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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입대 전날-59화 (59/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59화

제20화. 기습 순찰 (1)

모처럼 기나긴 휴가에서 복귀했건만.

1중대 분위기는 살벌함 그 자체였다.

잘 웃던 행보관도 지금은 무표정을 유지했다.

중대장은?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박이율은 그런 중대장 앞에서 대표로 휴가 복귀 신고를 해야만 했다.

"충성. 병장 박이율 외 1명. 휴가 복귀 하······."

"신고는 됐고. 들어가서 짐 풀고 식사 집합이나 해라."

"예, 알겠습니다."

중대장의 목소리에서 살얼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말판을 옮기고 총기현황판을 수정하는 이강진.

행정반에 김철이 있었지만, 중대장이 잔뜩 화가 난 탓에 김철은 이강진에게 ‘휴가 잘 다녀왔어?’라는 말 한 마디 붙일 수가 없었다.

행정병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중대장이 저렇게 냉기를 뿜어대고 있는데, 행정반을 벗어날 수 없는 신세다보니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일 것이다.

이럴 때에는 행정병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라고 이강진은 생각했다.

1생활관으로 돌아오자마자 이강진은 선임들에게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충성! 이병 이강진, 휴가 복귀했습니다."

선임들은 이강진의 복귀를 환영했다.

라인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필이면 부대 분위기 겁나 안 좋을 때 왔구나. 왜 그런지는 들었지?"

"예. 초소 근무자들이 졸다가 대대장님한테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누가 걸린 걸까.

그게 궁금했다.

라인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명분이하고 경석이가 걸렸어. 경석이는 알 테고. 명분이는 잘 모르지?"

"통신분과에 있는 최명분 상병 말씀하시는 겁니까?"

"역시 강진이네. 맞아, 그 폐급 녀석."

라인혁과 안준렬 라인의 맞후임인 최명분.

1중대 내에서 최명분은 폐급 취급받고 있었다.

하나를 이야기하면 열을 알아듣는 이강진과 다르게 최명분은 하나를 이야기하면 그 하나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최명분이 저지른 굵직한 실수만 하더라도 수십 개가 넘어간다.

그중 하나가 이강진이 휴가를 나가 있는 상황에서 새로이 갱신된 것이다.

"어휴, 최명분 그 새끼 때문에······ 내가 진짜 돌아버리겠다. 아니, 졸다가 털린다는 게 말이 되나? 거 참."

라인혁은 그렇다 치더라도. 안준렬의 성격상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터.

이강진은 짐을 푸는 동안, 백우호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집합, 몇 번이나 걸렸어?"

"몰라. 기억도 안 날 정도야. 담배도 통제되고, 전화도 통제되고. 지금 죽을 맛이다."

담배는 그렇다 치더라도 전화는 치명적이다.

황민수와 주기적으로 주식 정보를 전달받기로 했었다. 그런데 전화가 통제되면, 그 계획을 이행할 수 없게 된다.

행보관한테 주식 정보를 전달받을 수도 있지만, 이런 부대 분위기 속에서 행보관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넌 부대가 뒤집어졌는데 주식만 생각하고 있냐면서 잔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곤란한데.’

휴가 복귀하자마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이강진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 * *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막사 내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결산 회의 진행할 예정이니 각 분과 분대장들은 지금 즉시 중대장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전마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분대장 수첩을 안준렬에게 내밀었다.

"준렬아. 오늘 결산 회의는 네가 들어가라. 네가 분대장 찰 테니까 슬슬 결산 회의 참가도 해보고 그래야지."

안준렬이 눈을 흘겼다.

"전마등 병장님. 결산 회의, 중대장님이 직접 주도하시는 거 같으니까 저 보내시려는 하시는 거 아닙니까?"

"하여튼 눈치는 더럽게 빨라."

쓴웃음을 지은 전마등.

안준렬의 추측이 맞았다.

결산 회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은 매번 행보관실에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중대장실로 모이라고 한다? 이건 누가 봐도 중대장이 직접 결산 회의를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안 그래도 대대장에게 털린 탓에 분노 수치가 MAX에 도달해 있는 중대장. 괜히 말 한 마디 잘못 꺼냈다가 그 화를 뒤집어 쓸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슬쩍 안준렬에게 미뤄보려 했건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놈의 분대장, 빨리 떼버리고 싶다. 하아."

중대장실로 향하는 전마등의 발걸음은 모래주머니를 찬 것 같이 느리고 굼떴다.

이건 다른 분대장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모두가 다 바짝 긴장한 채 분대장 수첩을 들고 중대장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중대장실의 문이 열렸다.

"충성!"

"······충성."

거수경례를 받아주는 중대장의 반응은 굉장히 차가웠다.

오늘도 대대장실에 갔다 왔다고 알려진 중대장. 가서 좋은 소리를 듣고 오진 못했으리라.

"1분대부터 특이사항 있으면 보고해라."

잔뜩 날이 서 있는 중대장의 목소리에 전마등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금일 이강진 이병, 휴가 복귀했습니다. 그밖에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신병 잘 챙겨라. 그리고 근무 똑바로 서라고 전해. 나중에 연대에서 사람 보낼지 모르니까."

"······?"

연대에서 사람을?

분대장들은 중대장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당장 이해하지 못했다.

한숨을 내쉰 중대장은 그간의 사정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대대장님이 왜 갑자기 야간에 순찰 도셨는지 아냐."

분대장들이 알 리가 없었다.

"조만간 연대에서 불시에 검열을 나올 거다."

헛숨을 삼키는 분대장들.

