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67화 (67/347)

제22화. 무박 3일 (2)

한지윤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이강진은 행보관과 그녀의 통화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여보세요."

그러나 한지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보통 전화 통화 를 할 때, 스피커 모드로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군 간부는 더더욱 그렇다. 내부 기밀사항이 언급될지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 다 들으라고 대놓고 스피커 모드로 할 수 는 없지 않은가.

"어, 그래…… 음? 그게 정말이냐?"

행보관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럴수록 이강진의 궁금증 은 더욱 커져만 갔다.

어느새 행보관 쪽으로 점점 상반신이 기우는 이강진. 너무 가 까워졌다 느낀 모양인지 행보관은 잠시 통화를 중지하고 이강진에게 물었다.

"너, 왜 그러냐?"

"이, 이병 이강진! 아무것도 아닙니다!"

순간 스마트폰 너머로 한지윤의 목소리가 얼핏 들렸다.

-아저씨. 강진 씨랑 같이 있어요?

"서로 아는 사이 니?"

-네! 저한테 도움을 많이 줬거든요. 아, 혹시 괜찮다면 전화 잠 깐 바꿔주실 수 있어요?

"허허…… 알았다. 잠깐만 기다려 봐라."

전화 한 통화 연결시켜주는 게 뭐가 대수라고. 행보관은 한지윤의 부탁을 바로 들어주기로 했다.

"지윤이가 너하고 통화하고 싶다고 하더라. 받아봐라."

"감사합니다!"

스마트폰을 건네받을 때, 이강진의 손이 살짝 떨렸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이 될까. 본인이 생각해도 웃음이 나을 정도였다.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이강진은 목소리를 가라앉힌 채 말했다.

"통신보…… 어흠! 여보세요?"

무심코 군대 어투가 튀어나올 뻔했다.

민간인을 상대로 굳이 통신보안이라는 말을 사용할 필요는 없 지 않은가.

오랜만에 한지윤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강진 씨?

"예, 지윤 씨. 접 니다."

한지윤의 목소리는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이강진과의 통화 때문에 텐션이 오른 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기쁜 일이라도 있나 보군요."

어쩌면 그건 이강진과 통화하고 싶다는 의도와 연결되는 것 일지도 몰랐다.

-저, 오디션 합격했어요!

합격.

한지윤이 잔뜩 들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는 오디션에 자신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이강진은 한지윤이 진작 그곳에 합격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MVW의 대표, 주일훈의 안목 정도면 한지윤이 가지고 있는 연기 재능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니까.

"축하드립 니다, 지윤 씨."

-이게 다 강진 씨 덕분이에요. 아…… 그리고 죄송해요. 저한테 전화 해주셨죠? 저, 그때 오디션 준비한다고 외부하고 연락 다 끊고 혼자서 계속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거든요. 나중에 연락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이기적인 생 각이었던 거 같아요. 강진 씨가 걱정할지도 모르는데…… 정말 죄 송해요.

"괜찮습니다. 결과만 좋으면 됐죠."

-대신에 제가 이번 주 토요일에 면회 갈게요. 오디션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도 들려줄 겸해서요. 시간 괜찮아요?

"이 번 주 토요일……."

행보관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멋대로 면회 일정을 정해도 될 까이런 고민이 이강진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한편, 낌새를 눈치 챈 행보관이 자초지좋을 물었다.

"지윤이가 뭐라고 했기에 그러나."

"이번 주 토요일에 저 면회 오고 싶다고 합니다."

"면히?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오라고 해라."

너무 간단한 승낙.

일이 지나칠 정도로 술술 풀리자, 이강진은 '정말 이래도 되 나?' 싶은 의심이 들었다.

행보관이 괜찮다고 했으니, 문제없지 않을까.

결국 이강진은 토요일에 한지윤과 약속을 잡기로 했다.

통화를 마친 뒤.

행보관이 이강진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희 둘은 어쩌다가 알게 된 거냐. 나야 지윤이가 우 리 딸의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예전부터 얼굴도 자주 보고 했 으니까 그렇다 치고. 너는 접점이 없을 텐데?"

