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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69화 (69/347)

< 제22화. 무박 3일 (4) >

이도훈 소위.

이강진은 그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티비에 자주 나왔던 사람이지.'

그래서 이도훈이 익숙해 보였던 것이다.

계급은 비록 장교 중에서 가장 낮은 소위지만, 이도훈은 병사 시절 때부터 엄청난 활약을 해왔던 남자다.

가장 큰 활약은 역시 2년 전에 벌어진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 서였다.

그때 보여준 이도훈의 공적은 엄청났다. 다수의 무장공비들을 제압했으며, 전우들의 생명까지 구출해냈다.

그 덕분에 이도훈은 국방부장관으로부터 직접 표창까지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도훈은 흣날, 국방부를 대표하는 젊은 스타 장 교로 거듭나게 된다.

연예인 못지않은 인지도를 자랑하게 되는 이도훈. 젊었을 때 의 그를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도훈은 이강진을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아, 아닙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이도훈을 계속 쳐다본 탓일까. 이도훈의 물 음에 이강진은 당혹감을 겨우 감줬다.

포반이 하나둘씩 방열을 끝냈다는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이도훈은 자리를 뜨게 되었다.

"그럼 고생해라."

"예! 충성!"

이도훈이 떠나자마자 안준렬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분, 병사 시절 때 뉴스에 나오지 않았었나."

안준렬도 이도훈이 티비에 나왔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 다.

기억이 안 날 수가 없을 것이다.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당시에 대대적으로 크게 보도가 되었 다. 그때 이도훈은 무장공비 다수를 생포, 사살했던 젊은 영웅 으로 한동안 대중들 입에 오르락내리락 했었다.

안준렬의 말을 듣고 나서야 황지웅도 그제야 기억을 떠올렸

"아! 저분이 그분입니까?"

"어. 장교 지원했을 줄은 몰랐네."

"그러게 말입니다. 병사 이후에 장교 지원이라니…… 쉽지 않 은 결정이지 않습니까?"

"뭐, 군대가 체질에 맞는 모양인가 보네."

병사 생활을 해보다가 '어? 군생활 할 만 한데?'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대부분은 부사관이나 이도훈 같은 장교를 지원하게 된다.

물론 이강진은 절대로 그럴 생각은 없었다.

'재입대 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간부 지원을 왜 하나.'

만약 자신처럼 과거로 회귀해서 재입대를 하게 되었다고 치 자. 이 상황에서 간부까지 지원하는 사람은 분명 바보 아니면 멍 청이일 것이다.

이강진은 그렇게 확신했다.

오후 4시쯤 되었을까.

포병대대에 속해 있는 상병 계급의 병사 한 명이 빠른 걸음으 로 안준렬 조에게 다가왔다.

"아저씨들. 곧 실사격 할 예정인데, 혹시 필요하다면 귀마개 줄까요?"

"개인화기 아니고 포 말하는 거죠?"

"두 말하면 잔소리죠."

그때, 황지웅이 덥석 물었다.

"소리 많이 커요?"

"어휴. 엄청 커요. 나중에 가면 익숙해지긴 하는데, 처음 보는 거라면 귀마개 하는 걸 추천해요."

결국 세 남자는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귀마개는 실사격 끝난 다음에 다시 찾으러 올 테니까 그때 돌려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견인곡사포 부대도 아닌데, 실사격 하는 모습을 바로 근처에 서 볼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안준렬과 황지웅은 처음일지 모르지만, 이강진은 이미 회귀 하기 이전에 체험을 해봤기 때문에 155mm 견인곡사포의 위력 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다.

'그때도 딱 이맘때쯤이었지.'

무박 3일 훈련 중에서 20년이 지나도 아직도 기억나는 게 바로 155mm 견인곡사포 실사격 구경이었다.

소리가 상당히 크게 날 거라는 포병대원의 경고에 따라 이들 은 빠르게 귀마개를 착용했다.

그동안, 포병들은 실사격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하나발 장전!"

포탄을 장전한 뒤에 장약까지 투입되었다.

