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73화 (73/347)

제23화 이등별님 오셨다 (2)

기운상 사건이 부대에 퍼지기 전.

갑작스런 대대장의 호출에 중대장은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뜬금없이 왜?

할 이야기가 있다면 아까 간부회의 시간 때 하면 좋지 않은 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1중대 중대장을 따로 부른 탓에 그는 투 덜거리면서 다시 본부까지 내려가야만 했다.

그렇다고 대대장이 부르는데, 귀찮다고 못 들은 척할 수도 없었다.

대대장실 앞에 선 중대장.

똑똑똑.

"대대장님. 대위 윤형인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충성."

"와서 앉아."

대대장의 표정은 좋지 않아 보였다.

방금 전에 가졌던 간부 회의는 무사고로 훈련을 마쳤다는 점 때문에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아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대대장의 모습에 중대장은 의아함이 들었다.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그러나 중대장은 제 발 저리는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일단 앉으라니까 앉았다.

"……후우."

대대장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한 눈에 봐도 보 통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자네 부대에 신병을 둘 보낼 거야."

"그렇습니까?"

고작 신병 둘 보낸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중대장을 부른 걸까.

하나 이건 중대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스케일의 문 제였다.

"그중에 기운상이라는 병사가 있는데, 기운상 이병의 아버지 가…… 소장님이라고 하시 더라."

"콜록! 콜록!"

소장! 투스타!

그 말을 듣자마자 사례가 들리고 말았다.

"그, 그게 정말입 니까?!"

"내가 이 런 걸로 거짓말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나?"

"아, 아닙니다!"

차라리 대대장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가져봤다.

그러나 이건 현실이다.

"기정수 소장님이라고 해서, 육군 본부에 군수참모부에서 일 하고 계신 분이다. 그분한테서 직통으로 연락이 왔어. 우리 아 들이 그쪽 부대에 전입하게 되었으니까 잘 좀 부탁한다고."

잘 부탁한다는 말은 오히 려 대대장과 중대장이 투스타에게 해 야할 이야기였다.

"아무튼 윤 대위가 신경 써서 잘 봐주게. 그리고 만약."

대대장의 눈에 강한 이채가 감돌았다.

"소장님 아드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네를 가만 안 두 겠네.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아, 알겠습니다!"

겨우 훈련 끝내고 집에 돌아가서 좀 쉬나 싶더니…….

더 큰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중대로 돌아오자마자 윤형인 대위는 바로 1생활관으로 향했기운상에게 잠시 와보라고 한 뒤, 그를 중대장실로 따로 불러 앉혔다.

"가릴 거 없이 그냥 바로 물어보마. 혹시 아버님께서…… 그……."

말을 꺼내기조차 무서웠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옴과 동시에 기운상의 인상이 팍 구겨졌 다. 순간 중대장은 바짝 긴장했다.

대대장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이등병…… 아니, 이등별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선 안 된다!

중대장은 애써 헛기침을 하면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 했다.

한편, 기운상은 자포자기를 한 듯한 어투로 말했다.

"중대장님께서 알고 계신 게 맞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투스타 맞다. 기운상은 그렇게 인정했다.

기운상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신의 인생인데, 매번 지나칠 정도로 간섭을 해오는 아버지가 싫었다.

꽉 막힌 아버지 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버지의 인맥을 동원한다면, 더 편한 부대로 갈 수 있었을 것 이다. 하지만 기운상은 그렇지 않고 일반 보병으로 입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의 간섭이 싫기 때문이다.

간섭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태양을 찾아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기운상은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부터 자신의 아 버지가 소장임을 철저하게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기운상이 숨긴다고 정말로 그게 숨겨질 거라고 생각 했다면 큰 오산이다.

군대는 기운상이 상상한 것 이상을 보여주는 조직이다. 물론 안 좋은 의미가 더 많긴 하다.

소장의 아들이 입소했다는 사실은 금세 밝혀졌다.

"어흠!"

다시 한 번 헛기침을 하는 중대장.