중대장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얼마 전에 GOP 쪽에서 북한군이 작은 도발을 해왔다고 한다. 그쪽 부대는 비상 걸리고 난리도 아니었어. 금방 끝나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경계 태세를 강화하라고 군단장님께서 직접 지시를 내리셨다. 그것 때문에 최근 연대장님이 직접 부대를 돌아다니신다고 하더라. 얼마 전에 2033 대대도 털렸다."

"······."

꿀꺽 하는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대대장에게 털린 것과 연대장에게 털린 것은 비교 자체가 안 된다.

"그것 때문에 대대장님이 순찰 도셨던 거다. 너희가 근무 잘 서는지 보기 위해서."

분위기가 안 좋은 와중에 최명분과 도경석이 졸다가 걸린 것이다.

"명분이하고 경석이는 군기교육대 보내기로 했다. 원래는 영창행인데, 행보관님이 커버 쳐주셔서 군기교육대로 끝난 거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라."

최명분과 도경석이 속해 있는 분대의 분대장인 서이형 병장이 반응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그건 행보관님한테나 말해라. 여하튼 이제부터 절대로 털리면 안 된다. 군대에서 한 번의 실수는 있어도 두 번의 실수는 없다. 후임들 교육 똑바로 시키고, 당분간 근무는 모두 FM으로 돌린다. 절차 확실하게 이행하고 근무교대 해.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든 분대장들의 목소리가 중대장실을 채웠다.

* * *

연대장이 직접 각 대대를 돌고 있다.

이 말을 듣자마자 1분대 분대원들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

라인혁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이놈의 군대는 숨 돌릴 틈이 없네. 문제 하나 터지면 얼마 안 가서 또 하나가 터지고. 정신없다, 정신없어."

타 부대에서 일병이 음주운전을 낸 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북한의 도발까지.

라인혁이 말한 대로 숨이 막힌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시기였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썅! 못해먹겠네!’ 하고 군인을 때려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퇴직서조차 작성할 수 없는 게 바로 군인이다.

전마등은 분과 후임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이 다음번에 걸리면 무조건 영창행이니까 근무 잘 서라. 총 내리는 것도 당분간은 하지 마. 힘들어도 좌경계총 하고 있어라. 1시간만 버티면 되잖아? 분대장들끼리 그렇게 합의 봤으니까 조금만 참자.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점호 준비해라."

다행스럽게도 이강진은 오늘, 야간 근무자 명단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는 내일부터 투입된다.

모두가 무거운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이강진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거, 포상의 기횐데?’

위기는 곧 기회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내가 근무 설 때 연대장이 온다면 좋을 텐데.’

남들은 제발 피해가라고 간절히 기원하고 있건만.

이강진은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근데 연대장이 언제 오는지를 알고 있어야 되는데.’

그래야 포상의 기회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연대장은 필히 1075 대대에도 기습 순찰을 돌 것이다. 회귀하기 이전에도 북한의 도발 때문에 연대장이 직접 순찰을 돌았던 기억이 났다.

문제는······.

‘날짜, 시간이 기억이 안 나.’

어떻게든 떠올려야 한다.

포상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 * *

황영일 대령은 노골적으로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면, 황영일 대령에게 호출 받은 4032 대대의 대대장은 고양이 앞에 있는 쥐마냥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암구호 미숙지. 상황대처 요령 미흡. 근무수칙 요령 미숙지."

황영일 대령이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대대장의 몸이 움찔거렸다.

"대대가 아주 개판이군."

"죄, 죄송합니다!"

2033 대대에 이이서 4032 대대까지 연달아 털렸다.

황영일의 미간이 더욱 일그러졌다.

"군단장님께서 근무 철저하게 서라고 엄격히 말씀하셨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군."

"그, 그게······."

"만약 내가 아니라 군단장님이 기습적으로 순찰을 나오셨는데, 이런 지적 사항들이 튀어나왔다고 생각해보게. 내 기분이 어떨 거 같나?"

"죄송합니다!"

대대장 입장에선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 반복할 수가 없었다.

병사의 잘못은 간부의 책임이다.

"내가 연대장 자리에서 내려가는 순간까지 4032 대대는 꼭 지켜볼 걸세.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사형 선고나 다를 바 없었다.

연대장이 이렇게 민감하게 구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군단장 특별 지시 사항이기도 하지만, 연대장은 아직 취임한지 얼마 안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급 부대를 강하게 압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훗날 자신이 편해질 테니까.

대대장에게 가보라고 말한 뒤.

그는 수화기를 들렀다.

"작전과장 오라고 해."

5분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연대장실의 문이 열렸다.

"충성! 소령 이우준입니다!"

"와서 앉게."

"예, 알겠습니다!"

바짝 긴장한 이우준에게 연대장이 다음 희생양······ 아니, 타깃을 언급했다.

"이제 1075 대대 하나 남은 것으로 아는데."

"예, 그렇습니다."

연대장은 여기서 살짝 머리를 굴릴 생각이었다.

"내가 군복 입고 레토나 타고 가면 대비할 시간을 너무 많이 주는 거 같아서 말일세.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 그렇다고 해도 엄청 여유롭게 주거나 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처럼 순찰 도셔도 충분하다고 생각합······."

"아니, 아니야."

연대장은 작전과장의 말을 도중에 끊어버렸다.

"대대의 평상시 근무가 어떤지를 봐야 해. 내가 그곳으로 갈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대비하면, 불시에 순찰을 도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

대대를 위해서 작전과장이 나름 노력을 해봤으나.

딱 여기까지였다.

연대장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꺾으려면 작전과장이 연대장보다 계급이 높아야 할 테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내가 작전을 세워봤는데. 들어볼 텐가?"

"아······ 예.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작전과장은 털릴 수밖에 없을 1075 대대의 명복을 속으로 빌어주기로 했다.

<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60화 - 유료연재 시작 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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