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58화 (58/347)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58화

제19화. 신병위로휴가 (4)

MVW 엔터테인먼트.

이강진이 한지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곳은 여기였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오디션을 우선으로 삼으시면 됩니다."

"MVW······ 아, 여기군요."

한지윤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규모가 너무 작지 않나요?"

너무 소규모면 오히려 불안하다.

한지윤이 걱정하는 사기꾼의 냄새가 풍겨오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괜히 대기업을 선호하는 게 아니다. 연봉이 높다는 것도 있긴 하지만, 월급을 떼어먹거나 하는 그런 일이 확률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연예 기획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이름이 잘 알려져 있는 곳은 함부로 사기를 칠 수도 없다. 대중들이 잘 알고 있는 곳이 사고를 치는 순간, 기자들이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많이 알고 있는 곳일수록 오히려 안전하다. 한지윤은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미래를 알고 있는 이강진은 적어도 MVW만큼은 다르다는 걸 확신했다.

"여기 대표로 있는 사람이 굉장히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대표가 어느 분인데요?"

"주일훈 씨라고 해서, 예전에 가수 겸 배우로 활동했던 남자분입니다. 이분이 독립해서 차린 곳이 MVW인데, 적어도 자기 소속사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에게 모질게 대하거나 할 사람은 아니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주일훈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연예인이다.

그러나 성실함, 그리고 후배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대한민국 그 어떠한 연예인들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훗날 MVW가 대규모 연예 기획사로 거듭나도 주일훈의 이런 방침은 계속 유지되었다.

그리고 이강진이 한지윤에게 MVW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에 사기를 당했다고 했었지.’

예전에 모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한지윤은 데뷔하기 이전에 겪었던 가슴 아픈 기억을 꺼낸 적이 있었다.

배우로 데뷔시켜주겠다는 말을 믿고 두 차례나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 때문에 날린 돈만 하더라도 5천만 원.

이것 때문에 한지윤은 20대에 인간불신에 걸려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낸 적이 있다고 토로를 했었다.

한지윤에게 그런 경험을 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강진은 MVW에서 나온 영업 사원마냥 열심히 그녀 앞에서 MVW의 이점을 어필했다.

듣다보니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이강진의 말에 한지윤은 점점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러면 우선 MVW 오디션부터 먼저 우선으로 삼도록 할게요."

"잘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디션에 합격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요."

자신 없어하는 한지윤에게 이강진은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웬만한 연예 기획사라면, 그녀가 오디션 현장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합겨어억!’을 외칠 거라고.

일단 미모가 탈 일반인 수준이다. 만약 한지윤이 서울 강남이라든지 혹은 홍대입구역 근처에 거주했더라면, 분명 길거리를 거닐 때마다 연예인 해볼 생각 없냐고 스카웃 제의를 수십 번 넘게 받았을 것이다.

미모에서 점수를 따고 시작하는 거였기 때문에 연기 실력이 트롤급 아니면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비법 하나 전수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이강진은 그녀에게 필승의 전략을 알려줬다.

"만약 오디션을 보게 되면, 주일훈 대표가 직접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거예요. 그분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서의 이상형이 있습니다."

"어머, 그게 어떤 건가요?"

귀를 쫑긋하는 한지윤. 심사위원의 취향이 어떤지 미리 알고 가면 많이 도움이 될 것이다.

"열정입니다."

"열정······ 이요?"

"네, 열정. 가시면 무조건 목소리 크게 하시고 열정 넘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다른 심사위원들은 몰라도 대표의 마음에는 쏙 들 거예요."

주일훈 대표가 티비에 나올 때마다 매번 강조하는 게 바로 열정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열정의 남자’겠나.

한지윤은 이강진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면서 수첩에 ‘열정’ 두 글자를 크게 적었다.

"알았어요. 노력해볼게요. 나중에 합격하면, 제가 강진 씨한테 확실하게 보답할게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것으로 한지윤과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또 한 차례 늘었다.

* * *

슬슬 부대로 복귀해야 할 시간이다.

카페를 나온 두 사람.

"강진 씨는 뭐 타고 부대로 들어가시나요?"

"택시입니다. 근데 저 혼자 타고 들어가는 건 아니에요. 오늘 부대로 같이 복귀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하고 같이 타고 갈 겁니다."

"어머, 그래요? 몇 시에 만나기로 하셨는데요?"

"4시 반입니다."

현재 시간은 4시 15분이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 15분가량 남은 상황.

"죄송해요, 강진 씨. 이럴 줄 알았으면 카페에 더 있다 나올 걸 그랬어요."

"괜찮습니다. 지윤 씨 볼 일도 있을 테니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여기 기다렸다가 부대로 복귀하겠습니다."

"아니에요. 15분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잖아요. 제가 이야기 상대라도 해드릴게요."

한지윤의 뜻이 너무 강했기에 이강진은 어쩔 수 없이 길 한복판에서 한지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길을 가던 몇몇 사람들이 이강진과 한지윤을 슥 쳐다봤다.

특히 한지윤 쪽에 시선이 많이 머물렀다.

"저 군인 아저씨 봐. 여자친구, 엄청 예쁘지 않냐?"

"그러게. 연예인인 줄 알았네."

"군인도 저렇게 예쁜 여자 친구 만드는데. 시발, 우리는 대체 뭐냐?"

"하아! 좆같네! 술이나 마시러 가자!"

커플로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여자 친구 예쁘다.’라는 말을 공통적으로 했다.

그래서일까. 이강진은 본인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지윤 씨가 정말로 내 여자 친구라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미래의 톱스타가 자신의 여자라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것이다.