"그, 그래. 어려운 거 있으면 무조건 이 중대장한테 와서 말하 고. 그리고 아버 님한테 이야기 좀 잘 부탁하마."

"예, 알겠습니다."

대답은 알았다고 했지만, 기운상은 입대한 이후에 단 한 번도 그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도 아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걸 아는 모양인지 훈련소나 자대에 먼저 전화를 걸어서 기운상과 연결해달라는 말을 해오지 않고 있었다.

어긋난 부자지간의 관계.

그 속에서 대대장과 중대장의 스트레스만 무한히 싹트고 있었다.

투스타의 아들이 왔다!

이 소문은 1중대…… 아니, 1075 대대 전체에 순식간에 퍼졌다.

외부와 폐쇄된 공간이라 그런지 한 번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산불마냥 순식간에 여기저기 번졌다.

기운상이 잠시 개인 면담으로 인해 자리를 비운 사이.

1분대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전마등은 짧은 머리를 거칠게 긁적였다.

"하…… 이제 말년 테크트리 타려고 했는데, 시발 갑자기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네!"

리얼 이등별, 기운상.

이등별님, 이등별님이라고 하면서 반 농담식으로 말을 하곤 했지만, 기운상은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이등별님이셨다.

선임들조차 기운상을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다.

기운상이 그의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화 하는 순간, 남은 군 생활이 지옥으로 변할지 모른다.

대대장 앞에서도 바들바들 떠는 병사들인데, 투스타 앞이라 고 별 수 있을까.

고필중이 심각한 표정을 하면서 전마등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전마등 병장님."

"나라고 뭐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겠냐. 우리가 할 건 하나밖 에 없잖아."

문제는 터졌고. 해답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등별님 심기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수밖에."

"아무래도 그것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모두가 전마등의 말에 동의했다.

하나 이강진 혼자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귀하기 전에도 이런 분위기였지.'

기운상이 막 자대 전입을 했을 때가 새록새록 기억나기 시작 했다.

그때도 자대 전입 첫날에 아버지가 투스타라는 사실이 밝혀 졌다. 그것 때문에 오늘처럼 1분대는 긴급회의에 돌입했다.

회의 주제도 오늘과 같았다.

이등별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무튼 운상이는 가급적이면 건드리지 마라. 괜히 우리 부대 전체가 다 좆될 수도 있으니까. 이건 내 명령이 아니라 중대장님 명령이야. 아까도 이거 때문에 중대장님한테 불려가서 30분 동 안 '조심, 또 조심!'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 휴."

이쯤 되면 기운상이 이곳 1075 대대 1중대에 온 것 자체가 불 운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강진은 문득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역시 기운상을 고르면 안 됐었나.'

하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내가 아니면 운상이를 케어해줄 사람이 없어. 괜히 다른 분 과 갔다가 중대 전체가 투스타한테 찍히는 경우가 발생할지도 몰라.'

결국 이강진이 해내야 한다.

그가 또 나설 차례가 된 것이다.

기운상이 들어온 첫날.

저녁 점호 시간이 찾아왔다.

-아아. 행정반에서 알려드립 니다. 오늘은 통합 점호를 실시합 니다. 전 병력은 30분까지 행정반 옆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신병이 들어온 날에는 이렇게 통합 점호를 실시하곤 한다.

어느 분대에 어떤 신병이 들어왔는지 병사들에게 알려주기 위 해서였다.

그러나 기운상을 모르는 병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투스타의 아들이라는 임팩트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간부들조차 기운상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저녁 점호를 맡게 된 당직사관, 통신반장은 부담이 한가득이 었다.

"오늘…… 신병들이 왔었지?"

"이병 기운상!"

"이병 조성면!"

특히 기운상이 관등성명을 외칠 때, 병사들의 어깨는 절로 움 찔거렸다. 기운상 쪽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너무 눈이 부셔서였다.

이등별 뒤에 별 두 개가 딱 자리를 잡고 있으니, 어쭙잖은 병 계급은 들이댈 수조차 없었다.