2번 포수가 뇌관에 결합된 기다란 끈을 들고 포신 뒤에서 대 기했다.

박스카 근처에서 붉은 깃발을 들어 올리는 이도훈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이강진이 안준렬과 황지웅에게 경고했다.

"곧 발사할 겁니다. 후폭풍으로 먼지바람 많이 날아올 테니까 입 벌리지 말고 계셔야 합니다."

이강진은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나. 의문이 드는 두 사람이 었지만, 발포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일단 이강진의 중고부터 먼 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궁금한 건 나중에 물어봐도 되니까.

깃발을 하늘 높이 추켜든 이도훈.

머지않아 그는 깃발을 아래로 크게, 그리고 빠르게 내렸다.

"발사'!"

-퍼어어어어어엉!!!

엄청난 폭음이 3097 진지를 가득 채웠다.

화들짝 놀라는 안준렬과 황지웅.

이강진은 약간 어깨를 움찔하는 것에 그쳤다.

포가 발사되는 순간, 포구에서 약간의 불이 번졌다.

이내 사라지긴 했지만, 이런 광경 자체를 처음 보는 입장에선 굉장히 신기한 광경이었다.

"안준렬 상병님! 방금 포구에서 불 나온 거 보셨습니까?!"

호들갑을 떠는 황지웅.

안준렬조차 약간 들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봤어. 굉장하네."

"대박 아닙니까? 이야, 설마 무박 3일 때 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그래도 심심하진 않아서 좋은 거 같습니다."

"남의 훈련 구경하는 게 꿀이긴 하지."

실사격은 30분 동안 계속 이어졌다.

-전포대 사격 완료. 표적 확인 증.

-표적 확인 완료. 사격 종료. 사격 종료.

"사격 종료!"

전포대장 이도훈의 외침을 듣고 나서야 병사들은 그제야 안 도를 할 수 있었다.

포탄 실제 사격은 사실 굉장히 위험한 훈련이다. 개인화기 훈 련도 물론 위험하긴 하지만, 포탄은 다수의 사상자를 한꺼번에 발생시킬 수 있다.

실제로 도중에 포탄이 터진 사례가 있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수십 명의 포반 인원들이 죽거나 다쳤다.

한 순간의 방심이 자칫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군대다. 항상 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근무 교대 시간까지 30분 정도가 남았다.

거의 10분 간격으로 손목시계를 확인하던 황지웅은 30분밖에 안 남았다는 상황에 안도를 했다.

동시에 어떻게 여기서 7시간 반을 버텨냈는지 신기하다는 느 낌도 들었다.

황지웅뿐만 아니라 안준렬, 그리고 이강진도 어서 빨리 근무 교대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난관이 들이닥쳤다.

"…….어라?"

황지웅의 시선이 도로 쪽으로 향했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레토나 한 대.

"안준렬 상병님. 저기 레토나 오고 있습니다. 혹시 저쪽 포병 대대 거 아닙니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처음 보는 번호였다.

잘 달려오던 레토나가 진지 입구 쪽에 정차했다.

차에서 내린 간부들의 전투복 상의에는 포병대대와 다른 사단 마크가 박혀 있었다.

19사단 마크다!

이강진은 저들을 보자마자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사단 쪽에서 순찰 나온 거 같습니다."

"망할……!"

근무 교대까지 30분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이게 무슨 날벼락 인가.

이강진도 이건 몰랐다.

'내가 기억을 못하고 있는 거겠지.'

유독 인상에 남은 일들은 잘 기억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군생 활 내용 모두를 기억하고 있진 않았다.

대위 계급장을 단 간부가 중사와 함께 안준렬 조가 있는 곳으 로 다가오고 있었다.

"충성!"

"충성. 경계근무는 잘 서고 있겠지?"

"예, 그렇습니 다!"

"크레모아 설치는?"

"했습니다. 야간 시에 필요한 부비트랩들도 다 설치했습니다."

"어디 한 번 볼까."

매의 눈으로 빠르게 호 주변을 훑는 대위.