약속시간인 4시 반이 딱 되었을 때, 누군가가 이강진을 불렀다.

"강진아!"

"충성!"

오늘 만나서 같이 복귀하기로 한 인물, 박이율 병장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박이율은 도중에 헛숨을 삼켰다.

옆에 나란히 서 있는 한지윤 때문이었다.

"지, 지윤 씨 아닙니까?!"

"어머, 안녕하세요."

한지윤은 1075 대대에서 굉장히 유명했다.

기독교 행사에 참가하면 만나볼 수 있는 천사······ 아니, 여신!

그녀가 이강진과, 그것도 단 둘이 서 있는 모습에 박이율 병장은 어버버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한지윤은 태연하게 이강진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보냈다.

"그럼 강진 씨, 다음 주에 부대에서 봐요. 교회 나오실 거죠?"

"물론이죠!"

"호호, 잘 들어가시고요. 아! 심심하시면 언제든 제 번호로 연락 주세요. 제가 이야기 상대 되어드릴게요."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한지윤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는 이강진.

박이율이 그런 이강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럴 때마다 이강진은 ‘이병 이강진, 이병 이강진.’이라고 관등성명을 반복해 말해야만 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봐라, 이병 이강진 씨."

"그냥 지윤 씨 대학 레포트 좀 도와줬습니다."

"무슨 레포트인데?"

"직업 만족도 조사 관련 레포트였습니다.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만족도가 얼마나 되는지, 이런 거 알아보고 싶어서 오늘 지윤 씨 만난 겁니다."

물론 그 외적인 이야기들은 전부 다 비밀로 하기로 했다.

괜히 말해봤자 이상한 오해만 받을 테니 말이다.

"아니, 근데 그걸 왜 너한테 요청했냐? 너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잖아?"

"그건······."

그러고 보니 궁금했다.

대체 왜?

이것에 대한 해답은 오로지 한지윤만 알고 있으리라.

* * *

택시를 타고 부대로 향했다.

부대에 도착하기까지 차로 이동하면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뒷좌석에 앉은 채 창밖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박이율 병장.

"하······ 이번에 들어가면 또 언제 나오냐."

"그 다음이 말년휴가입니까?"

"그렇지. 그때는 아마 마등이하고 같이 나갈 거다."

그들도 말년휴가 때에는 이강진, 백우호, 김철처럼 동기끼리 휴가를 맞춰서 나갈 계획이었다.

분리수거장 사건 당시에 1분대와 큰 마찰을 겪었던 3분대. 박이율은 그 3분대의 분대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이율은 딱히 1분대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뒤끝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건 명백히 3분대의 잘못이었으니까.

그래서 이강진과 이렇게 단 둘이 택시를 타게 되었어도 딱히 뭐라 쓴 소리를 내뱉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은 계속 반복했다.

"좆같은 군대. 아, 빨리 전역하고 싶다. 어째 병장 달고 나서부터 시간이 더 안 가는 거 같네."

그 기분은 이강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얼마 안 남은 시점이 오히려 시간이 잘 안 가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강진도 말년이라 불렸을 때에 국방부 시계가 잘 가다가 멈춘 건 아닐까 하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긴 했었다.

아마 박이율도 그 단계에 접어든 것이리라.

잠시 후.

택시가 멈췄다.

"다 왔습니다."

"여기요."

현금으로 계산을 마친 뒤에 택시에서 하차했다.

위병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두 남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오늘 복귀 안 하면 더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두 남자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자, 강진아."

"예, 알겠습니다."

두 손 가득하게 짐을 들고 위병소로 향하는 이들.

휴가 복귀를 한 이들은 조장실에서 짐 검사를 받게 된다.

조장실에 있던 하사가 박이율에게 물었다.

"혹시 MP3, CD 플레이어, 핸드폰 같은 거 가지고 들어오진 않았겠지?"

"병장 박이율. 그런 거 없습니다."

"흠, 그래?"

하사는 박이율의 상의 주머니, 건빵 주머니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말년을 앞둔 병장들은 대부분 반입 금지 물품들을 가지고 들어오곤 한다.

2달 전에 몰래 스마트폰을 가져왔다가 걸린 병장이 있었다. 그 때문에 조장실에서 좀 더 빡세게 휴가 복귀자 물품 검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하나 박이율은 무사 통과였다.

"오케이, 다음."

이강진이 하사 앞에 마주섰다.

"이등병이 설마 벌써부터 반입 금지 물품 가지고 들어올 생각은 안 하겠지. 그래도 절차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이병 이강진, 예! 알겠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강진은 그런 거 없었다.

두 사람 다 무사히 통과했다.

위병소를 통과해 막사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박이율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휴, 들킬 뻔했네!"

갑자기 바지 안쪽에 손을 넣은 박이율. 사실 그는 속옷 안에다 스마트폰을 숨겨뒀다.

이강진은 그걸 미리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박이율이 택시 안에서 스마트폰을 몰래 숨기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강진아. 못 본 척 해라."

"이병 이강진. 예, 알겠습니다."

나중에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군대란 원래 그런 곳이다.

행정반으로 향하던 도중에 이강진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뭐지?’

병사들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박이율도 그걸 느낀 모양인지 지나가던 3분대 후임병을 불렀다.

"일전아."

"충성! 박이율 병장님 복귀하셨습니까!"

"어, 그래. 근데 부대 분위기가 왜 이러냐? 애들 표정이 다 썩었는데?"

나일전 일병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지금 부대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뭔데. 무슨 일이야."

불길함은 곧 현실이 되었다.

"이틀 전에 야간 초소 근무자들이 초소에서 몰래 자다가 대대장님한테 걸렸습니다."

1