서 어쩔 수 없이 왔다."

"……."

"……."

두 사람 사이에 차가운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덩달아 병사 간부들의 등에도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눈치만 보는 이 상황 속에서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자처한 것 은 다름이 아닌 기운상의 누나였다.

"언제까지 다들 서 있을 거예요? 저, 다리 아파요. 앉으면 안 돼요?"

"그러지. 자네들도 앉게."

"아, 알겠습니다!"

가시방석에 앉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 *

기운상의 면회가 진행되는 와중에 1중대에도 초긴장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특히 1분대가 가장 위험하다.

당직병이 1생활관을 찾았다.

"지금 소장님이 막사로 올라오고 계시다고 하니까 생활관 정 리 빨리 해둬라!"

"예, 알겠습니 다!"

1분대원들의 행동이 빨라졌다.

도중에 라인혁이 불안한 목소리를 냈다.

"강진아. 너는 어디 다른 곳으로 가 있는 게 좋지 않겠어?"

"왜 그러십니까?"

"아니, 왜긴. 네가 운상이한테 쓴 소리 엄청 했는데. 운상이가 괜히 와서 너 찌르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면 무조건 영창이야, 영창."

라인혁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강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너무 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강진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게 뭔지 1분대원들은 궁 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사열대 앞이 시끌시끌했다.

기합이 가득 들어가 있는 충성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안준렬이 창밖을 내다봤다.

"오셨나 보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소장 일행은 행정반에 잠시 들린 후에 바로 기운상이 머무는 1생활관을 찾았다.

"충! 성!"

안준렬이 대표로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차렷 자세를 취하면서 기정수 소장을 맞이하는 이들.

기운상은 가족들에게 한 명 한 명씩 분대원들을 소개했다.

백우호를 지나쳐 마지막 순번인 이강진 앞에 선 기운상.

전마등과 1분대원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이 순간에서도 이강진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될지 알고 있는 듯한 그런 표 정이었다.

기운상은 이강진을 이렇게 소개했다.

"중대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임입니다."

분대원들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이들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대답이 튀어나왔기 때문이 었다.

기운상을 가장 많이 혼냈던 게 이강진 아닌가. 그런데 어째 서?

그 해답은 간단했다.

"소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와 거리를 두지 않고 오 히려 제 부족한 점들을 정확히 캐치하고 지적해준 분입 니다. 이강진 이병 덕분에 자대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기운상의 말이 맞다.

처음에는 실수 투성이었던 기운상. 물론 그건 기운상의 잘못 도 있지만, 그와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선임들의 잘못도 컸다.

충분히 알려줄 수 있는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알려주 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같은 실수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강진은 목소리를 높이면서 이건 하면 안 된다고 기 운상에게 확실하게 각인을 시켜줬다.

기운상도 잘한다!

이게 다 이강진 덕분이었다.

사실 이강진도 회귀하기 이전에는 다른 선임들과 같은 태도 를 취했었다. 훗날, 차라리 누군가가 자신에게 먼저 회초리를 들 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말을 했던 사람이 바로 기운상이었다. 그러면 자기가 좀 더 군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을 거라는 언급했었다.

이강진은 이 후회를 재입대 인생에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기운상에게 강하게 나갔던 것이다.

기운상의 잘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캐치하고 알려준다. 이 것이 기운상이 원했던 것이다.

"제게 부족한 점이 뭔지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추상적으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말만 하셨던 아버지와 다른 사람입니다."

자신의 아버지보다 이강진의 방식이 더 낫다는 것을 알렸다. 어쩌면 기분 나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정수 소장은 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그렇군."

옅은 미소를 짓는 기정수 소장.

"좋은 선임을 만났구나."

그것은 아버지의 미소였다.

무사히 면회가 끝났다.

집에 돌아가기 직전. 소장은 연대장과 대대장, 그리고 중대장을 따로 불렀다.

"아까 우리 아들이 칭찬했던 선임이 이강진이었나."

"예, 그렇습니다!"

"그 친구는 내 아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바로 알아차린 거 같더군. 나는 20년 넘게 눈치 채지 못한 것을 단번에 알아낸 게 참으로 신기해."

기정수 소장은 살짝 장난기가 곁들어진 웃음을 흘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 이강진이라는 친구한테 말 전해주게. 운상이 좀 잘 부탁 한다고. 그리고 나도 아들한테 좋은 아버지 라는 소리 듣고 싶으 니, 어떻게 하면 운상이와 친해질 수 있는지 방법 좀 알려달라 고 말이야. 물론 보답은 충분히 하겠다는 말도 같이 전해준다면 좋겠군."

아들과의 관계를 풀려면, 오히려 투스타가 이등병인 이강진 한테 잘 보여야 한다.

그가 부자지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기 때 문이었다.

"내 아들도 그렇지만 그 선임도 잘 챙겨주게. 날 봐서라도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기정수의 마음에 쏙 든 병사 이강진.

그가 위기에 빠진 1075 대대를 구해냈다.

그날 저녁.

이강진의 방식이 오히려 기운상을 위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 1분대원들.

예전보다는 그래도 나아지 긴 했지 만, 투스타의 아들이 라는 사 실 때문에 거리를 좁히는 일이 여전히 좀 더디긴 했다.

그러나 이강진은 한결 같았다.

"아직도 수신호 못 외웠냐? 간단하잖아! 이게 정지, 이게 앞으로. 오케이?"

"예, 알겠습니다!"

이강진 의 잔소리에도 기운상은 싱글벙글 이었다.

"근데 이강진 이병님. 저, 내일부터 외곽 근무 들어가는데, 더 알려주실 거 없습니까?"

"알려줄 거야 많지. 근데 당분간 나 말고 우호한테 배워라."

가만히 있다가 불똥이 투I자, 백우호가 화들짝 놀랐다.

"내, 내가?"

"왜. 다른 선임분들한테 떠넘기게?"

"그, 그럴 순 없지만… … 그래, 알았다! 내가 알려주마!"

평소에는 이강진이 도맡아서 알려줬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드물게도 백우호에게 신병 교육을 넘겼다.

"급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이유가 궁금한 기운상이었다.

"어. 아주 급한 일이 있거든."

"그게 뭡니까?"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낸 이강진. 도장이 찍혀 있는 얇은 종이 한 장.

그가 보여준 건 모든 군인들이 탐내는 물건, 휴가증이었다.

"나, 다음 주부터 휴가다."

두 번째 자유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 제23화. 이등별님 오셨다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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