뒤에서 중사가 수첩에 뭔가를 빠르게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의 펜이 움직일 때마다 병사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대체 무슨 내용을 적고 있을까. 지적사항이라도 나온 걸까? 온갖 걱정이 다 들기 시작했다.

대위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대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네. 암구호는 다 숙지하고 있겠지?"

"예, 그렇습니다."

대위는 시험 삼아 한 명을 지목했다.

"거기 이등병."

"이병 이강진."

"암구호 말해봐."

"오늘의 암구호. 문어에 시계, 답어에 독수리. 이상입 니다!"

이등병을 공략해보려고 했으나, 천하의 이강진이 암구호로 털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밖에 기타 근무 수칙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물어봤다. 중대 장과 행보관이 워낙 신신당부를 했던 내용이었기에 대위가 누 구를 지목하든 FM 대답이 알아서 척척 흘러나왔다.

대위가 뒤에 있던 중사에게 물었다.

"다 체크했나?"

"아직 확인할 게 하나 더 남았습니다."

"뭔데?"

"P96K 베터리만 확인해보면 될 거 같습니다."

"아, 그렇지. 잊을 뻔했네. 베터리는 다 풀로 차 있겠지?"

안준렬이 대표로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아무거나 한 번 갈아 끼워봐라."

상당히 깐깐한 대위였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지 않 는 이상, 그냥 넘어가는 게 없었다.

어떻게든 한 개는 털어먹고 가겠다는 의지가 아주 강하게 느껴 졌다.

2개의 P96K 베터리 중 하나를 갈아 끼웠다.

-지직!

무사히 전원이 들어왔다.

"다음. 나머지 것도 교체해 봐라."

이것만 넘기면 된다. 안준렬은 황지웅에게 건네받은 베터리 를 갈아 끼웠다.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불 안 들어오는데?"

"다, 다시 한 번 눌러보겠습니다."

아침에 행보관이 P96K를 강조한 바가 있었다. 귀찮아서 둘 중 하나만 교체하고 제대로 작동된다는 것만 확인하고 넘겼던 것 이 화근이 된 것이다.

병사들은 직감했다.

'좆됐다!'

안준렬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위의 닦달은 계속 되었다.

"안 되는 거 맞지? 그거, 방전된 거잖아."

"그, 그게……."

하나 대위는 안준렬의 말을 싹 잘랐다.

"베터리 상태 불량. 거기에 적어둬."

"예, 알겠습니다."

이대로 털릴 수밖에 없는 걸까.

중사의 펜이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충성!"

한 남자의 거수경례가 대위와 중사의 관심을 끌었다.

전포대장, 이도훈의 등장.

대위는 그를 보더니 갑자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너, 설마 도훈이야?"

"소위 이도훈. 오랜만에 뵙습니다, 서민형 대위님."

"이야! 여기서 너를 다 보다니! 대한민국 땅 참 좁다, 좁아! 하 하! 아무튼 진짜 반갑다, 야!"

서민형 대위는 이도훈을 강하게 끌어안아줬다.

딱 봐도 친해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근데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저희 대대가 여기서 ATT 받고 있었습니다. 실사격도 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래? 저 게 너희 대대 거였군."

"서민형 대위님은 여기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 이거지, 이거."

서민형 대위는 노란 완장을 가리켰다.

검열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번에 우리 사단, 국지도발 훈련하고 있잖아. 다른 부대들 돌면서 경계근무 잘 서고 있나 확인하려는 거지. 여기도 지적사 항 하나 나왔다."

P96K 베터리를 가리키는 서민형 대위.

"베터리 하나가 완전히 방전되어 있어. 통신체계 확립에 그토 록 신경 쓰라고 했건만…… 쯧쯧쯧."

병사들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다.

그때였다.

이도훈이 갑자기 깜짝 놀랄 만한 말을 꺼냈다.

"아, 그거 사실 저 때문입 니다."

"응? 너 때문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저희 포대에서 P96K 베터리 숫자가 부족해 서 제가 여기 병사들한테 하나만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방전된 베터리는 저희 포대 겁니다."

이도훈이 한 말은 당연하지만…….

순 거짓말이다.

< 제22화. 무박 3일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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