통신반장도 마찬가지였다.

"어흠! 일단 신병들, 자기소개부터 하도록. 성면이부터."

"이병 조성면! 예, 알겠습니다!"

조성면의 이력은 기운상에 비해서 굉장히 무난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와 평범하게 대학교를 진학하고, 평범하게 군대 에 입대했다.

이게 다다.

다음은 기운상의 차례.

기운상도 조성면과 다를 바 없었다. 대학교 2학년에 진학할 쯤에 군대에 입대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굉장히 특별했다.

기운상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았다.

무난한 자기소개가 끝난 뒤.

통신반장은 바로 세족식을 진행시켰다.

기운상의 발을 씻겨주는 역할은 전마등이 담당하기로 했다.

세족식 내내 전마등의 손은 떨렸다.

혹여나 잘못하다가 기운상의 발에 상처라도 낸다면, 그날 바로 투스타가 소환될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족식이 끝난 뒤에는 통신반장 성격상 바로 장기자랑 타임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저녁 점호 끝. 다들 자러 가라. 이상."

신병들에게 장기자랑을 시키는 건 통신반장의 전매특허였다. 하지만 아무리 통신반장이 라 하더라도 투스타의 아들에게 장기 자랑을 요구할 순 없었다. 그 정도로 눈치 없는 바보는 아니었 다.

1생활관으로 돌아온 분대원들.

기운상은 도중에 백우호에게 물었다.

"백우호 이병님. 선임분들이 자꾸 저를 힐긋 쳐다보는 거 같 습니다만…… 혹시 제가 실수라도 한 겁니까?"

"시, 실수?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있나! 넌 잘못한 거 아 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참고로 우리 1중대는 내무부조리, 폭행 이런 것도 없고! 바른 병영 생활이라고 하면 우리 1중대를 가리키지. 하, 하하하!"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는 백우호.

투스타의 아들이라서 그런지 말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게 마 치 살얼음판을 걷는 그런 기분이었다.

백우호 입장에선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저녁 10시에 맞춰서 모두 침대 위에 등을 맞댔다.

원래 10시부터 10시 10분까지 대중가요 2~3곡 정도가 방송 으로 나오곤 했으나, 오늘은 그런 것도 일절 없었다.

괜히 기운상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잠 좀 자고 싶은데 행정반 에서 자꾸 노래를 틀어서 못 잤다는 말을 할까 바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1중대는 기운상의 눈치를 봐야 했다.

숨이 막힐 것만 같은 1분대 생활관.

이강진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 6시.

칼 같이 울려 퍼지는 기상나팔 소리에 병사들은 바로 상반신을 일으켰다.

무거운 몸을 억지로 재촉하면서 모포를 접기 시작하는 이강진.

그러면서 슬쩍 기운상 쪽을 바라봤다.

기운상도 눈을 뜨긴 했다.

하지만 행동이 너무 굼떴다.

'운상이, 저 녀석이 아침에 유독 약했지.'

그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심지어 병장인 전마등보다 점호 준비하는 속도가 느렸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쓴 소리를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투스타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누구 하나 목소리를 높일 생 각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열대로 나와 줄을 서는 것도 가장 늦었다.

맨 앞에 선 전마등. 그 바로 뒤는 기운상의 자리였다.

전마등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우리 막내가 아침에 약한가 보구나. 그럴 수 있지. 하, 하하 하."

분대장에 병장이래 봤자 무엇 하랴. 투스타의 후광을 등에 업 은 이등별에게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하지만 이강진은 할 수 있다.

"기운상."

이강진이 기운상을 불렀다.

"이병 기운상."

고개를 뒤로 돌려 이강진 쪽을 바라보는 기운상. 이강진은 그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 똑바로 안 차리 냐. 제일 짬이 안 되는 것이 가장 늦게 나 오什 신교대에서 그딴 식으로 배웠냐?"

1분대 전체가 경악했다.

< 제23화. 이등별님 오셨다 (2)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