"교회에서 자주 만나다 보니 가까워진 거 같습니다."

"흠, 그래? 다른 병사들한테는 거리를 두는 아이가왜 너한테 만…… 희한하군."

결국 이강진은 행보관에게조차 의심 가득한 시선을 받게 되 었다.

하나 이건 약과에 불과했다.

만약 토요일에 한지윤과 만나게 되면…….

'부대가 뒤집어지겠군.'

안 봐도 뻔하다.

* * *

한지윤이 토요일날, 이강진을 보기 위해 부대로 면회를 오겠 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당시.

전마등은 거짓말인 줄 알았다.

이건 비단 전마등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1중대 모두가 다 같 은 생각이었다.

하나 이것은 토요일 오전 10시에 사실로 밝혀졌다.

이강진과 함께 면회실로 내려온 전마등.

그는 수차례 눈을 꿈뻑였다.

눈앞에 있는 여인 때문이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전마등에게 인사를 건네는 미인.

한지윤이 맞다!

평소 종교행사에 참가할 때에는 굉장히 수수한 복장으로 왔 던 그녀.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화장이며 의상이며 모든 것들에 한껏 기합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다.

안 그래도 1075 대대의 남심을 흔들어놓는 그녀가 이렇게 꾸미고 등장하니 여신이 따로 없었다.

"어흠!"

이강진이 헛기침을 했다.

"전마등 병장님. 인솔 끝나고 막사로 바로 올라가셔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그랬지. 그랬어…… 그렇긴 한데……."

마음 같으면 좀 더 이곳에 남아 있고 싶었으나, 하필이면 오 늘 당직을 서야 했기에 일찌감치 가 봐야 했다.

겨우 전마등을 먼저 보내는 데에 성공한 이강진.

이제야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워요. 강진 씨 덕분에 오디션 합격할 수 있었어요."

"아닙니다. 지윤 씨의 실력이죠. 저는 MVW 오디션에 도전해 보라고 말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 조언 덕분이에요. 특히 대표님이 열정 넘치는 배우를 좋 아한다는 팁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대표님이 저 오디션 끝 내자마자 '계약합시다!'라고 외치셨던 걸요. 호호."

그 정도로 한지윤을 마음에 들어 할 줄은 이강진도 몰랐다. 아무튼 다 잘 된 일이다.

"조만간 드라마에도 나오고, 영화에도 나오고. 그러시겠군요."

"네. 아, 맞다. 안 그래도 어제, 매니저 언니한테 연락이 왔어 요. 단역 하나 자리 났는데, 조만간 그쪽 드라마에 출연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벌써요? 축하드립니다. 굉장히 빠르네요."

이 부분을 통해 주일훈 대표가 한지윤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기쁜 소식이긴 하다. 그러나 한지윤에게 고민이 하나 있었다.

"자리 난 곳이 두 곳인데, 일정상 한 곳을 택해야 할 거 같아 이지선다를 두고 고민하는 한지윤.

이강진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어느 드라마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될지도 모른다.' 수준이 아니다.

아주 많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강진은 미래의 일을 알고 있으니까.

"아마 강진 씨는 잘 모르실 거예요. 드라마가 두 개 다 아직 방 영이 안 되고 있는 것들이거든요. 하나는 '인어 왕자'라는 드라 마고, 다른 하나는 '꽃잎의 기억'이라는 드라마에요. 두 곳 다 여 주인공의 친구로 나갈 예정이에요. 두 캐릭터 다 성격도 같고, 설정도 비슷하고. 그래서 더 고민이 되더라고요."

드라마 제목을 듣자마자 이강진은 바로 답을 내놓았다.

"꽃잎의 기억이 좋겠네요."

"네?"

한지윤 입장에선 의외였다.

"인어 왕자가 더 좋지 않나요? 인기 웹툰 원작이기도 하고, 드 라마를 기대하는 팬들도 많이 있던데……."

주연으로 캐스팅된 배우들의 이름값도 높은 편이었다. 괜찮은 기대작이다. 그러나 이강진은 번복하지 않았다.

"그래도 꽃잎의 기억이 좋을 겁니다."

"이유가 있나요?"

"이유는……."

넘치고 넘쳤다.

인어 왕자가 투자도 많이 받고. 팬들 사이에서도 기대작이라 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막상 드라마가 오픈이 되고 나서부터는 엄청난 비난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원작과의 괴리감 때문이었다.

드라마 연줄가가 자기 입맛에 맞게 멋대로 원작 설정을 비틀 어버린 것이다. 그것 때문에 1차적으로 웹툰 팬들의 원성을 사 게 되고, 2차적으로 꼬여버린 설정과 엉망진창이 된 연줄 때문 에 드라마 팬들마저 등을 돌리게 된다.

이것이 인어 왕자의 결말이다.

결국 시청률이 1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조기종영의 운 명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꽃잎의 기억은 인어 왕자와 다른 행보를 걷게 된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최고의 화제작!

네임벨류가 높은 배우들은 없지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실 력과 열정, 그리고 드라마의 탄탄한 시나리오가 드라마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한해 최고의 화제작이라는 칭송을 얻게 된다.

이강진은 한지윤의 데뷔작이 기왕이면 드라마 역사에 남을 화 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서 꽃잎의 기억을 추천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미래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다 말해줄 수가 없다는 게 답 답하네.' 결국 이강진이 내민 근거는 이거였다.

"방송계 쪽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드라마 PD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는 걸 들 었는데, 꽃잎의 기억 쪽이 더 반응이 괜찮을 거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 머, 그래요?"

이강진도 마음 같으면 한지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만한 확실한 근거를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게 최선이었다. 대충 어디서 들었다. 이런 말로 유 야무야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의외였다.

"알았어요. 그럼 꽃잎의 기억으로 할게요."

"제 말만 듣고 정해도 됩니까? 지윤 씨한텐 중요한 일인데."

"어차피 소속사에서도 둘 중 아무 곳이나 괜찮으니까 네 마음 가는 곳으로 정하라고 했었거든요. 저는 둘 다 똑같다고 생각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강진 씨 말대로 해도 상관없어요."

한지윤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강진을 믿겠다. 그녀의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드라마 일정 들어가기 전에 저희, 시간 맞춰 봐요. 제가 오디 션 합격하면 크게 쏘기로 했잖아요. 휴가는 언제 나오세요?"

"멀지 않았습니다."

미리 연대장과 대대장한테 포상휴가를 받아둔 게 다행이었다. 두 사람은 후에 있을 데이트 일정을 짜는 것으로 남은 면회시간을 보냈다.

* * *

행복했던 주말 일정도 잠시.

병사들이 싫어하는 훈련 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병사들은 군장을 꾸렸다.

중대 ATT처럼 전투준비태세 단계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9시 땡! 치 면 사열대 앞에 정차되어 있는 군용차에 몸을 싣고 배정된 목진지로 향하면 된다.

이게 전부다.

병사들의 시선이 전부 벽시계에 고정되었다.

째깍, 째깍, 째깍.

9시 정각이 되는 순간,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방송이 흘러나왔다.

-현 시간부로 국지도발 훈련을 시작합니다. 목진지 점령조는 지금 즉시 사열대 앞으로 집합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강진은 안준렬, 그리고 황지웅과 함께 같은 조가 되었다.

"가자, 강진아. 지웅아."

"예!"

첫 번째로 투입되는 안준렬 조.

군장을 들고서 생활관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고필중이 황지웅의 군장을 탁 치면서 그를 배웅했다.

"고생해라, 지웅아."

"저 썅놈…… 훈련 열외 되 니까 좋냐?"

"좋지. 너도 열외 되고 싶으면 축구하다가 뼈에 금가면 돼."

"내가 미쳤냐? 암튼 난 갈 테니까 생활관 정리 잘해둬라."

"오냐. 강진이도 고생하고."

"예. 충성!"

드디어 시작된 무박 3일 훈련.

이강진은 내심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ATT보단 낫겠지.'

지루하고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만 빼고.

< 제22화. 무박 3일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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